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타 테스트'라는 용어가 자주 쓰인다. 주로 IT(정보기술) 기업이 제품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전 소수 사용자들에게 미리 시험 삼아 사용하게 하는 일을 말한다. 오류가 있는지 미리 발견하고 조치하기 위해서다. 카풀 정식 서비스 이전에 베타 테스트를 통해 시범 운행했던 카카오처럼 많은 IT 기업은 베타 버전을 내놓고 소비자 반응을 점검한다. 제품을 출시한 다음에 베타 테스트를 계속하기도 한다. 구글은 지메일을 2004년 출시했지만, 사용자가 수천만명으로 늘어난 2009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베타 테스트를 벗어났다.
'영구적 베타'로 살아야
급변하는 세상에서 우리 삶의 자세도 베타 테스트 같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업가가 있다.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업체 링크드인(Linkedin) 창업자이며 성공한 벤처 투자자 중 하나인 리드 호프먼(Hoffman)이다. 그는 '영구적 베타'의 삶을 살자고 강조한다. 호프먼은 '실리콘밸리의 오러클'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신이 내린 용한 점쟁이라는 뜻이다. 그가 투자한 페이스북, 에어비앤비, 플리커, 징가, 그루폰 등이 대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창업자들이 가장 만나서 조언을 듣고 싶은 사람으로 꼽힌다.
그런 호프먼이 수많은 스타트업에서 발견한 건 완벽한 사업 계획에 의해 성공하는 회사는 없다는 사실이다. 직접 창업한 링크드인도 그랬다. 초기 링크드인은 회원들이 스스로 지인을 이메일로 초대하도록 했다. 하지만 시행착오를 통해 입소문을 터뜨리는 더 좋은 방법을 찾아냈다. 회원들이 자기 주소록을 링크드인에 업로드하게 하고, 그중에서 누가 링크드인 서비스를 이미 이용하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호프먼이 링크드인 창업 전 COO(최고운영책임자)로 일했던 페이팔도 늘 바뀌었다. 처음 페이팔 개념은 현금을 휴대전화에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암호화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각자 PDA(휴대용 컴퓨터)를 통해 저녁 식사 비용을 나눠서 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결국 현금을 PDA 일종인 팜파일럿을 통해 무선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소트프웨어로 발전했다. 그러나 당시 소비자들은 무선으로 돈을 주고받는 데 익숙하지 않았고 시장 반응은 기대에 못 미쳤다.
그러던 차에 언젠가부터 온라인 경매 사이트 이베이(Ebay) 사용자들이 페이팔 서비스를 많이 이용하기 시작했다. 온라인 경매에서 물품 대금을 결제할 때 수표를 끊어서 우편으로 보내는 기존 방식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페이팔은 '아, 어쩌면 이 사람들이 고객일 수 있어'라고 생각했다. 온라인 상거래에 편리한 결제 방식을 제공하는 것으로 사업 방향을 전환하고, 팜파일럿 결제 애플리케이션은 접었다. 호프먼 본인 인생 진로도 고정된 길을 따르지 않았다. 대학원을 다녀 보고서야 비로소 학계가 적성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늘 '플랜 B'를 생각하라
호프먼은 '어떻게 나를 최고로 만드는가'라는 책에서 기업도, 개인도 플랜 A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항상 플랜 B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플랜 A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반복적으로 실행하는 걸 말한다. 플랜 B는 진로의 방향이나 목표를 바꾸거나 목표를 달성하는 중요한 방법을 바꿀 때 필요한 계획을 말한다.
호프먼은 온라인 이성교제 사이트 소셜넷을 공동 설립했는데, 그러면서 스탠퍼드대 동창 피터 틸이 창업한 페이팔 일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는 결국 소셜넷을 떠나 페이팔 COO가 되는 플랜 B를 택했고, 그 뒤 다시 링크드인을 창업했다. 호프먼은 일주일에 하루는 플랜 B에 투자하라고 조언한다. 새로운 기회에 늘 열려 있으라는 그의 조언은, 한번 세운 목표를 끈기 있게 추진하라는 오래된 성공의 지혜와 상충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호프먼은 정답은 "둘 다"라며 양자택일의 오류에 빠지지 말라고 말한다.
성공하는 사업가들은 끈질기면서도 유연하다. 회사의 뿌리인 가치관과 정체성은 지켜야 하지만, 그 외의 것은 언제든 바꿀 수 있다는 유연함을 가져야 한다. 또 다른 유명 벤처캐피털리스트 마크 수스터(Suster) 역시 '무엇이 창업가를 만드는가'에서 성공하는 창업가의 12가지 특징으로 첫째 끈기와 셋째로 '방향 전환(pivot)' 능력을 함께 꼽았다. 포르셰의 디자인 정책이 "바꿔라, 그러면서 바꾸지 마라(Change it, but don't change it)"인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호프먼이 자주 사용하는 비유는 "절벽에서 몸을 던지고 떨어지는 동안 비행기를 조립하라"다. 스타트업일수록 플랜 B가 더욱 필요한 이유다. 플랜 Z까지 만들면 더욱 확실하다. 최악의 상황이 닥쳤을 때에 대비한 비상 계획이다. 마지노선이자 안전망이다. 플랜 A와 B 모두 실패했을 때 카페에서 알바를 하면서 부모님 집에 얹혀 살며 후일을 기약하는 자세다.
'뜻밖의 행운' 만날 확률 높여라
기업이든 개인이든 성공에 이르는 과정은 최종 목적지가 정해져 있지 않은, 끝없는 여행과도 같다. 현실은 처음 계획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도 많다. 운이 작용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우리는 삶을 우연과 운에 맡겨두어야만 할까? 호프먼은 "노"라고 말한다. 운이 내게 다가올 확률을 높이라고 말한다. 호프먼은 젊은 시절 애플에서 일한 적이 있다. 처음에 사용자 경험 부서로 배치됐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애플 같은 회사에선 제품 관리 부서가 가장 중요하고 배울 게 많은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문제는 그가 이 분야에 전혀 경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가 생각해 낸 방법은 여가시간에 무보수로 일을 해주는 것이었다. 그는 제품 관리 책임자를 찾아가 몇 가지 좋은 제품 아이디어가 있다면서 자신의 일과 별도로 그 제품 아이디어를 보고서로 제출하겠다고 말하고 실행에 옮겼다. 제품 관리자들은 그 아이디어를 높게 평가해 주었고, 그는 부서를 옮길 수 있었다.
세렌디피티(serendipity)란 단어가 있다. '우연한 행운'을 뜻한다. 그런데 세렌디피티는 적극적으로 뭔가 행동을 하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호프먼은 수많은 콘퍼런스와 모임에 참여하고, 마크 저커버그 같은 창업가와 대담을 나누는 팟캐스트를 운영한다. 세렌디피티가 찾아올 기회를 늘리는 방법이다.
수많은 기회가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아 안타까운가? 좋은 우연을 만나기 위한 시간을 따로 만들라. 인공지능 콘퍼런스에 참여하라. 평소에 안 읽는 책을 읽으라. 여행을 떠나라. 다른 부서 직원과 점심을 같이 하라. 법석을 떨라. 그리하여 플랜 B와 세렌디피티가 찾아오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