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⑧~⑨ 보험 혁명을 이끄는 기업들
세계 3위 글로벌 보험사 프랑스 '악사', 인슈어테크로 달려간다
자산 기준으로 세계 3위 글로벌 보험사인 악사(AXA). 1816년에 설립되어 200년 역사를 가진 프랑스의 대표 보험사다. 보험 전문가들은 악사에 대해 "세계적으로 다양한 인슈어테크(InsurTech·보험+기술) 스타트업이 백가쟁명식으로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혁신 행보를 하고 있는 대형 보험사"라고 평가한다. 악사는 2001년 한국 시장에 처음 다이렉트 자동차보험을 선보였던 회사기도 하다.
악사는 2013년 샌프란시스코에 회사의 미래를 책임질 혁신연구소를 열고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해 왔다. 중국 상하이에도 비슷한 연구소를 열었다. 그동안 10억달러(약 1조1700억원)가 넘는 돈을 투자했다. 올 1월에는 혁신 조직을 확대·통합해 150명 규모의 '악사 넥스트'를 출범했다. 악사 이후의 먹을거리를 찾는다는 뜻에서 악사 넥스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룹의 CIO(최고 혁신 책임자)인 기욤 보리(Borie)가 대표를 맡았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혁신연구소는 '악사 넥스트 US'가 됐다. 지난 8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도심의 공유 오피스 위워크에서 '악사 넥스트 US'의 바스티안 드 고이(de Goei·37) 대표를 만나 '보험의 혁신'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그는 "악사는 지금도 매년 1000억달러씩 매출을 올리고 있지만 잘나갈 때가 투자 적기"라며 "10억달러는 한 해 매출의 100분의 1 정도밖에 안 되는 적은 액수지만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포인트"라고 말했다.
보험회사에서 위험 예방 회사로
드 고이 대표는 악사 넥스트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단순히 변화를 모색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현재 조직으로는 찾을 수 없는, 아예 새로운 비즈니스를 찾으려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가 바라는 건 보험의 혁신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보험의 혁신은 보험을 잘 팔 수 있도록 데이터 분석, AI(인공지능), 머신러닝 등 신기술에 투자하는 것인데, 이건 보험사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는 뭘까.
"보험사들은 그동안 리스크(위험)에 대한 지식을 활용해 보험 상품을 팔고 사고가 나면 보상해왔습니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하면서 사고가 날 리스크는 계속 줄고 있고 사람들은 보험에 들지 않고 있어요. 더 이상 보험 상품만 팔아선 생존할 수 없다는 겁니다. 여기에 장기간 저금리 시대가 열리면 보험료를 투자해 얻는 금융이자 수익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 "악사가 찾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은 손실을 미리 피할 수 있도록 관련 지식이나 조언을 제공하고 수수료를 받는 것입니다. 악사가 기업의 사이버 보안 상태를 평가해주는 스타트업 '시큐리티스코어카드'(미국)에 투자한 것도 장기적으로 중소기업들이 사이버 위험을 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수수료를 받는 새로운 사업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에 따라 악사의 역할도 바뀌고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보험사는 사고가 나면 금전 보상을 해주는 '보험금 지급자(bill payer)'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고객이 손실을 피할 수 있도록 하는 '진정한 파트너(true partner)'가 돼야 합니다."
헬스케어·플랫폼·모빌리티 집중 투자
악사 혁신의 결정판인 악사 넥스트는 크게 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①매년 2억 유로(약 2600억원)를 투자해 유망한 테크(기술) 회사를 인수하고 있다. ②파트너십을 체결해 협업하고 ③6억5000만달러(약 7600억원) 규모의 벤처 펀드를 조성해 투자한다. ④장기적으로는 스타트업을 직접 인큐베이팅(육성)하기도 한다. 드 고이 대표는 "요즘은 시장이 하도 빨리 변해서 인수에 더 힘을 싣고 있다"고 했다. 특정 프로젝트의 진행 여부나 방향은 악사 그룹의 토머스 부벌(Buberl) 최고경영자(CEO)가 이끄는 별도의 4인 고문회의에서 결정한다. CEO가 직접 참여해 힘이 실리는 구조다.
악사가 집중 투자하고 있는 분야는 ①헬스케어(건강관리) ②공유 차량 서비스 등 플랫폼 경제 ③모빌리티(이동수단) ④중소기업 지원 등 네 가지다. 먼저 헬스케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악사는 작년에 1억5500만달러를 투자해 미국의 헬스케어 업체 '마에스트로헬스'를 인수했다. 마에스트로헬스는 근로자 건강관리 서비스 상품을 고용주에게 파는 회사다. 드 고이 대표는 "우린 더 이상 아프고 난 이후에 관리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고 설명했다. 악사는 스타트업을 만들어 가상 병원 서비스(Qare)도 시작했다. 스마트폰으로 의사와 화상 통화를 하며 가상 진료를 받을 수 있다. 현재 프랑스에서 운영 중인데 다른 유럽 국가로 확대할 예정이다.
차량 공유 서비스인 우버 등 플랫폼 경제 시장도 적극 개척하고 있다. 2017년 우버 프랑스와 파트너십을 체결해 세계 최초로 우버 기사를 위한 보험 상품을 출시했다. 작년 5월에는 그 대상을 유럽 전역의 우버 기사 100만명으로 확대했다. 올해는 한국의 차량 공유 업체 '쏘카'의 운전자 보험도 모두 인수했다.
모빌리티는 자율주행차 보험 상품 개발에 초점을 맞췄다. 작년 10월 프랑스의 자율주행차 업체 '나브야(Navya)'와 손잡고 자율주행차 보험을 개발했다.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선 기업의 사이버 보안 상태를 평가해 주는 스타트업 '시큐리티스코어카드'에 투자했다.
큰 혁신엔 글로벌 파트너 필요
드 고이 대표는 테크(기술) 회사를 적극적으로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리스크 관리 노하우는 보험사가 최고죠. 우리가 보완해야 할 것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테크입니다. 보험사보다 보험과 결합해 시너지를 낼 테크 회사를 만나야 합니다." 그는 "보험사 인수·합병과 테크 기업 인수·합병은 많이 다르더라"며 "테크 회사를 인수·합병해본 경험이 많은 전문 인력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그에게 "악사처럼 큰 회사가 왜 해외의 다른 회사에 큰돈을 쓰느냐. 내부에 직접 혁신 조직을 만들고 추진하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점진적인 혁신은 물론 내부에서 가능합니다. 보험은 우리가 세계 최고 전문가니까요. 하지만 지금 필요한 급진적인 혁신은 회사 내부(in-house) 조직으로는 절대 안 돼요. 대부분 대형 보험사들이 자체적으로 혁신하려고 하는데 불가능한 얘기입니다." 급진적인 혁신에는 새로운 알고리즘과 추적 기술 등이 필요한데 이런 것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파트너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