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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본토 항공전의 영웅 휴 다우딩과 이순신, 유성룡의 공통점은?

최원석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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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3 10:41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어떤 사물, 사건도 그렇고 인간도 마찬가지죠. 보기에는 훌륭해보이고 평판도 좋은데 막상 같이 일해보니 믿을 수 없을만큼 무능한 경우도 있고요.(물론 거기엔 다 이유가 있습니다만.) 반대로 완고하고 고집스럽고 같이 일하기 불편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도 있죠.  겉으로 보기에 다 받아주는척 하지만, 마음으로는 정형화된 생각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요. 겉으로는 완고해보이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생각이 놀랄만큼 자유로운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게 움직이는데 다 이유가 있고, 또 이런 영웅들이 반드시 좋은 평가를 받는 것도 아닙니다. 이순신이 조정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유성룡의 '징비록'이 이후 사대부들에게 어떻게 폄하당했는지 보면 알 수 있죠. 역사는 반복됩니다.


위클리비즈에 일전에 '시네마 경영학'이라는 주제로 영화 '덩케르크'의 영국 본토 항공전의 휴 다우딩 얘기를 쓴 적이 있는데요. 다우딩이라는 사람이 바로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일본어로 치면 '츤데레' 타입이기도 하고요. 말도못할 원칙주의자에 꼬장꼬장한 영국신사였죠. 아래에 사진 하나 올려봅니다. 얼굴 보면 느껴지실 수도 있을거에요.


영화 '덩케르크'에 보면 독일군에 밀려 패주하는 영국 병사들이 영국 공군을 비난하는 장면이 나오죠. 독일 폭격기, 전투기들이 자신들을 공격하는데, 영국 공군은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는 분노였죠. 이 부분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실제로 영국 공군이 출격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고요. 아주 많이 출격했지만, 대부분의 공중전이 해안가에 있던 영국 병사들의 눈에 안보이는 곳에서 벌어졌습니다. 영화에서 스핏파이어와 메사슈미트 BF109의 공중전도 대부분 해안가 아닌 곳에서 벌어지죠.


하지만 반은 맞는게, 영국 공군이 당시 귀중한 전투기 전력을 아껴야 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는 겁니다. 긴 영국 본토 방어전에 대비해야 했거든요. 영국 공군력이 무너지면 독일군이 바다 건너 영국으로 밀려드는 것을 저지할 방법이 없었죠. 영국마저 무너지면 유럽은 끝이었으니, 정말 절박한 상황이었을겁니다.


이때 장기전에 대비한 모든 계산을 끝낸 영국의 전설의 지휘관이 등장합니다. 휴 다우딩이라는 사람입니다. 유럽 전체가 나치 손아귀에 떨어질 위기에 처하자, 영국 정부는 영국 공군력을 쏟아부어 이를 막을 생각을 하죠. 이때 다우딩이 '대단히 오만불손하게도' 처칠한테 편지를 보냅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앞은 생략)
2. 우리 군이 아직도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승리하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그들이 질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결국 영국군은 대륙에서 나치한테 처절하게 깨졌죠.)
3. 그럴 경우 유럽 대륙 전체가 독일 손에 떨어지더라도 영국이 계속 싸워야 한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4. 이를 위해 영국 본토 내에 최소한의 전투기 전력을 유지해야 하며, 제가 전투기 전력을 적소에 배치할 수 있도록 항공협의회가 필요 최소한의 전투기전력이 얼마인지 산정하고 통보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5.항공기협의회는 최근 영국 본토 방위에 최소 52개의 전투비행대대가 필요하다고 추산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현재 보유한 전력은 36개 전투 비행대대 뿐입니다.
 (중간 생략)
9.그러므로 항공성은 본토 방위에 필요한 전투기 사령부의 전력 계산을 어떤 사안보다 중대하고 시급하게 판단 및 결정한 후, 언제쯤이면 그 전력을 공급가능한지 저에게 알려주시고, 또한 프랑스가 아무리 긴급하고 끈질기게 구원요청을 할지라도 영국 해협 너머로 앞으로는 단 한대의 전투기도 보내지 않을 것임을 보증해주시기 바랍니다.
10.우리나라에 충분한 전투기 전력이 있고 해군함대가 건재하며 본토 방위 부대가 잘 조직되어 있다면 당분간은 우리 혼자서 전쟁을 해야 할지라도 언젠가는 우방국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프랑스의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본토 방위 부대를 프랑스에 투입시켜 소모시켜 버린다면, 프랑스의 패배와 함께 우리나라 역시 돌이킬 수 없이 완벽하게 패배하고 말 것입니다.


