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功을 세워 자랑한 지백과 침묵한 하륜, 결말은 판이했다

Culture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입력 2019.09.27 03:00

[이한우의 논어 제왕학] (6) 어떤 인재를 뽑을 것인가

일러스트=정다운
제왕이 정치를 잘하려면 좋은 신하를 잘 알아보고 골라서 적재적소에 쓰는 것 외에 다른 방도는 없다. 이는 오늘날 기업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공준(公準)이라 할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그런 인재를 알아볼 것인가 하는 것인데 이는 실은 쉬운 일이 아니다. 쉽다고 여기면 어려워지고 어렵다고 여기면 쉬워지는 게 사람을 알아보는 지인(知人)의 문제다. 조선 성종 9년(1478년) 11월 30일에 당대의 석학이었던 홍문관 부제학 성현(成俔) 등이 본격적인 친정(親政)에 나선 성종을 위해 인재를 선발하는 방법을 담은 글을 올렸다. 그중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논어등반학교장
"사양하며 자랑하지 않는 자는 그 뜻이 가상하고, 공손하여 자랑하지 않는 자는 그 뜻을 취할 만하며, 신중하고 말수가 없는 자는 사람을 용납하는 아량이 있으며, 청렴하고 결백한 자는 돌같이 굳은 지조가 있는 자이니, 반드시 그 덕행(德行)을 고찰해서 벼슬에 나아오게 해 요행을 바라는 무리로 하여금 함부로 진출하지 못하게 한다면, 많은 업적이 모두 이루어져 국가가 자연 평안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여기서도 맨 처음에 강조하는 것은 "사양하며 자랑하지 않는 자는 그 뜻이 가상하고, 공손하여 자랑하지 않는 자는 그 뜻을 취할 만하다"고 말한다. 반대로 있는 공로는 물론이고 없는 공로까지 만들어서 자랑하는 자가 있다면 그런 신하부터 내치는 게 바른 통치의 첫걸음이라고 할 것이다.

자랑하는 아들을 꾸짖은 어머니

이 불벌(不伐·공을 자랑하지 않음)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다음과 같은 사례를 자주 언급했다. '열녀전(列女傳)'(글항아리)이라는 책이 있다. 조선 시대 지조 있는 여인들을 가리키는 열녀(烈女)와는 다른, 여러 뛰어난 고대 중국의 여인들 이야기다. 한나라 유향(劉向)이라는 유학자가 지은 책인데, 한마디로 말해 사람을 알아보는[知人] 훈련서로 몇 안 되는 책이다.

거기에 진(晉)나라 범헌자(范獻子)의 아내 이야기가 나온다. 그의 세 아들이 당시 실력자인 조간자(趙簡子)의 집에 놀러 갔다. 그의 정원에는 나무가 많았다. 조간자는 범헌자의 세 아들에게 이 나무들을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이때 첫째와 둘째 아들은 평범한 답변을 했고 막내아들이 눈에 띄는 답변을 내놓았다.

"세 가지 덕으로 백성을 부릴 수가 있습니다. 가령 산에 있는 나무를 베라고 명령해도 백성들은 할 것입니다. 먼저 정원을 개방해 나무를 베게 하는 것입니다. 저 산은 멀고 정원은 가까이에 있으니 이것이 백성들에게 하나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또 험한 산이 아닌 평지의 나무를 베게 하는 것이 두 번째 기쁨이 될 것입니다. 다 베고 나서 백성에게 싼값으로 판다면 백성에게 세 번째 기쁨이 될 것입니다."

조간자는 이 말을 듣고서 그대로 시행했다. 과연 백성들도 기뻐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맹자(孟子)가 늘 강조한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정신을 당대 실력자에게 권하여 시행하게 했고 또 백성들마저 기뻐했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칭송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세 아들의 어머니다. 막내아들은 자신이 내놓은 건의가 못내 자랑스러워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이런 일을 알렸다. 그런데 어머니는 칭찬은 고사하고 크게 탄식하며 이렇게 말한다.

"범씨 집안을 망하게 할 자는 바로 이 아이로구나. 공로를 떠벌려 자랑하면 어짊[仁]을 베풀기 어려운 법이고 거짓으로 남을 속이는 자는 오래 살지 못한다 했다."

그 아들 때문에 결국 패가망신

왜 그 어머니는 칭송받아 마땅한 일에 대해 오히려 '집안을 망하게 할 짓'이라 과민반응 했을까? 그 이유는 '서경(書經)' 군진(君陳)편에 나온다.

