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비즈

50대 후반도 'OUT' 세대교체 바람부는 월스트리트

Analysis 이철민 선임기자
입력 2018.10.05 03:00

[이철민의 Global Prism] (7)

이철민 선임기자
“현 최고경영자(CEO) 후계자는 승계 시점에서 50대 초중반이 되는 임원 중에서 발탁한다. 만약 그 이전에 지금 CEO가 갑작스럽게 사임하는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CEO의 복심(腹心)으로 노련한 경력을 지닌 2인자가 임시 배턴을 넘겨받는다.”

지난 1일 데이비드 솔로몬(56)이 새 CEO로 취임한 골드만삭스, 석 달 전 후계 구도를 가늠케 하는 인사를 발표한 미 금융업계 6위 모건스탠리, 올해 초 후계자 후보군을 발표한 JP모건체이스까지 월스트리트는 50대 CEO로 물갈이나 사전 정지 작업이 한창이다.

49세 후계자 점찍은 모건스탠리

모건스탠리에서 9년째 회장 겸 CEO를 맡고 있는 제임스 고먼은 지난 7월 인사를 단행했다. 49세의 테드 픽(Pick)에게 트레이딩 및 투자뱅킹 부문을 총괄하게 하고, 프랑스 출신 프랭크 프티거(Petitgas·57)에겐 해외 사업 전체를 맡겼다. 이 두 사람이 속한 그룹 위에는 경험 많은 콤 켈러허(60) 현 사장이 있다. 하지만 월가 소식통들은 가장 주목해야 할 사람은 테드 픽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모건스탠리 내부에서는 매우 예리하게 사안을 분석해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아내는 픽을 놓고 “해럴드 스탠리와 헨리 모건 두 사람이 낳은 아이 같다”는 말을 한다. 스탠리와 모건은 1935년 지금의 모건스탠리를 JP모건에서 떼어내 창업한 인물들. 픽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사태로 미국 금융회사들이 치명타를 입었을 때 주식 투자 부문의 공동 책임자였다.

그는 당시 최대 펀드사들에 모건스탠리에 대한 투자를 포기하지 말 것을 호소했다. 그 덕에 월가의 펀드 매니저들로부터 “명예롭게 피를 흘리며 모건스탠리를 지켜냈다”는 찬사를 받았다. 고먼의 후계자 그룹엔 모건스탠리의 투자관리 부문을 이끄는 댄 심코위츠도 있다. 픽보다 네 살이 많은 심코위츠는 2015년 10월 픽과 함께 회사의 운영위원회 위원으로 처음 발탁돼 최고관리직 임원 경험을 쌓았다.

그래픽=윤혜연
여성 후계자 키우는 JP모건체이스

모건스탠리 글로벌본부는 뉴욕시 미드맨해튼에 있다. 여기서 불과 두 블록 떨어진 JP모건체이스 본사에서 지난 2월 말 ‘투자가의 날’ 연례행사가 열렸다. 부문별 대표가 각각 소관 비즈니스를 설명하던 예년과 달리 한 명의 여성이 무대에 올라 뚜렷한 영국 악센트로 모두 4개 부문 비즈니스를 90분 동안 설명했다. 모건스탠리의 테드 픽과 같은 1969년생으로, JP모건체이스의 CEO 후계자 수업을 쌓고 있는 최고재무책임자(CFO) 마리안 레이크(49)였다.

영국 태생으로 JP모건체이스에서 근 20년 잔뼈가 굵은 레이크는 이날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이미 작년 11월쯤에 발표안 개요를 짰고, 1월까지 끊임없이 알맹이를 채우며 연습했다고 한다.

