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비즈

세계 최강 독일군 조직은 왜 노르망디에서 허무하게 무너졌나

Analysis 남도현 DHT AGENCY 대표·군사 저술가
입력 2019.10.11 03:00

[남도현의 전쟁과 무기] (1) 독일군의 노르망디 패전

프랑스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오마하 해변에 접안한 수송선과 투입된 장비들. 이렇게 확보한 교두보를 통해 연합군은 서유럽을 해방시키고 독일로 진격을 개시했다. / 위키피디아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게 된 이유는 많다. 무엇보다 미국, 소련, 영국과 동시에 전면전을 벌였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승리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런데 전성기를 구사하던 1941년 12월 이전에도 독일의 경제력 등 총체적 국력은 연합국을 앞서지 않았다. 독일군은 이러한 열세 속에서 무려 6년간이나 총력전을 펼쳤다. 범위를 축소해서 최전선만 놓고 봐도 독일군은 항복 직전까지 교전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이처럼 독일이 하드웨어에서 상대를 앞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사에 인상적인 전과를 남긴 이유 중 하나가 지휘력 같은 소프트웨어 덕분이었다. 독일군은 현장 지휘관이 참모진의 분석을 바탕으로 결정을 내렸고, 지휘관이 이 결정을 명령하면 즉시 말단 병사까지 내용이 전달되어 유기적으로 작전을 펼쳤다. 현장 지휘관의 판단과 자율성을 중시한 임무형 지휘 체계(Auftragstaktik)가 독일군 선전의 근간이었던 것이다.

외견상 완벽해 보였던 독일군

왼쪽부터 롬멜, 히틀러, 룬트슈테트
그러나 이런 훌륭한 시스템이 히틀러의 득세로 빛을 잃으면서 독일의 쇠퇴가 시작되었다. 집권 당시만 해도 군부를 무시하지 않았던 히틀러가 전쟁 초기에 관여한 몇 번의 참견이 의외로 성공하자 이후부터는 터무니없는 전략을 고집하거나 세세한 전술까지 관여하려 들었다. 결국 권력에 굴복한 많은 장군이 소신을 꺾고 총통의 입맛에 맞추는 행태를 보이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 결과 전쟁 중반기를 넘어서자 실패가 이어졌다.

그런 문제점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 중 하나가 1944년 6월 6일에 있었던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다. 연합군은 일부 지역에서 피해를 입기도 했지만 작전 첫날 상륙한 13만여명의 선봉대가 마련한 교두보를 발판으로 이후 한 달 동안 100여만명의 병력이 유럽 대륙으로 건너가는 데 성공했다. 사상 최대 작전이라고 회자될 만큼 연합군의 전력이 압도적이므로 승리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많다.

하지만 이때 방어에 나선 독일군의 전력이 결코 미약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 독일군의 주력이 소련과 건곤일척의 혈투를 벌이던 동부전선에 투입되어 있어서 서부전선을 담당한 부대들은 2선급이거나 재편을 위해 이동해 온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북부 프랑스에만 40여만이 배치되어 있었고 대서양 방벽을 비롯해 수많은 군사 시설을 충분히 구축해 놓았기에 방어전을 수행하는 데 결코 부족한 수준이 아니었다.

특히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일 노르망디 일대는 독일군이 연합군보다 전술적으로 유리한 위치였다. 일단 연합군이 아무리 대규모로 침공을 단행해도 상륙작전은 구조상 전력을 차례차례 투입할 수밖에 없어서 수적으로 우세를 달성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전차를 예로 들면 독일은 이미 부대 단위로 요소요소에 배치해 놓았지만 연합군은 일일이 배에 싣고 와서 한 대씩 해변에다 뿌려 놓고 대열을 맞춰야 하는 입장이었다.

거기에다 독일군은 전쟁 초기부터 많은 활약을 펼치고 현지 사정에 밝은 명장들이 부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병사들의 경험도 연합군보다 훨씬 풍부한 상태였다. 당시 전투서열을 살펴보면 독일군의 최고 원로이자 명장인 룬트슈테트가 이끄는 서부전선사령부가 전체를 총괄했다. 예하에는 북프랑스와 대서양을 담당하는 B집단군, 남프랑스와 지중해를 방어하는 G집단군, 그리고 직할 부대로 강력한 서부기갑집단이 있었다.

