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제약업계 간판스타인 바이엘의 올해 1분기(1~3월)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128억유로(약 17조원), 14억9000만유로(약 2조원)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6%, 20% 늘면서 월스트리트의 예상치를 뛰어넘었다. 특히 아스피린 등 상비약 수요가 급증하며 한동안 실적이 지지부진했던 소비자 건강 부문의 매출이 1년 전보다 13.5% 증가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미·중 무역전쟁 등 각종 악재가 겹치며 상당수 글로벌 기업들이 마비되다시피 한 상황에서 나온 실적이라 업계에선 '선방했다'고 평가하는 분위기다. 베르너 바우만(Baumann·57) 바이엘 회장은 "코로나 바이러스 등 위기 속에서도 기존 영업을 꾸준히 계속한 덕분에 상당수 사업부가 사회적으로 기여하면서도 좋은 실적을 거둘 수 있었다"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는 제약업계에는 기회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는 얼마나 심각한가.
"과거 여러 공중보건 위기와 비교해봐도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 비견될 만한 위기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중국에서 발생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과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에볼라 바이러스도 물론 매우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두 질병의 영향은 특정 지역에 국한됐다. 반면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은 전 세계적이면서도 거의 모든 사람의 삶에 다층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업 의사 결정권자로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
"사업의 예측성이 도전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위기로 인해 주가와 재무 지표가 얼마나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을지, 혹은 바이엘의 고객과 파트너가 돈을 제때 우리에게 지불할 수 있는지, 또 이들의 재무 상태가 우리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아직 가늠하기 어려운 단계다. 또한 특정 상품의 수요가 어떻게 변할지도 아직 명확한 청사진을 제시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지금처럼 환자들이 의사 얼굴조차 보기 힘든 상황이 이어진다면 의약품 수요가 어떻게 변할지 알 도리가 없다. 그렇기에 아직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긍정적·부정적 영향을 연말까지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지금은 상황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어 올해 경영 전망을 시시각각 업데이트하고 있다."
―혼란 속에 오히려 기회가 있는 법이다.
"모든 위기에는 반드시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공중보건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확 바꿨다. 갑작스레 거의 모든 사람이 대화를 나눌 때 말미에 '건강하세요(stay healthy)', '몸조심하세요(stay safe)'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또한 상당수 사람들은 아마 생애 처음으로 마트에 갔을 때 텅 빈 선반과 매대를 목격했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삶에 있어서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줬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로 인해 과학기술 개발을 중요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도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여론에서 과학기술 개발을 도와줘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바이엘은 과학기술이 기업 경쟁력이기에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기업 미래에도 긍정적이다."
위기 땐 '사업 연속성'에 신경 써
바우만 회장은 제빵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리고 30년 넘게 바이엘에서 재무통(通)으로 일했다. 재무통답게 특정 제약품 임상 시험에 참여한 환자 수까지 세세하게 기억할 정도로 명석하면서도 디테일을 중시한다는 평가다. 그리고 그의 꼼꼼한 특성은 예측 불허의 코로나 위기에서 저력으로 발휘되고 있다.
―위기 발생 때 리더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위기가 발생했을 때 리더는 우선 직원들과 그 가족들을 보호하면서, 회사의 운영에 끊김이 없도록 하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특히 회사가 위기 극복에 필수적인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면 지속적인 운영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또한 위기가 발생했을 때는 평시보다 직원들과 더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눠야 한다. 주주, 시민단체 등 이해관계자와도 더 치열하게 토론을 벌여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해법을 내야 한다. 예를 들어, 바이엘은 독일에서 최초로 주주총회를 인터넷으로 열어 제때 배당금을 지급할 수 있었다. 이러한 조치는 주주들에게 긍정적인 신호를 보낼 수 있었다."
―현재 당면한 최우선 과제를 꼽으면.
"바이엘 10만 직원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직원들이 여러 분야에서 일하고 있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에 노출될 수 있기에 이러한 상황을 방지하는 데 신경을 쓰고 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사업 운영을 지속하는 것 자체가 큰 도전 과제다. 궁극적으로는 바이엘이 코로나 종식에 기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전 세계 곳곳에 기부금은 물론, 의료품, 상비약, 의료 방호복, 의료 기기 등을 기부하고 있다. 지금까지 약 2000만유로를 기부했다. 한국에도 코로나 예방을 도우려고 의료 기기와 소독제를 기부했다. 특히 대구에는 노년층의 면역력 회복을 돕기 위해 CT 촬영에 사용하는 조영제를 지원하고 비타민제를 기부했다."
