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이 몸에 안 좋다고 하잖아요? 사실이 아닙니다. 소금이 몸에 안 좋은 게 아니라, 질 낮은 소금이 문제지, 죽염처럼 정성이 많이 들어간 소금은 맘껏 먹어도 아무 탈이 없어요. 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술이 나쁜 게 아니라, 나쁜 술이 있는 겁니다. 단맛을 내려고 아스파탐 같은 화학 첨가물을 듬뿍 넣은 막걸리나 소주가 나쁜 것이지, 정직한 재료로 세월을 기다려 빚은 술은 아무리 마셔도 몸에 탈이 없습니다. 세상에 나쁜 술이 너무 많아, 애주가로서 더 이상 참지 못해 직접 술을 만들기로 작정했습니다."
죽염 전문 건강식품 회사인 '인산가' 창업자인 김윤세 대표이사 회장은 소금 장수가 전통술을 빚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인산가는 아홉 번 구운 죽염 제품으로 유명하다. 여덟 번 대나무통에 넣어 구운 뒤 아홉 번째는 1700도 고온에 구워 미네랄이 풍부하다. 인산가는 작년 매출이 258억원, 영업이익 40억원을 기록한 알짜 중소기업이다. 1987년에 설립, 세계 최초로 죽염을 산업화했다.
돈 안 돼도 양조장에 매년 수억 투자
그런데 이 회사는 2년 전부터 '약(죽염) 주고 병(술) 주는' 외도를 시작했다. 경남 함양의 죽염 공장 옆에 양조장을 지어 탁주, 약주, 증류식 소주를 만들어 판매도 하고 있다. 탁주 탁여현, 약주 청비성, 증류식 소주인 월고해(42도), 적송자(72도)가 2018년에 세상에 나왔다. 이 회사 주력 제품인 죽염을 넣은 술도 아니다.
건강식품 회사가 '술 사업은 수익성이 없다'는 직원들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술 사업을 시작한 것은 김 회장의 '뚝심' 때문이다. 직원들 걱정대로 양조장에는 몇 년째 매년 수억원이 투입되고 있지만, 수익을 낼 조짐은 요원하다. 하지만 김 회장 표정에는 초조함이 없다. 그는 "좋은 술은 세월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익혀야 제맛이 나는 법"이라며 "최소한 4~5년, 길게는 10년 동안은 섣부른 수익을 기대하지 말고 투자를 지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규모 회사를 경영하는 김 회장이 신사업인 술에 대한 의지와 열정이 강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 자신이 1년 365일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술을 마시는 애주가라는 점이다. 그는 "우선은 내가 마시려고 술을 만들기 때문에 재료를 아끼지 않는다"며 "정직한 재료로, 충분한 시간을 들여 만든 술이 좋은 술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김 회장의 술 욕심은 끝이 없다. 좋은 술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폭음과 과음으로 얼룩진 잘못된 우리 음주 문화도 바로잡으려 한다. 그래서 최근에 지인들과 시작한 술 모임이 '신풍류도'이다. 서예가, 만담가, 기타리스트 등 풍류객들과 함께 한국의 술 문화 수준을 높이는 일종의 문화 운동이다.
불량 식품 술, 너무 많다
―건강식품 회사가 술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비난을 받지 않나.
"죽염을 만드는 회사가 '왜 (몸에 나쁜) 술을 만드냐'는 비난 조 질문을 자주 받는다. 술 사업을 시작한 취지는 명확하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모든 술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 술이 '술이란 이름의 불량 식품'이기 때문이다. 이런 불량 식품 같은 술을 더 이상은 마시고 싶지 않아 좋은 술 빚기에 직접 나섰다. 화학 첨가물이 많이 들어가 목 넘기기에만 좋은, 결과적으로 우리 몸에 해를 끼치는 술이 시중에 너무 많다."
―어떤 술이 나쁜 술인가.
"국내 쌀 대신 외국산 쌀을 쓴다든지, 품질이 좋지 않은 재료를 쓰는 술이 나쁜 술이다. 발효 과정도 문제다. 빨리빨리 만들려고 속성 발효를 시킨다. 이를 위해 발효 촉진제인 이스트(효모)를 잔뜩 집어넣는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소주는 더 나쁘다. 값싼 외국산 원료로 만든 주정에 물을 80% 이상 타서 만드는데, 굉장히 맛이 쓰기 때문에 설탕보다 200배 더 단 감미료 아스파탐을 첨가한다. 대기업 주류 업체들은 '값이 싼 서민을 위한 술'이란 미명하에 불량 식품 술을 마구 만들어내고 있다."
―그럼 '좋은 술'은 어떤 술인가.
"사람이 늘 마셔도 몸에 부담이 되지 않아야 한다. 중국에는 수수를 이용한 고량주가 있고, 우리에겐 찹쌀과 멥쌀로 만든 곡주가 그렇다. 쌀과 누룩만 갖고 충분한 시간을 갖고 빚은 술은 맛도 좋고, 밤새 마셔도 아침에 거뜬하게 일어날 수 있다. 숙취가 전혀 없다. 왜냐면 좋은 재료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술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정직한 재료, 충분한 시간, 그리고 정성이 좋은 술을 만든다."
일제가 전통술 맥 끊어
―지금의 우리 술 문화는 어떻게 보나.
"전통적 우리 술 문화는 멋이 있었다. '음풍농월', 맑은 바람을 맞으며 시를 짓고, 밝은 달을 바라보면서 흥겹게 술 마시는 게 우리 조상의 술 문화였다. 그런데 근래 술 문화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처럼, '너 죽고 나 죽고 다 죽자' 식이다. 술을 이렇게 죽어라고 마신 것은 얼마 안 됐다. 일제가 들어오면서 우리 술을 통제하고 못 만들게 하지 않았나. 술을 아예 만들지 못하게 한 것도 일제다. 일제의 억압 정책 때문에 좋은 술은 사라지고 나쁜 술이 만들어지게 됐다. 획일화된 나쁜 술이 보편화되고, 사회가 산업화하면서 우리 술 문화도 '빨리빨리 마시고 취하자'는 식이 됐다."
―김 회장이 만든 '신풍류도'는 어떤 술 모임인가.
"술 문화를 좀 업그레이드해 보자는 취지에서 주변 사람들과 '신풍류도' 술 모임을 가끔씩 갖고 있다. 2018년에 인산가에서 술을 내놓으면서 시작했다. 인산가 죽염 공장이 있는 경남 함양은 고운 최치원 선생이 통일신라 시대 때 태수를 지냈던 곳인데, '풍류'란 말을 처음 쓴 이가 최치원 선생이다. 좋은 자연에서 좋은 벗들과 술을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며 우의를 다지고, 시를 짓고, 노래를 부르는 정경이 바로 풍류다. '신풍류도'는 우리 정신 속에 흐르는 이런 멋스러운 문화를, 저급한 술 문화가 만연한 오늘에 되살려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었다. 좋은 술을 마시면서, 권주가도 부르고, 품격 있게, 멋스럽게 술 모임을 하면서 우리 사회를 천천히 그렇게 바꿔나가 보자는 희망을 갖고 있다."
―신풍류도 구성원은.
"모임 때마다 조금씩 다르긴 한데, 대한민국 비인증 권주가 협회 이장학 회장, 만담가 장광팔 선생, 라이브 서예 퍼포먼스 대가인 서예가 권상호 선생, 기타리스트 전영원 선생 등이 단골 술친구다. 술과 음악과 문학이 한데 어우러진 술 문화를 전파해, 과음으로 얼룩진 음주 문화를 바로잡으려는 신풍류객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