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스'를 버려 '필립스'를 살렸다

입력 2011.01.08 03:06 | 수정 2011.01.08 10:18

클라이스터리 회장의 새판짜기… "그댄 변하기 위해 심장을 도려낼 수 있는가"

그해 네덜란드의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1973년 10월부터 시작된 제1차 오일쇼크로 유류비가 급등하자 난방을 끊거나 줄이는 건물이 속출했다. 당시 스물일곱살의 청년 제라르드 클라이스터리(Kleisterlee)는 얼음장 같은 방에서 손을 녹여가며 편지를 썼다. '필립스 채용 담당자 귀하. 저는 에인트호번 기술대학교에서 전기공학 석사 학위를 받은 학생입니다. 대학 내내 필립스의 장학금으로 공부했지요. 제 아버지는 평생을 필립스에서 일하셨고, 저도 필립스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혹시 채용 계획이 있으신지요?'

클라이스터리는 필립스에 입사해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그때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이 청년이 40년 후 필립스의 역사를 바꿀 것이란 사실을.

필립스(Philips)는 1891년 백열전구 생산을 시작한 이래 세계 최초의 카세트테이프(1962년)와 CD 플레이어(1982년), DVD 플레이어(1995년)를 잇따라 선보인 20세기 전자산업의 아이콘이다. GE와 소니, 마쓰시타와 더불어 1990년대 중반까지 전자업계를 주름잡았다. 반도체부터 백색가전, 컴퓨터와 휴대폰, 심지어 음악 CD까지 만들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선택과 집중'이 없는 문어발식 경영은 위기의 씨앗을 뿌리고 있었다. 기술과 시장 지배력에 대한 자신감은 혁신의 에너지를 갉아먹었고, 조직은 커졌지만 소비자와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2001년 IT 버블 붕괴와 함께 올 것이 왔다. 필립스의 매출은 전성기인 1996년에 비해 30% 급감했다. 영업 손실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주가는 1년 만에 3분의 1토막 났다.

최악의 시기에 주주들이 내세운 구원투수가 클라이스터리였다. 그는 필립스의 여러 핵심 부서와 대만·중국 법인장을 거쳐 핵심 경영진 중 한 명으로 성장해 있었다. 주주들은 대(代)를 이은 필립스맨 클라이스터리라면 사내 누구로부터도 신뢰를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내부 출신의 구조조정은 쉽지 않을 것"이란 외부의 평이 무색할 만큼 전면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휴대폰과 오디오, 팩스 사업을 외부에 매각하고, TV와 CD플레이어, VCR 생산을 중국과 일본, 폴란드로 아웃소싱했다. 260개의 공장을 160개로 줄이고, 직원의 25%를 줄였다. 구조조정의 절정은 2006년의 반도체 사업부 매각이었다. '기술의 필립스'를 상징하던 사업부였고, 클라이스터리의 아버지가 평생을 바친 일터이기도 했다. "필립스의 심장을 도려내는 짓"이란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눈은 10년, 20년 후를 향하고 있었다. 그의 구조조정이 단지 경비 절감에 머물렀다면 그는 결코 신뢰를 얻지 못했을 것이고, 단명하는 경영자로 남았을 것이다. 그의 공헌이 있다면 멀리 내다보면서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결정한 것이었다.

방만한 경영으로 2001년 최악, 클라이스터리 회장 구원 등판

휴대폰·TV 등 매각·아웃소싱… 경비절감 위한 구조조정 아닌
新성장동력 찾기 등 사업 재편

'필립스의 핵심' 반도체까지 팔아 의료·조명기기 인수, 변신 성공

"예전의 필립스는 전략이란 것을 가져본 적이 없었죠." 올해 65세가 된 클라이스터리 회장 겸 CEO는 당시를 회고하며 말했다. "기술자들이 뭔가 제품을 만들어 내면 그냥 열심히 팔려는 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너무나 폭넓은 사업을 벌이고 있었고, 그 사업들은 너무 기복이 심했습니다. 안정적이고 보다 예측 가능한 사업 포트폴리오가 필요했습니다."

그가 짠 새로운 판이 뒤이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기존 사업들을 매각해 얻은 자금으로 신성장동력으로 점찍어 둔 의료기기와 조명(lighting) 분야의 기업들을 인수해 키웠다. 그리고 필립스는 스스로를 '라이프스타일 기업'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과거 필립스의 거의 모든 것이었던 소비자 가전은 지금은 필립스의 3분의 1 정도로 남아 있다.

많은 기업이 신성장동력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을 위해 자신의 심장까지 도려내는 기업은 흔치 않다. 필립스의 변신은 제프리 이멜트 회장의 GE와 함께 가장 극적인 사업구조 재편의 사례로 남을 것이다.

