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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기업 빈부격차 줄이려면 '범유럽 주식형 펀드' 만들어야 한다

Opinion 엘레나 칼레티 이탈리아 보코니대 교수
입력 2020.07.10 03:00

[WEEKLY BIZ Column]

엘레나 칼레티 이탈리아 보코니대 교수
모든 큰 경제 위기는 중요한 과제를 두 가지 던진다. 먼저 기업 유동성(자금)이 고갈되고 기업들이 자기자본의 상당 부분을 소진한다는 점이다. 특히 유동성 고갈은 코로나 사태 때문에 각국에서 실시하는 이동 제한 속에서 기업이 당면한 큰 과제다. 그러니 기업 생존 보장을 위해 기업에 유동성을 제공하는 것이 국가의 최우선 과제다. 그런다고 기업 살리기, 기업의 내구성 구축, 기업 성장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기업이 투자를 하고 성장하려면 자기자본금이 회복되어야 한다. 이 과제가 다음 단계 경제 회복에 필수 요소다.

코로나 사태로 많은 유럽연합(EU) 기업이 이익이 줄면서 심각한 현금 위기에 처해 있다. 기업이 직원을 해고하고, 제품 생산을 취소하고, 문을 닫을 수밖에 없게 되기 전에 기업에 돈을 대줄 다양한 제안이 제시됐다. 제안 중 하나가 유럽투자은행(EIB·EU의 대출 기관)이 유럽중앙은행(ECB)에 제공하는 예비 자금이다. 만기가 닥친 기업 부채를 기업이 갚을 수 있게 즉시 대규모 자금을 제로 금리로 지원하는 형태로 EU 기업에 유동성의 생명 줄을 제공하는 것이다.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한 걸음이긴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유동성 공급이 환자의 생명을 연장해주지만 회복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동성은 대출을 통해 기업에 전달되기 때문에 더 큰 부채를 발생시킨다. 채무 불이행의 위협은 기업 투자를 저하시키고 성장 가능성을 없앤다. 대부분의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국가), 특히 이탈리아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저성장을 기록한 기업은 이번 유동성 공급 이후 부채가 급격히 증가하고 코로나 사태 여파로 자기자본이 고갈돼 향후 성장이 더욱 둔화할 것이다.

'공정한 경쟁의 장' 더 멀어져

유럽연합 기업들에 자금 지원이 필요하다면 그 자금은 어디에서 올 것인가. 이미 엄청난 손실을 입은 가계 부문은 정답이 아니다. 이탈리아 같은 재정 부담이 큰 국가 역시 지원에 필요한 유동성을 감당하기 불가능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재정이 탄탄한 유럽연합 회원국, 특히 독일은 정부 재정을 기업에 넉넉하게 투입할 수 있다. 독일은 탄탄한 재정과 유럽연합의 국가 원조금 금지 면제 조치 덕분에 자국 기업에 자금을 투입하고 일부 산업 분야의 국유화를 추진할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가능한 시나리오는 이렇다. 재정이 빈약한 국가의 기업들은 자기자본금이 부족해진다. 반면 재정이 넉넉한 국가의 기업들은 국가 원조를 받아 성장한다. 그리고 이 두 부류 기업들이 경쟁하게 된다. 따라서 향후 시장의 모습은 유럽의 경쟁 정책 당국이 수십 년 동안 추구해왔던 '공평한 경쟁의 장'과는 거리가 멀어질 것이다. 이것은 빚이 많은 부채국이 더 약해지는 큰 원인이 된다. 부채국 성장률도 유럽연합 평균치와 많이 차이가 나게 된다.

재정이 강한 국가의 기업들은 주로 국가 원조를 받아 더 공격적으로 경쟁하거나 재정이 약한 국가의 기업들을 인수하려고 할 것이다. '유럽연합 꿈'의 종말을 예고하는 현 시나리오에 대안이 있는가? 유럽투자은행이 자금을 조달하는 범유럽 주식형 펀드가 유일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유럽연합 전역의 기업들에 새로운 주식 발행을 승인하는 이 펀드는 아울러 글로벌 자산 운용사, 연기금, 국부펀드 등과 같은 장기 투자자들에게도 개방될 것이다. 또한 기업들은 주식뿐 아니라 장기 채권을 발행할 수도 있다.

재정 역효과 줄여줄 공동 펀드

이 펀드 구상이 성공하려면 우선 이 펀드가 어떤 기업에 투자해야 할지에 대해 엄격한 규칙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 당장 재정적 압박을 받고 있는 기업이 아니라, 코로나 사태 이전의 수익성과 성장에 가장 근접한 기업들에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 둘째, 이 기금의 목적은 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 간에 자금 지원 격차를 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직 국가 지원을 받지 않은 기업에만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셋째, 신규 투입 자금이 신규 투자자와 기존 주주들의 손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해 기업들이 당분간 배당금을 분배하거나 자사주를 재매입하지 못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넷째, 해당 기업 최고경영진의 보상을 위기 이전 수준에서 3년간 동결해야 한다. 다섯째, 기금은 정부에서 독립된 관리 기관이 관리하며 투자 기업의 지분을 경영권 행사 수준으로 취득해서는 안 된다.

이런 주식형 펀드를 조성하는 경제적 근거는 유럽연합 기업들이 각국의 재정 역량과 관계없이 수익성만을 기준으로 투자하고 경쟁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긴 안목에서 볼 때 이 펀드는 향후 유럽연합 기업들이 위험을 분담할 수 있는 금융 시스템이 될 것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유럽연합 내 소수 국가만이 아닌 모든 국가가 성장해야 모든 유럽연합 시민들이 혜택을 입을 수 있다. 이것이 유럽인의 꿈을 계속 살려나갈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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