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 제1전시장. 400여 명이 줌바댄스(Zumba dance)를 추려고 알록달록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모였다. 이들은 쿵작거리는 라틴 음악에 맞춰 팔다리를 전후좌우로 휘둘렀다. 줌바는 1시간에 최고 1000칼로리를 소모한다고 알려질 정도로 격렬하지만, 줌바를 추는 이들의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헬스장에서 사람들이 땀을 흘리며 인상을 찌푸리는 일반적 다이어트 모습과는 달랐다. 베토 페레스 줌바 창시자는 "다이어트는 재미 없고 어렵고 고통스럽다는 이미지가 강하다"며 "줌바를 추는 이들은 다이어트를 하는 게 아니라 파티(party)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라틴 음악이 울려퍼지는 파티에서 에어로빅을 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줌바는 에어로빅과 라틴 음악이 합쳐진 피트니스 프로그램이다. 매주 전 세계 180여 나라 1500만명이 즐긴다. 사실 에어로빅 동작에 라틴 음악을 접목한 사례는 많았다. 2000년대 초반 줌바와 비슷한 댄스가 범람하기도 했다. 하지만 줌바는 경쟁을 뚫고 살아남았다. '제2의 요가'라는 별명도 얻었다. 줌바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사진 위)베토 페레스(가운데) 줌바 댄스 창시자가 지난 11월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줌바댄스 강습을 하고 있다.
/줌바 피트니스
운동 기구보다는 음악·동작에 초점
줌바의 장점은 쉽고 질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순한 동작이 반복되기 때문에 몸치도 10분이면 기초 동작을 무리 없이 소화한다. 줌바에는 밸리댄스·아프리칸댄스·살사댄스 등 모든 댄스·음악이 적용된다. 알베르토 펄먼 줌바피트니스 CEO(최고경영자)는 "피트니스 산업은 그동안 음악과 즐거움보다는 효율과 운동 기구 같은 것에만 집중해왔다"며 "우리는 그 빈틈을 노려, 매년 음악이나 동작을 바꾸는 무한 교육을 지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줌바는 작은 실수로 만들어졌다. 1990년대 콜롬비아 보고타와 미국 마이애미 등에서 에어로빅 강사로 활동하던 페레스 창시자가 실수로 에어로빅 음악 카세트테이프 대신 라틴 음악이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틀면서 줌바가 탄생했다. 페레스 창시자는 "실수로 다른 음악을 틀었는데, 수강생들 반응이 너무 좋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특히 라틴 음악이 가지고 있는 열정이 에어로빅 동작과 어울리면서 시너지를 낳았다"며 "에어로빅에 라틴계의 파티를 적용하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줌바는 실수로 만들어졌지만, 다이어트 효과는 확실하다. 줌바는 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1시간 동안 쉬는 시간이 거의 없다. 음악 템포로 호흡을 조절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많은 칼로리를 소모할 수 있다. 줌바가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페레스 창시자가 과학자들의 컴퓨터를 활용한 신체검사에 응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컴퓨터 분석에 따르면 페레스 창시자가 줌바를 추면 출수록 칼로리 소모량뿐 아니라 엔돌핀 생성과 심장 근육 이완 및 수축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골절 위험도 없었다. 행복감이 유지되면서도 칼로리가 소모됐다.
강의 비디오 팔다가 강습소 열어
줌바의 사업화도 독특하게 이뤄졌다. 마이애미에서 페레스 창시자의 줌바 수업 수강생 중 한 명이 펄먼 CEO의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펄먼 CEO에게 페레스 창시자를 소개해주면서 피트니스 사업이 이뤄졌다. 펄먼 CEO는 "줌바를 극찬하던 어머니를 통해 페레스의 전화번호를 얻고 만남을 약속했다"며 "그의 강의를 듣게 됐는데 다이어트를 하면서도 모두들 행복하게 웃고 있는 것이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다이어트는 불행하다'는 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이 둘은 2001년부터 네 묶음에 60달러짜리 줌바 비디오테이프·DVD 세트를 홈쇼핑에서 팔기 시작했다. 페레스 창시자가 30㎏을 감량하는 방법 등으로 줌바를 소개했다. 비디오테이프·DVD 세트가 초반에 수십만 장 팔리는 등 큰 인기를 얻으면서 "진짜 수업에 가고 싶다" "페레스 창시자와 함께 줌바를 추고 싶다" 등의 문의가 쏟아졌다. 이에 이 둘은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회사를 창립해 줌바 클래스를 열기 시작했다.
처음 클래스를 열었을 때 500여 명의 신청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이 둘은 효율적 강의를 위해 150여 명만 받았고, 50여 명 규모로 줄여나갔다. 대신 마이애미에만 있던 줌바 협력 피트니스 센터를 늘렸다. 미국, 네덜란드, 영국, 멕시코, 일본, 한국 등 전 세계 186국으로 센터를 늘려나갔다. 2000년대 초반 리키 마틴(Martin), 제니퍼 로페즈(Lopez), 샤키라(Shakira) 등 가수들이 내놓은 라틴 뮤직에 줌바가 접목되고 화제가 되면서 상승세도 크게 탔다.
