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석 깔았다, 판을 키웠다… 134만명이 기적을 노래하더라"

입력 2010.11.20 03:02

'슈퍼스타K'의 성공 비결… 엠넷미디어 박광원 대표에게 듣는다
멍석 깔았다 - 남녀노소 제한 없이 참가 "예능 아닌 음악에 승부수"
판을 키웠다 - 우승자엔 상금 2억 '파격'이승철 등 '거물' 심사 위촉

3~4%대 시청률만 나와도 '대박'으로 통하는 케이블TV 채널에서 지난달 대한민국 케이블TV 역사를 뒤집는 신화가 탄생했다. 케이블TV채널 엠넷미디어의 노래자랑대회 프로그램 '슈퍼스타K―시즌2'의 지난 10월 22일 마지막회 시청률은 18.1%. 매주 금요일 밤 총 14주간 방영된 프로그램 전체의 평균 시청률도 10%를 넘었다.

이 정도면 공중파에서도 주저 없이 성공으로 꼽을 만한 실적이다.'슈퍼스타K―시즌2'의 벼락같은 히트에 놀란 MBC는 부랴부랴 오디션 형식의 유사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다. 케이블TV 채널이 공중파 프로그램을 모방한 적은 많았어도, 공중파가 케이블TV 유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거의 전례가 없던 일이다.

영향력은 방송시장에 그치지 않았다. 주말마다 네이버나 다음의 첫 페이지는 슈퍼스타K 주인공들이 휩쓸었고, 각종 디지털 음원 사이트에선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같은 20년 전 노래들이 슈퍼스타K 최종 결선 참가자들이 불렀다는 이유만으로 인기곡으로 치솟았다.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슈퍼스타K 우승자 허각씨의 사례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공정사회의 모델'로 언급됐다.

‘슈퍼스타K—시즌2’에 참가신청했던 134만명 가운데 치열한 경쟁을 거쳐 최종 라운드까지 오른 허각(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 등 11명의 결선 진출자들. 슈퍼스타 시리즈는 이처럼 개성 넘치는 인물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으는 데 성공하면서 공중파 뺨치는 히트 프로그램으로 등극했다. / 엠넷미디어 제공
도대체 그렇게 경쟁이 치열하다는 케이블TV 시장에서, 그것도 뻔한 소재인 노래자랑대회 프로그램이 이렇게 엄청난 히트작이 된 원인은 뭘까. 이 프로그램을 진두지휘한 엠넷미디어 박광원 대표를 만나 그가 생각하는 성공 비결을 직접 들어봤다.

■현장 목소리 듣기와 철저한 준비

박 대표는 지난 2006년 상반기 CJ그룹의 음악 케이블 채널회사인 엠넷미디어 대표로 부임했다. 그전까지는 그룹에서 엔터테인먼트 사업 실무를 이끌었었다. 그룹에선 그에게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엠넷미디어의 경쟁력을 회복시키라는 주문을 던졌다. 당시 엠넷미디어는 시청률도 신통치 않았을 뿐 아니라 음악보다는 예능 프로를 많이 편성해 정체성도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도토리 키재기식 시청률을 노리고 연예인 신변잡기나 자극적 소재의 프로그램을 내보내는 게 유행이던 시절이었다.

박 대표는 "일단 음악사업 본연의 경쟁력을 되찾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케이블TV의 경우 각각의 전문 영역을 가진 수많은 채널이 있기 때문에, 엠넷미디어 역시 고유의 분야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회복해야 나중에 새로운 분야로 진출하더라도 성공할 수 있다고 봤다. 그의 말은 "죽도 밥도 아닌 가운데 자리는 피해야 한다"고 한 마케팅 대가 알 리스의 말을 연상시킨다. 모든 것이 범용재가 되어 가는 이 시대엔 제품에 자기만의 색깔이 있어야 한다.