클라이스터리 회장을 만난 것은 공교롭게도 삼성전자가 의료기기 업체인 메디슨 인수를 발표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삼성전자가 최근 발표한 5대 신수종사업 목록엔 필립스가 일찌감치 주력사업으로 육성한 의료기기와 조명(LED 조명) 둘 다가 포함돼 있다. 14층에 있는 클라이스터리 회장의 방은 대여섯평 넓이에 가구는 책상과 책장, 소파가 전부였다. 그는 방금 출장에서 돌아와 손수 가방을 정리하고 있었다.

―방이 좀 좁은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이 건물은 우리가 세 들어 있는 건물입니다. 공간을 절약해야죠."

―설마요. 본사 건물이 필립스 소유가 아니라고요?

"그럼요. 이런 사무실 공간은 대부분 빌려서 씁니다. 사무용 건물을 소유하는 것은 우리의 경쟁력에 아무 도움이 안되니까요. 기업은 자기만의 핵심역량에 집중해야 합니다. 다른 기업과 차별화시켜 주는 것 말입니다. 부동산은 필립스의 핵심역량이 아닙니다."

제품도 조직도 단순하게 필립스를 하나의 DNA로 묶다

―회장님 취임 후 필립스는 '라이프스타일 기업'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무슨 의미인가요.

"소비자들은 날이 갈수록 건강과 안전, 환경 문제에 민감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트렌드를 반영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건강과 웰빙(well-being)에 맞췄습니다. 현재 필립스의 제품은 토스터나 커피메이커 같은 주방용품부터 면도기, 전동칫솔, 다리미, 청소기, 의료기기까지 모두 생활의 전 영역에 걸쳐 인간에게 건강과 웰빙, 즉 더 나은 라이프스타일을 선사하기 위한 것들입니다. 조명도 대단히 인간의 삶과 밀접한 제품입니다. 조명은 공간의 분위기를 만들고, 인간의 생산성과 집중력, 감정에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조명은 인간의 삶을 디자인하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커피메이커·다리미 조작 버튼 하나 TV 리모컨도 버튼이 달랑 세개 뿐
기능 확 줄이고 디자인은 간편하게

■제품도 조직도 단순해야 한다

필립스는 2004년 마케팅 슬로건을 '센스 앤 심플리시티(sense and simplicity)'로 바꾸었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센스 앤 센서빌리티'를 연상시키는 작명이다.

"당시 심층적인 소비자 조사를 했는데,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어요. 최신 기술을 적용한 신제품들이 기능이 너무 많아 오히려 사용하기 힘들다는 얘기였어요. 예를 들어 요즘 나오는 TV와 DVD를 보면 사용설명서가 책처럼 두껍고, 리모컨에는 용도가 아리송한 버튼이 수십개씩 달려 있죠. 또 전자제품이 점점 늘어나면서 거실엔 리모컨이 5개씩 굴러다닙니다. 병원에서는 의료 장비가 새로 바뀌면 조작법이 달라져서 전부 새로 배워야 합니다. 이런 문제들이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복잡성의 반대편에 있는 단순성(simplicity)을 추구하기로 했습니다. 우리 고객들이 첨단 기술을 좀 더 쉽게 경험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고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하자는 의미에서 센스(sense)라는 말도 집어넣었습니다."

클라이스터리 회장은 '센스 앤 심플리시티'를 단순한 마케팅 구호가 아닌, 필립스 조직 혁신의 슬로건으로 삼았다. 그는 "기업이 어떤 방향으로 브랜드 포지셔닝을 하면 조직 전체가 거기에 맞춰서 숨 쉬고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비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제공하겠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하는 회사가 내부적으로는 복잡한 조직과 절차, 과정에 얽매여 있다면 말이 됩니까? 스스로 센스 앤 심플리시티를 실천하고 체득(體得)해야만 고객에게도 그러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겁니다."

그는 그런 자신의 믿음대로 지난 10년간 복잡한 사업 조직과 의사 결정, 실행 구조를 완전히 개혁했다. 총 14개에 이르던 사업부를 조명과 의료기기, 소비자 가전의 셋으로 간결하게 정리한 것이 첫 단계였다. 그는 뒤이어 모든 공정(工程)과 일 처리 과정에서 복잡성을 몰아내고, 조직의 계층(layer)을 대폭 줄였으며, 중복된 관리·감독 체계도 단순화했다.

■모든 사업을 하나의 DNA로 통일하다

2001년 그가 CEO가 되었을 때 필립스의 사업 구조는 최종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완제품 사업과 기업 대상의 부품 사업이 공존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반도체와 전기면도기, 다리미와 의료용 진단기기 같은 야릇한 조합이었다.

