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비즈

아무도 놀라지 않았지만 눈부신 경영 성적, 비결은?

Analysis 송의달 선임기자
입력 2020.01.17 03:00

애플 신화 이어간 팀 쿡의 놀라운 리더십

"누구도 놀라게 하지 못했다." 애플이 작년 9월 공개한 최신형 '아이폰11'에 대해 미국 경제매체 CNBC는 이렇게 혹평했다. 카메라 성능 일부를 제외하면 '혁신'이라고 부를 만한 게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스마트폰과 노트북, PC 등 애플의 대다수 하드웨어 제품 판매는 최근 수년 동안 지지부진하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은 세계 IT 업계를 주도하고 있는 애플의 확고한 위상에 비하면 작은 단점에 불과하다. 작년 3월 초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애플 본사 스티브 잡스 극장에서 열린 주주총회가 애플의 강력한 위상을 보여준다. 이 주주총회에선 누구도 아이폰 판매 저조를 언급하거나 애플의 향후 성장 전망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99.1% 찬성률로 연임에 성공했다. 독일 잡지 슈피겔은 "자본주의 심장부에서 공산주의를 연상케 하는 역대급 찬성률이었다"고 했다.

'무색무취하고 지루한 리더'로 불려온 팀 쿡의 눈부신 경영 성적 덕분이다. 애플의 매출액과 순이익은 쿡이 CEO로 취임한 2011년 8월 24일 이후 8년 만에 각각 두 배 넘게 늘었다. 애플은 세계 최초로 시가총액 1조달러를 돌파했는데, 지금도 우리나라 모든 상장기업의 시가총액 합계보다 더 크다. 작년 1월 2일 157.92달러로 출발한 주가는 이달 2일 300.35달러로 마감했다. 1년 새 상승률은 90.2%. 팀 쿡이 세계 최강 애플을 만든 비결은 뭘까.

①서비스·콘텐츠 기업으로 변신

쿡은 "애플은 더 이상 제품을 만들어 파는 기업이 아니다"라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서비스 부문을 통합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강조한다. 2015년 총매출에서 아이폰이 차지하는 비율은 72%였으나 지난해(1~9월)에는 54%로 떨어졌다. 대신 음악·영화·앱 판매·동영상 같은 서비스와 웨어러블 부문의 매출 비율이 27%로 높아졌다. '애플=아이폰 회사'는 구문인 것이다.

쿡은 "콘텐츠야말로 애플의 새로운 도약 지렛대"라고 믿는다. 그래서 작년 3월 애플 TV 플러스(+), 애플 뉴스플러스, 애플 아케이드 서비스를 시작했다. 매월 9.9달러(약 1만1600원)에 잡지 300여개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의 주요 뉴스를 무제한 소비하는 서비스도 내놨다. 작년 11월에는 오프라 윈프리, 스티븐 스필버그 등과 계약을 맺고 독자적인 스트리밍 서비스인 '애플 TV+'를 위한 오리지널 TV 시리즈와 극장용 영화, 다큐멘터리 제작에 뛰어들었다.

그의 '콘텐츠 제국' 꿈은 실현 가능성이 크다. 14억개가 넘는 애플 하드웨어 기기가 세계에 깔려 있고 애플 서비스 유료 구독자만 4억5000만명을 확보해놓고 있어서다. 모바일 시장 전문 애널리스트인 호레이스 데디우는 "애플 제품을 이용하는 생태계 구성원만 10억명인데, 이들이 매일 1달러씩만 지출해도 엄청난 힘이 된다"고 했다. 지난해 애플의 서비스 부문 영업 이익률은 64%에 달했다. 소음 감소 기능을 탑재한 무선 이어폰 '에어팟 프로'와 '애플 워치' 같은 웨어러블 부문도 급성장 중이다. 세계 무선 이어폰 시장에서 애플의 점유율(45%)은 압도적 1위다.

②생산·유통망의 효율성 극대화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한 팀 쿡은 원료 구매부터 제품 생산, 고객 전달까지 모든 과정을 관리하는 공급망 관리(SCM·Supply Chain Management) 분야 전문가다. 컴팩 부사장으로 있다가 1998년 애플에 입사한 그는 평균 70일치 넘게 쌓여 있던 애플의 악성 재고를 2년 만에 10일치로 낮추었다. 100개에 이르던 부품 공급회사는 20여개로 줄이고 대만 폭스콘 같은 외부 업체에 위탁해 효율성을 최대화했다. 비용 절감에도 탁월했다. 예컨대 아이팟에 들어가는 메모리 반도체 제조사에 수십억달러를 선급(先給)으로 주고 대량 구매 계약을 맺어 구매 단가를 대폭 인하해 수익률을 높였다.

쿡은 2015년부터 4년간 10억주가 넘는 애플 주식을 사들여 소각했다. 그 결과 2015년 9월 말 당시 58억주였던 주식 수는 작년 하반기 46억주가 됐다. 또 작년 4분기에만 179억달러를 들여 애플 발행 주식의 2% 정도를 사들였다. 작년 1~9월 자사주 매입에 쏟아부은 돈만 492억달러에 이른다. 홍대순 글로벌전략정책연구원장은 "자사주 매입으로 쿡은 주주 이익 극대화와 애플 브랜드 가치 상승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고 말했다.

쿡이 작년 초 쌓아놓은 애플의 사내 보유 현금은 2490억달러로 취임 당시 대비 3배 정도 급증했다. 자사주 취득과 배당금 등으로 2200억달러를 쓰고도 이만큼 갖고 있다. 미국 전체에서 연방정부(2710억달러)에 이어 둘째로 현금을 많이 갖고 있다. 저널리스트 린더 카니는 "스티브 잡스가 문화적 성공을 거뒀다면, 팀 쿡은 애플에 재정적인 성공을 안겨줬다"고 했다.

③숨겨진 전략 무기 '가치관 경영'

팰로앨토시 외곽에 있는 팀 쿡의 집은 실리콘밸리 스타급 CEO들의 고급 주택과 비교하면 오두막 수준이다. 집 울타리나 차량 진입로는 물론 보디가드조차 없다고 슈피겔은 전한다. 그는 2009년 스티브 잡스의 췌장암이 재발하자 자신의 간을 이식하자고 제안했다. 집무실에 마틴 루서 킹 목사와 로버트 케네디 미국 법무장관의 사진을 걸어놓고 있다. 목숨을 걸고 차별과 맞서 싸운 두 사람을 자신의 영웅으로 꼽는다.

송의달 선임기자
쿡의 숨겨진 전략무기는 ①프라이버시 ②교육 ③환경 ④다양성 ⑤접근 가능성 ⑥공급자 책임 등 여섯 핵심 가치에 충실한 '가치관 경영'이다. 단적으로 그는 2016년 2월 미국 샌버너디노 총기 난사 사건 이후 연방수사국(FBI)의 아이폰 잠금 해제 요구를 끝까지 거부했다. 쿡은 "애플은 모든 시민의 데이터와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한다.

쿡은 민주당 지지 성향이지만 트럼프 대통령 당선 후 가장 먼저 축하 전화를 했고 매년 골프 라운딩과 만찬을 하고 있다. 2017년 애플이 쓴 로비 자금(1800만달러)은 아마존이나 구글의 절반이었다. 그런데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8년 국정연설에서 애플을 극찬했다. 지난해엔 중국산 애플 제품에 대한 관세 면제에 앞장섰다. 특급 로비스트 뺨치는 쿡의 정무 감각과 로비력 덕분이라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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