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은 이미지를 통해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 감각적으로 브랜드 가치를 감지한다. 상품 자체부터 로고, 패키지, 디스플레이, 매장, 광고, 판매원 태도 등 서비스 영역까지 비즈니스와 관계된 모든 항목에서 긍정적 인상을 구축할 때 브랜드는 성공한다. 고객에게 비즈니스 정체성에 대한 이미지를 심는 과정이 브랜딩이다. 인상의 기술, 그 중심에 공간이 있다. 사람들은 볼만한 가치가 있고 경험할 가치가 있는 공간에만 방문한다. 공간 콘텐츠의 소비, 경험 속에서 인지된 가치와 매력이 방문자의 무의식에 비즈니스의 가치로 저장되고, 향후 구매 행동에 장기적 영향을 미친다.
생각하기 전에 느끼게 하라
인간은 감지하고-느끼고-생각하고-행동한다. 사람들은 생각하고-행동하기 전 먼저 감지하고-느낀다. 생각하고-행동한다는 것이 인간의 이성적 활동이라면 감지하고-느끼는 것은 감각적 활동이다. 고객은 구체적인 경험에 많은 감각이 동원되기를 바란다.
공간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끊임없이 접하는 예술 형태다. 사람들은 공간 인상을 통해 환상과 도피, 품위, 신비감을 느낀다. 효율성과 상대적인 매력으로 차별화했던 방식은 이제 충분하지 않다. 총체적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전략적으로 공간을 구축하고 운영해야 한다. 건물, 조경, 사무실, 공장, 플래그십 스토어, 로드숍, 팝업 스토어, 전시장, 디스플레이 등 브랜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모든 공간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단순히 멋진 공간이 아니라 고객의 경험을 만들 수 있는 곳으로, 고객이 기쁨을 넘어 의미,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 각국 애플스토어를 방문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감동하는,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가 투명 유리 계단이다. 초현실적 유리 계단은 그 단순한 인상 하나로 극명하게 애플의 첨단 기술력과 미래 지향성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매우 복잡할 수 있는 것이 아주 단순하게 표현되었을 때 감탄한다. 거기에 엄청난 노력이 들어갔음을 직관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2000년 프라다는 파산에 직면했다. 창업주 손녀이자 수석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는 브랜드의 사활을 공간에 걸었다. 브랜드가 대중에게 새롭게 다가가는 방식을 수립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온라인 쇼핑이 확산되며 오프라인 매장의 위상이 사라져 가는 시기에 공간의 지향성을 고민했다. 박물관, 도서관, 공항, 병원 및 학교가 점점 쇼핑센터와 구분되지 않는 상황에서 상업 공간은 더 이상 구체적인 목적을 성취하는 수단으로 존재하기 어려웠다.
브랜드를 살리는 공간
2001년 뉴욕 맨해튼 소호 지역에 뉴욕 프라다 에픽센터가 문을 열었다. 간판도 없는 이 플래그십 스토어는 프라다를 회생시킨 공간 프로젝트다. 프라다는 당시까지 럭셔리 브랜드 공간 디자인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데다 프로젝트마다 실험적인 작업으로 충격적이고 낯선 건축을 선보였던 건축가 렘 콜하스(Koolhaas)를 선택했다. 콜하스의 접근은 이전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콜하스는 면적당 임대료가 엄청나게 비싼 맨해튼 소호의 건물 1층 바닥 거의 절반을 뚫어 마치 스케이트보드 경기장 하프파이프(half-pipe)와 같은 나무 커브로 1층을 지하 공간에 직접 연결했다. 이 경이롭고 충격적인 공간 형상 하나로 프라다는 '프라다의 럭셔리'가 무엇인가를 대중에게 각인시키며 성공적인 전환점을 만들어 냈다.