위치상으로 B집단군이 연합군의 상륙을 1차적으로 저지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는데, 사령관 롬멜은 독일 내에서 어느덧 영웅의 위치까지 올라갔고 연합군에게도 경외시되던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이었다. 비록 제공권을 연합군이 장악하면서 전쟁 초기처럼 공군의 전폭적인 지원이 불가능하고 병력 보충과 보급이 부실한 편이었으나 외형상으로 독일군은 흠잡을 곳 없을 만큼 깔끔하게 준비된 상태였다.

상관 룬트슈테트와 부하 롬멜의 대립

그렇지만 큰 문제가 숨어 있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권력자의 간섭이 심했다. 또 군부가 우왕좌왕하는 행태를 보이면서 완벽한 겉모습과 달리 지휘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B집단군 사령관 롬멜은 총통경호대장 출신답게 히틀러와의 관계가 각별했다. 북아프리카에서의 패배로 물러난 그를 불러 군부의 반대에도 다시 중책을 맡긴 사람이 히틀러였다.

반면 직속상관인 룬트슈테트는 군부 내에서 신망이 높았지만 히틀러와 반목하는 사이였다. 롬멜보다 16세 연상이었지만 같은 원수(元帥)이고 히틀러의 신임도도 차이가 크다 보니 그의 권위가 제대로 통하지 않았다. 더구나 롬멜은 툭하면 계통을 무시하고 총통과 직접 연락해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고는 했다. 이 때문에 룬트슈테트는 자신의 명령이 파리에 있는 사령부 안에서나 통한다고 한탄했을 정도였다.

여타 조직처럼 군부 또한 사람이 모인 집단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력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보수적인 독일 군부의 권위를 대표하는 룬트슈테트와 특유의 지휘 능력에다 히틀러의 총애까지 등에 업고 승승장구한 소장파 롬멜의 미묘한 대립은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 둘의 충돌이 개인의 이기심보다 작전의 수립 및 전개에 있어서 벌어진 전술전략상의 갑론을박이었다는 점이다.

가장 크게 대립한 부분은 기갑부대의 운용과 관련한 문제였다. 먼저 최대한 해안가 가까이에 기갑부대를 배치하여 놓고 있다가 상륙하는 적을 즉시 바다로 밀어붙이자는 의견이 있었다. 반면 내륙의 유리한 위치로 연합군을 끌어들인 후 기갑부대로 일거에 소탕하자는 주장도 있었다. 한 치의 양보 없이 팽팽히 대립했는데, 전자를 주장한 사람이 롬멜이었고 반대 측의 대표자가 룬트슈테트였다.

히틀러의 지나친 간섭도 패배 원인

남도현 DHT AGENCY 대표·군사 저술가
전쟁이 중반기를 넘어서면서부터 모든 지휘관이 옆에 두고 싶어 할 만큼 어느덧 기갑부대는 지상군의 핵심이 되어 있었다. 공급이 한정된 전력을 자신의 책임하에 자신의 의도대로 사용하려는 것은 지휘관의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정작 본질적인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당시 독일의 주요 기갑부대는 히틀러의 명령 없이 이동이나 작전 투입이 불가능한 별개 조직이 되어버린 상태였다. 따라서 막상 노르망디에 연합군이 상륙했을 때 독일의 일선 지휘관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잠자리에서 총통이 빨리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밖에 없었다. 바로 옆에 있는 기갑부대를 이용할 수 없어 독일의 장군들은 연합군을 쳐다보면서도 상륙을 효과적으로 저지하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현장을 중시하던 독일군 특유의 장점을 잃어버리게 된 데는 이처럼 사람의 문제가 컸다. 업무가 늘어나면 조직이 확장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규모가 커지면 의사 결정이 늦어지거나 애초 생각과 달리 엉뚱한 방향으로 조직이 움직이는 문제도 함께 벌어진다. 이 때문에 책임과 의무를 명확히 해주고 자율적으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권한을 위임해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기서 핵심은 부하들에게 자신의 권한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확고한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간섭이 강화되고 이로 인해 조직 내부의 분열이 조장된다면 조직이 제대로 기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1944년 노르망디에서 있었던 독일군의 사례는 좋은 반면교사다. 물론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이기기는 불가능했지만 만일 이런 내재적 문제가 없었다면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전쟁사에 좀 더 다르게 쓰였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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