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비즈

이탈리아 장인기업 비결을 말한다

Interview 로마=안별 기자
입력 2020.03.06 03:00
"한정된 자원에 르네상스 예술성 결합… 최고의 장인 탄생"

조르조 메를레티 伊 장인기업협회장

람보르기니, 마세라티, 프라다, 구찌, 불가리, 조르조 아르마니…. 이탈리아는 한 나라에서 한 개도 나오기 어려운 이런 명품(名品) 브랜드가 수십 개 몰려 있는 나라다. 단순히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니라, 명품 산업 내에서의 영향력도 지대하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딜로이트 글로벌의 '2019 명품(luxury goods) 글로벌 파워 보고서'에서 뽑은 100대 명품 브랜드에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가 24개로 가장 많이 선정됐다. 2위 미국(14개)의 약 1.7배다.

명품이라고 하면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비법을 전수받은 장인(匠人)들이 물건을 한 땀, 한 땀 만드는 것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이탈리아에는 그런 장인들이 일하는 장인 기업이 약 130만곳에 달한다. 이탈리아 GDP(국내총생산)의 10~15%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탈리아에 수많은 장인이 생겨나고 성공한 명품 브랜드가 잇따라 나온 비결은 무엇일까. 조르조 메를레티(Merletti) 이탈리아 장인기업협회장에게 그 비결을 물었다.

장인 기업, 대기업과 경쟁하며 성장

―이탈리아에는 왜 장인이 많은가.

"이탈리아의 환경이 많은 장인을 양성했다. 한정적인 천연자원을 보존하기 위해서 제작 과정이 오래 걸리거나 비싸더라도 자원 낭비 없는 내구성 강한 제품을 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자리 잡았다. 결국 제품을 튼튼하고 잘 만드는 사람만이 살아남았다. 또 이탈리아는 예술적이고 역사적인 유산 등으로 인해 르네상스 전성기를 누렸다. 그 예술적 감각이 자연스레 제조 산업에 접목되면서 장인정신의 기초가 됐다."

―장인 기업들이 대기업들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나.

"역설적이게도 1900년대부터 급격하게 성장한 대기업들이 낳은 기술들이 장인 기업의 폭발적 성장을 돕는 발판이 됐다. 자동 기계 같은 기술 혁명이 시작되면서 장인 기업들이 오히려 생산 프로세스 혁신을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섰다. 그 결과 더욱 효율적으로 고품질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돼 대기업과의 싸움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됐다. 단순히 고품질로만 대기업과의 싸움에서 버틴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지역에 형성된 장인 커뮤니티끼리 교류가 활발했고 분업과 협업이 촘촘하게 이뤄진 덕분에 대량 주문도 소화할 수 있었다. 그래서 물량 싸움에서도 대기업에 뒤처지지 않았다. 덕분에 대기업과의 거래 관계에서 동등한 위치를 유지했다."

―장인은 전통적인 것에만 얽매일 것 같은데.

"우리 협회 조사 결과를 보면 2014~2016년 동안 장인 기업을 포함한 소기업 중 45.6%가 제품, 제조 과정, 조직, 마케팅 분야에서 혁신 기술을 도입했다. 2012~2014년 결과보다 4.3% 증가했다. 컨설팅 등을 통해 생산 과정의 효율성을 높였다. 이탈리아 통계청에 따르면 장인 기업 같은 소기업이 혁신에 지출하는 비용은 직원 1인당 8900유로(약 1185만원)로 전체 기업 평균보다 14.1% 높다. 이처럼 장인 기업들은 단순히 자신들이 전수받은 전통 노하우에만 안주하지 않는다. 이들은 혁신과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세상의 흐름에도 적극적이고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다."

金 세공 장인, 3D 프린터로 더 좋은 작품

―지금은 디지털 혁명이 진행 중이다. 기술 혁명 때와는 달리 장인이 밀려나진 않을지.

"기술이 발달할수록 장인 기업은 더욱 성장할 수밖에 없다. 디지털 혁명은 장인 기업과 대기업을 포함한 모든 산업에 수평적으로 영향을 준다. 예를 들면 금 세공 장인은 3D(차원) 프린터를 조수로 삼아 창의력의 한계를 넘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 건축 장인은 문에 페인트칠하는 단순 작업 대신, 로봇을 이용해 그 시간을 절약하고 자신만의 작품에 심혈을 기울일 수 있다. 신발 장인들은 발 스캐너를 통해 전 세계 수천㎞ 떨어져 있는 소비자들에게 완벽하게 딱 맞는 신발도 만들 수 있다. 단순히 규모 경제나 숫자로만 보이는 종이 경제 같은 것은 주주들을 만족시킬지는 몰라도,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없다."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조언을 해주자면.

