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적 피로와 여기저기 알 수 없는 통증, 잘 회복되지 않고 반복되는 감기나 포진으로 괴로운데 막상 검사해 보면 특별히 이상은 없어 답답함을 호소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런 경우 만성 염증을 의심해야 한다.
염증은 일종의 면역 반응으로 바이러스든 외부 이물질이든 우리 몸에 원래 있지 않았던 것을 제거하기 위한 자연적 방어 시스템이다. 감기에 걸렸을 때 열이 나거나 상처가 빨갛게 붓고 나서 낫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와 같은 경우는 급성 염증이다. 우리 몸이 스스로 회복하는 과정이며 치유에 꼭 필요하다. 그런데 이 과정에 문제가 생겨 염증이 지지부진하게 지속되면 오히려 정상 조직을 손상하는데 이러한 회복 시스템의 오류가 바로 만성 염증이다.
암·당뇨·고혈압이 되는 만성 염증
암을 포함하여 많은 질병이 만성 염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비만과 당뇨, 고혈압과 심근경색, 아토피, 류러티즘, 심지어 우울증, 치매까지도 그 기저에는 공통적으로 만성 염증이 선행한다. 따라서 질병 초기 단계라고 할 수 있는 만성 염증을 미리미리 치유한다면 다양한 질환을 예방할 수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만성 염증은 오랜 시간 전신에 면역 반응이 약하게 지속되는 상태이므로 증상도 다양하고 모호하다. 또한 안타깝게도 정확한 진단법이 현재까지 확립되어 있지 않다. 그나마 염증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검사로는 혈액 검사로 C반응성 단백(hsCRP·high sensitivity C-reactive protein)이나 섬유소원(Fibrinogen)과 같이 전신의 염증 정도를 반영하는 염증 지표를 측정해 볼 수 있다. 최근에는 건강검진에도 이런 검사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본인의 C반응성 단백 수치가 높을 경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C반응성 단백질 수치가 높으면 심근경색과 같은 심혈관 질환 발생률이 높아진다.
신체 질환뿐만 아니라 심리적 문제까지도 염증과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영국 도심 지역 3000명 이상을 추적 관찰한 연구에서는 C반응성 단백 수치가 높은 사람들에게서 12년 후 우울증이 더 많이 관찰되었다. 현재로서는 특별히 진단받은 질병이 없는데도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 반복되는 감염과 같은 증상이 지속되거나 체내 염증 지표가 높아져 있다면 만성 염증을 의심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만성 염증 상태가 지속되면 병으로 발전한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만성 염증 상태를 치유함으로써 스스로 질병을 예방하고 더 활기차고 건강하게 살아갈 시간을 벌 수 있다.
최고 치료제는 항염증 식사
현재까지 만성 염증을 치료하는 약은 없으며 염증을 낮추는 기존 진통 소염제 등을 대안으로 복용할 경우에는 위궤양, 심혈관 질환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어 득보다 실이 더 크다. 희소식은 만성 염증의 가장 좋은 치료제는 바로 음식이라는 것이다. 매일매일 식사하면서 염증을 유발하는 식품 섭취를 줄이고 염증을 예방하는 식품을 선택하는 '항염증 식사'를 통해 만성 염증을 치유할 수 있다.
항염증 식사의 첫째는 염증을 유발하는 식품 섭취를 줄이는 것이다. 우리 몸에 원래 있지 않았던 이물질이 염증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에 우리 식탁에 '무엇을 더 먹을까'보다 먼저 '무엇을 먹지 않아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몸에 좋다는 수퍼푸드를 먹는 것보다 각종 첨가물과 트랜스지방으로 범벅이 된 가공식품, 패스트푸드와 믹스커피, 당분과 정제 탄수화물 덩어리인 빵과 쿠키, 케이크나 음료수, 포화지방이 많은 고기와 유제품처럼 염증을 유발하는 식품 섭취를 줄이는 것이 만성 염증 예방에 더 효과적이다.
영국인 5083명을 추적 관찰한 대규모 코호트 연구는 이러한 식품과 염증, 인지 기능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붉은 육류, 햄과 소시지 같은 가공 육류, 튀긴 음식을 즐겨 먹고 현미 같은 통곡류를 덜 먹는 경우, 즉 염증을 유발하는 식품을 즐겨 먹는 사람들이 염증 지표 중 하나인 인터루킨-6 수치가 높았고 인지 기능 중에서 추론 능력 저하가 뚜렷이 나타났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음식도 최근 유행처럼 특정 영양 성분을 극단적으로 안 먹거나 늘려 먹는 것이 아니라 염증 측면에서 선택해야 한다. 예를 들어 똑같은 탄수화물 식품이라도 염증 측면에서는 다른 작용을 한다. 빵과 쿠키와 같이 정제된 탄수화물은 혈당을 급속도로 높이고 염증을 높인다. 반면 현미와 같은 통곡은 혈당을 서서히 유지하고 염증을 낮추며 복부 비만을 줄인다. 이렇게 염증 측면에서 식사를 구성하여 식품이 가지고 있는 대사 조절 기능과 항산화 기능, 항염증 기능을 최대화하는 것이 항염증 식사이다.
채소·과일과 통곡·생선을 절반씩
그렇다면 항염증 식사의 기본 원칙은 무엇일까. 한 접시를 기준으로 했을 때 항산화·항염증 기능을 하는 파이토케미컬과 비타민, 미네랄과 식이섬유가 풍부한 채소와 과일을 한 접시의 반 정도로 충분히 먹는다. 나머지 반은 저당지수의 탄수화물인 현미 잡곡밥과 같은 통곡과 생선·두부와 같이 다양한 단백질로 구성한다. 또한 견과류, 올리브유와 같은 불포화지방을 꼭 챙겨주고, 물을 하루 7잔 마시는 것으로 우리 몸속 염증을 줄이고 예방할 수 있다.
항염증 식사 구성의 효과를 잘 보여주는 연구가 있다. 이탈리아의 센터 172곳에서 심근경색증이 있는 19~90세 남녀 1만1323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생선, 과일, 생채소나 익힌 채소, 올리브 오일 섭취를 늘리라고 교육했다. 심근경색증 환자들이 생채소를 일주일에 2~3회 섭취할 때 그러지 않은 사람과 비교해 사망 위험도가 30%가 감소했다. 또 이 5가지 식품의 섭취 빈도를 높여 항염증 식사를 실천한 사람들은 그러지 않은 경우와 비교해 사망 위험도가 50%정도 감소했다.
마지막으로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은 좋은 식사 습관이다. 아무리 좋은 것을 먹어도 소화·흡수를 잘 못 하면 효과가 작기 때문에 우리 몸의 소화·흡수 기능을 최대화하기 위해 마인드풀 식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식사하는 순간만큼은 식사에 집중하고 TV나 신문을 보는 등 다른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일상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는 것, 먹는 행위와 음식의 맛과 향에 집중해서 식사를 온몸으로 즐기는 것이 마인드풀 식사법이다. 스트레스는 소화 기능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식사할 때만이라도 일상의 복잡함을 벗어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반복 연습을 통해 습관이 될 수 있다. 식사 기도도 매우 좋은 마인드풀 식사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평소 항염증 식사를 하면 병원과 의사, 약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더 건강해질 기회를 누릴 수 있다. 이렇게 하루하루의 선택이 나 자신의 건강을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