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경영 전문가' 공초운 쉘 수석 정치분석가
'시나리오 분석팀' 덕 톡톡히 본 쉘 - 1970년대 오일 쇼크 정확히 예측
짜놓은 각본대로 대응 경쟁사 추월… 현재 각 분야 전문가 12명이 활동
'2050년 에너지' 미래는 - 낙관적·비관적 어느 시나리오든 원자력발전 비중은 크게 안 늘어
'시나리오 경영'이란 말을 들어 보았는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미래에 닥칠 몇 가지 큰 방향을 그려 보는 일이다. 영화를 찍기 전에 미리 시나리오를 써두는 것과 마찬가지다. 단 시나리오가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라는 데 차이가 있다. 나아가 각 시나리오가 현실이 된다는 가정하에 벌어질 구체적인 상황을 예상하고, 그에 걸맞은 대안을 고민해 보는 일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기술의 급격한 발전과 세계화의 진전으로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시나리오 기법이 각광받고 있다.
쉘은 1970년대에 시나리오 분석을 통해 두 차례의 오일쇼크 가능성을 예측하고 성공적으로 대응했다. 그 결과로 1970년대 초 업계 5위권에서 1970년대 후반 2위로 뛰어올랐다. 이 회사엔 1971년 피에르 벡(Wack)이라는 미래학자의 주도로 시나리오 분석팀이 만들어졌으며, 현재 정치·경제·사회·과학 등 각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 12명이 일하고 있다. 쉘의 전략 두뇌 집단이다.
Weekly BIZ는 쉘의 시나리오 분석팀을 이끌고 있는 공초운(사진·Khong Cho-Oon) 수석 정치분석가(Chief Political Analyst)를 만났다. 런던정경대(LSE) 정치학 박사 출신의 그는 "에너지산업처럼 전쟁·천재지변·정치적 소요·사회적 격변 등 다양한 외부 요소들의 영향을 받는 산업에서 중요한 전략적 결정을 내리는 데 시나리오 분석은 빠뜨릴 수 없는 핵심 요소"라고 말했다.
■시나리오 기법으로 오일 쇼크를 예측하다
―쉘이 시나리오 작업에 뛰어든 계기는 뭔가요.
"1970년대 초 쉘의 일부 경영진은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면서 장차 사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지 알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미래학자들의 미래 전망 기법을 도입해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한 다양한 방향성에 대해 몇 가지 시나리오를 내놓기 시작했죠. 1970년대 초에 나왔던 한 가지 시나리오는 에너지산업이 직면할 수 있는 가장 큰 도전 과제 중 하나로 에너지 공급이 차질을 빚는 상황을 제시했습니다. 그 원인 중 하나로 지목한 것이 중동(中東)의 불안정한 정세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1973년도에 첫 번째 중동 전쟁이 발발하면서 시나리오에 나왔던 에너지 공급 차질(오일 쇼크)이 빚어졌습니다. 시나리오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미리 대비했던 쉘은 위기를 잘 넘겼고, 경쟁 기업들을 젖히고 올라섰습니다. 시나리오의 덕을 톡톡히 본 것이죠. 그 이후에도 쉘의 시나리오는 상당히 성공적이었습니다. 2000년대의 유가 상승 가능성과 1990년대의 반(反) 세계화 움직임도 예측했죠."
―시나리오 작업은 어떻게 합니까?
"우선 제가 이끌고 있는 12명의 전문가들이 서로 분야를 나눠 관련 정보를 모읍니다. 주로 각 분야의 사람들을 인터뷰하는데, 대화 상대가 워낙 많아서 일일이 언급하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그들과 함께 워크숍도 자주 갖습니다. 12명 팀원이 각각 인맥도 다르고 정보 소스도 달라서 정말 다양한 정보들이 모입니다. 다양한 내부 모델링 작업을 통해 구체적인 수치도 산출해 보죠. 올해 발표한 2050년까지의 장기 에너지 시나리오의 경우는 약 2년여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특정 국가나 주제에 초점을 맞춘 세부적인 시나리오에 대한 작업도 했지요. 이런 세부 시나리오는 몇 개월 만에 만들 수도 있습니다. "
―시나리오 작업을 잘 하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첫째, 서로 다른 의견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항상 비슷한 생각을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같은 일에 대해서도 저마다 다른 시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포용해 통합하는 포괄적인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 시나리오 토론 과정에 핵심 경영진이 참여해야 합니다. 시나리오 분석은 예상의 정확성이 중요하겠지만, 경영진이 시나리오를 보고 구체적으로 뭔가 행동에 나서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시나리오 분석 결과를 사후 보고 받는 것만으로는 기업 고위층이 뭔가 영감을 받기 힘듭니다. 직접 시나리오 토론 과정에 참여하면 스스로 열린 사고를 가지게 되고, 시나리오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셋째, 한번 결론이 난 사안이라고 하더라도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고 도전해야 합니다. 미래의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으니까요."
