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각 협상의 기술' 본템포 美 컬럼비아대 교수에게 듣는다

입력 2010.08.21 03:00 | 수정 2010.09.06 09:51

가격만 집착해선 必敗… '페이오프 테이블'(payoff table: 협상서 논의할 변수들을 정리한 표)로 밀고 당겨라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강의실. 협상 전문가인 로버트 본템포(Bontempo) 교수의 열강에 학생들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질문을 이어갔다. 이날 수업은 KAIST 경영대학원의 '이그제큐티브(Executive) MBA'과정 학생들을 위해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에서 마련한 특별 강좌. 국내 기업 임원들과 중간 간부들로 구성된 이 과정 학생들은 지난달 1년차 해외 연수를 위해 뉴욕으로 날아갔다. KAIST 경영대학원과 제휴를 맺은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에서 '전략적 직관과 리더십의 본질(Strategic Intuition & Leadership Essentials)'이란 주제로 일주일간 교수들의 수업을 들었다. 본템포 교수는 이 가운데 '글로벌 리더의 효과적 협상'을 주제로 강연했다.

로버트 본템포 교수는 KAIST 이그제큐티브 MBA 과정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가장 성공적인 협상은 자신과 상대방이 함께 윈윈(win-win) 하는 협상”이라고 강조했다. / KAIST 경영대학원 제공
"여기 비즈니스 매각 협상을 벌이고 있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각각 협상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무엇일까요?"

"가격입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격만 생각하셨다면, 여러분은 협상을 시작하기 전 여러분의 '페이오프 테이블(payoff table)'을 만들지 않으신 겁니다."

"페이오프 테이블이라고요?"

"그렇습니다. 페이오프 테이블이란 가격 외에도 매각 대금 지급 조건, 직원 고용 승계 여부, 같은 업종 진출 금지 기간 등 협상에서 논의할 수 있는 변수들을 다 적어 놓은 표를 말합니다. 이때 단순히 항목만 적는 게 아니라 그 항목별로 협상에서 성취하는 정도에 따라 자신이 갖게 될 만족도 혹은 나름의 점수도 함께 표시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창업자가 자신이 키운 기업을 매각할 때, 함께 고생했던 직원들의 고용 보장을 인수 희망자에게 요구했다고 칩시다. 이 경우 매각 가격은 낮아질 수도 있죠. 하지만 원했던 전원 고용 보장을 얻어냈다면 창업자에게 이 딜은 나쁜 거래가 아닐 겁니다. 즉 페이오프 테이블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인수 가격 항목 점수는 80점이라 하더라도, 고용 승계 항목에서 100점을 받았다면 이 사람은 평균적으로 90점의 협상을 한 셈일 테니까요.

이처럼 협상의 성공 여부는 단순히 가격이라는 하나의 변수에 대한 성과만으로 평가하는 게 아닙니다. 항목별로 협상 성과를 측정한 뒤, 그 결과들을 모두 더해낸 총합으로 따져봐야 하는 것이지요. 이는 기본적으로 협상을, 나와 상대방 모두 이기는 '윈윈(win-win)'게임으로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협상 주도권을 잡으려면

본템포 교수는 이날 "협상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도권을 쥐는 것입니다"라는 말로 강의를 시작했다. 주도권 확보 여부는 협상 참가자가 크게 두 가지 요인을 제대로 파악했느냐에 의해 결정된다는 설명이었다.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ps@chosun.com
첫째는 협상 참가자가 처해 있는 시간적 압박(time pressure) 문제였다. 즉 자신 혹은 상대가 적어도 언제까지는 협상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데드라인 부담을 갖고 있는지, 좀 더 나아가 그 시점이 언제인지를 알고 있느냐는 것이다.

"역사적 예를 볼까요. 1972년 미국과베트남 간의 베트남전 종전 협상이 프랑스에서 있었습니다. 한데 당시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국내 복잡한 정치상황 등을 고려해 대내적으로 '크리스마스 전 종전(Peace by Christmas)'을 외쳤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베트남 측은 협상장에서 무려 3개월 동안 테이블 위치 변경 등을 요구하며 시간을 끌었습니다. 미국이 협상 타결 시한에 대한 압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지연전술을 폈던 겁니다. 이처럼 시간 부담 요인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느냐에 따라 협상의 주도권을 쥘 수도, 놓칠 수도 있습니다. "

둘째는 자신이 지금의 협상보다 더 나은 '배트나(BATNA·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 즉 협상 결렬 시 취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을 갖고 있느냐 여부이다. 가령 지금의 협상 파트너에게 매각을 하지 않을 경우 다른 인수 희망자 등 대안이 있느냐는 것이다. 자신뿐 아니라 상대방의 배트나를 파악 혹은 예측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본템포 교수는 말했다.

