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의 성공은 21세기 글로벌 음악 산업에서 가장 두드러진 흐름이다. 방탄소년단(BTS)이 앨범 3장을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렸고, 2017년 말엔 빌보드 차트에 'K팝 차트'가 따로 생겼다. 아이튠스를 비롯한 글로벌 디지털 음원 서비스에서도 K팝을 따로 관리한다. K팝은 이제 전 세계를 아우르는 인기 장르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로 자리 잡았다.
BTS: K팝과 글로벌 팝의 융합
K팝의 대표적 성공 사례는 단연 BTS다. 다만 BTS는 전형적 K팝 아이돌 그룹과 달랐다. 음악 전문가 미묘는 "BTS는 K팝의 안티테제에 가깝다"고 말한다. BTS가 외국 시장에서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일반적 K팝 그룹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BTS는 일반적 K팝 가수보다 글로벌 팝 가수에 가까운 특성이 있다. 첫째, 직접 가사와 음악을 만들고, 아티스트로서 정체성을 갖고 활동한다.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도 아티스트로서 자율성을 장려하고 있다. 둘째, BTS는 중소 기획사에서 탄생했다. 데뷔 당시 빅히트는 미디어 관심이나 대형 기획사 수준의 전폭적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작은 규모였다. 덕분에 BTS는 자체 노력에 팬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것을 마중물로 삼아 실력을 길러 해외 시장을 뚫었고,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팬덤을 형성했다. '흙수저 아이돌의 성공기'라는 스토리텔링은 그렇게 탄생했다.
BTS 성공 과정 자체는 K팝 아이돌 전형을 다소 벗어나긴 했지만 K팝의 장르적 특성은 공유한다. K팝은 서구 팝 음악과 달리 음악과 가사, 안무, 무대 퍼포먼스, 의상 등을 일관된 콘셉트로 설계한다. BTS 역시 기획한 콘셉트를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했다. 학교 3부작, 청춘 2부작, Love Yourself 4부작 등에 스토리텔링과 다양한 문학적 상징 장치까지 담아냈다. 멤버 7명 모두 한국인이며 한국 음악인들과 작업하고 가사가 한국어라는 점도 K팝의 'K'를 강조하는 특성이다. 한국어 속어·유행어, 심지어 전통 음악 추임새까지 활용한다.
해외 팬들은 서구 중심 팝 음악에 대한 일종의 대안 개념으로 K팝에 발을 들이는 경우가 많다. 한국어 가사나 한국적 요소는 글로벌 시장에서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한다. 일찍부터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비주류 문화 콘텐츠를 향유한 글로벌 Z세대에게는 더욱 그렇다.
BTS가 팬들과 직접 소통하는 방식, 그리고 진정성도 글로벌 성공의 원인이다.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기획사 힘이 아니라 자신들 노력으로 무대를 이끌어간다. 그리고 팬클럽인 아미와 유튜브, 브이앱 등을 통해 친밀하게 소통하는데, 이런 팬들에 대한 친절과 친근감은 K팝이 추구하는 가치 중 하나다. BTS는 이런 전술을 극단적으로 구사하는 아이돌이다.
비(非)한국에서 재생산되는 K팝
K팝이 한국이라는 범주를 벗어나 록이나 재즈, 힙합처럼 일반 대중음악 장르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면, 어떤 언어로 부르는지, 어느 나라 사람이 구현하는지 상관없이 정의할 수 있다. 실제 최근엔 다양한 국가에서 다양한 국적의 가수들이 K팝을 재생산하려는 시도를 펼치고 있다.
