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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 마지노선 뚫은 독일 전격전의 비밀

Analysis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입력 2018.10.19 03:00

1차대전 패전 딛고 유럽을 집어삼킨 독일군, 혁신의 본보기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이다. 폴란드를 점령하면서 기세를 올린 독일군은 1940년 5월 10일 프랑스 침공 후 불과 1개월이 지난 6월 14일 파리를 함락하고 6월 22일 항복을 받아냈다.

독일군은 1918년 1차 세계대전 패배 이후 사실상 무장해제된 상태였다. 히틀러가 1935년부터 재무장에 나섰지만 준비 기간은 짧았다. 반면 육군 강국이자 유럽 대륙 맹주인 프랑스는 영국과 연합군을 구성한 상태. 독일군은 객관적 전력에서 연합군보다 열세였지만 단기간에 경이적인 승리를 거뒀다. 그 핵심은 '궁즉통(窮則通)'이다. '궁즉변 변즉통(窮則變 變則通)',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로 요약된다. 무기와 전술, 전략과 임무 체계에 걸쳐 필사적인 혁신을 끌어낸 결과물이다.

①악조건을 혁신 밑거름으로

독일은 1차 대전 패전으로 베르사유 조약에서 가혹한 배상 조건과 엄격한 군비 축소를 강요당했다. 육군 병력은 10만명이 상한선, 전차와 장갑차, 중(重)기관총을 보유하지 못하게 됐다. 해군 병력은 1만5000명, 전함 6척, 순양함 6척, 구축함 12척, 어뢰정 12척에 10만t으로 보유 규모도 제한됐다. 공군은 보유 자체가 금지됐다. 양적 축소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독일군은 질적 수준 유지를 추구했다. 육군을 장교와 부사관 위주로 운용하고 전차와 장갑차는 모형을 만들어 훈련했다. 민간인 비행클럽을 창설하여 향후 공군 조종사 자원으로 양성하는 편법을 사용했지만 전체적인 군사력은 열세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제약들은 오히려 질적으로 우수한 최신식 무기를 개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1차 대전 보병 핵심 장비는 중(重)기관총이었다. 고성능 중기관총이 없는 보병 부대 전투력은 한계가 분명했다. 그러나 중기관총 보유를 제약하자 독일은 MG34라는 경(輕)기관총을 개발한다. MG34는 가볍고 작아서 보유가 허용된 경기관총이긴 하지만 중기관총에 필적하는 성능에 내구성도 좋았다. 이후 MG42로 개량되면서 독일 보병의 핵심 무기가 됐다. '히틀러의 전기톱'이란 별명도 얻었다. 또 대포 보유를 제한하자 대포와 기동력을 결합한 기갑 전력에 집중했다. 해군도 수상함 보유가 제약되자 대규모 잠수함 부대를 육성한다. 2차 대전 초기 대서양을 장악한 잠수함 U보트는 영국 보급로를 위협했다. 공군은 1차 대전 때의 정찰과 관측 개념을 벗어나 지상군을 지원하는 공중 포병 기능에 충실한 급강하 폭격기 Ju87 슈투카를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일러스트=김종규
②고립적 참호전→유기적 전격전

독일군은 비대칭 전력 개발에 주력하고 단위 무기에서 우수한 제품을 생산했다. 하지만 전체 전력에서는 프랑스·영국 연합군이 우위였다. 보병 전력은 양측이 136개 사단으로 동일했다. 그러나 기갑 전력은 연합군 3400대, 독일군 2400대로 연합군이 우세였다. 프랑스 주력 전차 소무아(Somua S35)와 샤르(Char B)는 독일군 2호·3호 전차를 성능 면에서 압도했다. 야포에서도 연합군 1만1200문, 독일군은 8000문이었다. 공군에서는 연합군 1200기, 독일군 3000기로 독일이 우위였다. 독일군은 하드웨어 열세를 소프트웨어로 극복했다. 전격전(電擊戰·Blitzkrieg)이 그것이다.