스마트폰 앱 통해 강사 길러내
줌바를 배울 수 있는 피트니스 센터는 전 세계 17만여 곳이 있다. 학교나 놀이터·교회 등 공공장소에 있는 센터와 삼성전자·애플 같은 회사 안에 있는 센터까지 합치면 총 20만여 곳이다. 전 세계 맥도널드 매장(3만7000여 곳)과 스타벅스 매장(3만1000여 곳)을 합친 것보다 훨씬 많다. 연령대별 맞춤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만들었다. 하체 운동을 위한 줌바 스텝, 인체 조형 운동을 위한 줌바 토닝, 고령자를 위한 줌바 골드, 관절이 약한 이를 위한 수영장 운동인 줌바 아쿠아, 아동을 위한 줌바 키즈 등으로 이뤄졌다.
줌바를 가르치는 강사가 되기도 쉽다. 줌바 라이선스를 발급받고 앱 등을 통해 줌바 교육을 받으면 된다. 줌바 강사가 되기 위한 교육비로는 초기 300달러, 매월 회원비 명목으로 40달러가 든다. 교육이 끝나면 강사들의 인증을 거쳐 줌바피트니스의 홈페이지인 줌바닷컴에 정식 강사로 이름이 올라가게 된다. 직접 교육에 참석하기 어려울 경우 강사 전용 앱 '진(ZIN)'을 통해 줌바 동작을 배울 수 있다. 줌바를 확산하기 위해 폐쇄적 회원제 대신 간편하고 접근성 높은 방법을 택한 것이다. 앱을 관리하기 위해 전 직원의 25%(50여 명)가 프로그래머로 이뤄져 있다. 펄먼 CEO는 "전 세계에 줌바를 퍼뜨리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앱 등으로 원격 교육에도 나서고 있다"며 "태국 치앙마이의 한 정글에서도 줌바댄스를 가르치는 강사가 있을 정도로 전 세계 모든 곳에 줌바댄스 강사가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피트니스 회사이기 전에 교육 회사이기 때문에 강사들을 얼마나 잘 가르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덕분에 줌바는 전 세계적으로 성공한 피트니스 브랜드가 됐다. 옷과 액세서리 등 수백만 점에 이르는 의류 산업에도 진출해 꾸준히 매출이 상승하고 있다. 효과를 인정받아 학교 체육 과목으로 선정된 사례도 있다. 칠레에서는 초·중·고교의 체육 과목에서 줌바를 가르친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Obama) 전 대통령 부인인 미셸 오바마는 2014년 당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줌바를 추며 아동 비만 퇴치 캠페인 '레츠 무브(Let's Move)'를 홍보하기도 했다. 페레스 창시자는 "줌바가 탄생한 이후 17년 동안 많은 사람이 '2~3년 안에 망할 것'이라며 줌바에 대해 부정적 전망을 내놨다"며 "하지만 줌바는 꾸준히 성장했고 현재 전 세계에서 아주 큰 피트니스 브랜드 중 하나가 됐다"고 말했다. 살아 남은 비결을 묻자 "유행은 항상 바뀌고, 우리는 그 유행보다 한발 앞서려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요가는 심신 수련뿐 아니라 이를 통해 공동체 활성화에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줌바와 비슷하다.
/블룸버그
줌바와 요가, 겉모습은 반대지만 지향점은 같아… 우울증 치료에도 '효과'
요가(Yoga)는 힌두교의 종교적·영적 수행 방법 중 하나다. 점차 대중화돼 글로벌 피트니스 브랜드가 됐다. 요가 프로그램 중에는 침묵 명상이 따로 있을 정도로 정신 수련을 강조하기 때문에 요가 강의실 대부분이 조용한 편이다. 반면 줌바댄스(Zumba dance)는 격렬하고 활발하다. 줌바 강의실에 들어가면 쩌렁쩌렁 울리는 라틴 음악에 귀가 먹먹할 정도다. 그럼에도 줌바는 ‘제2의 요가’라고 불린다. 줌바와 요가는 겉모습이 확연히 다르지만 지향점이 같기 때문이다.
요가는 신체적 요소와 정서적 요소, 커뮤니티적 요소 등 세 개의 각이 이뤄진 삼각형을 추구한다. 신체·정신 수련을 위한 운동뿐 아니라 선(善)을 찾기 위한 커뮤니티가 활성화돼 있다. 줌바의 지향점도 선과 행복이다. 단순히 살을 빼는 것이 아니라 행복과 자존감을 찾는 것이 줌바의 목적이다.
요가를 활용한 수련으로 정신 질환이 완화됐다는 사례가 있는 것처럼 줌바를 통해 우울 증상이 완화된 사례도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 심리학자로 활동하는 하나 라티아(Rattia)씨는 2012년부터 줌바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상담 치료를 하던 환자들이 줌바를 통해 우울 증상이 완화되는 것을 경험하면서다. 라티아씨는 줌바 측에 “우울증을 갖고 있던 환자들이 줌바 수업을 다녀오더니 우울증약을 안 먹어도 될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다”고 말했다. 또 “내 삶의 목표는 많은 사람의 정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똑같은 시간에 한 명 대신 수십 명을 치료하고 싶기 때문에 줌바 강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알베르토 펄먼 줌바피트니스 CEO(최고경영자)는 “줌바와 요가는 매우 비슷하다”며 “줌바도 요가와 마찬가지로 행복하고 즐기는 것을 지향하며 신체적인 건강과 정신의 만족, 커뮤니티를 중점으로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요가와 줌바가 꾸준히 성장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