공초운 박사는 또한 "시나리오는 도전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 하던 대로 계속하라'거나 '미래는 지금 하고 똑같을 것'이라는 시나리오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시나리오를 만들 때는 모든 것이 불확실해 보입니다. 하지만 단 하나 확실한 것이 있습니다. 미래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죠."
■태도의 차이가 에너지의 미래를 바꿀 것
그렇다면 현재 상황을 전제로 쉘은 어떤 시나리오를 짜고 있을까. 에너지 기업인만큼 역시 에너지 시나리오다. 시나리오의 배경엔 세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인구 증가와 경제 발전으로 에너지 소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둘째, 에너지가 고갈되고 무기화되면서 에너지 수급 불균형의 우려가 크다. 셋째,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로 인한 환경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이 세 가지 문제들이 교차하면서 장차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쉘은 두 가지 시나리오를 내놓았다. 하나는 이전투구(泥田鬪狗·scramble) 시나리오이고, 다른 하나는 청사진(blue print) 시나리오이다.
전자는 세계 각국이 에너지 확보 경쟁을 벌이며, 위의 세 가지 에너지 문제에 저마다의 방식으로 대처하다가 심각한 에너지 위기를 겪게 될 경우를 가정한다. 이 경우 지구 온난화는 가속화되고, 국가 간 갈등은 첨예해질 것이다. 후자는 반대로 탄소 배출량 저감을 위한 국가 간 공조 체제가 등장할 경우를 가정한다. 탄소 배출권 거래가 활성화되고, 다양한 형태의 신재생 에너지와 청정 연료가 보급된다.
비관적인 시나리오와 낙관적인 시나리오를 하나씩 내놓고, 둘 중 어느 쪽도 될 수 있다니 싱겁게 느껴진다. 시나리오 분석의 태생적 한계일 것이다. 하지만 각 시나리오에 따라 전개될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해 보는 데 의의가 있다. 그런 작업을 통해 상식과는 다른 통찰력을 얻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쉘이 두 시나리오에 따라 2050년의 신재생 에너지 사용량을 예측했다. 그랬더니 청사진 시나리오보다 이전투구 시나리오 쪽의 신재생 에너지 사용량이 약 40% 많은 것으로 추정됐다. 상식적으로는 그 반대이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래픽 참조〉
공초운 박사는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시나리오 분석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상식으로는 놓치기 쉬운 부분을 훨씬 더 현실적으로 보여주니까요. 이전투구 시나리오는 각국이 에너지 국수주의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시나리오입니다. 따라서 에너지 위기가 닥칠 때 각국 정부는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보조금을 대거 투입해 신재생 에너지의 비중을 크게 끌어올립니다. 청사진 시나리오의 경우도 물론 신재생 에너지 사용이 늘어나지만, 그 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립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전투구 시나리오가 더 좋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전체적인 에너지 소비량 예측을 보면 청사진 시나리오 쪽이 이전투구 시나리오에 비해 14% 정도 적다. 국가 간 협력을 통해 에너지 소비량이 줄어들고, 에너지 소비 효율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훨씬 적다.
어느 시나리오로 가든 원자력의 비중이 전체 에너지의 4.9~6.5%(청사진 쪽이 6.5%이다) 정도로 매우 낮게 예측된 점도 특이하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050년의 원자력 비중을 최대 11.9%로 예측했다. "원자력 같은 특정 에너지가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습니다. 원자력 발전에 쓰이는 우라늄은 매장량이 희소한 자원이기 때문입니다. 시나리오에서 원자력의 비중을 낮게 보는 이유 중 하나죠."
☞ 시나리오 경영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높은 상황에서 위험 요인을 최소화하기 위한 경영 기법이다. 정치·경제·사회적 변화 요인과 이것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여러 갈래의 각본으로 작성하고, 각각의 상황에 대한 대응책을 만들어 본다. 1990년대 초반 일본에서 큰 호응을 얻었고, 우리나라에서는 1996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신년사에서 언급하면서 널리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