클라이스터리 회장은 이를 "서로 DNA가 다른 두 가지 비즈니스 군(群)이 뒤엉켜 있는 상황이었다"고 묘사했다. 한쪽은 소비자를 겨냥한 강력한 브랜드와 디자인이 필요한 분야(다운스트림)였고, 다른 한쪽은 대규모 생산 시설과 집중적인 연구개발(R&D)이 필요한 분야(업스트림)였다.

"당시 우리는 이 두 가지 비즈니스를 모두 안고 가려면 회사의 역량이 분산되고, 침체된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우리의 선택은 '다운스트림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에 맞춰 사업 포트폴리오를 새로 짰습니다. 필립스의 모든 사업을 하나의 DNA로 통일한 것이죠."

―반도체를 매각하고 의료기기와 LED 조명 분야에 집중 투자하셨는데, 왜 그런 판단을 내렸나요?

"기업의 미래에 대해 고민할 땐 항상 두 가지 면을 봐야 합니다. 첫째, 현재 우리 회사의 위치는 어디이며 어떤 기술과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입니다. 둘째, 지금 세상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으며, 그 변화 방향은 우리 회사의 현실과 맞아떨어지는가 하는 것입니다. 거시경제적 측면에서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따져보니 의료기기와 조명 쪽이 훨씬 나아 보였습니다. 세계 어딜 가든 인구 증가, 경제 발전, 노령화로 인해 의료 서비스 수요가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죠. 세계의 모든 국가가 좀 더 저렴하게, 그리고 더 많은 사람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또 조명은 미래의 에너지 문제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습니다. 전 세계 전기 소비량의 무려 20%를 조명이 차지한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조명 분야의 기술 혁신을 통해 에너지 소비량을 줄임으로써 에너지와 환경 위기 해결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반도체를 포함한 부품사업들을 매각할 때는 뭔가 큰 그림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대만에서 지사장으로 일했던 경험이 제게 전자산업이 장기적으로 어떻게 진화해 가는지에 대한 통찰력을 갖게 해줬습니다. 초기엔 필립스처럼 부품부터 완성품까지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업체들이 등장합니다. 산업의 표준이 무르익지 않아 다양한 부품과 기술을 모두 회사 내에서 만들어 조달해야 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산업이 성숙하면서 각종 표준이 확립되고, 대량생산 양식이 확산되면 독자적인 부품 회사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LCD나 반도체 같은 부품을 생산해 외부에 공급하면서 스스로도 LCD와 반도체를 이용한 완성품을 만드는 혼합 모델의 기업도 일부 나타납니다(삼성전자의 사업 모델이 대표적이다·편집자 주). 그런데 대부분은 분화의 길을 걷습니다. 즉 다른 기업에 부품과 기술을 공급하는 기업이 되거나, 완제품을 만드는 기업의 둘 중 하나로 특화하는 것이죠. 특히 아시아에서 많은 부품 공급 업체들이 등장했지요. 이런 산업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서 필립스가 어떤 길을 가야 할 것인가 하는 판단에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합니다."

그는 "LCD와 반도체는 공급량도 충분하고 대만과 한국·일본에 생산 기업들도 많아 이미 범용재처럼 된 상황"이라고 했다. 그래서 "직접 투자하는 것보다 다른 기업에서 사서 쓰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것이다. LG와의 LCD 사업에서 손을 뗀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줄줄이 삼성전자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비판으로도 들렸다.

"LCD 공급 부족을 겪게 되면 내부 공급선이 아쉽지 않겠느냐"고 묻자 그는 "별 문제가 없다"고 했다. "어차피 고통은 수요자 모두에게 배분되니까요. 우리도 반도체 사업을 해봤지만, 공급자 입장에서 고객들을 차별할 수는 없습니다. 예컨대 내부 고객에게 우선적으로 물량을 공급할 수는 없다는 얘깁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고객은 당장 다른 공급자를 찾아갈 테니까요."

이질적인 사업 붙들고 늘어지는 것보다
다른 기업에서 직접 사서 쓰는 게 이득
올해 4월 CEO에서 깨끗이 물러나 은퇴

■변화를 거부한 이에게도 미래를 제시하라

―아무리 옳은 방향이라고 해도 내부적으로 상당한 저항이 있었을 텐데, 어떻게 극복했나요?

