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새 컨트롤타워 '그룹 조직'이 해야할 일

    • 송재용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입력 2010.11.27 03:00

삼성이 2008년 해체됐던 '그룹 조직'을 복원하기로 했다. 과거 그룹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했던 전략기획실이나 구조조정본부를 대신하여 그룹의 본부(headquarter) 기능을 수행하는 조직이다.

삼성은 새로 출범하는 그룹 조직이 계열사들 위에 군림하기보다는 그룹의 역량을 모아 계열사들을 적극 도와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삼성은 특히 그룹 조직이 그동안 부진했던 신수종사업을 개발하고 안착시키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구조조정본부나 전략기획실 시절의 일부 부정적 이미지와 관행들을 탈피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런 삼성의 결정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교차되고 있는데, 기업 집단에 있어서 그룹 조직은 왜 필요한지, 그리고 어떠한 기능과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냉철한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다.

삼성이나 GE와 같은 기업 집단 혹은 복합형 기업(multi-business firm·복수의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집단)의 존재 의의는 시너지를 발휘하는 데 있다. 신사업의 공동 창출이나 교차 판매를 통한 매출 증대, 공유 서비스를 통한 비용 절감, 지식·자원이나 브랜드 공유 등의 형태로 시너지를 창출하지 못한다면 전업형 기업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할 것이며 존재 의미가 퇴색될 것이다.

그런데 기업 집단에서 여러 사업을 연계해 시너지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그룹 조직 혹은 기업 본부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전 세계 기업 집단은 거의 예외 없이 그룹 조직을 운영하면서 시너지를 추구해 왔다.

그룹 조직의 유형은 계열사의 전략 수립에 어느 정도 관여하는지, 그리고 그 기능이 무엇인지에 따라 재무적 통제, 전략적 통제, 전략적 서비스 모델로 나누어진다.

첫째, 재무적 통제 모델에서는 책임 경영의 기조 하에 계열사들이 최대한의 자율성과 재량을 지닌 상태에서 일상적 의사 결정 및 기업 활동을 수행한다. 그룹 조직은 계열사에 재무적 목표치를 제시하고 평가함으로써 계열사들을 통제한다. 이런 기업 집단은 시너지를 그리 강조하지 않는 것이 특징인데, 미국의 복합형 기업 그룹(conglomerate)이 이에 해당한다.

둘째, 전략적 통제 모델은 이와는 반대로 그룹 조직 차원에서의 톱다운 식 전략적 의사결정 등을 통해 적극적 시너지 창출을 목표로 한다. 그룹 조직은 계열사 간에 협력 지향적 조직 구조 및 문화를 심고, 내부 거래나 인적자원 이동 등의 다양한 메커니즘을 활용한다. IMF 위기 이전 선단식(船團式) 경영을 했던 한국의 기업 그룹이나 2차 대전 이전 일본의 재벌이 대표적인 예이다.

셋째, 앞의 두 모델이 혼합된 전략적 서비스 모델은 기본적으로 계열사의 재무적 성과에 초점을 맞추어 책임 경영 체제를 강조한다. 한편 그룹 조직은 계열사를 위해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계열사들이 자발적 협력을 통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힘을 쏟는다.

예를 들어 그룹 조직의 스태프나 경제연구소, 인력개발원 같은 전문 조직이 계열사에 컨설팅, 마케팅, 인적 자원 개발, 기술 등 전문적인 기능 영역에서 정보와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또한 공통의 기업문화와 가치, 언어를 정립하고, 공통의 정보시스템과 지식 DB를 구축해 시너지 경영을 뒷받침 한다. 이 모델이 추구하는 시너지는 그룹 조직의 지시를 기반으로 한 직접적 시너지보다는 계열사 간 자발적 협력과 지식, 브랜드 공유를 통한 보다 자율적이고 간접적인 시너지이다.

세 번째 모델에서 전략적 의사 결정은 계열사가 스스로 하되 대규모 투자 의사 결정 같은 경우에만 그룹 조직의 컨설팅과 모니터링을 받는 제한적 관여를 원칙으로 한다. 많은 선진국 기업 그룹이나 IMF 외환위기 이후 지주회사로 전환한 LG, SK그룹이 지향하고 있는 방향이 대체로 이러한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성그룹의 경우 전통적으로 두 번째의 전략적 통제 모델을 유지하면서 소위 '3각 편대 경영시스템'을 통해 차별적 경쟁력을 도모해 왔다. 즉 ①소유 경영자의 중장기 전략 비전 제시와 신속하고도 과감한 대규모 투자 의사 결정 ②그룹 조직인 전략기획실의 모니터링과 전문적인 경영 서비스 ③계열사와 전문 경영인에 의한 운영상의 의사 결정과 신속한 실행이 어우러지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IMF 위기 이후에는 내부 거래에도 시장 원칙을 적용하고, 계열사나 사업부별 성과에 따라 연봉의 최대 50%를 더 받을 수 있는 파격적 이익 분배 제도를 도입해 계열사·사업부의 책임경영 체제를 실험해 왔다. 삼성의 새로운 그룹 조직은 기본적으로 계열사를 지원하면서 동시에 그룹 차원에서의 신성장동력 육성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한다. 이는 삼성의 그룹 조직이 위에서 두 번째로 설명한 전통적인 전략적 통제 모델에서 세 번째로 설명한 전략적 서비스 모델로의 변신을 보다 가속화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는데, 시대적 트렌드에 부합하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그룹 차원의 신성장동력 육성을 위해서는 그룹 조직이 개입해 관련 계열사 간의 유기적 협력과 사업 영역 조정을 추진하겠다는 점을 시사했다. 다시 말해 신사업과 관련해서는 그룹 조직이 깊숙이 관여하는 전략적 통제 모델을 일정 부분 유지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삼성이 계열사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으로 신성장동력을 육성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룹 조직을 만들어 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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