박 대표가 취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시장의 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박 대표 스스로부터 신중현, 조용필, 이승철, 신승훈 등 베테랑 가수들과 업계 관계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엠넷미디어 비전에 관한 조언을 구했다. 세계적 광고회사 사치앤사치의 케빈 로버츠 사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말로 사자가 어떻게 사냥하는지 알기 위해 동물원이 아니라 정글에 간 것"이었다.

그는 신중현씨와 저녁 자리에서 만나 "저희가 잘못했던 게 있으면 이야기해 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신중현 씨의 대답은 "음악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위안을 주고 감성을 어루만져주는 건지 잘 모르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오일쇼크로 어려웠던 1970년대에도 사람들은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로 시작되는 '미인'이라는 신중현의 노래를 각자 자신의 상황에 맞게 개사(改詞)해 부르며 시름을 달래곤 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도 뭔가 애환의 분출구가 필요한데, 요즘 노래는 아이돌 그룹의 것밖에 없어 분출하려야 분출할 수가 없다는 것이 신중현씨의 문제 제기였다.

"다른 대중음악계 베테랑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실 10대들도 이렇다 할 여흥 거리 없이 PC방에 가서 게임들만 많이 하잖아요. 감수성은 사라지고 전투성만 강해지죠. 그나마 10대를 겨냥한 노래란 것도 댄스곡 위주여서 자신이 직접 부르는 즐거움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는 드물죠.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 아닙니까.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과 함께하는 노래 프로그램'이 필요하고, 또 성공할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박 대표는 2007년 초부터 음악 전문 프로그램들을 다시 하나둘씩 늘리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회사의 핵심 프로듀서 3명을 포함시킨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엠넷미디어를 부활시킬 대중음악 프로그램 연구를 지시했다.

슈퍼스타K의 성공을 이끈 박광원 대표.

"지금의 슈퍼스타K를 낳은 오디션 형식 프로그램의 콘셉트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고민도 많았습니다. 세상에는 이미 수많은 오디션 형식 프로그램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에도 '전국노래자랑'이나 '주부가요열창'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의 '아메리칸 아이돌'이라는 프로그램도 이미 다른 케이블TV 채널을 통해 방송된 상태였거든요."

박 대표는 서두르지 않았다. "어설프게 해서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태스크포스 팀원들이 굉장히 의욕적으로 일했습니다. 사실 우리 회사 직원들이 기본적으로 음악을 좋아해서 들어온 사람들이거든요. 이런 친구들이 한동안 연예나 예능 프로만 만들어서 힘이 빠져 있었는데, 오랜만에 좋아하는 음악 일 한번 마음껏 해보라니 신이 났던 거죠. 전 세계 오디션 형태 프로그램들을 모조리 분석하고,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까지 쫓아다니고. 나중에 이 팀에서 2년 반 정도의 기획 기간 동안 저한테 청구한 돈을 다 합쳐 봤더니 3억원이 넘더라고요. 처음엔 저도 이 많은 금액을 다 결제해줘야 하나 고민할 정도였습니다(웃음)."

■멍석만 깔아주자. 대신 크게 깔아주자

이렇게 해서 집적된 연구 결과를 놓고 박 대표와 태스크포스 팀원들은 크게 두 가지에 의기투합했다. 첫째는 누구든 참가할 수 있게 최대한 문을 여는 동시에, 인위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자는 것이었다. 참가자에 나이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은 기본이고, 예선 과정에서도 나이나 외모, 독특한 인생 역정 등 이른바 시청률을 높일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참가자를 우대하는 식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멍석만 깔아주자'는 것이었다. 대신 크게 깔아줘야 한다, 누구든 마음껏 와서 놀고, 못했던 이야기도 할 수 있게 해주자는 것이 기본 콘셉트였다.

