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산타클로스가 아니다

    • 장용성 연세대 언더우드 특훈교수(美 로체스터대 교수)

입력 2010.08.14 03:00

불황 타개 위한 정부지출 생각보다 효과 크지 않아
美감세도 25%만 소비로 연결
경기부양은 후대의 세금 부담 그럴 가치 있는지 고려해야

경제가 어려울 때면 정부에 경기 부양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정치인들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대규모 정부 사업을 벌이자고 요구하고, 산업계는 일자리 보호를 위한 정부의 지원을 호소한다.

적극적 재정 지출이 불황 타개에 효과적이라는 근거로 경제학자들은 정부지출승수란 개념을 자주 사용한다. 정부 지출 대비 국민총소득의 증가를 일컫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정부가 1억원을 추가로 지출한 결과 국민총소득이 2억원 증가하면 정부지출승수는 2가 된다. 정부지출승수가 1보다 클 수 있는 이유는, 정부가 사업을 벌이면 여기에 고용되는 노동자들이 소득을 올려 소비를 늘리게 되고, 이것이 다시 다른 가계의 소득이 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돈이 여러 차례 돌아 정부가 애초 집행한 액수보다 국민총소득이 더 증가하기 때문이다.

많은 경제학 교과서가 정부지출승수가 1보다 큰 것이 당연한 듯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정부 지출 증가가 불황 타개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작년 가을 미국 카네기멜론 대학에서는 금융위기 타개를 위한 재정 정책 연구 학술대회가 열렸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한 경제학자는 자신이 계산한 각국의 정부지출승수를 제시하며, "여러 나라가 동시에 지출을 늘리면 그 효과를 더욱 극대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이런 질문이 나왔다. "당신 주장대로 일본의 정부지출승수가 1보다 훨씬 크다면, 일본 정부가 그간 막대한 규모의 정부 지출을 집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장기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했는가? 거꾸로 일본 정부가 불황 타개를 위한 추가 정부 지출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그동안 이들 공사에 지출한 금액에 정부지출승수를 곱한 후 현재 일본의 GDP에서 빼야 한다. 이 계산대로라면 일본은 지금 한국보다 못사는 나라가 돼야 한다. 과연 그럴까?" 일본 정부가 그 돈을 쓰지 않았다면 오늘날 일본 GDP가 정말로 반 토막이 돼버렸을까? 정부 지출을 늘린다고 GDP가 늘 쉽게 증가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비록 정부 지출의 증가로 인해 통계상의 GDP가 늘어난다 하더라도 후생 측면에서는 여전히 같은 돈을 내가 직접 쓰는 것만 못하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 당장 20만원이 생긴다면 아이들 학원비로 쓰고 싶은데, 정부는 불황 타개를 위해 동네 큰길 보도블록을 교체한다. 좋은 일이긴 하지만 여전히 내가 사고픈 물건을 사는 것만큼 기쁘지는 않다.

정부 지출을 통한 경기 부양의 성공사례로 회자되는 미국 테네시강 유역 토목공사(일명 뉴딜정책)에 관해서도 경제학자들의 최근 평가는 인색한 편이다. 우선 토목공사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 저임금 미숙련 노동에 집중돼 그다지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했다. 그 규모 또한 미국 경제에 비해 크지 않아 대공황 극복에 결정적 공헌을 했다고 보기에 다소 무리가 있다. 이를 본떠 당시 시행된 지방 정부의 각종 공사 역시 경제적 타당성보다는 정치적 고려에 의해 결정됐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감세(減稅)를 통한 재정 정책도 총수요를 진작시키는 데 그다지 큰 효과를 보지 못한다. 최근 사례를 보자. 미국의 경우, 2001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쳐 경기 부양을 위해 세금을 환급해줬다. 부시 대통령이 TV에 나와 지금 세금 환급금이 우송되었으니 집집마다 우편함을 열어보고 쇼핑하러 가라고 했다. 마치 선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들린다. 이 세금 환급금이 실제로 어떻게 지출되었는지에 대해 최근 연구 결과가 나왔다. 약 50%의 가계가 저축을 했고, 25%가 빚 갚은 데 썼고, 25%의 가계만이 소비에 사용했다고 한다. 많은 가계가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소비를 늘리지 않았던 것이다.

가계나 기업에 돈을 돌려주는 감세정책은 경제 주체들이 원하는 곳에 돈을 쓸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정부가 직접 지출하는 것보다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정부 지출 규모의 축소가 동반되지 않은 일시적인 감세로는 소비의 증대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렇게 일시적인 감세정책이 소비 증가로 바로 이어지지 않는 현상을 리카도의 '항등성 정리 (Ricardian Equivalence)'라고 부른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이 계속되고 각종 재정 지출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오늘 세금을 내린다 해도 경제주체들은 정부가 재정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어차피 세금을 다시 인상할 것으로 예상해 소비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저축을 하는 것이다. 정부가 무능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 늘어날 세금 부담을 민간 부문이 인식하고 있을 따름이다.

정부는 산타클로스가 아니다. 사업의 혜택은 큰 소리로 이야기하지만 그 비용을 자세히 설명해주는 정치인은 드물다. 정부 지출 증가로 발생한 재정적자는 언젠가는 세금을 더 걷거나 새로 돈을 찍어 충당해야 한다. 화폐 발행은 인플레이션의 위험을 증가시키고, 재정 적자를 이월시키는 것은 결국 다음 세대의 돈을 빌려 지금 소비하는 것과 다름없다. 당장 GDP를 올리기 위해 집행하는 사업들이 우리 자녀들에게 더 큰 세금을 부담시킬 가치가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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