동양적 아방가르드<Avantgarde·前衛>의 진수… 性의 구분·상식의 한계 뛰어넘어

입력 2011.02.19 03:02

'세계 패션계는 가와쿠보 레이 전과 후로 나뉜다'

2006년 시사주간지 '타임'은 '아시아의 영웅들' 특집을 하며 가와쿠보 레이(69)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1981년 파리 컬렉션에 진출한 그는 동양적 아방가르드(전위)의 진수를 보여주며 유럽 패션계를 놀라게 했다. 과감한 블랙의 사용, 인체의 실루엣을 파괴한 '넝마주이 패션'은 서구사회에 이렇게 외치는 듯했다. '이제 아시아는 직물 공장이나 돌리는 곳이 아니다, 영감의 보고(寶庫)다!'

이세이 미야케(왼쪽) 요지 야마모토(오른쪽) /AP
가와쿠보 레이가 설립한 브랜드 '꼼데가르송'은 세계 패션산업에 부는 '쿨 재팬(cool Japanㆍ멋진 일본)'의 대표주자다. 꼼데가르송의 철학은 일본 전통의 미의식 '와비사비(侘寂)'에 있다. '와비사비'란 불완전하며 거친 상태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는 뜻이다. 서구에 없던 이 동양적 가치가 꼼데가르송 상표를 달고 비싼 값에 팔려나가는 것이다. 동양인의 체형에 맞춰 제작된 꼼데가르송의 불편한 옷을 서양인들이 집어 든다는 사실은 패션업계를 다시 놀라게 했다. 2006년 열린 파리컬렉션은 가와쿠보 레이의 부푼 자신감을 보여준 무대였다. 게이샤 화장을 한 서양 모델이 일장기 무늬의 드레스를 입고 런웨이를 활보한 것이다.

꼼데가르송이 '소년처럼'이라는 뜻의 프랑스어에서 온 것처럼 가와쿠보 레이의 옷은 성의 구분과 상식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마크 제이콥스나 알렉산더 맥퀸 등도 꼼데가르송의 실험 정신에 큰 영향을 받았다. 가와쿠보 레이는 세계 패션계에 주지주의(intellectualism) 트렌드를 퍼뜨린 것으로 평가받는데, 이는 그가 게이오대학 철학과에서 미학을 전공했던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그 후에도 정식 디자이너 코스를 밟지 않고 3년간 직물회사 홍보부에서 일하다 퇴직, 프리랜서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했다. 꼼데가르송 브랜드를 만든 것은 1969년이다.

가와쿠보 레이는 동시대 디자이너인 요지 야마모토(68)와 이세이 미야케(73)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이 셋은 세계 패션계에 일본을 알린 1세대이자, 30년 넘게 일본 하이패션(오트쿠튀르와 같은 뜻의 고급 패션)을 주름잡은 스타들이다. 요지 야마모토는 1981년 연인이었던 가와쿠보 레이와 함께 파리컬렉션에 진출했으며 '꼼데가르송' 브랜드 설립에 일조했다. 이세이 미야케는 1973년 파리 컬렉션에 데뷔, 기능적·미래주의적인 옷으로 패션계를 사로잡은 인물이다.

꼼데가르송은 총 13개 라인으로 나뉘며, 이 중 '블랙 꼼데가르송'과 '플레이(PLAY)'가 가장 대중적인 라인이다. 특히 하트 마크로 잘 알려진 '플레이' 라인은 국내 20~30대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꼼데가르송은 일본에 91개, 해외 247개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꼼데가르송이 국내 본격적으로 진출한 것은 작년 8월 제일모직이 서울 한남동에 '플래그십 스토어'(대형 단독매장)를 열면서다. 한남동의 플래그십 스토어는 꼼데가르송 단일 매장으로는 중국 베이징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 가와쿠보 레이가 직접 건축 디자인을 총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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