"네게 만일 좋은 계책[嘉謀]과 좋은 생각[嘉猷]이 있거든 곧장[則] 들어가 너의 임금에게 아뢰고, 밖으로 네가 그것을 알릴 때에는 이 계책과 이 꾀는 오직 우리 임금의 다움(德) 덕분이라고 하라!"

그 어머니는 이 구절의 의미를 깊이 알았다고 할 수 있다. 좋지도 않은 계책과 생각, 즉 거짓으로 백성을 동원했고, 심지어 그것이 임금이 아닌 자신의 공로라고 떠벌려 자랑한 것이다. 실제로 훗날 막내아들 지백(智伯)은 한동안 진나라의 실권을 장악하는 듯했으나 자신이 추대한 애공(哀公) 때 피살됐고 범씨 집안은 망했다. 이에 유향은 군자의 이름을 빌려 "범씨의 어머니는 난이 일어나는 근본을 알고 있었다[知難本]"고 평가한다. 윗사람을 삼가[敬] 모시는 자세가 그릇됨을 어머니는 일찍 알아차렸고 결국 그런 그릇됨으로 인해 지백은 죽게 된 것이다.

논어에 밝았던 하륜, 끝까지 겸손

'논어'에는 이보다 훨씬 구체적인 상하 관계의 미묘함을 전해주는 이야기가 나온다. 계씨(季氏)편에서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군자를 모심에 있어 세 가지 허물이 있으니, (윗사람의) 말씀이 미치지 않았는데 먼저 말하는 것을 조급함[躁]이라 하고, 말씀이 미쳤는데도 말하지 않는 것을 의뭉스러움[隱]이라 하고, (윗사람의) 안색을 보지도 않고 말하는 것을 눈뜬 장님[瞽]이라 한다."

조선 태종 때 임금을 가까이에서 보필한 재상 중 하륜(河崙)이 있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태종이 여러 차례 말한 대로 "저 사람의 귀로 들어간 것은 쉬이 입으로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태종이 수시로 그를 충신이라 극찬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군진(君陳)편을 다시 읽어보자. "네게 만일 좋은 계책과 좋은 생각이 있거든 곧장 들어가 너의 임금에게 아뢰고, 밖으로 네가 그것을 알릴 때에는 이 계책과 이 꾀는 오직 우리 임금의 다움 덕분이라고 하라!" 그랬기 때문에 지백은 사리를 몰라[不知禮] 비명횡사한 반면, 하륜은 격랑의 시기에 명예와 권력을 다 누렸음에도 천수를 다했다 할 수 있다. 하륜이 '논어'에 밝았음은 물론이다.

자랑 않는 신하 알아봐야 明君

불벌(不伐)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논어'의 사례 한 가지를 더 살펴보자. 공자는 노나라 대부인 맹지반(孟之反)을 칭찬하며 이렇게 말한다. "맹지반은 공을 자랑하지 않았다[不伐]. 패주하면서 후미에 처져 있다[殿]가 장차 도성 문을 들어오려 할 적에 말을 채찍질하며 '내 감히 용감하여 뒤에 있었던 것이 아니요 말이 전진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했다."

물론 여기서 맹지반은 공로를 세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자신이 뒤에 처져 마치 후미를 보호하려 용맹을 보인 것으로 오인될 수도 있었다. 따라서 굳이 이렇게 말을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그 스스로 그마저 솔직하게 밝힌 점을 공자는 높이 평가한 것이다. 당연히 이런 사람이라면 공로를 세웠다 해도 자랑하지 않았을 것[不伐]이다. 공자는 '주역'을 풀이한 계사전(繫辭傳)에서 이 문제를 다시 한 번 언급하는데 왜 그가 이 불벌의 문제를 중시했는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수고로움이 있어도 자랑하지 않고[勞而不伐] 공로가 있어도 자기 덕이라고 내세우지 않는 것[有功而不德]은 (그 다움의) 두터움이 지극한 것이니 이는 자신이 공로를 세우고서도 다른 사람에게 몸을 낮추는 것[下人]을 말하는 것이다. 다움[德]으로 말하자면 성대하고[盛] 예갖춤[禮]으로 말하자면 공손한 것[恭]이니 겸손함[謙]이란 공손함을 지극히 함[致恭]으로써 그 지위를 보존하는 것이다."

이런 신하를 제대로 알아보는 군주는 눈 밝은 군주[明君]라 할 것이다. 다만 역사 속에서 이런 군주는 열에 두어 명 될까 말까 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우리 기업들에서는 그 비중이 얼마나 될까? 참으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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