"대기업처럼 안정적이고 만족스러운 직장을 떠나, 자신만의 장인정신 즉 '감각(sense) 라이프'를 위한 직업을 찾는 젊은 세대들이 느는 시대가 됐다. 수제 맥주를 만들거나 가구를 홀로 만들어 파는 젊은 세대들의 성공 사례가 늘고 있는 것도 그런 양상 중 하나다. 저렴하고 디자인이 무난한 천편일률적인 제품이 무작정 팔리는 시대가 지고 있다는 소리다. 기업의 리더들은 직원들에게 그 감각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AI(인공지능)와 빅데이터는 그 감각의 겉은 볼 수 있지만, 속까지는 볼 수 없다. 그 감각을 알려면 '자신이 일을 왜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직원들을 단순 일꾼이 아닌 인간으로 봐야 그들의 일 처리에 장인정신이 깃든다."

"최첨단 공정, 마지막엔 꼭 장인의 손길… 최고 명품 탄생"

안드레아 보라뇨 알칸타라 회장

이탈리아 최고급 합성섬유 업체 알칸타라(Alcantara)는 장인 정신과 자동화 기술이 잘 조화된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소재 제조 공정의 대부분이 자동화돼 있지만, 마무리 단계에서는 직원이 직접 소재를 만져보는 등 3번의 수작업이 이뤄진다. 수작업 과정 때문에 소재가 나오는 데만 일주일 이상이 걸린다. 길게는 4~5주가 걸리는 경우도 다반사다. 다른 업체들의 합성섬유 소재가 통상 3~4일이면 나오는 것을 고려하면 느린 편이다. 하지만 여러 공정을 거치는 덕분에 알칸타라 소재는 실크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오염이나 화재 등에 강하다. 맞춤형 제작이 가능하고 디자인과 내구성까지 좋아 페라리와 람보르기니, 스와로브스키, 샤넬 등 전 세계 명품 브랜드의 소재로 러브콜을 받는다.

알칸타라는 현재는 승승장구하는 기업이지만, 2004년까지만 해도 적자를 면치 못해 기업 존폐 위기까지 거론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안드레아 보라뇨(Boragno) 현 최고경영자(CEO)가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적자에서 탈출하더니, 2018년 순매출액은 2008년의 3배 수준인 2억420만달러(약 2484억원)까지 증가했다. 보라뇨 CEO는 어떤 전략을 썼을까.

알칸타라 직원들은 완제품 단계의 소재에 박힌 이물질 제거를 위해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진다. /알칸타라
완제품 마지막 단계서 손으로 점검

―알칸타라 성장 비결은.

"알칸타라는 이탈리아 특유의 장인 정신과 현대의 최첨단 기술을 접목했다. 현실적으로 사람의 손으로 합성섬유를 일일이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공정에 자동화를 도입했지만, 절대 양보하지 않는 공정이 있다. 그것은 완제품 마지막 단계에서의 핸드터치(hand-touch) 검수 작업이다. 직원들은 수십㎞에 달하는 소재를 직접 만지고 눈으로 보면서 검지 정도 크기 핀셋으로 작은 철가루 같은 이물질을 잡아낸다. 불량이 잡히지 않을 때까지 이런 수작업을 3번 이상 반복한다. 특정 이물질들은 물로 씻어도 씻기지 않기 때문에 옛날에는 불량 하나를 잡기 위해 밤을 지새우는 경우도 많았다. 단순해 보이며 예스럽고 비효율적이지만, 이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다. 명품 소재라는 이름은 거저 얻는 것이 아니다. 이런 걸 하는 기업은 알칸타라뿐이다. 장인 정신은 사실 별게 아니다. 고객이 원하는 완벽한 제품을 아무런 문제 없이 손에 쥐여주는 것이 바로 이탈리아가 말하는 장인 정신이다."

―기술이 발달해 기계로도 검수 작업이 가능할 것 같은데.