EXP 에디션은 미 컬럼비아대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한국인 김보라가 K팝을 비(非)한국인이 재현하는 게 가능한지 연구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백인 3명, 아시아계 1명, 흑인 2명으로 구성해 연구 프로젝트를 마쳤고, 이후 흑인 2명을 제외한 4명이 한국에 건너와 트레이닝과 한국어 강습을 받은 다음 한국 케이블 채널에서 데뷔했다. 한국 팬들은 "한국에서 활동하며 한국어로 노래한다면 K팝이라고 볼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우호적이었지만 해외 팬들은 '문화 전유'라면서 비판했다. 문화 전유란 다른 문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단순히 상업적 목적으로 재현하고 흉내 내는 행위를 말한다. K팝은 주류인 백인 음악이 아니라 소수·비주류 음악이며, 특정한 인종·민족 정체성과 강하게 밀착되어 있다는 맥락이다.
한국 기획사 제니스미디어콘텐츠는 '지팝(Z-pop) 프로젝트'를 통해 K팝 트레이닝 시스템과 음악 제작 방식을 활용, 일본과 태국, 인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다양한 아시아 국가 출신들로 그룹을 구성하고 영어로 노래를 발매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한 그룹 지보이즈(Z-Boys)와 지걸즈(Z-Girls)에 대한 반응은 EXP 에디션과 반대다. 해외 팬들은 지보이즈와 지걸즈에 속한 인도 출신 멤버에 주목하며 한국, 중국, 일본인으로 한정되던 아시아인 카테고리에 다양한 국가 출신이 들어오게 되어 기쁘다는 반응이다. 반면 한국 팬들은 어설프게 K팝 흉내를 내면서 동남아시아 현지 팬들을 공략하는 K팝 아류로 치부한다.
K팝이 큰 인기를 누리면서 동아시아 국가들은 K팝을 참고해 자국 음악을 만들어 왔다. 기획·생산을 현지 기획사가 담당하고, 가수도 한국인이 아니며 현지 언어로 노래를 부른다. 태국 4인조 인기 걸 그룹 캔디 마피아(Candy Mafia)는 발전한 형태로 K팝을 현지화하고 재창조했다. 한국에서 아이돌 그룹 기획을 담당하던 전문가가 태국에서 만든 걸그룹이다. 태국 음악 산업은 그 밖에도 페 팡 께오(Faye Fang Kaew), 가이아(GAIA) 등 그룹을 통해 K팝 토착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음악들은 태국 팝이란 의미에서 티팝(T-pop)으로 불리며 동남아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브이팝(V-pop), 카자흐스탄에서는 큐팝(Q-pop)이란 새로운 장르가 K팝 영향으로 생겨났다.
한국적 특성 'K'는 유지하면서 진화
K팝이 지평을 넓히더라도 K, 즉 한국이란 특성에서 완전히 분리되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한국 문화가 아무리 인기를 얻게 되어도 미국, 넓게는 서양 문화가 글로벌 문화 산업에서 누려 온 '보편성'을 획득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 미디어 플랫폼 발달과 ·간접적인 문화 교류 증대,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세대 등장 등은 이전과 다른 문화 산업 환경을 만들어 냈다. K팝은 이런 환경의 가장 빠르고 직접적인 수혜자다.
세상은 미국을 포함한 여러 크고 작은 문화 중심에서 만들어진 콘텐츠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형성된 다양한 틈새시장으로 빠르게 전달되는 시대가 됐다. K팝이 글로벌 문화 시장에서 확보한 새로운 틈새시장은 분명 일부에게 향유되는 일종의 하위 문화에 가까운 지위를 갖고 있다. 하지만 주류 영향력이 과거처럼 크지 않은 지금, K팝이 갖고 있는 위상과 영향력은 강력해질 가능성이 있다. K팝은 보편적일 수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K팝은 앞으로 끊임없이 충돌과 융합을 반복하면서 지금과 다른 형태로 진화하겠지만 'K'를 내려놓게 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은 깊이 읽어야 할 주제를 다루는 콘텐츠 서비스 북저널리즘 신간 '갈등하는 케이, 팝' 내용을 압축, 정리한 것입니다. 전문은 북저널리즘 웹사이트(www.bookjournalism.com)에서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