"왜냐하면 누구든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은 그 각각이 다 드라마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대중음악은 클래식과 달리 아직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친구들이 많이 도전합니다. 자연히 그 자체가 감동 덩어리인 사람들입니다. 이런 곳에 의도를 개입시킨다면, 시청자들의 감동만 낮아질 뿐입니다. 대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이런 사람들이 우리 프로그램에 많이 올 수 있도록, 거부감 없이 프로그램에 참가할 수 있도록, 또 거리낌 없이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회사의 자원은 판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 1등 상금으로 우리나라에선 파격적인 2억원을 내걸었고, 상위 입상자에게는 음반 발매를 약속했다. 홍보도 대대적으로 펼쳤다. 시청자 관심을 높이기 위해 가수 이효리씨와 이승철씨 등 대중 인지도가 높은 인물들을 심사위원으로 섭외했다. 박 대표는 "어쨌든 판이 커지려면 그야말로 강호의 고수들을 불러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날카로운 심사평으로 화제를 더한 ‘슈퍼스타K—시즌2’ 의 심사위원들. 왼쪽부터 가수 엄정화·이승철·윤종신씨
택배회사와 손잡고 전국을 오가는 택배 운송차에 대형 홍보 포스터를 붙였고, CJ CGV처럼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대규모 영화관에서도 쉴 새 없이 슈퍼스타K 개막을 알리는 광고를 틀어댔다. 남다른 프로그램 홍보 카피도 만들었다. 지난해 시즌1에서는 '노래에 목숨 걸어라'였고, 올해 시즌2에서는 '기적을 노래하라'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것이 지난해 7월 선보인 '슈퍼스타K―시즌1'. 최고 시청률 8.5%에 예선 참가자만 72만명을 넘는 대박을 터뜨리며 올해 시즌2의 성공을 예견했다.

'간섭 대신 마당만 크게'라는 전략은 한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친 올해 더욱 빛을 발했다. 올해는 예선 참가 신청자가 무려 134만명. 나중에 대상까지 받은 환풍기 수리공 출신의 허각씨, 독특한 창법으로 시청자를 매료시킨 어려운 가정환경의 장재인씨 등 매주 화젯거리들이 끊이지 않고 쏟아져 나왔다. 이런 이야기들은 인터넷에서 폭발적 화제가 됐고, 이는 결국 다시 시청률을 높이는 선순환으로 이어졌다.

박 대표는 전체적으론 자유롭게 굴러가게 두면서도 회사가 챙겨야 할 세부 내용들에 대해선 꼼꼼히 점검했다. 매주 금요일 밤 박 대표를 비롯한 회사 주요 팀장들이 방송 직후 한자리에 모여 밤새 토론을 하며 미비점을 살폈다. 가령 '슈퍼스타K-시즌2' 최종 11명의 결선 진출자들이 승부를 가리는 과정에서 불러야 할 의무곡 중 하나로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남진의 '저 푸른 초원 위에' 같은 노래를 넣은 것도 이런 회의를 거쳐서 나온 아이디어들이다. 어느 연령대의 시청자든 함께 즐길 수 있게 하자는 취지였다.

■"재정적으론 이제 출발"

엠넷미디어는 이번 '슈퍼스타K-시즌2' 제작을 위해 총 80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했다고 박 대표는 밝혔다. 하지만 높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을 결산해 보면 재정적으론 겨우 적자를 면하는 정도라고 박 대표는 부연했다.

케이블TV는 공중파에 비해 광고 수주가 쉽지 않아 방송 시점보다 훨씬 이른 시기부터 광고주들을 찾아 프로그램에 대한 광고 계약을 미리 미리 맺어두는 게 관행이다. 이 때문에 방송 시점에 인기가 치솟아도 특별히 광고 수익이 늘어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그래도 지난해 '슈퍼스타K-시즌1'의 성공으로 올해는 지난해보다 나은 실적을 거뒀다"며 "내년 '슈퍼스타K-시즌3'의 경우 본격적으로 수익을 낼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와 함께 음원 사업, 음반 발매 등 관련 시장도 커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엠넷미디어 발전의 키는 궁극적으로 대중음악 시장의 판을 더 키우는 데 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음악전문 채널에 대한 관심도 더 커지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엠넷 아시아 뮤직 어워드(MAMA)'란 대규모 행사를 오는 28일 해외에서 처음 개최하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라고 박 대표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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