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비즈

화이트칼라 로봇, 일자리 뺏지만 새 일자리도 만든다

Opinion 임영익 인텔리콘 메타연구소 대표 변호사
입력 2020.05.15 03:00

[WEEKLY BIZ Column]

임영익 인텔리콘 메타연구소 대표 변호사
바둑에 인공지능(AI) 알파고가 있다면 금융에는 켄쇼(Kensho)가 있다. 켄쇼는 AI 금융 데이터 분석 업체인 켄쇼 테크놀로지가 자체 개발한 금융 AI다.

켄쇼는 기업의 실적과 주요 경제 수치 등 금융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해 투자 방식 등을 추천해준다. 켄쇼는 월스트리트의 전문 애널리스트 15명이 4주 동안 해야 할 작업을 단 몇 분 만에 처리한다. 강력한 AI로 무장한 켄쇼는 방대한 금융 빅데이터를 학습하여 사용자의 질문에 즉시 답할 수 있다.

골드만삭스 600명 중 598명 해고

2016년 골드만삭스는 켄쇼를 도입한 후 600명이나 되던 주식 매매 트레이더 중 598명을 해고했다. 뉴욕타임스는 당시 켄쇼에 대해 "로봇이 월스트리트를 침공(invading)했다"며 신문 한 면을 털어 보도하기도 했다. 켄쇼 테크놀로지 창업자 대니얼 내들러(Nadler)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연봉 50만달러(약 6억1350만원)의 전문 애널리스트가 40시간에 걸쳐 해야 할 일을 켄쇼는 몇 분 안에 처리한다"고 설명했다.

켄쇼 같은 화이트칼라(white-collar·사무직) 로봇의 등장은 금융계 대량 해고의 서곡이다. 골드만삭스에서 그런 것처럼 기술의 발전은 자연스럽게 일자리 대체나 감소를 부른다. 기계화 및 자동화에 따른 블루칼라(blue-collar·현장직) 노동자의 감소는 이상한 일도 아니다. 제조업에서는 단순 반복적인 일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식 노동자 또는 전문 직업을 상징하는 화이트칼라가 사라진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일을 하는 데 창의력이 필요하고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복잡한 일이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이트칼라 금융 분석 로봇인 켄쇼의 등장이 암시하듯, 딥러닝(심화 학습)으로 무장한 AI가 등장하면서 화이트칼라도 실직 공포가 시작되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 마틴 스쿨 연구팀의 칼 베네딕트 프레이(Frey) 박사와 마이클 오즈번(Osborne) 교수가 2013년 발표한 '고용의 미래(The Future of Em ployment)' 보고서에 따르면 미래 일자리의 약 47%가 로봇으로 대체된다. 금융계의 일자리가 로봇으로 대체될 확률은 54%로 평균보다 높다. 정교한 데이터 처리 및 분석이 필요한 금융 분야에서 AI가 잘 작동한다는 의미다.

최근 2019년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 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AI는 고졸 인력보다 대졸자를 5배가량 더 많이 대체할 전망이다. 고졸자보다 고임금을 받던 대졸자들도 AI의 위험에 맞닥뜨린 것이다. 결국 시간이 갈수록 AI가 지식 정보 처리에 점점 강해지면서 화이트칼라 직업도 사라질 위험에 빠질 확률이 높아졌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미래학자 리처드 서스킨드(Susskind)는 그의 책 '전문직의 미래(The Future of the Professions)'에서 의사와 회계사, 약사는 물론 변호사도 AI에 대체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신성 불가침의 인간 고유 영역으로 알려진 법조계도 AI에 위협받고 있으니 화이트칼라 직업을 생각하는 초등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은 20년이나 30년 후의 미래를 벌써 고민해 보아야 할 지경에 다다랐다.

인간을 잡무에서 해방하기도

우리가 AI에 내몰리는 상황을 직접 경험하기까지는 앞으로 수십 년이 지나야 하겠지만, AI와 직업 문제는 우리에게 항상 우울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세히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직업이 사라지는 현상은 역으로 새로운 직업이 탄생한다는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로 컴퓨터의 마우스를 발명한 더글러스 앵겔바트(En gelbart)는 "AI는 인간을 대체하기보다는 보조적 도구로 작동하면서 인간 지능의 증강을 가져온다"고 주장하였다. 1960년대 후반에 등장한 이 지능 증강(IA·Intelligence Augmentation) 철학은 인간이 지혜롭게 AI를 사용함으로써 자연적 지능을 더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앵겔바트의 관점을 더 확대하면 AI는 또 다른 외부의 뇌(exobrain)로 작동하면서 인간을 시간적으로 해방해주고 더욱 다양하고 창의적인 작업을 가능하게 해 준다. 세탁기가 등장하면 가정 도우미 일자리는 감소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다른 쪽을 보면 세탁기 제조를 위해 필연적으로 제조업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세탁기를 구입한 가정 주부는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시간'을 얻게 된다. 현재 AI도 세탁기 상황과 비슷한 면이 있다. 낙관론과 비관론을 적절하게 조합하면 AI가 가져올 미래 모습이 그저 공포만은 아닐 것 같다.

화제의 Opinion 뉴스

'암흑의 숲'으로 들어가고 있는 미국과 중국
유럽 기업 빈부격차 줄이려면 '범유럽 주식형 펀드' 만들어야 한다
미국인들이 코로나 위험 무릅쓰고 직장에 복귀할까
WEEKLY BIZ가 새롭게 탄생합니다
테슬라 팬들은 좀 침착해야 한다

오늘의 WEEKLY BIZ

알립니다
아들을 죽여 人肉 맛보게한 신하를 중용한 임금, 훗날…
'암흑의 숲'으로 들어가고 있는 미국과 중국
유럽 기업 빈부격차 줄이려면 '범유럽 주식형 펀드' 만들어야 한다
WEEKLY BIZ가 새롭게 탄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