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기업, 넋 놓고 고민하는 동안 '지각'이다

    • 김정수 베인&컴퍼니 상무

입력 2011.02.19 03:01

조직은 '의사 결정'의 연속… 최선의 선택 위해 세 번 물어라

오늘도 아침에 늦게 일어났다. 지각할 때마다 눈총을 주는 부장님 얼굴부터 떠오른다. 허겁지겁 세수만 간단히 하고 집을 나서면서부터 고민은 시작된다. "지하철을 타야 하나, 택시를 타야 하나?" 택시비가 아깝기는 하지만 직장 생활을 위한 투자라 생각하고 큰길로 나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따라 5분이 지나도 10분이 지나도 빈 택시 한 대가 지나가지를 않는다. "지금이라도 지하철역으로 갈까, 더 기다려볼까?" 마음은 초조하고 시간은 지나간다.

일러스트=김현국 기자 kal9080@chosun.com

1. 최대한 빨랐는가… 노키아의 실패는 의사 결정 속도의 실패

사람은 일생을 살면서 늘 크고 작은 의사 결정의 상황에 직면한다. 특히 분초를 다투는 아침 출근 시간에는 무엇보다도 신속한 의사 결정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은 대부분의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경쟁사가 새로운 제품을 출시할 때 과거 제품에 매달려 머뭇거리는 것은 어정쩡하게 길거리에서 택시를 기다리며 시간만 보내는 것과 같은 꼴이다.

스마트폰이 휴대폰 시장의 판도를 바꿔 놓는 동안 중저가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결국 시장점유율이 크게 낮아진 노키아가 그 좋은 사례다. 세상이 빠르게 변화할수록 많은 기업들은 더 빠른 의사 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이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26년간 GE의 핵심 임원으로서 많은 의사 결정을 주도한 빌 그레이버(Bill Graber)는 "GE가 다른 조직보다 더 나은 의사 결정을 한 것이 아니라 더 빠른 의사 결정을 했을 뿐"이라고 속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의사 결정의 속도'는 기업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이고, 기업의 의사 결정 속도를 높이기 위한 방법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조직 계층(layer)을 줄이는 것이다. 계층이 많을수록 의사 결정이 더뎌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많은 기업들이 스피드 경영을 내세우면서 이 계층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예를 들어, 여러 개의 과 업무를 하나의 팀으로 통합하고, 어지간한 의사 결정은 팀장이 최종적으로 결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변화는 팀장의 업무 범위, 즉 스팬(span)을 넓히고, 다양한 분야에 걸친 더 많은 의사 결정 책임의 집중을 가져오기 때문에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국내외의 많은 기업들은 조직 계층을 줄이고 의사 결정자의 역량을 향상시킴으로써 의사 결정의 속도를 높여 왔다. 스스로 무한 경쟁 시대에 걸맞은 조직을 구축했다고 자부하는 기업들도 많다. 하지만 문제는 의사결정 속도가 빨라졌다고 반드시 조직의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무엇을 간과한 것일까?


2. 따질건 다 따졌는가… 속전속결이 만능은 아니다

성공적인 의사 결정에서 중요한 것은 의사 결정의 속도보다는 '의사 결정의 질(Quality)'에 있다. 속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들이 한편으로는 의사 결정의 질을 떨어뜨릴 위험을 늘 내포하고 있다. 최근 생수 판매 사업 진입 의사 결정을 내린 캐나다의 한 회사가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이 회사는 캐나다 청정 지역에 있는 호수의 물을 병에 담아 파는 사업을 구상하고 있었다. 시작부터 모든 일들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듯했다. 시(市) 당국은 고용을 확대하기 위해 99년간 호수의 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줬다. 생수 생산을 위한 기계도 확보했다. 물이 점점 귀해지면서 세계적으로 생수 시장은 확대일로를 가게 될 전망이다. 혹시라도 다른 회사에 이런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칠세라 이 회사는 번개같은 속도로 사업 참여 의사 결정을 내렸다. 초기 투자만 3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사업이지만 의사 결정은 불과 8주 만에 이뤄졌다.

속도로만 보자면 이 좋은 조건의 사업을 경쟁사가 제대로 검토도 해보기 전에 계약을 따낸 쾌거다. 하지만 이 신사업 진입은 질적 측면에서 그렇게 훌륭하다고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신사업 진입을 위해 꼭 검토해야 할 사항들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즉, 생산 설비나 원료 확보, 해당 산업 자체의 성장성만 확인했지 해당 산업의 경쟁 강도, 고객의 니즈 등은 아예 검토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식품 제조업이라면 늘 고려했어야만 하는 품질상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 대비한 리콜이나 제품 회수 계획도 없었다. 결국 남들보다 빨라야 한다는 강박 관념 때문에 몇 가지 장밋빛 요소만 검토하는 우를 범했던 것이다. 그 결과 사업권을 따내고도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투자자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장기간 본격적인 사업 개시를 할 수 없었다.