전쟁사에서 1차 대전은 소총과 기관총, 장거리 포병 위주의 대규모 화력전으로 진행하는 2세대 전쟁이었다. 독일군은 기계공학 발전을 발판으로 전차와 항공기를 보병·포병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3세대 전쟁 시대를 개막했다. 2세대 전쟁은 참호전으로 2차원 평면에서 밀고 밀리는 양상이라면 3세대 전쟁은 전격전으로 3차원 공간에서 격돌하는 입체적 개념이다. 폭격기와 포병이 적진을 타격하고 전차가 전선을 돌파하면 보병이 제압하는 동태적 전쟁이다. 프랑스는 여전히 기관총을 거치한 참호에 전력을 분산 배치하는 정태적 참호전에 머물러 있었다.

전격전을 위해서는 작전 개념 전환과 아울러 전투 현장에서 실행할 수 있는 유기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핵심인 전차 설계와 운용 부문의 혁신이 출발점이었다. 당시 연합군 전차는 지휘관 전차에 해당하는 20%에만 무전기가 있었고 차량 간에는 수신호로 연락하였다. 반면 독일군 기갑사령관 하인츠 구데리안 장군은 모든 전차에 무전기를 설치하여 실시간 통신을 통한 전차 간 유기적 협조를 가능하게 했다. 구데리안은 전차부대를 독립적 작전단위로 인식하는 발상의 전환으로 전차 운용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양적, 질적으로 우수하지만 소규모로 분산된 연합군 전차 전력을 압도했다. 세계 최초로 전차를 개발한 영국조차도 기술 발전에 대응한 운용 개념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③현장 지휘관 중시하는 '임무형 지휘체계'

동태적인 전격전은 급변하는 전장 상황에 대처하는 현장 지휘관 역량이 승패의 핵심이다. 독일군은 프로이센 군대 시절 전통인 '임무형 지휘체계(Auftragstaktik)'를 재정립, 전투력을 높였다.

프로이센 공국은 오스트리아·프랑스·러시아 동맹과 3대1로 맞붙은 7년 전쟁(1756~1763년)에서 승리하면서 유럽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1806년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에 대패하면서 대대적인 군사제도 개혁에 나섰다. 샤른호르스트 참모총장은 참패 원인을 '프로이센 전통의 무조건적인 규율'에 따른 '사고의 경직성'과 '지휘관들의 피동적인 지휘'로 분석했다. 현장 지휘관이 사소한 일까지 상부 명령을 기다리는 소극적 자세가 패배 원인이었다고 보고 '임무형 지휘체계'를 정립했다. 상부 명령은 간단하고 명확하게 내리되 전체 목표와 작전계획 범위 내에서 현장 지휘관에게 구체적 달성 방안을 스스로 고민하고 실행하는 재량권을 광범위하게 허용하는 방식이다. 이는 이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1866년)과 프로이센·프랑스 전쟁(1870~1871년)에서 승리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1차 대전 패전 이후 참모총장으로 취임한 한스 폰 제크트(von Seeckt) 장군은 육군 기계화 추세에 따른 기동부대 지휘를 위해 현장 지휘관에게 더 많은 재량을 부여하여 상황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게 하는 임무형 지휘에 입각한 기동전을 강조했다. 이런 행동의 자유는 영국군과 프랑스군의 도식적이고 교과서적인 접근법에 비해 독일군이 전술적 우위를 가질 수 있게 해줬다.

④발상의 전환으로 적의 허점 찔러

프랑스는 1차 대전 이후 남부 지역 독일과의 접경에 일종의 영구적 참호인 마지노선을 구축하였다. 350㎞ 길이로 연결된 요새에서 보병들이 보급 없이 수개월을 방어할 수 있는 난공불락 요새였다. 프랑스군 지휘부는 독일군이 마지노선을 피해 북부 벨기에 국경으로 침공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주력을 집결시켰다. 그러나 독일군은 대낮에도 어두울 정도로 울창한 삼림지대인 중부 아르덴 고원을 통하여 7개 기갑사단을 포함한 45개 사단 병력 주력부대를 3일 만에 이동시켰다. 중무장한 대부대가 갑자기 배후에 나타나면서 거대한 포위망이 형성되었고 전선은 급속히 무너졌다. 이런 허를 찌르는 이른바 '낫질작전(Sichelschnitt)'은 독일군 명장 만슈타인 장군의 아이디어였다. 프랑스군 지휘부가 독일군의 침공이 불가능한 지역으로 간주한 험지를 기갑부대가 통과해서 후방으로 침투하여 적군을 포위하여 섬멸한다는 작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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