한가지 더. 다우딩은 나치와의 공중전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퇴역을 앞두고 있는 한물간 장성이었습니다. 워낙 꼬장꼬장하고 위에다가 바른말 하기 좋아해서 적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전쟁이 나고 보니 이런 능력을 갖춘 인물이 없었던 겁니다. 결국 그의 머릿속에서 나온 전략이 영국을 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역사가 펼쳐지니까요. 그의 말년은 어땠을까요? 예상하신대로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전쟁 중에는 그야말로 난세의 영웅이었지만, 평화가 찾아온 뒤에 보면 상부에 오만불손한 인간이라는 단점만이 그를 공격할 뿐이니까요.


뭐 이순신도 임진왜란 나기 전에 조정에서 오만불손한 인간으로 미움을 받았고, 백의종군도 당했으니 영국이라고 그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지만요. 유성룡의 '징비록'도 이후에 그렇게 사대부들에게 가치를 폄하당했다고 하는 얘기도 있죠.


아뭏든 영화 '덩케르크'의 공중전 장면을 보면서 이런 다우딩이라는 인물이 있었다는 것을 한번 알아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듯 합니다. 이 얘기는 마이클 코다가 지은 '영국 전투(2014년, 열린책들)'라는 책에서 대부분 인용했습니다.

계속 얘기가 늘어지네요. 제가 작년말에 출간한 '왜 다시 도요타인가'는 1.리더, 2.설계, 3. 환경 이렇게 세 파트로 구성돼 있는데요. 이 가운데 설계파트에서 한 사례로 영국전투를 인용해 설명하려 했다가 빠진 부분이 있습니다. 편집자가 '설계'라는 주제와 정확히 맞지 않는다고 말씀하셔서, 그 얘기 듣자마자 그냥 빼버렸습니다.^^;;

'덩케르크' 영화 얘기를 한 김에 옛날 원고를 찾아 한번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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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능력 차이가 미래의 승부를 좌우한다-영국 본토항공전>


2차대전 최대 공중전으로 불리는 1940년 영국 본토항공전(Battle of Briatain)은 ‘설계’가 이후 승부를 어떻게 가르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히틀러가 집권하고 독일이 재무장에 나서면서, 영국은 독일이 언젠가 자국을 침공할 것이라 예상했다. 영국은 독일이 어떤 작전으로 나올지 분석한 최선의 방어 전략을 짜야 했다. 당시 독일은 압도적으로 우세했던 공군 전력으로 영국 공군부터 궤멸시키려 했다. 영국 본토에 독일군을 대규모로 상륙시켜 런던으로 진격하려면, 영국 공군력부터 무력화시켜야 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물론 그 뒤에 놀란 영국이 독일군의 영국 상륙 이전에 항복해주는 것이 최선의 시나리오였다.


실제 영국 본토항공전은 1940년 일어났지만, 영국이 독일의 낌새를 파악하고 대비에 나선 것은 1937년쯤이었다. 전투기를 늘리고 우수한 파일럿을 양성하는 것은 많은 시간과 돈이 드는 일이었다. 준비할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이 때 등장한 인물이 영국 공군전투기 사령부 사령관 휴 다우딩(Hugh Dowding, 1882~1970)이다. 그는 정치적으로 타협하지 않는 완고한 원칙주의자였으며, 항공기와 항공전략에 해박하며 신기술에 왕성한 호기심을 갖고 있던 공군의 전문가 중 전문가였다. 그러나 상부에 바른 말을 일삼다가 미움을 사 사실상 좌천돼 은퇴할 날만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결국 독일 공군의 위협에 맞설 총책임자로 나서게 됐다. 책임자가 된 그는 윗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영국 공군의 방어 시스템을 완전히 새로 설계해 나가기 시작했다.