따라서 빠른 의사 결정을 위해서 결재 계층을 줄이고, 소수의 사람들에게 여러 분야에 걸친 많은 의사 결정 권한을 집중시키는 것이 자칫 조직 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토의하는 과정을 축소하는 게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만일 위의 생수 회사가 마케팅 부서와 리스크 관리 부서 등의 의견을 수렴했다면 훨씬 더 정교한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미국 사우스웨스트항공이 2000년대 초반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내린 항공기유 가격에 대한 완벽한 헤지(hedge) 정책이 2007년 가격 폭등기에 이 회사를 전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흑자 항공사로 만들어준 것이 좋은 사례이다.


3. 당장 실행 가능한가… 조직 간 반목은 결정된 일도 뒤엎는다

이렇게 해서 의사 결정의 속도와 질을 높이고 나면, 그보다 더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이 '실행 가능성'이다. 아무리 좋은 의사 결정이라 하더라도 실행이 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세계 시장을 선도하던 중공업 업체인 ABB를 1990년대 후반 부도 직전까지 몰아갔던 것이 바로 이 실행 가능성의 문제였다. 이 회사는 수천만 달러 규모의 기자재 수주전에서 연전연승하면서 가파른 성장을 이루어왔다. 하지만 수차례 인수합병으로 회사의 규모를 급격히 키운 이후 갑자기 수주 성공률이 낮아졌다. 문제의 원인은 이랬다. 이 회사 내의 각 부문들은 각자의 수익률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수주 가격을 설정할 때 어느 한 부서도 전사적 관점에서 자신의 목표를 수정하거나 양보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수주 목표물과 가격을 정하고 돌아서면 부서 간 이해관계 충돌로 한 발자국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어떤 조직에서건 이런 문제는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수년간의 고객 조사 결과 판매·마케팅 부서가 선보인 새로운 서비스가 IT부서의 반대로 빛을 보지 못한 채 사라지는 경우가 그런 사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실질적인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심리적, 감정적인 문제이다. 마케팅 부서는 미처 알지 못했지만, 이 새로운 서비스를 위해 도입해야 하는 IT 시스템 비용은 이 서비스를 통한 예상 수익보다 훨씬 더 컸다. 마케팅 부서가 의사 결정 이전에 IT 부서와 사전 협의(pre-wire) 과정을 거쳤다면 다른 의사 결정을 내렸거나 IT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대안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IT부서가 비용절감 방안을 찾는 대신 무조건 반대해 새 프로젝트를 좌초시킨 것은 마케팅 부서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마케팅 부서가 늘 IT 부서를 따돌리고 의사 결정을 해온 데 대한 심리적·감정적인 대응이다. 얼핏 가장 합리적이어야 하는 조직에서 이런 일이 있을까 싶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조직 간 알력으로 인해 실행 이전 단계에서 사업이 좌초되는 일이 다반사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중요 의사 결정 사안에 대해서는 반드시 관련 부서로 이루어진 협의체의 논의를 거치도록 하는 것이 좋다. 예컨대, 500억원 이상 투자가 필요한 신상품 개발을 위해서는 반드시 재무·판매·마케팅·IT 부서의 협의를 거치도록 하는 것이다. 


$. 이 모든 걸 고려하려면… 좋은 의사 결정엔 비용이 든다

좋은 의사 결정을 위해서는 속도와 질, 그리고 실행 가능성이 모두 높아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유무형의 '비용과 노력'이 들어간다. 신속한 의사 결정을 위해 전자 결재 시스템을 도입하고, 스마트폰을 지급하는 회사들이 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상당한 비용 지출을 가져온다. 더 나은 결정을 위해서 빈틈없는 검토 목록을 만들고 채우는 것도 많은 인력과 조사 비용이 필요하다. 협의회나 회의체에 모이는 사람들의 시간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이렇게 보면 최적의 의사 결정 구조를 만드는 것은 의사 결정의 속도·질·실행 가능성·비용과 노력이라는 4가지 요소가 얽혀 있는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이다. 의사 결정의 속도·질·실행 가능성 중 어느 하나가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회사의 성과는 이들 세 요소의 곱과 비례 관계에 있다. 예를 들어 의류 제조 업체 자라(Zara)나 구글, 이베이와 같이 시장의 흐름을 빨리 따라잡아야 하는 회사들에는 의사 결정의 속도가 더 중요할 수 있고, 실패 위험이 큰 자원 탐사 업체의 경우 의사 결정의 질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한편 의사 결정을 위한 노력과 비용이 조직의 성과를 저하시킬 정도로 큰 부담을 가져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 따라서 '조직의 성과 = 의사 결정의 속도×의사 결정의 질×실행 가능성/비용 및 노력'이라고 하는 등식이 성립한다. 이를 바탕으로 조직과 개인이 처한 상황과 업무의 특성에 맞는 최적점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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