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비즈

에릭 클랩턴의 그 기타가 돌아왔다

Analysis 남민우 기자
입력 2019.12.06 03:00

美 일렉 기타 제조업체 '펜더' 되살린 앤디 무니 CEO

에릭 클랩턴 같은 전설적 기타리스트의 기타를 만든 미국 명품 악기 제조사 펜더는 2000년대 중반 자금난에 시달리며 위기에 직면했다. 1970~1990년대 전 세계를 주름잡던 록 음악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일렉 기타(전기기타) 등 주요 악기 매출이 서서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월마트 등 주요 유통업체들은 2000년대 초반 판매대에서 기타를 하나둘씩 치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펜더는 명품 기타라는 점 외에는 내세울 장점이 많지 않았다. 결국 2011년에 170만달러 적자를 내면서 파산 직전에 내몰렸다.

모바일 레슨 확대해 악기 판매 늘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만 같았던 펜더. 그러나 올해 이미 6억달러가 넘는 매출을 기록하는 등 음악 시장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지난해에도 주요 기타 브랜드의 매출액은 1년 전보다 10% 넘게 늘었다. 흑자 규모도 점차 증가하는 추세라고 펜더 측은 설명한다. 일렉 기타 판매 대수는 2008년 280만대에서 2018년 258만대로 8% 감소했다. 이처럼 시장 규모가 매년 조금씩 쪼그라드는 가운데서도 펜더는 성장을 거듭한 것이다. 70년 전통을 가진 악기 회사의 부활을 이끈 사람은 영국 회계사 출신 앤디 무니(Mooney·64) 최고경영자(CEO). WEEKLY BIZ는 최근 리스본에서 열린 웹서밋 행사에서 무니 CEO를 만나 펜더 부활의 비결을 들어봤다.

일렉 기타라고 하면 대체로 찢어질 듯한 굉음 외에도 유선형의 독특한 몸통 디자인이 떠오른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이런 일렉 기타 이미지를 각인한 회사가 펜더였다. 라디오 수리점으로 출발한 펜더는 1938년 이후 일렉 기타의 원형이 될 만한 디자인을 개발하고 이를 대중화했다.

그러나 펜더에 과거의 성공은 '양날의 칼'과 같은 존재였다. 과거의 성공으로 마니아층은 두꺼웠으나 이들만으로 매출 감소를 막기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2015년 펜더 CEO에 취임한 무니는 과거의 성공 방정식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펜더를 수술대에 올리기로 했다. 그는 가장 먼저 설문조사부터 들춰봤다. 눈에 띈 수치는 고객의 재구매율이었다. 기타 연주자의 45%가 신규 연주자였는데, 이 신규 연주자의 90%가 불과 1년도 못 돼 기타 연주를 포기했다. 게다가 이들은 기타를 배우려고 레슨에 투자하는 비용보다 기타를 '구매'하는 데 돈을 4배 더 썼다. 비싼 돈을 주고 기타를 사고는 제대로 배우지도 않고 장롱 속에 던져두는 사람이 대부분인 셈이다.

펜더
손가락 통증 줄이는 연주 팁 알려줘

기타를 칠 줄 아는 사람이 많을수록 기타를 더 많이 팔 수 있다. 무니 CEO는 재구매율 통계를 보고는 '차세대 음악가 양성'을 새 목표로 잡았다. 초심자가 기타를 배울 수 있는 동영상 앱(펜더플레이)을 출시하기로 했다. 펜더는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일반 소비자와 고급 제품을 원하는 전문 연주자들의 입맛을 다 만족시키기 위해 제품 라인을 저가 라인과 고급 라인으로 다양화했다. 그 덕택에 제품 공급 측면에서는 큰 문제가 없었다. 수요 측면을 자극해 재구매율을 10%에서 20%로만 끌어올려도 매출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고 무니 CEO는 판단했다.