다우딩은 현대 항공전에서 처음으로 레이더망의 중요성을 인식한 장성이었다. 당시 레이더가 막 개발된 상태이긴 했지만, 군 전문가들조차 레이더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는 레이더망이 ‘돈만 들고 쓸모 없을 것’이라며 반대하던 공군 장성들, 그리고 독일 공군을 막는데 이런 눈에 안보이는 시스템이 왜 필요한지 이해조차 하지 못했던 정치가들을 일일히 설득했다. 결국 영국 남동부 해안선을 따라 촘촘한 레이더 망을 설치하고, 이들 정보를 통합 운영할 중앙사령부를 설치했다. 통신의 중요성을 일치감치 깨달았던 그는 전선망을 지하에 매설해 독일 공군의 폭격에도 통신망이 무너지지 않도록 대비했다. 또 레이더망에서 들어온 모든 정보는 공군사령부 작전 상황실로 모이도록 한 뒤 사령부에서 종합적인 대응전략을 짜고 각각의 전투기 편대는 이 전략에 따라 유기적으로 움직이도록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런 시스템이 현재로선 당연해 보이지만, 당시로서는 설계의 혁신이라 할만했다. 그 전까지는 파일럿들이 지상에서 작전에 대한 브리핑을 받은 뒤 이후 공중전은 알아서 하는 식이었다. 다우딩은 또 레이더 정보 분석요원 대부분을 여성으로 구성하고, 각각의 전투기 사령부에 지시하는 일까지 여성들에게 맡겼다. 파일럿들은 처음엔 여성에게 보고하고 여성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것에 맹렬히 반발했지만, 다우딩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에게는 독일에 이기는 것이 중요했고, 모든 구성원은 그 목표를 위한 설계에 따라야 했다. 또 다우딩은 독일 폭격기와 전투기에 맞설 새로운 전투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적에 맞설 가장 적합한 전투기를 개발하도록 지시했다.


그 결과, 본토항공전에서 영국은 1960대의 항공기를 투입해 544명의 조종사와 1540대의 항공기를 잃은 반면, 독일은 2550대의 항공기를 동원해 2700명의 조종사와 1880대의 항공기를 잃었다. 영국은 본토 방어에 성공했고, 독일은 이 항공전에서 입은 손실을 만회하지 못하고 결국 패망의 길을 걸었다.


영국 본토항공전에서 영국이 승리한 이유를 하나만 꼽자면, 당시 영국 공군에 휴 다우딩이라는 난세의 영웅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영국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서는 공군 방어시스템의 혁신, 즉 설계의 혁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우딩의 설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었지만 눈에 보이는 그 어떤 것보다 영국 공군을 강하게 만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독일 공군은 영국이 자신들의 압도적인 공군력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었던 이유를 깨닫지 못했다. 독일 공군은 휴 다우딩이 준비했던 레이더 기반의 방공시스템과 그 방공 정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통합 정보의 가치를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영국 본토항공전-제2차 세계 대전 최대의 공중전(With Wings Like Eagles-A History of the Battle of Britain)의 저자 마이클 코다는 그의 저서에서 “독일은 이러한 전파 신호가 지휘통제 체제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체계의 정체를 숨긴 것은 레이더가 아니라 휴 다우딩의 깔끔하고 철저한 사고 방식이었다”고 말했다. 휴 다우딩의 사고방식이란, 결국 그의 머릿속에서 나온 큰 그림 즉 ‘설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영국 본토항공전에서 영국의 방공 레이더와 반격 시스템에 관한 설계는 영국이 독일에 무너지는 것을 막아주었고, 결국 2차대전의 미래를 결정짓는 승부처가 됐다. 휴 다우딩의 혁신적 설계가 없었더라면, 영국이 독일에 무너졌을 것이고, 이후 독일군이 상륙해 영국마저 독일 손에 넘어갔더라면 우리가 알고 있는 2차대전의 결과와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한국 산업계에 이 얘기를 적용한다면 어떨까. 주력 산업군 상당수가 50년만에 경쟁력 상실의 위기를 겪고 있다. 조선·해운 산업 등에선 이미 심각한 부실이 발생하고 있다.


위기를 극복할 방법은 무엇일까? 후발주자의 도전을 물리치고 계속해서 업종을 선도해나가 위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진짜 경쟁력을 좌우하는 설계에 모든 역량을 모야야 한다. 자동차 업계의 레고블럭형 설계, 도요타의 TNGA와 같은 설계 혁신은 다른 업계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그 위기를 잘 파악하고 대응책을 면밀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의 총공세에 맞서 본토 항공전을 준비해야 하는 영국의 심정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할지 모른다. 미래를 예측한다고 예측이 가능한 것이 아니다. 설계를 통해 미래를 내 편으로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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