―글로벌 공급망 붕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
"일부 국가로 인해 최근 물류망이 영향을 받기도 했으나 곧 상황이 회복된 덕분에 현재 글로벌 물류망은 정상적으로 가동 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글로벌 물류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일깨워줬다. 또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와 같은 위기 때 보호무역주의는 도리어 아무도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점은 이번 위기의 또 하나의 교훈이다."
코로나로 제약업계 혁신에 가속도
―바이엘이 150년 넘게 성장할 수 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우선, 혁신의 응용력이다. 바이엘엔 창업 때부터 과학기술 혁신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이 내려온다. 여기에 더해 과학 분야의 새 발견을 제품 혁신으로 일궈내는 노하우가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연구·개발(R&D)에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을 투입한다. 2019년 한 해에만 53억유로를 투자했다. 전 세계 20위권에 드는 규모였다고 한다."
―향후 어떤 점을 염두에 두고 경영전략을 짜고 있나.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최근에도 경영회의에서 지속 가능성을 회사 전략과 운영의 주요 과제로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2030년까지 모든 회사 운영에서 '탄소 중립' 달성을 목표로 세웠다. 매출, 영업이익 등 재무 목표를 달성하는 것만큼 지속 가능성 목표치를 달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제약업계의 향후 전망은.
"제약업계는 매우 흥미로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 혁신의 속도가 매우 가팔라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치료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던 질병도 치료법을 찾으려는 시도가 매우 많아졌다. 코로나 사태는 이러한 추세에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본다. 제약업계 내외부에서의 협업이 늘어나는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예를 들어 각 회사는 저마다의 화합물(化合物) 데이터베이스를 갖고 있는데, 이를 공유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규제 당국도 새로운 치료제가 나오기 위해 넘어야 하는 절차를 더 빨리 넘을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다."
[바이엘, 몬샌토 합병해 세계 3大 농화학업체로… 작년 소송문제도 거의 해결]
2016년은 바이엘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해였다. 세계 최대 종자(種子) 회사 미국 몬샌토(Monsanto)를 660억달러(약 80조원)에 사들인 때다. 이 파격적 인수로 바이엘은 기존 농약·비료 분야에 이어 종자 분야까지 진출, 글로벌 농화학 업계가 미국 다우케미컬, 독일 바이엘, 중국 켐차이나 3사를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몬샌토 인수는 지난해 바이엘의 발목을 잡았다. 미국 법원이 1970년대 개발된 몬샌토 제초제 제품을 사용하다 암에 걸렸다고 주장한 전직 학교 관리인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전 세계에서 줄소송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제초제 사용이 워낙 광범위해 배상 금액이 어마어마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지난해 바이엘의 주가는 반 토막이 났다.
1년 넘게 바이엘 투자자들을 불안케 했던 이 소송은 바이엘이 논란을 잠재우려 지난달 극적으로 합의금을 지급하기로 하면서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바이엘은 현재 진행 중인 집단 소송 종료를 위해 88억~96억달러를 지불하고 앞으로 제기될 소송에 대비해 12억5000만달러를 추가로 적립할 방침이다.
바이엘은 소송 문제가 해결되면 몬샌토 합병으로 농화학 업계의 주요 산업군인 화학과 종자 두 분야 모두에서 높은 지배력을 갖출 것으로 보고 있다. 바이엘은 글로벌 살충제 시장에서 23%의 점유율을 기록해 관련 업계의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몬샌토는 유전자변형작물(GMO)을 포함한 종자 시장에 특화된 기업이다. 바이엘은 합병 이후 화학·종자 분야 집중이라는 사업 목표를 더 명확히 하기 위해 지난해 동물 의약품 사업 부문을 76억달러에 매각하는 등 사업 부문 재편도 진행 중이다. 다만 최근엔 종자 사업 부문에서도 업체별 농가 유치전이 치열해지는 등 아직 많은 난제가 남아있다.
이에 따라 일부 기업 분석가들은 바이엘이 제약 부문과 농업 사업 부문을 분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바이엘 측은 두 부문의 시너지를 고려할 때 매출 규모를 늘려 주주 가치를 높이려면 분사보다는 합병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