펜더플레이를 살펴보면 과거 기타 강의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초심자 배려가 곳곳에 묻어 있다. 예를 들어 조사 결과를 보면 기타 초심자들이 가장 많이 어려움을 겪는 대목이 줄을 튕기는 과정이다. 손가락을 많이 다치기 때문이다. 펜더는 이를 토대로 손가락이 부르트지 않고 손목이 아프지 않은 연주 팁을 알려주는 등 세심하게 인터넷 강의를 설계했다. 또한 기타 초심자들이 가장 애를 먹는 튜닝(조율) 과정도 앱으로 정확하고 간단하게 마칠 수 있게 했다. 과거엔 지난하게 반복해야 숙달할 수 있었던 연주 기술을 디지털 기술로 단숨에 해결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무니 CEO는 이러한 행보를 두고 "아티스트가 천사라면 우리는 천사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사람들"이라며 "4년 동안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회사를 이끌어왔다"고 말했다.

펜더가 회사의 사활을 걸고 새 사업에 뛰어든 덕분에 펜더플레이는 초심자가 기타를 장롱에서 꺼내게 했다. 덕분에 출시 2년 만에 이용자 500만명을 확보했다. 여기에 인터넷 강의를 일회성 거액 결제가 아닌 매달 약 20달러씩 내는 정액 결제로 만들었다. 이렇게 생겨난 꾸준한 현금 흐름은 펜더가 고질적 자금난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어떻게 해서든 초·중급 기타 연주자를 주요 소비자로 붙잡아둬 이들을 새로운 '캐시카우(현금 창출 동력)'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지난여름부터는 미국 쇼핑몰 자포스와 손잡고 '직장 내 기타' 같은 음악 교실을 여는 사업도 추진 중이다.

펜더의 마니아층은 주로 프로 연주자, 록스타 지망생 등 기타에 인생을 건 연주자들이다. 이들이 주된 고객이라 별다른 마케팅 없이도 그동안 기타가 팔렸다. 하지만 이젠 주요 타깃 공략층을 '기타 초심자'로 바꾸며 적극적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가겠다는 것이 펜더의 전략이다. 지난해엔 업계에 박힌 고고한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이례적으로 지하철 광고도 내기 시작했다. 무니 CEO는 "보통 기타 연주자들이 평생 기타를 5~7대 사는 점을 감안할 때, 기타 등 악기 업계의 가장 큰 과제는 소비자를 예전처럼 평생 붙잡아 두는 것"이라며 "기타를 포기하는 사람을 10%만 줄여도 매출을 두 배로 늘릴 수 있기에 과감한 시도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고화질 레슨에 클라우드 서비스 이용

다만 걸림돌이 있었다. 동영상 강의는 테라바이트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의 고화질 영상을 제공해야 하는데 수십 년 된 악기 제조사에는 이런 인프라가 없었다. 펜더는 클라우드에서 답을 찾았다. 고용량 동영상, 예측 불가능한 이용자들의 접속 등을 버텨낼 수 있는 클라우드 기반 앱을 출시했다. 클라우드 서비스를 활용한 덕분에 동영상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것은 물론, 거꾸로 기타 연주자의 연주 정보를 수집해 강의 설계에 활용하기도 했다. 각 기타 연주자가 숙련 과정에서 애를 먹는 대목이 다른 만큼,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 강의'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펜더의 앰프를 와이파이에 연결해 각종 사운드 이펙트를 자동으로 업데이트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펜더는 클라우드 데이터 경영으로 과거의 제조·마케팅 방식을 답습하는 관성에서 벗어나려 한다. 예를 들어, 사물인터넷(IoT) 센서에 들어온 방대한 이미지 정보를 클라우드 기반 인공지능(AI)이 수집·분석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펜더는 3년 이상 건조한 최상급 목재를 기타에 사용하는 게 특징. 악기 제조 과정에서 클라우드 데이터를 활용, 목재에 이상이 있는지 철저히 점검하고 있다. 무니 CEO는 "회사의 혁신은 각 회사가 처한 상황이나 단계마다 다르다"며 "지금 우리는 모든 연주자가 기타를 평생 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혁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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