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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버핏이 투자의 대가? 종업원 39만명 거느린 인재 관리의 귀재

Opinion 이지훈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입력 2019.08.23 03:00

[이지훈의 CEO 열전] (8) '재벌 총수' 워런 버핏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지난 2017년 5월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 블룸버그
'워런 버핏'이란 이름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투자의 대가, 세계 최고 부자 중 한 사람…. 그러나 버핏이 뛰어난 경영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숫자를 파악하는 데 비상했지만, 사람을 쓰는 데도 비상했다. 버핏의 친구이자 미국 하원의원이었던 톰 오스본은 말했다. "그는 기업보다는 사람을 발탁함으로써 성공할 수 있었다."

사실 워런 버핏은 재벌그룹 오너라고 볼 수 있다. 그의 회사 버크셔 해서웨이는 많은 기업을 자회사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코카콜라나 애플 같은 주식을 10% 안팎씩 사들여 장기 보유하지만, 어떤 기업은 인수해 직접 경영하기도 한다. 2018년 말 현재 74개 기업을 자회사로 두고 있는데, 이 중 대부분을 100% 소유하며, 최소한 80%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 일반적인 투자회사와 크게 다른 점이다. 자회사들 면모는 다양하다. 보험을 비롯해 제조, 에너지, 유통 등 다양한 업종 기업들이 포함돼 있고, 종업원을 모두 합치면 39만명에 이른다.

기업 인수때 기존 경영자 유임

그런데 워런 버핏이 재벌 총수라면 다른 총수들과 다른 점이 많다. 가장 다른 점은 자회사에 거의 완전한 자율 경영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버핏은 기업을 인수할 때 기존 경영자를 그대로 존속시킨다. 믿을 만한 사람을 면밀하게 고른 다음, 인수하기 전과 마찬가지로 계속 회사를 운영하게 한다. 버크셔의 최고경영자(CEO)들은 본사에 매일 전화 보고를 하거나 주간 보고서를 올릴 필요도 없고, 계열사 사장단 회의에 참여할 필요도 없다. 원하지 않으면 서로 만날 일도 없다. 그룹 차원의 경영 방침도 없다. 어느 자회사 CEO는 버크셔에 인수되고 20년이 지난 뒤에야 버크셔 본사가 있는 오마하에 발을 디뎠다고 한다.

버핏은 "뛰어난 CEO에게 그가 맡은 회사의 운영 방법을 하달하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시시콜콜 간섭을 하면 우리를 위해 일해 주지 않을 것이다. 야구 천재에게 야구 방망이를 언제 휘둘러야 한다는 조언을 해줄 필요가 없다"고도 했다. 버크셔가 인수한 진공청소기 회사 스콧펫처 랠프 셰이 CEO는 "버핏이 가진 가장 큰 힘은 내가 원하는 대로 기업을 경영할 수 있도록 자유를 부여해 준다는 점"이라며 "다만 모든 책임은 버핏이 아니라 내가 져야 한다"고 말했다. 경영진 교체는 거의 없다. 3대째 가구 판매 가업을 이은 네브래스카 퍼니처 마트라는 회사의 로즈 블룸킨 여사는 회사를 버크셔에 팔고도 15년을 더 일하다가 104세에 별세하면서 비로소 은퇴했다.

업무에 애정 있는 사람을 CEO로

CEO들은 버크셔의 자회사가 되고 나서 버핏과 언제든 상의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은 점이라고 말한다. 시즈캔디의 전 CEO 찰스 허긴스에 따르면 버핏에게 생각을 물으면 '이렇게 하시오'라고 지시하는 법이 없다. 그는 여러 예를 들려주며 '이런 건 생각해 봤습니까?'라고 묻는다. 버핏은 또한 어렵게 보이는 것을 이해하기 쉬운 것으로 만들어 주며 용기를 불러일으키기에 그와의 만남은 마치 수업시간 같다고 CEO들은 말한다.