"일부 고객은 '기계로 컨트롤하면 더욱 많은 제품을 팔 수 있는데 왜 수작업을 고집하냐'고 물어본다. 기계가 가죽 두께 등은 검수할 수 있지만, 품질은 다른 문제다. 얇고 예민한 소재에는 핸드터치만큼 확실한 것이 없다. 사람의 손을 거치면 기계는 절대 보여줄 수 없는 특유의 감성 퍼포먼스가 나온다. 사실 수작업 과정은 따로 매뉴얼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직원들이 '기계로 검수 작업을 하면 불량률이 높다'며 손으로 수작업을 하다 보니까 이게 하나의 검수 과정으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그것을 유도한 것은 알칸타라만의 품질 우대 문화였다. 직원이 손이 느려도 고품질을 만들어내면 우대해주는 철학이 통해 그것이 직원들의 장인 정신으로 나오는 것이다."

'메이드 인 이탈리아' 고집

―규모가 커지게 돼 장인 정신이 옅어질 우려는.

"알칸타라가 성장한 이유는 브랜드 가치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이다. 고객이 브랜드를 믿고 비싼 돈을 냈는데 차별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실패한 것이다. 어떤 고객을 위한 맞춤형 제품은 만드는 데 일주일이 아니라 4~5주가 걸리는 경우도 있다. 일부 고객이 빨리 달라고 재촉하지만, 타협할 생각은 앞으로도 없다."

―저렴한 인건비를 고려해 중국 등으로 공장을 확장할 계획은 없는지.

"물론 중국도 중국만의 장인 정신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고객들이 알칸타라 소재를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100% '메이드 인 이탈리아'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인건비 때문에 그것을 포기할 순 없다. 중국 등에서 소재를 생산하게 되면 기업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 되며 고객도 떠날 것이다."

―2004년 대표이사 취임 이후 알칸타라를 적자에서 탈출시킨 비결은.

"비결은 경영 전략에 관한 가설(assumption)을 세운 뒤에 그에 맞는 실행 방식을 잘 찾은 것이다. 먼저 고객이 원하는 것을 적어두고 알칸타라가 제공할 수 있는 것을 거기에 맞춰 보았다.

예전에 미국 제조업체들은 제품은 기능은 기능이고 제품이 주는 감성은 감성이라며 기능과 감성을 분리해 별도로 생각해왔다. 알칸타라도 그 시절에는 기업 브랜드 자체를 기능성 브랜드로 한정지었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특유의 장인 정신을 갖고 있다. '그럼 기술력에 그 장인 정신을 녹이는 것은 어떨까'라는 가설을 세우고 브랜드 전략을 하나씩 테스트했다. 또 소재 관련 장인들을 직접 찾아가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단순히 튼튼한 제품이 아니라, 미적 기능까지 추가할 수 있어야 장인이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덕분에 단순히 기능성 브랜드가 아니라 이탈리아 특유의 장인 정신이 녹아든 패션·아트 산업 브랜드로 자리 잡는 데 성공했다. 우리는 로마 국립 현대미술관 등에서 매년 전 세계 유명 아티스트와 협업하거나 패션쇼에 참석한다."

알칸타라 소재가 사용된 현대자동차의 국내 해치백 모델 i30의 뒷좌석 모습. /알칸타라
늦더라도 품질 좋으면 결국 찾게 돼

―미래 전략은.

"앞으로 자율주행차나 로봇 등이 도입되면 집이나 차량 내에 있는 시간이 늘어날 것이다. 굳이 회사에 나갈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차가 나오면 사람들은 차량을 단순히 이동 수단이 아닌 이동형 임시 주거 형태로 점점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럼 고객들은 차량 내부에서 집 같은 편안함을 추구하게 된다. 결국 고객의 살과 직접 닿는 소재 부분의 중요성이 부각될 것이란 이야기이다. 이런 미래 전망 등을 고려해 '어떻게 하면 고객이 더욱더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연구개발을 하고 있다."

―한국의 최고경영자들(CEO)들에게 조언해 준다면.

"고객이 원하는 것은 항상 같다. 고객이 돈을 지불한 만큼의 가치를 얻을 수 있느냐,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재료 등을 저렴한 것으로 대체해 생산 단가를 낮추고 이익을 최대한 높이는 것이 통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시대가 끝났다. 스마트폰 터치 몇 번으로 기업의 모든 것이 공개되는 시대다. 지금은 손해 보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천천히 잘 거짓 없이 만들면 된다. 늦더라도 품질이 좋으면 결국 고객들이 찾게 될 것이고 브랜드 가치는 오를 수밖에 없다. 역설적이지만, 이런 느리고 정직한 전략이야말로 최신 기술이 끊임없이 빠르게 나오는 현대 시대에 맞는 마케팅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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