에픽센터의 주인공은 프라다의 상품들이 아니라 공간 자체다. 갤러리의 설치미술처럼 유희적인 경험이 가능한 공간에는 프라다의 상품이 듬성듬성 놓여 있을 뿐이다. 강렬한 인상을 주는 하프파이프 구조물에는 패션쇼 같은 다양한 행사를 수용할 수 있는 장치들이 숨겨져 있다. 공간은 고정되어 있지 않은 느낌이고 불안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런 불안함은 콜하스의 전략적 판단이었다. 영화 상영, 음악 공연, 패션쇼와 강연, 미술 작품 전시 등 변화무쌍한 프로그램으로 늘 새로운 장소가 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프라다 에픽센터는 현대적 의미의 스페이스 브랜딩이 시작된 지점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스페이스 브랜딩이란 고객과의 접점인 공간으로 비즈니스의 인상을 구축하거나, 그 공간의 인상을 통해 브랜드의 가치 경험을 확장, 관리하는 활동을 말한다.
공간에 정신을 담아라
브랜드 인상을 보여 주는 공간은 비즈니스의 의미를 구체화하고 있어야 한다. 비즈니스의 목적, 대의, 신념 등 정신적 가치가 공간에서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2009년 문을 연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마이자일(MyZeil) 쇼핑몰은 흐르는 강을 모티브로 디자인됐다. 건물의 정면이 함몰되어 있어 하늘로 뚫린 형태인데, 내부 공간은 위에서 아래로 폭포가 흐른다. 역동적인 느낌과 함께 첨단의 기술력을 느끼게 한다. 도시 중심부의 새로운 쇼핑 공간으로서의 정체성이 담겨 있다.
뉴욕 맨해튼 광고 대행사 바바리안그룹(Barbarian Group)은 2014년 새로운 사무실을 디자인하면서 '수퍼데스크(Superdesk)'라고 이름 붙인 하나의 테이블로 사무실의 모든 책상을 연결했다. 인터랙티브 마케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광고 회사라는 정체성과 효과적으로 연결되는 이미지다. 총 170명이 사용하는 이 연결된 하나의 테이블이 만들어 내는 공간적 인상은 '한 팀으로 같이 일한다'는 회사의 가치, 협업을 확실한 하나의 이미지로 보여 주며 바바리안그룹을 브랜딩하고 있다.
기업의 메시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은 시각뿐 아니라 오감 모두에 호소하는 것이다. 수퍼마켓에서 매장 입구에 꽃 판매 코너를 두고, 백화점이 향수·화장품 코너를 1층에 배치하는 이유는 입장할 때 향기로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 주기 위해서다. 경험은 단순한 서비스보다 훨씬 더 전체적이고 포괄적이며 감성적이고 강력하다.
오감으로 느끼는 공간 경험
아이웨어 전문 브랜드 젠틀몬스터는 브랜드를 처음 알리는 단계에서 '경험의 브랜드화' 전략을 택했다. 경험의 브랜드화란 브랜드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독특한 경험을 창조함으로써 고객이 브랜드 가치를 인식하게 하는 전략이다. 김한국 젠틀몬스터 대표는 매장을 통해 세 가지 콘셉트를 일관되게 구현했다. 예측 불가능함(unpredictable), 기이한 아름다움(weird beauty), 인식력(perception)이다. 젠틀몬스터의 스토어들은 공간마다 환상적이고 동화 같은 스토리를 갖고 있다. 홍대 플래그십 스토어 '더 로켓'은 반려견을 먼저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남자가 노인이 되는 과정 속에서 느끼게 된 열망, 맹목 그리고 갈등을 다루고 있다. 신사동 플래그십 스토어는 흰 까마귀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다. 괴생명체에 침략을 당해 터전을 빼앗긴 까마귀들의 스토리가 공간의 흐름과 함께 순차적으로 펼쳐진다.
방문한 사람들은 사진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이 게시물들은 자연스럽게 화제가 된다. 충성 고객들은 제품인 안경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간을 경험하기 위해 매장을 방문한다. 그리고 공간으로 구축되는 젠틀몬스터에 대한 긍정적 인상은 제품 구매로 이어진다. 고객은 공간에서 경험한 것을 공유하기 위한 촉매로서 제품을 구입하고 착용한다. 젠틀몬스터의 선글라스를 구매한다는 것은 타인과 함께할 이야기의 소재를 구매하는 것이다.
이 글은 깊이 읽어야 할 주제를 다루는 지적 콘텐츠 서비스 북저널리즘에서 나온 '스페이스 브랜딩' 내용을 압축한 것입니다. 전문은 북저널리즘 사이트(www.bookjournalism.com)에서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