"확실히 반도체 사업 매각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반도체 사업은 필립스의 핵심 사업이라고 생각했고, 필립스의 거의 모든 제품에 반도체가 들어갔으니까요. 누군가는 '반도체 사업 매각은 회사의 심장을 파내는 짓'이라고도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필립스의 진짜 심장은 어떤 특정 사업부가 아니라 '인간의 삶의 질을 끌어올리겠다'고 하는 필립스의 사명(mission)과 이를 실현하려는 직원들의 열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때론 우리의 기업 활동 중 일부가 시대의 요구에 맞지 않을 수 있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나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저는 반도체 사업부가 필립스 안에 매여 있는 것보다 독립하는 것이 산업 전체에 더 기여할 수 있다고 봤고, 반도체 사업부가 그 사명을 이룰 수 있도록 우량하고 장기적 관점을 가진 새 대주주를 찾는 데 애를 썼습니다."

그는 자신이 젊은 시절 오랫동안 몸담았던 전문가용 오디오 부문을 세계적 자동차 부품 업체인 보쉬(Bosch)에 매각할 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매각설이 나오자 그의 오랜 동료가 이메일을 보내왔다. '어떻게 우릴 매각할 수 있나? 우리가 얼마나 잘하고 있는데!' 그는 이렇게 답장했다. '여러분에게 필립스보다 더 나은 모회사(parent company)를 찾아 주려고 하는 거야.' 매각 후 그 친구에게서 다시 이메일이 왔다. '제라르드, 당신이 맞았어. 새 대주주는 필립스보다 우리 사업에 훨씬 관심이 많아. 덕분에 우리 사업도 더 잘되고 있어."

그는 회사에 큰 변화를 일으킬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변화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들 역시 존중하며 그들에게도 미래를 제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누군가 자신에게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변화를 겪게 될 사람의 입장에서 서보면 된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자신이 시도하려는 변화가 그들에게는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고, 그들을 챙겨 주려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이해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사 기능을 세계 곳곳으로 옮기다

―최근엔 소비자 가전 사업부의 본사 일부를 중국 상하이(上海)로 옮기기로 했더군요. 본격적인 아시아 시장 공략에 나서시는 건가요?

"정확히 말해 주방가전 사업부입니다. 이 사업의 경우 좀 더 다양한 전략적 중심지가 필요합니다. 식(食)문화는 나라마다 지역마다 특색이 뚜렷하고, 이에 따라 주방기기도 달라지거든요. 예를 들어 커피메이커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많이 팔리고, 전기밥솥은 거의 아시아에서 팔립니다. 따라서 소비자의 곁에 사업의 베이스캠프를 둬야 합니다. 더구나 아시아처럼 미래의 핵심 고객들이 있는 곳이라면 더욱 그래야 합니다.

앞으로 필립스의 본사 기능이 세계 곳곳으로 옮겨 갈 겁니다. 한 회사의 경영진이 모두 한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과거의 모델입니다. 한곳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기에 세상은 너무나 넓고, 다양하며, 평평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한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그 나라와 지역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면서 획일적 시각의 형성을 경계했다. "회사 안에 아시아의 시각으로 유럽을 보는 사람, 미국의 시각으로 아시아를 보는 사람, 또 유럽의 시각으로 아시아와 미국을 보는 사람들이 다양하게 섞여 있어야 생산적인 대화가 이뤄진다"고도 했다.

―인재를 고르는 비법이 있습니까?

"알맞은 인재를 등용해 쓰는 일은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세상만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죠. 사람을 고를 때는 먼저 두 가지 질문에 답해 보십시오. 당신의 회사가 어떤 회사가 되기를 원합니까? 또 당신 회사가 어떤 문화를 갖기를 원합니까?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기업의 비전과 사명, 기업 문화와 맞아떨어져야 그 기업의 진정한 인재가 될 수 있습니다. 필립스의 경우 여기에 맞춰 '4-D'라고 하는 인재상을 만들었죠. 우리의 고객을 즐겁게 하고(delight our customers), 뛰어난 실적을 내며(deliver outstanding results), 인재를 개발하고(develop our people), 한 팀으로 서로 협력하는(depend on each other as one team) 사람입니다."

만 10년을 CEO로 재직한 클라이스터리 회장은 올해 4월 CEO직에서 물러날 예정이다. 필립스 창업자 가문을 뺀 역대 전문 경영인 중 최장수 기록이다.

얼추 계산해 보니 클라이스터리 부자가 필립스에서 일한 세월을 더하면 한 갑자(甲子·60년)가 넘었다. 클라이스터리 회장에게 "CEO에서 물러나도 회장이나 고문직을 하면서 회사에 남아 있을 생각은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그런 일은 없다"고 말했다. "CEO에서 물러나면 그걸로 끝이에요. 그냥 은퇴하는 겁니다. 심플하고 센스 있게 말이죠(it's simple and sens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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