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튀며 김범수가 돌아왔다

입력 2011.02.06 02:57

600만이 다운받고 53억 투자받은 '카카오톡' 개발
NHN에서 물러난 지 3년 만에 화려한 컴백
카카오톡 '600만 다운로드'의 비결
"스마트폰 핵심은 커뮤니케이션"… 시대 흐름 꿰뚫어

지난 2007년 8월 7일은 NHN의 두 창업자 중 한 사람인 김범수 당시 NHN 미국 대표에게 무척 씁쓸한 하루였다. 그날 그는 자신이 오랜 기간 만들고 키웠던 회사를 떠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2000년 4월 이해진 현 NHN 이사회 의장과 함께 NHN을 공동 설립한 지 7년 반 만의 일이었다. 서울대 공대 86학번 동기, 삼성SDS 입사 동기였던 두 사람은 끈끈한 유대감으로 NHN을 설립했고, 각자의 장기를 살려 국내 인터넷 게임(김범수·네이버 한게임)과 검색(이해진·네이버 검색) 시장을 평정했다.

김범수 대표의 전격 사퇴를 놓고, 업계에선 NHN 내부에서 '게임 인맥'이 '검색 인맥'에 밀렸다는 말이 나왔다. 2009년엔 김범수 대표 아래에서 게임사업 실무를 총괄했던 남궁훈 전 게임본부장도 퇴사했다.

3년이 흐른 지금 김범수 전 대표는 새로운 제품으로 IT 시장에 화려하게 컴백했다. 자신이 설립한 '카카오'라는 회사가 내놓은 '카카오톡'이라는 앱(스마트폰용 응용프로그램)이 그것이다.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가 750만명인데 그 중 80%인 600만명이 다운로드 받았다. 물론 단일 앱 중 최대이다. 그것도 압도적인 차이로.

많은 스마트폰 사용자에게 친숙한 이 앱은 휴대폰 문자메시지나 PC용 인스턴트메신저의 스마트폰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앱의 매력은 무료라는데 머물지 않는다. 기존의 건조하고 사무적인 느낌을 줬던 휴대폰 문자메시지와 달리 정감(情感) 넘치는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강점이다. 창을 열면 상대방의 이름과 함께 사진이나 캐리커처, 그리고 그가 쓴 짤막한 글이 나타난다(글은 자신의 기분에 따라 수시로 바꿀 수 있다). 원하는 상대를 클릭하면 1대 1 채팅이 시작된다. 채팅 내용은 말풍선 모양 안에 나타나 만화를 읽듯 편안한 느낌을 준다. 다자(多者)간 채팅이나 그림파일 전송 같은 고급 기능도 있다.

해외에서도 인기다. 지난 1월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에서는 카카오톡의 영어 버전이 앱스토어(애플의 애플리케이션 장터) 앱 중 다운로드 1위를 기록한 날이 많다. 홍콩마카오에서도 이용자가 급증하고 있다.

물론 무료 서비스이기 때문에 장차 어떻게 유료화할 것인가가 과제로 남아 있긴 하다. 하지만 지난 1월 굵직한 인터넷업계 대가들의 투자를 유치하면서 가능성을 확인받았다. 넥슨의 김정주 회장,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 등 14명이 53억원을 투자했다.

김범수의 컴백은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났다가 와신상담 끝에 화려하게 재기한 스티브 잡스를 연상시킨다. 한번 무대에서 내려온 IT 창업자들이 좀처럼 재기하기 힘들었다는 점에서도 그의 컴백은 신선하다.

그는 2007년 회사를 그만둔 직후 벤처 투자회사를 세울까도 생각했고, 이후 방향을 틀어 웹2.0(쌍방향 의사소통을 핵심으로 하는 인터넷 서비스 방식) 기능을 갖춘 사이트를 선보였으나 신통찮았다. 그러던 그에게 새로운 전기가 찾아왔다. 2009년 말 아이폰이 급속도로 보급되기 시작됐던 것. 삼성전자가 애플에 맞설 새로운 스마트폰 준비를 서두른다는 소식을 듣고 김 의장은 결심을 굳혔다.

카카오톡의 성공은 무엇보다 새로운 트렌드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비롯됐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Weekly BIZ와의 인터뷰에서 "인터넷 시대의 핵심이 '검색'이었다면, 스마트폰 시대의 핵심은 무엇일까 오래 고민했고, 결국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인터넷 시대엔 정보가 넘쳐나 사람들이 원하는 정보를 잘 찾아주는 도구를 가장 필요로 했다면 스마트폰 시대엔 24시간 휴대와 인터넷이 가능한 통신기기라는 특성을 가장 잘 살려주는 프로그램이 소비자들을 사로잡을 것으로 봤다는 얘기다. 가령 스마트폰용 게임의 경우 아무리 잘 만들어도 사람들이 PC로 느끼는 재미를 주기엔 한계가 있다.

그는 "일단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큰 목표가 선 뒤에 구체적 대상을 찾았고, 그 과정에서 휴대폰 문자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큼 문자 메시지를 많이 쓰는 나라도 드물다. 그런데 문자 메시지는 왜 꼭 돈을 내고 사용해야만 할까? 만일 이걸 무료로 한다면 수요가 엄청나게 커질 수 있지 않을까? 해외에서 비슷한 앱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지만, 외국어 버전인데다 다자(多者)간 채팅 등 이용자가 재미를 느낄 만한 부가기능이 잘 들어 있지 않았다. 한국에서 충분히 차별화된 앱을 내놓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일단 목표를 정한 뒤엔 신속하게 실행에 옮겼다. 커뮤니케이션 도구는 먼저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는 게 핵심이라는 점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가령 과거 PC를 통한 인스턴트메신저 시장에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네이트온' 아니면 'MSN 메신저'를 쓰는 바람에 후발 업체들은 자리 잡을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았다. 네트워크의 규모가 커질수록 그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메트컬프의 법칙' 이 작용하는 것이다.

김 의장은 지난해 1월 결심이 서자 밤낮을 가리지 않는 연구개발을 통해 불과 2개월 뒤인 3월에 첫 버전을 내놨다. 20여 명의 개발 전문가들이 똘똘 뭉친 결과였다. 가입자는 빠른 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뒤에 인터넷 포털 '다음'도 비슷한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가입자는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또 다른 성공 비결은 김 의장의 말처럼 "개발 과정에서 개발자의 함정에 빠지지 않게 각별히 주의했다"는 점이다. 베테랑 개발자일수록 소비자가 원하는 것보다는 평소 자기가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을 구현해 보고 싶은 욕구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그는 초기부터 개발자들에게 이 점을 각별히 경고했다.

김 의장은 수익 모델과 관련, "지금은 이용자 저변을 넓히는 단계"라며 "광고나 디지털 아이템 판매 같은 인터넷에서 검증된 모델은 얼마든지 적용 가능하지만 당장의 이익만 보고 할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수익 모델에 신중한 것을 연상시킨다. 그는 "스마트폰은 24시간 갖고 다니는 기기라는 점에서 인터넷 시대엔 상상도 못했던 변화를 우리 생활에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목표는 앱과 앱, 더 나아가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모바일 소셜 허브(social hub)로 자리매김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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