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리어답터'만을 위한 마케팅 계속한다면…애플, 또 위기 온다

    • 김상훈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입력 2010.07.10 02:59

新시장 창조로 성공신화 썼지만 스마트폰, 점차 '레드오션' 시장 돼
일반 소비자들 위한 마케팅 힘써야 자칫하면 PC시장 실패 '되풀이'

로이터
요즘 스마트폰의 인기가 대단하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스마트폰이 쏟아져 나오고 사용자들은 신기하고 다양한 기능에 놀라고 행복해한다. 전 세계에 불고 있는 스마트폰 열풍의 주역은 다름 아닌 애플이다. 스티브 잡스(Jobs)가 CEO로 복귀한 이래 아이팟과 아이폰의 연이은 성공, 그리고 최근 아이패드의 성공적 출시까지 애플은 시장 창조의 성공 신화를 계속해서 써내려 가고 있고 수많은 경쟁사는 애플 베끼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필자가 최근 서점가를 점령한 애플 예찬 일색의 수많은 책들과 언론 기사들, 그리고 유명 블로거들의 글을 읽고 내린 최종 결론은 애플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잘나가고 있는 애플이 위기라니…. 대다수의 독자들은 필자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릴지도 모르겠다.

애플이 위기라는 말에 즉각적으로 공감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 이유는 아마도 다음과 같을 것이다. 즉 회사의 성공담이 블로그와 잡지, 신문에 연이어 등장하고, CEO의 사진이 잡지 표지를 장식하기 시작하는 것이 내리막길의 신호라는 속설을 떠올리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애플의 위기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보다 치명적이고 근본적인 전략적 위기에 봉착해 있다.

멕시코 대학의 에버릿 로저스(Rogers) 교수는 저서 〈혁신의 확산〉에서 이른바 '기술 수용 주기' 이론을 주창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혁신적인 신상품이 세상에 나오면 5개의 수용자 집단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호기심에 가장 먼저 신상품을 구입하는 혁신 수용자, 남들보다 앞서서 킬러 애플리케이션을 경험해 보고자 하는 얼리어답터, 기술이 완성되고 가격이 충분히 하락할 때를 기다렸다가 구매에 뛰어드는 실용주의자, 검증된 제품의 사용자 집단에 뒤늦게나마 합류하는 보수주의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끝까지 혁신에 저항하는 지각 수용자가 바로 그들이다.

필자는 1990년대 초 미국에서 태동한 '하이테크 마케팅'이라는 분야를 연구하고 강의해 왔는데, 강의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드는 사례가 애플이다. 애플은 1970년대 말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창조한 이래 수많은 혁신제품으로 끊임없이 시장을 창조해 온 대표적인 시장 창조 기업이기 때문이다. 마침 국내에 아이폰이 출시되고 아이패드가 소개되면서 애플 사례는 또다시 강의의 핵심 레퍼토리가 되었다. 그리고 강의는 언제나 시장 세분화와 포지셔닝으로 요약되는 기존 전통적 마케팅 이론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으로 마무리해 왔다. 전통적 마케팅이 '시장을 쪼개어서 정복하는(divide and conquer)' 전략을 강조해 왔다면 시장 창조를 위한 혁신적 신상품 마케팅은 '창조하여 소유하는(create and own)' 전략이 중요하고 이 전략을 가장 잘 구사하는 기업이 애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상황을 보면, 이제는 애플에 말할 차례가 온 것 같다. 즉 애플이 이제는 시장 창조의 '하이테크 마케팅' 패러다임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애플이 지금껏 상대해 온 혁신 수용자나 얼리어답터가 아니라 실용주의자, 보수주의자 소비자를 대상으로 성공적인 마케팅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장 세분화(segmentation)―표적시장 선정(targeting)―포지셔닝(positioning)'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STP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른바 블루오션 시장을 위한 마케팅을 계속 고집하다가 레드오션 시장에서 고립되어 외톨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다름 아닌 애플 자신이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이미 뼈저리게 경험한 진리가 아니던가?

최근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으며 출시된 아이폰4의 결함에 대해 말이 많다. 심지어 어떤 소비자들은 소송까지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아이폰 3G도 통화 품질이나 하드웨어, 배터리, AS 등에 대해 부정적 의견이 있었지만, 유독 아이폰4에 대해 소비자들이 '과민 반응'을 보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이를 소비자 집단의 차이라고 본다. 즉 아이폰3를 샀던 고객들은 대다수가 얼리어답터였다. 반면 아이폰4를 사는 사람들은 실용주의자였다. 실용주의자들은 기술을 잘 모르기 때문에 사용의 편리성과 서비스에 매우 민감하다. 그래서 사소한 결함에도 쉽게 흥분하고 조금만 어려워도 사용을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절대 시장조사를 하지 않는다"는 스티브 잡스의 다소 오만한 주장은 얼리어답터에게나 적용 가능한 얘기다. 얼리어답터가 원하는 것은 '욕구의 충족'이 아니라 '놀라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용주의자의 관심은 철저히 '욕구의 충족'에 있다. 그것도 충분히 낮은 가격과 완벽한 품질이 뒷받침되면서 말이다. 실리콘밸리의 컨설턴트인 제프리 무어에 따르면 실용주의자들은 제품의 작은 결함에도 민감해 구매를 미루는 습성이 있고 이는 이른바 '캐즘(초기 시장의 대단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실용주의자의 신중한 구매 성향으로 인해 일시적인, 때로는 상당 기간의 정체에 빠지는 현상)'을 초래한다.

아이폰도 그렇고 아이패드도 그렇고 이제 얼리어답터 소비자들은 이미 다 소진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플이 캐즘을 넘어 주류시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실용주의자와 보수주의자를 위한 전략으로 180도 선회해야 한다.

애플이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혁신 수용자와 얼리어답터의 영웅이 되어버린 그들이 과연 실용주의자의 입맛에 맞는 전략으로 선회하여 개인용 컴퓨터의 전철을 밟지 않고 성공적으로 시장을 소유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애플 죽이기에 모든 힘을 결집하고 있는 삼성을 비롯한 대다수의 경쟁자는 얼리어답터보다는 실용주의자를 상대로 한 마케팅에 관록이 있는 베테랑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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