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 두툼한 중국… 세계가 눈치 본다

    • 전병서 경희대 중국경영학과 겸임교수·前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

입력 2010.09.11 03:21

부실채권·상품 사들이며 美·유럽에 당당히 목소리 내
공공연히 "수입 확충" 밝히기도…
소비 대폭발 접어드는 중국 한국엔 또 다른 기회이기도

중국이 달라졌다.

그동안 중국은 세계 1위의 수출 대국(大國)인데도 힘이 없었다. 물건을 파는 입장에서 사는 이(선진국)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진국이 심심하면 툭툭 건드리는 동네북이었고, 세계의 넘버 2였지만 발언권이 없었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세상이 바뀌었다. 중국은 이번 금융위기를 계기로 수입 대국, 소비 대국으로 성장 전략을 전환했다. 그 바람에 세계시장에서 중국의 위상도 높아졌다.

중국의 이런 변화는 사실 서방세계가 만들어 준 것이다. 서방의 금융위기가 중국을 비자발적인 소비 대국으로 만들었다. 지금 미국과 유럽이 중국의 2조4000억달러나 되는 두툼한 지갑만을 쳐다보고 있다. 도산한 기업의 해외 매각도, 구멍 난 재정을 메우기 위한 국채(國債) 발행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중국도 깨달았다. 서방세계의 소비에 의존한 수출 지향, 투자 주도형의 성장 전략은 이젠 끝이라는 것을.

중국 내부 요인도 있다. 수출 주도형 경제성장 30년 만에 GDP는 엄청나게 커졌지만, 분배의 불균형으로 인한 사회 불만은 폭발 직전이다. 사회안전망의 미흡으로 인한 복지문제는 더 이상 덮어두기 어렵게 됐다.

이래저래 중국은 양(量)이 아니라 질(質)이 중요한 시기로 접어들었다. 지금까지 먹고살기 위해 죽어라 일했던 '생계형 경제'에서 사회주의 본래의 모습인 '복지형 경제'로 전환을 시작한 것이다.

올 들어 7월까지 중국의 수출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36% 늘었는데, 수입은 그보다 큰 47%의 증가세를 보였다. 중국은 세계 곳곳에서 유전과 광산을 사들이고, 일본과 유럽, 한국에선 채권을 사들이고 있다. 또한 중국은 2조4000억달러의 외환보유고를 더는 늘리지 않고 있다.

6월 이후 월별 수출 증가율이 다시 수입 증가율을 추월하자 중국은 이례적으로 수입을 늘리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최근 야오젠(姚堅) 상무부 대변인은 "독일, 한국 등으로부터 원자재와 생산설비의 수입을 지속적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중국 상무부는 이르면 9월에 수입 촉진 정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서방 각국이 망가진 경제 재건에 정신이 없는 사이 중국은 세계로 나가고 있다. 수출이 아니라 수입 확대를 통해 국제 사회에서 발언권도 높였다. G20 정상회담 전에 위안화를 절상하라고 미국과 유럽이 벌떼처럼 나서자 중국은 위안화 변동폭을 높이는 '쇼'를 했지만, 지금 달러 대 위안화 환율은 1:6.8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여기에 시비를 거는 나라가 없다. 부실채권과 상품 그리고 국채까지 사주는 중국에 대해 유럽도, 미국도 입을 다물었다. 파는 이가 왕이 아니고, 사는 이가 왕이라는 걸 여실히 증명했다.

중국을 제조 대국이라고 보는 것은 옛날 얘기다. 중국은 지금 자본 수출국이자 자본재, 소비재, 내구재에서 거대한 '소비의 용광로'가 되고 있다. 작년 중국의 해외 직접투자는 565억달러(68조원)로 세계 5위다. 2002년의 57배에 이른다. 지금 중국의 해외 투자는 농업, 공업, 첨단기술 산업을 가리지 않는다. 투자 지역도 180개국에 달한다. 중국은 명실공히 자본 수출국이 되었다.

요즘 중국은 브랜드가 없으면 브랜드를 사버린다. 유럽의 볼보 자동차를 중국의 신생 자동차회사인 지리 자동차가 인수한 것처럼 기술이 없으면 기술도 사버린다. 그것도 안 되면 큰 시장을 미끼로 서방의 기술을 불러들인다. 일본의 신칸센과 프랑스의 테제베(TGV) 같은 초고속 열차 기술도 2012년까지 49개 노선 1만3000㎞의 고속철도 건설을 미끼로 합작을 유도함으로써 차근차근 손에 넣었다. 그 결과 중국은 지금 시속 350㎞의 세계 최신형 고속열차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 국산화율이 이미 75~85% 수준에 이르렀고, 이젠 역(逆)으로 서방세계로 수출을 시작하고 있다.

중국 내부적으로도 '소비 대폭발'의 조건이 무르익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경험에 비춰 보면 한 나라의 소비 대폭발에는 조건이 있다. 3000과 50이라는 두 숫자가 분기점이 된다.

일본과 한국은 1인당 소득이 3000달러대였던 60년대 중반과 80년대 후반에 '대중 소비기'에 진입했다. 중국이 지금 이 단계에 들어왔다. 또한 GDP 가운데 소비의 비중이 50%, 도시화율이 50%, 자동차 1000명당 보급 대수 50대의 시기가 내구 소비재 수요가 폭발하는 타이밍인데, 중국이 바로 이 시기에 진입하고 있다.

중국은 지금 전체 인구의 46%가 1963년 앞뒤로 7년간 출생한 사람들이다. 엄청난 구매력을 갖춘 베이비붐 세대들인데, 지금 40~50대가 되어 내구 소비재를 대량으로 구매하고 있다. 덕분에 중국은 세계 사치품 시장의 27%를 소비하는 랭킹 2위 소비국이 됐다. 2010~2015년이 되면 '소황제', '소황녀'로 자란,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가 결혼 적령기에 들어간다. 이 두 가지 이유로 향후 5년간 중국은 소비의 폭발력이 가장 강한 시기를 맞을 것이다.

한국은 참 운이 좋다. 한국의 최대 무역 상대국인 중국이 소비 대폭발의 시기로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3~5년간 한국 경제는 이웃나라 중국의 소비 대폭발에 힘입어 과거 베트남 특수나 중동 특수를 능가하는, 유례없는 수출 호황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놓치면 안되는 기사

팝업 닫기

WEEKLY BIZ 추천기사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