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경영에 눈뜬 CEO들 강의실서 길을 찾다

입력 2010.02.13 03:44

'열공' 모드로 바뀐 대학 최고경영자과정
인맥 쌓기용 친목모임서전문화되고 체험 위주의학습 커뮤니티로 발전
"단순히 수치에 막혀있던사고 넓힐 수 있는 기회"

#1 머리가 희끗희끗한 기업 CEO가 아이폰으로 페이스북(facebook·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접속, 해외 여행을 떠난 친구의 근황을 확인한다. 아이튠스(iTunes)에 들어가서는 음악과 영화 파일을 다운로드하고, 앱스토어(Appstore·애플의 온라인 프로그램 판매장터)에서 응용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즐긴다.

올봄, KAIST 정보미디어 최고경영자과정(ATM) 수강생이 치러야 할 '뉴 미디어 서바이벌 게임'을 가상으로 그려봤다. 수강생이면 개강 전까지 스마트폰을 구입하는 것은 필수. 학교의 주요 공지사항은 트위터(twitter·한줄짜리 블로그)로만 받을 수 있고, 아이튠과 앱스토어에서 콘텐츠 사냥에 나서야 한다. 게임산업에서의 스토리텔링 기법이나 영화 제작 및 마케팅, 케이블TV 뮤직채널의 성공 사례 등을 몸으로 직접 경험하며 배우는 것도 특징이다.
일러스트= 김의균 기자 egkim@chosun.com
김영걸 KAIST 정보미디어경영대학원장은 "최신 뉴미디어와 영화·드라마·음악·게임 등 디지털 콘텐츠 간의 융합을 이해하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지만, 수강생 대부분은 일반 기업이나 금융업체의 CEO들"이라고 말했다.

#2 한국능률협회(KMA)는 올해 '전쟁의 신(神)'이란 이름의 인문학 최고경영자과정을 처음 개설했다. 그 캐치프레이즈는 '전쟁 영웅에게서 경영의 해답을 찾는다'이다.

요즘과 같이 불확실한 시대에 전쟁 영웅들에게서 미래를 개척하는 모험심과 부하들의 영혼을 움직이는 리더십, 위험을 직시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결단력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 과정을 보면 '인재경영―알렉산더', '위기대응―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리더십―징기스칸', '전략―이순신' 등으로 짜여 있다.

지금까지 대학이나 교육기관의 최고경영자과정(AMP·Advanced Management Program)이라고 하면, 으레 경영학 전반에 대한 개론 수준의 백화점식 교육이나 인맥 쌓기용 친목 모임쯤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최고경영자 과정이 달라졌다. 참신하고 다양한 주제를 중심으로 실용적이고 전문화된 학습 커뮤니티로 업그레이드가 진행 중이다.

올해 최고경영자과정의 특징은 세 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①체험형 강의 ②특정 분야에 특화된 강의 ③인문학의 계속된 인기가 그것이다.

① 체험형 강의

한 CEO가 50명의 청중을 대상으로 연설을 한다. 다른 연설과 다른 점은 장소가 대학 강의실이라는 점, 그리고 연설이 끝난 후 CEO가 녹화된 연설 화면을 TV로 보면서 복기(復棋)를 한다는 것이다.

강사는 TV를 같이 보면서 지적한다. "음성이 너무 작아요. 그리고 말하는 도중에 몸동작이 너무 많은데, 그러면 청중들의 주의가 산만해집니다."

지난해 연세대학교 최고경영자과정에서 진행됐던 수업의 한 장면이다. 이 과정은 실습을 통해 직접 배우는 강의가 많다는 점이 특징이다. 효과적인 토론 기법, 창조적 협상, 조직 강화, 경영 혁신도 실습을 통해 배운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최고경영자 문화·예술 과정(CAP)은 연극·음악· 영상·사진·사물놀이 등 특별활동반을 만들어 CEO들이 장르별로 저명 교수진으로부터 직접 지도를 받으며, 발표회도 갖는다.

어느 대학의 최고경영자과정에도 거의 빠지지 않는 공식이 있다. 기업이나 문화 유적, 공연장 등을 찾아다니고, 외국에도 한 학기에 한 번 정도는 나가서 외국 기업이나 트렌디한 현장을 보고 온다. 한양대학교 글로벌경영전문대학원(U-CEO 과정)은 올봄 베이징의 칭화대(淸華大)에서 현지 수업을 받고 베이징현대차를 방문할 예정이다.

실무 중심의 강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는 것도 트렌드이다. 교수 일변도의 강의에서 벗어나 실전 경험을 갖춘 외부 강사 초청 강연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연세대 정동일 교수는 "이제는 기업 경영에 경험이 없는 교수들의 강의는 수강생들이 지루해 한다"면서 "현장성을 중시하는 수강생들의 기호에 맞추다 보니 현직 경영자 등 외부 강사를 많이 유치하고 실력 있는 다른 대학 교수들도 포함시키는 등 강사진 구성이 많이 유연해졌다"고 말했다. 기업인 중에서는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김효준 BMW코리아 사장, 이채욱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공연 '난타'를 기획한 송승환 PMC프로덕션 대표 등이 인기 강사이다.

