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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부펀드는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Opinion 신성환 홍익대 교수·한국금융학회장
입력 2020.06.12 03:00

[WEEKLY BIZ Column]

신성환 홍익대 교수·한국금융학회장
대한민국 국부펀드는 2005년 정부의 외국환평형기금(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조성하는 기금) 중 외화(外貨)와 한국은행의 보유 외환 중 일부를 운용할 목적으로 설립한 한국투자공사(KIC)이다. 운용 자산 규모는 1500억달러인데 이는 전 세계 국부펀드 중 열여섯째에 해당한다. 물론 국민연금도 정부의 관리 아래 운용되고 있으나 연금펀드는 국부펀드와 달리 연금 지급이라는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에 국민연금기금은 국부펀드로 분류하지는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5년간 수익률 5.55% '다소 미흡'

한국투자공사법상 KIC의 임무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국부를 효율적으로 증대하는 것이고, 둘째는 국내 금융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동안 각 임무를 얼마나 잘 수행해 왔는지 되짚어 보자.

우선 국부의 효율적 증대 부문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KIC는 최초 투자 이후 2019년도까지 연평균 수익률 4.04%, 그리고 최근 5년간 수익률 5.55%를 달성했다. 수익률만 보면 그리 나쁘지 않은 실적이나 KIC의 8배 규모 자산을 운용하고 있는 노르웨이 국부펀드(NBIM)의 최근 5년 연평균 수익률이 7.43%인 것에 비하면 만족스러운 수준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특히 KIC가 운용하고 있는 두 가지 자금 중 한국은행에서 위탁받은 자금은 국부와는 거리가 멀다. 유동성 관리 수준으로 운용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정도 차이만 있을 뿐 KIC는 정부와 한국은행이 원하는 대로 자금을 운용해주는 이들의 외부 위탁 기관 역할만 수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 산업 발전 기여 부문은 더욱 심각하다. 그동안 해외 투자 전문 인력을 키워낸 것은 KIC의 기여라고 볼 수 있으나, 국내 금융회사의 해외 진출에서는 거의 실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 KIC에 요구되는 역할은 KIC가 갖고 있는 글로벌 투자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국내 금융회사의 해외 진출을 적극 지원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국내 금융회사가 KIC의 지원 덕분에 해외에 성공적으로 진출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일부 국내 금융회사가 KIC에서 소액 투자 자금을 위탁받고 있기는 하나 이 금융회사들은 주로 국내 재벌 또는 금융 그룹 산하 금융회사로 알려져 있고, 중소형 금융회사들은 원천적으로 소외되어 있는 상황이다.

'미래에 기여하는 기관' 재정립을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국부펀드인 KIC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첫째, KIC의 존재 이유를 분명히 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정부와 한국은행 돈을 위탁 운용하는 기능만 수행한다면 굳이 존재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KIC가 없어도 다른 공적 기관이나 민간 기관을 통해 자금을 운용하면 그만이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국가적 자원인 석유를 현 세대가 독점하지 않고 미래 세대와 공유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다. 존재 이유가 분명하다. KIC도 대한민국의 미래에 어떤 기여를 하는 기관인지에 대해 좀 더 명확한 답을 찾아야 한다. KIC가 단순한 자산 운용 기관의 한계를 넘어서 진정한 국부펀드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비전과 전략 실현을 위한 핵심 기관으로서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

둘째, 국내 금융회사의 글로벌화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 특히 국내 강소 금융회사를 발굴하고 성공적인 해외시장 진출을 돕는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국내 금융회사가 해외 금융회사에 비해 역량이 부족하다고 해서 해외 금융회사만 이용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국내 금융 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겠나. 인구 구조의 변화로 인해 앞으로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해외에 투자한 자산에서 얻는 수입이 늘어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금융회사의 글로벌화가 이뤄지지 못할 경우 국민들의 해외 투자 과실의 상당 부분은 해외 금융회사가 가져갈 가능성이 크다.

위기 관리 '최적의 주체' 사명감 갖길

셋째, KIC가 국가 경제에 대한 위험 관리자 역할을 해야 한다. 국부펀드는 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최적 주체다. 국부펀드는 국가의 지위(sovereign)를 갖고 있기 때문에 신용 위험 없이 다양한 형태의 계약을 통해 국가의 위험을 분산할 수 있다. 우리나라 경제는 IT(정보 기술), 반도체 등 몇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이런 산업의 국가 경쟁력은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이 산업들의 경기가 전 세계적으로 추락한다면 국내 경제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고 있는 산업의 비중을 줄이거나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일은 바보 같은 짓이다. 이 문제를 해결해줄 기관이 바로 KIC이다. KIC는 다른 국부펀드와 파생 계약을 통해 국내 경제가 갖고 있는 특정 산업에 대한 높은 집중 위험을 분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반도체 경기가 하락하면 상대방 국부펀드가 KIC에, 상승하면 KIC가 상대방 국부펀드에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형태의 스와프 계약을 통해 국내 경제의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

KIC가 설립된 2005년은 신(新)자유주의 경제 기조가 정점에 달했을 때이다. 그러나 현재는 미·중 신 냉전 체제, 탈세계화 등 국가가 주도하는 구도로 경제 기조가 급변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각국이 자기네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국부펀드의 적극적 역할을 모색할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대한민국의 국부펀드인 KIC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더 적극적으로 역할을 수행하는 국부펀드로 탈바꿈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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