이 두 가지 요인에 대해 확실한 정보를 가진 사람은 협상 과정에서 가격을 먼저 제시하는 등 협상을 주도할 수 있게 된다고 본템포 교수는 설명했다. 그리고 실제 협상은 대부분 이렇게 처음 제시된 숫자 부근에서 타결되는 경우가 많다고 그는 강조했다. 이처럼 사람들이 처음 제시된 숫자의 언저리에서 합의하거나 결론을 내리는 경향을 '닻 내리기 효과(anchoring effect)'라 부른다.

본템포 교수는 사람들 사이에 흔히 나타나는 닻 내리기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간단한 게임을 하나 실시했다. 전체 36명의 학생을 A, B 두 그룹으로 나누고 B그룹을 잠시 강의실에서 나가게 한 뒤 A그룹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국가 숫자가 몇 개나 될까요? 57개를 넘을까요?" "52, 45, 61…"A그룹 학생들이 종이에 적기 시작했다.

본템포 교수는 이번에는 강의실 밖으로 나가 B그룹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국가는 몇 개나 될까요? 17개는 넘을까요?" B그룹 학생들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숫자들을 적었다.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다. A그룹 소속 18명의 답변은 대부분 40~70 범위에 있었던 반면, B그룹 18명 답변은 대부분 10~30 사이였다. 학생들은 실제 아프리카 대륙 국가 숫자에 상관없이 애초에 교수가 제시한 숫자 주변에서 맴돈 것이다. 본템포 교수는 "사람의 뇌가 얼마나 주어진 상황에 민감한지를 보여주는 예"라고 말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무조건 자신에게 유리한 제안을 한다고 해서 통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본템포 교수는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할 경우 협상에서 오히려 신뢰를 잃을 수 있다"며 "상대방이 납득할 만한 조건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사전에 상대방이 처한 상황 등을 충분히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협상에서 처음부터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하는 건 어떨까? 본템포 교수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협상이 타결될 경우, 상대방이 만족스러워하지 못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록 애초부터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했더라도 이 수치가 최종 타결 가격이 돼버리면, 상대방은 자신이 뭔가 손해 보거나 협상을 성실히 못 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협상을 통해 조정될 수 있는 여지를 좀 남겨 두는 것이 낫다는 설명이었다.

■페이오프 테이블로 윈윈 협상을

본템포 교수는 협상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벌이는 것이지만,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장기적 비즈니스를 꿈꾸는 경영자라면, 협상에 대한 단순화된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조건 한쪽이 이기고 다른 한쪽은 지는 게임이 아니라, 서로가 윈윈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마인드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학생 2명씩을 한 조로 짜서 모의 게임을 실시했다. 한쪽은 식품업체 매각을 책임지는 협상 대표, 다른 한쪽은 인수 협상 대표 역을 맡겼다. 이 과정에서 양쪽 모두에게 다양한 협상 항목을 안겨줬다. 대금 지급 조건, 동종 업종 진출 금지 조항, 종업원 고용 승계 여부, 종업원 사후 건강 책임 등 각 4개씩의 협상 항목과, 그 항목별 협상 결과에 따른 상금이 적힌 페이오프 테이블이 제시됐다. 예를 들어 종업원 고용 승계 조건의 경우 10명의 종업원 중 1명을 승계하기로 할 경우 매도자 측에 250달러의 상금이 주어지고, 1명이 추가될 때마다 250달러가 더해져 10명 전원을 다 승계 시 2500달러의 상금이 주어진다.

1시간 가까운 협상 후, 각 협상팀의 결과가 차례대로 공개됐다. 다들 매각자·인수자 가운데 누가 더 높은 상금을 확보했는가에만 관심이 쏠려 있던 순간, 본템포 교수는 갑자기 매각자·인수자 두 사람의 상금을 합산하기 시작했다. 어느 한 쪽만 평가하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을 한 팀으로 보고 팀 단위로 점수를 합산해 평가한 것이다.

"협상에는 몇 가지 타입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양쪽 모두 '윈윈'하는 경우입니다. 자기 핵심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까지 만족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케이스입니다."

그는 강의를 이어나갔다. "반면, 두 번째는 '소매치기'라고 불리는 경우입니다. 다른 사람의 불이익을 통해서 나의 이익을 챙기는 식이지요. 하지만 이런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상대방 역시 결국 자신의 수익이 훨씬 적다는 것, 좀 심하게 말하면 사기당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죠.

그럼 어떤 협상이 바람직할까요? 장기적으로 비즈니스를 생각할 때 가장 바람직한 협상은 바로 첫 번째 경우입니다. 손해를 보는 상대방이 늘어날수록 업계 내에서 자신의 위치는 갈수록 좁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본템포 교수는 이런 성공적 협상을 위해선 협상 중 상대방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찾으려 노력하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떤 항목의 경우 한쪽에는 절대적 과제인 반면 다른 한쪽에는 그다지 민감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찾아내 협의하는 과정에서 협상의 성과가 높아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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