자율경영의 전제조건은 사람을 신중에 신중을 기해 고르는 것이다. 버핏은 CEO를 고르는 기준 세 가지를 밝힌 적이 있다. 자신이 기업을 마치 100퍼센트 소유한 듯 경영하고, 그 기업이 세상에서 가지고 있는 자신의 유일한 자산인 듯이 경영하고, 적어도 100년 동안은 팔지 않을 듯이 경영하는 사람이다. 버핏이 인수하는 기업의 CEO는 굳이 그 일을 할 필요가 없지만, 일에 대한 애정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100년 된 기업을 몇 대째 경영하는 사람도 많다. 버핏은 그들을 예술가라 부르며 그들이 연주할 마음이 내키도록 연주회장을 마련해주는 것이 자기 일이라고 말한다.

자회사 재무 부문은 엄격 관리

그러나 자율경영이 무정부주의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버핏은 경영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가차 없이 간섭의 칼날을 휘두른다. 버핏은 자회사 경영진이 반드시 지켜야 할 몇 가지 원칙을 정했는데, 흔히 '오너 매뉴얼'로 불린다. 그 기본 철학은 경영진이 '오너처럼 행동하라'는 것이다.

오너 매뉴얼의 행동 강령 첫째는 노력한 만큼 받는다는 성과 보상 원칙이다. 버크셔의 경영자들은 자신이 영향력을 발휘한 결과에 대해서만 보상을 받는다. 운 좋게 수익성이 좋은 업체를 경영하기에 아무 하는 일 없이 좋은 성과가 났다면 보상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버핏은 CEO들이 단기 실적이나 주가에 연연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 버핏은 경영자의 신규 투자 실적을 평가할 경우 최소 5년 이상을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

행동 강령 둘째는 양적인 성장이 아니라 수익률을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원칙이다. 필요하다면 경영자의 판단으로 얼마든 추가 자본을 투여할 수 있지만, 투자자본의 수익이 기대에 못 미친다면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셋째는 제대로 투자할 자신이 없는 돈은 본사로 보내라는 것이다. 잉여 자본을 그저 쌓아두거나, 혹은 무모하게 '성장을 위한 성장'에 투자할 경우 주주들에게 큰 피해를 주게 된다. 그러니 자신이 없으면 탁월한 '자본 배치가'인 워런 버핏이 있는 본사에 보내고, 본업에만 신경 쓰라는 것이다.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버핏은 초기에 섬유업 등에서 투자 실패를 겪으며 인간의 본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흔히 사람이 무언가에 돈과 노력을 쏟아 부었는데 잘 되지 않으면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잡고자 더욱 깊이 빠져들게 된다. 그런 생각이 머리를 지배해 현실을 냉정히 보지 못할 경우 회사는 파산하고 만다. 버핏은 경영자가 이런 '심리적 관성'에 빠지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버핏이 주식 단순 투자에 그치지 않고 기업을 인수하게 된 데는 자신이 단순 투자자에 머물러서는 기업이 그런 잘못된 길을 가도 제어할 수 없다는 이유도 있다.

버핏은 이처럼 최고경영자의 선정과 보상, 그리고 자본 배치 문제에는 관여하되 그 밖의 인사 결정과 경영 전략은 해당 경영자에게 믿고 맡겼다. CEO들은 그래서 소유권을 갖지 않고서도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일했다. 스타퍼니처 전 CEO 멜빈 울프는 "버핏이 일에 조금도 간섭하지 않았기 때문에 버크셔를 위해 일하는 느낌이 들지 않고, 우리 회사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신뢰에 바탕을 둔 워런 버핏의 경영은 "다스리지 않는 것이 최고의 다스림"이라는 노자의 사상을 연상시킨다. 오너처럼 행동하게 하려면 오너로 대접하라. 오늘 워런 버핏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본 기사는 조선일보 위클리비즈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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