② 특화된 강의

최고경영자과정에 대한 기업인들의 눈높이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MBA 등 경영 관련 교육을 전문적으로 받은 경영인이 많고, 각종 세미나나 조찬 모임 등을 통해 평소 꾸준히 내공을 쌓는 사람도 많다. 대기업의 웬만한 CEO들은 이미 최고경영자과정을 2~3개 정도 수료한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CEO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새로운 이슈를 선점하기 위해 각 대학 최고경영자과정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한양대학교 경영교육원은 글로벌 이슈로 떠오른 기후 변화를 주제로 한 교육 프로그램을 올해 처음으로 내놓았다. '차세대 그린비즈니스 최고경영자과정'이 그것이다. 4월부터 시작하는 이 과정은 기후변화 협약과 탄소시장, 저탄소 시대 경영 환경 변화, 녹색 성장 시대의 경영 전략 등을 집중 조명할 계획이다.

중앙대학교는 2004년부터 일본 지역 최고경영자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 경제와 일본 기업에 대해 배우는 코스이다. 전·현직 일본 기업인과 일본 교수들이 강사로 대거 등장한다. 중앙대 경영전문대학원 임상빈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일본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깊숙이 들어가면 거의 모르는 게 현실"이라며 "일본 기업인과의 교류를 통해 그들의 인간 중심 경영, 장인 정신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 교육 목적"이라고 말했다.

젊은 2세 경영인에 특화한 교육 프로그램도 나왔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은 기업체 창업 2세들의 경영 마인드와 리더십 계발 등을 통해 경영 승계를 돕는 차세대 경영 리더 과정을 개설했다. 성균관대학교 'W-AMP' 과정은 자산 운용, 건강관리, 삶의 질 향상 등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심혈관 질환의 예방과 관리 등 건강 강좌와 함께 2주에 한번 대학 소속 의사가 수강생들의 혈당과 혈압을 체크해 준다.

③ 인문학의 계속되는 인기

인문·예술 관련 프로그램은 이제 CEO 교육 프로그램에서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글로벌 경제에서 창조 정신과 기업가 마인드를 기르려면 일반 경영학적 지식을 넘어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와 경험을 통한 창의적 사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데 CEO들이 공감하기 시작한 것이다.

CEO 대상 인문학 강의의 '원조'로 꼽히는 서울대 '최고지도자 인문학 과정(AFP)'은 올봄 학기 수강생 합격자 명단을 예정일(1월 22일)보다 나흘 늦춰서 발표했다. 예년에는 2대 1 정도의 경쟁률을 보였는데 올해(경쟁률 약 3대 1)는 지원자가 너무 많아 합격자를 가려내는 데 시간이 더 걸렸던 것이다. 지난해 이 과정에 참여한 최종태 포스코 사장은 "막연하게 경영 지식과 숫자에 막혀 있던 사고를 더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국립중앙박물관, 국립극장은 저마다의 최고경영자과정을 서로 연계하는 프로그램을 올해부터 운영한다. 자기 기관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강의를 다른 기관에 가서 경험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최고경영자 문화·예술 과정 수강생들이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해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유물에 대한 설명을 학예연구사로부터 듣는다. 반면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극장 최고경영자과정 수강생들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캠퍼스 내의 영화관을 방문해 특별 제작된 프로그램을 보면서 영화 제작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3~5월의 매주 화요일 서울 정동 성공회성당 수녀원에는 기업 CEO 30여명이 모인다. 성공회대가 개설한 'CEO와 함께하는 인문 공부' 수강생들이다. 도시락으로 저녁을 해결하면서 근현대 미술·과학, 전통문화 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 3시간 동안 '열공'에 들어간다. 고려대학교 박물관도 '문화예술 최고위과정'을 열고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인도·티베트 등 세계 각지의 민속과 문화예술을 각 분야에 접목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 무한 경쟁 시대

대학 최고경영자과정은 이제 무한 경쟁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대학 관계자들은 대학과 각종 기관이 시행하는 국내 최고경영자과정이 200여 개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그러다 보니 특색 없는 일부 과정은 수강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대학들은 다양한 커리큘럼을 개발하고 우수 강사를 유치해 수업의 질(質)을 높이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해외 유명 기관과 손을 잡는 것도 그 일환이다.

한국능률협회(KMA)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의 와튼스쿨(Wharton School)과 공동으로 최고경영자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 W호텔에서 열리는 강의에는 와튼스쿨 교수들이 직접 와서 최근 비즈니스 트렌드와 경영 기법을 전수한다. 수강생들이 1주일 정도 와튼스쿨을 직접 방문, 현지 수업도 받는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는 "최고경영자과정이 계속 진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골프나 술자리 위주로 진행되고 네트워킹을 강조하는 과정이 많다"면서 "최첨단 정보와 지식을 배우고 경험함으로써 회사뿐 아니라 개인의 경쟁력을 높이는 배움의 장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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