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비즈

'영국의 백종원' 문어발과 브렉시트에 무너지다

Analysis 남민우 기자
입력 2019.09.06 03:00

대영제국 훈장까지 받은 스타 셰프, 제이미 올리버가 파산한 네 가지 이유

영국의 '스타 셰프' 제이미 올리버(Oliver·44)의 식당 체인이 최근 경영난에 시달리다 파산했다. 이탈리아 식당인 '제이미의 이탈리안(Jamie's Italian restaurant)'과 스테이크 하우스 '바베코아(Barbecoa)' 등 25곳의 식당이 파산 절차에 들어가는 바람에 약 1300명의 종업원이 일자리를 잃게 됐다. 파산 신청 소식이 워낙 갑작스레 발표된 탓에 곳곳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끔찍하다"는 반응이 빗발쳤다.

올리버는 화려한 요리 기술을 자랑하는 셰프와는 거리가 멀다. 국내에서도 최근 인기를 끄는 한 스타 경영인 요리사처럼 소박하면서도 진솔한 요리법으로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1999년 TV 요리 프로그램 '네이키드 셰프(Naked Chef)'에 출연해 간단하고 꾸밈없는 요리를 소개한 것을 계기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학교 급식 실태를 고발한 다큐멘터리 '제이미의 학교 급식'을 통해 정부 대책을 이끌어내는 등 공익 활동도 활발했다. 올리버는 이러한 유명세에 힘입어 10여년 전부터 '제이미 올리버의 다이너(Jamie Oliver's Diner)' 등 여러 식당 체인을 열어 승승장구했다. 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요리로 대영제국 훈장까지 받은 스타 셰프의 성공 신화는 왜 10여년 만에 무너지고만 것일까.

(사진 위)영국의 ‘스타셰프’ 제이미 올리버가 자신이 만든 디저트를 쳐다보며 스푼으로 마지막 데코레이션을 하고 있다. /푸드앤와인
①브렉시트로 식자재 값 폭등

일차적으로 드러난 이유는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따른 경영난이다. 올리버의 식당 사업은 약 2년 전부터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주력 브랜드인 '제이미의 이탈리안'은 2016년 990만파운드(약 15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등 대다수 사업이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지난해 올리버 식당 체인의 영업손실액은 2000만파운드에 달했다.

올리버는 지난해부터 언론 인터뷰 등 공개 석상에서 종종 여러 악재가 동시다발로 겹친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 오고 있다고 걱정했다. 그는 "브렉시트 결정 이후 영국 파운드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식자재 수입에 들어가는 비용이 급증했다"며 "임대료와 이자 부담 증가, 최저임금 인상 등 각종 악재가 겹친 탓에 어떻게 해야 할지조차 모를 지경"이라고도 털어놨었다. 거시경제 부침에 대한 대응책이 미흡했다는 것이다. 그는 파산 직전 400만파운드(약 61억원)의 개인 자금을 투입해 회사를 되살리려 했으나, 채권단의 상당수가 원금을 돌려받기를 원해 결국 파산을 막지는 못했다.

②무리한 문어발식 확장

영국 요식업계의 공급 과잉, 온라인 배달 증가 등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한 것도 파산의 원인으로 꼽힌다. 전통 영국 식당 체인인 '유니언잭(Union Jack)'이 브렉시트 논란이 불거지기 이전인 2014년 문을 닫았던 것이 대표적인 문어발 확장의 실패 사례로 꼽힌다. 셰프로서 유명세를 얻었을지는 몰라도 수십개의 레스토랑 체인을 운영하는 노하우는 부족했다는 평가다. 이와 관련, 영국의 노동조합은 "경기 상황이 좋지 않은 가운데 제이미 올리버 식당 체인은 위태롭게 확장해 왔다"며 "이사회의 사업 확장 결정으로 식당 직원들과 납품업체 사람들이 큰 피해를 봤다"고 비판했다.

영국 요식업계는 최근 생존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있다. '파티세리 발레리(Patisserie Valerie)'의 파산으로 920개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바이런버거(Byron Burger)' '프렛조(Prezzo)' '칼루치오(Carluccio)'도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구조조정 전문 컨설팅 회사인 앨릭스파트너스에 따르면 영국의 체인 레스토랑은 지난 3월 말 현재 총 5785개로 전년 동기 대비 1.1% 감소했다. 식당업계 전문가인 사이몬 미드로스키는 "최근엔 식당 체인보다는 오히려 유연성을 가진 작은 식당 브랜드들이 더 잘되고 있다"고 말했다.

③'좋은 요리' 개발에 실패

올리버가 식당업의 본질을 잊었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TV에서는 화려한 요리법을 소개하며 대중의 눈길을 끌지 몰라도 정작 본업인 '좋은 요리'를 만드는 데 소홀했다는 것이다. 가령, 지난해 올리버 소유의 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는 이탈리아 전통 음식인 뇨키(gnocchi)를 냉동 재료를 사용해 만들다 논란이 일었다. 광고 문구에서는 '신선한 자가 제품(in-house)'이라고 강조했는데, 정작 고객의 접시에는 수입 냉동 뇨키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올리버 측은 "이탈리아의 전통 유기농 제품을 쓰기 위해 수입 냉동을 썼다"고 해명했으나 한 접시에 30달러를 내는 고객들의 불만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 음식 평론가는 "토스트에 버터 양이 부족한 것처럼 올리버의 식당은 전반적으로 요리사들의 경험과 실력이 매우 부족했다"고 혹평했다. 그의 주력 브랜드였던 '제이미의 이탈리안' 역시 평소 요리 신념과 별 연관성이 없고, 요리 자체도 무미건조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올리버는 자신의 이탈리아 식당이 '기존 형식을 깬 현대적 스타일'이라고 자화자찬했다. 그러나 메뉴 구성을 보면 피자, 파스타, 샐러드 등 요리 구성 품목들이 평범해 고객을 끌 만한 특별한 유인이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④성공 후 부메랑 된 '서민 이미지'

올리버가 대중의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평범한 사람(average Joe)'이라는 이미지와 더불어 공익 활동을 한 덕분이었다. 예를 들어 그의 레스토랑인 '피프틴(Fifteen)'은 2016년 런던 지점 매출만 260만파운드(약 39억2000만원)에 달했는데, 청소년 직업 재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마약·알코올 중독 청소년 15명을 훈련시켜 요리사로 데뷔시키며 많은 이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그러다 보니 그가 부를 쌓고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대외적으로 이미지가 모순되는 사례가 속속 발생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그는 글로벌 에너지 기업인 셸에 직원 음식을 납품하는 900만달러짜리 사업 계약을 따냈는데, 대중은 올리버의 이러한 결정에 거세게 반발했다. 평소 기후변화에 부쩍 목소리를 높이던 그가 석유 메이저 회사와 사업 계약을 맺은 것은 '배신'이라는 반응이었다. 여기에 그의 재산 규모가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올리버가 돈을 벌더니 변했다'는 비판도 터져나왔다. 파올로 아베르사 런던 카스경영대학원 부교수는 "사람들은 올리버 셰프가 건강한 식습관과 사회봉사를 추구했던 만큼 그의 주력 사업도 이런 본질을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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