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칼럼] 마케팅은 눈, 연구개발은 머리… 서로 죽이 맞아야 승리한다

    • 김상훈 서울대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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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0.12.04 03:06

      마케팅은 고객 욕구 통찰하고 연구개발은 이를 상품으로 구현…
      이 둘의 '접속'이 핵심 성공요인… 구글·애플처럼 조화 이뤄야

      광저우 아시안게임 축구 준결승전, 한국은 마지막 5초를 지키지 못해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연장 종료 직전에 승부차기를 염두에 두고 골키퍼를 교체한 홍명보 감독에게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만약 승부차기로 경기를 이겼다면 어땠을까? 홍명보 감독의 탁월한 경기 감각과 승부수에 찬사가 쏟아졌을 것이다. 이렇게 성공과 실패의 원인은 결과에 의해 뒤바뀔 수 있다.

      국내 한 전자회사가 최근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휴대폰 사업의 부진이 '지나친 마케팅' 때문이라는 판단이 배경이다. 새 CEO는 회사를 마케팅보다는 연구개발과 생산을 중시하는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기획과 마케팅 인력 600명을 연구소에 배치해 연구개발 중심 조직으로 전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필자에게는 '지나친 마케팅'이란 말이 '거짓된 진실'이나 '시끄러운 침묵'과 같은 일종의 모순어법(oxymoron)으로 들린다. 침묵이 시끄러울 수 없듯이 마케팅이 지나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지나친 마케팅 활동'이나 '과도한 마케팅 비용'이란 말은 성립할 수 있다.

      하지만 고객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훌륭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여 고객을 만족시킨다는 의미의 마케팅은 아무리 잘하고 아무리 많이 해도 결코 지나칠 수 없다. 더군다나 인터브랜드가 발표하는 글로벌 브랜드 가치 순위 100위권에 처음 진입한 2005년 이후 2년간 90위권에 머물다가 2008년 이후에는 한 번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회사가 지나친 마케팅으로 사업이 어려워졌다고 마케팅을 축소하겠다고 하니 더더욱 납득이 되지 않는다(참고로 같은 해에 100위권에 처음 진입한 현대자동차는 올해는 60위권으로 올라섰다).

      앞에 언급한 회사가 앞으로 현장 완결형 조직을 가지고 '연구개발과 마케팅의 연계'를 추구하겠다고 한 것은 크게 환영할 만하다. 획기적인 기술에 기반을 둔 스마트 혁신 제품들로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는 데 있어 마케팅과 연구개발의 '접속(interface)'이야말로 핵심 성공요인(key success factor)이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전에 미국 시라큐스 대학의 굽타, 라즈, 와일몬 세 교수는 실증 연구를 통해 혁신의 성공을 위해서는 마케팅과 연구개발이 통합되어야 하고, 통합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 관건임을 주장한 바 있다.

      마케팅은 고객의 욕구를 통찰하고, 기술은 씨앗을 발굴한다. 달리 표현한다면 마케팅은 눈이고, 연구개발은 머리다. 마케팅은 소비자들의 인식과 행동을 관찰해 혁신의 아이디어를 찾아내고, 연구개발은 고객의 문제를 풀어 그 해답(즉 상품)을 만들어 낸다.

      세계적인 디자인회사인 아이디오(IDEO)는 어린이들이 어른과 달리 칫솔을 손가락이 아니라 주먹으로 쥐는 것을 예사로 보지 않았다. 그리고 어린이용 칫솔이 어른용보다 작아야 한다는 상식을 깨고, 오히려 굵고 물렁한 질감의 오랄 비(Oral B) 칫솔을 디자인했다. '주먹 현상'을 발견한 것은 마케팅이고, 이를 아름답고도 기능적인 굵은 손잡이의 칫솔로 만들어 낸 것은 연구개발이다.

      이처럼 마케팅과 연구개발은 죽이 맞아야 한다. 그리고 마케팅과 연구개발의 연계는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관계의 강도가 너무 약해도 안 되고 지나치게 밀착되어서도 곤란하다. 너무 느슨하게 연결되면 시장에 대한 통찰력이 정확히 제품으로 구현되기 어렵고, 너무 밀착되면 서로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창의적인 답을 찾아내는데 한계가 생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마케팅과 연구개발의 조화로운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첫째, 가장 단순하고 물리적인 해법은 근무 공간의 통합이다. 구글이나 애플, HP나 시스코가 여러 기능을 통합한 복합적 근무 공간을 갖고 있는 것이 그 때문이다. 대학 캠퍼스에 여러 단과대학이 모여 있듯이 기획과 마케팅, 그리고 연구개발 인력을 한 곳에 집중함으로써 의사결정 스피드도 높이고 업무 문화의 공유도 꾀할 수 있다.

      둘째, 커뮤니케이션 활성화이다. 근무 공간 통합이 하드웨어적인 접근법이라면 이것은 소프트웨어적 해법이다.

      서로 다른 부서원들이 협력을 통해 어떻게 회사의 역량을 잘 활용하고 고객의 다양한 니즈를 만족시킬 것인가를 분석하는 경영기법 중 하나인 '품질의 집(house of quality)'과 같은 공식화된 업무 프로세스와 함께 비공식적인 교류와 의사소통의 기회도 많이 만들어 두어야 한다. 국내 기업의 제품 개발 프로세스를 취재했던 미 경제지 비즈니스위크의 한 기자는 한국 기업 혁신 능력의 원천 중 하나로 회식 및 사우나 문화를 지적하기도 했다.

      셋째, '열정 팀'을 양성해야 한다. 어느 누구에게 공을 돌리거나 탓하기보다는 팀 전체가 한꺼번에 평가되고 보상받는 경험 공동체가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열정 팀은 뚜렷한 공동 목표를 가지고 모든 정보를 공유하며, 험난한 벽을 함께 넘어 감동의 순간을 같이 체험하는 팀이다.

      구글에선 업무 시간이 아닌 심야에 이루어지는 아이디어 회의에도 "재미있다"는 이유로 수많은 직원이 참가한다. 이는 월드컵 응원에서 드러났듯이 '신바람'의 DNA를 가지고 태어난 우리 민족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부분일 수 있다.

      혁신적인 신상품을 누가 더 빨리 더 잘 만들어낼 것인가 하는 초경쟁의 시대에 놓여진 우리 기업들은 마케팅과 연구개발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이 아니라 그 둘 간의 찰떡궁합을 위한 해법을 위해 머리를 싸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