이에 앞서 지난 1월 JP모건체이스는 공동 사장과 공동 최고운영책임자(COO)라는 직책을 신설하고, 회사 내 최고 선임자인 고든 스미스(59)와 대니얼 핀토(55)를 각각 승진시켰다. 하지만 이들이 JP모건체이스의 회장 겸 CEO인 제임스 다이먼(62)을 승계하는 것은 아니다. 다이먼이 이날 “앞으로 약 5년간 지금의 직책을 수행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따라서 ‘후계자 후보’는 현재 50세 안팎으로, 두 사람보다 한 단계 낮은 직급의 CFO 마리안 레이크, 자산관리 부문 총괄인 메리 어도스(50), 커머셜 뱅킹 총괄인 더글러스 B 페트노(52)가 거론된다. 실제로 미국의 ‘빅 6’ 은행에서 지금의 CEO가 취임한 나이는 49~56세였다. 고든 스미스는 다이먼이 예상치 못하게 CEO·회장직을 수행하지 못할 경우에 JP모건체이스의 ‘구원투수’로 나설 다이먼의 복심이다.

다이먼의 후계자로 현재 가장 주목받는 마리안 레이크는 2012년 JP모건체이스의 런던 오피스가 빚은 최악의 파생상품 투자 참사(62억달러)를 잘 처리하면서 다이먼의 신망을 샀다. 또 분기마다 애널리스트·투자가와의 콘퍼런스콜에 고정 출연해 허풍과 직설, 외설적인 농담 등 말실수로 코너에 몰린 다이먼을 ‘구출’하기도 한다. 작년 10월에도 다이먼은 비트코인에 대해 “사기”라고 말했다가 질문이 쏟아지자, 레이크가 대신 “적절히 규제만 된다면 디지털 통화의 잠재적 이용 가치에 대해 회사는 개방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해 비난을 잠재웠다. 미혼인 레이크는 42세 되던 해 아기를 갖기로 결심하고 대리모(代理母)를 통해 세 명을 낳아 키우는 싱글맘이다. 속사포같이 쏟아내는 발언, 숫자들을 완전히 암기하고 엄청난 정보를 요구하는 그의 업무 능력 탓에 레이크와 새로 일하게 되는 이들은 처음엔 두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다이먼은 레이크를 놓고 “위대한 리더가 되기에 필요한 모든 자질을 다 갖췄다”고 했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결정된 것은 없고 늘 변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JP모건체이스를 13년간 이끌면서 압도적인 1위의 은행으로 키운 다이먼의 뒤를 잇는다는 것은 아무리 능력이 출중하다 해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8월 중순, 경쟁사 모건스탠리가 영향력 있는 CEO가 물러날 때에 회사가 입을 수 있는 타격을 따진 ‘키맨(key man) 리스크’를 주요 기업별로 작성한 보고서도 금융 기업 중에선 다이먼을 가장 먼저 언급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이먼은 2005년 CEO가 된 이래 2008년 금융 위기를 잘 헤쳐나가면서 주가를 193%나 올렸다. 재임 중 JP모건체이스에 대한 투자 수익률은 S&P500 기업 평균보다 2% 높았다. 하지만 5년 뒤든 언제든 다이먼은 결국 떠날 수밖에 없다.

그동안에도 JP모건체이스에서 적지 않은 스타들이 다이먼의 장기 집권 탓에 다른 곳에서 빛을 발해야 했다. 빌 윈터스는 스탠다드차타드의 CEO로, 제임스 E 스탠리는 바클레이스 은행의 CEO로, 찰리 샤프는 뉴욕멜론뱅크의 CEO로, 마이클 캐버너는 거대 통신미디어 기업 컴캐스트의 CFO로 옮겨 갔다.

새 CEO가 혁신 꿈꾸는 골드만삭스

허드슨 강이 내려다보이는 맨해튼 남쪽의 골드만삭스 타워에선 지난 1일부터 새 CEO로 오른 데이비드 솔로몬이 2006년부터 회장 겸 CEO를 맡아왔던 로이드 블랭크파인의 자리에 앉았다. 그는 오랫동안 CFO였던 하비 슈워츠와 후계자 경쟁을 벌였고, 지난 3월 1일 블랭크파인으로부터 “당신이 내 후계자야”라는 낙점을 받았다. 그는 미 월간지 ‘베니티 페어’ 최신호 인터뷰에서 “로이드식(式)으론 로이드보다 더 잘할 수 없다”며 내년에 창립 150주년을 맞는 골드만삭스에 자신만의 변화를 심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 블랭크파인은 JP모건체이스의 다이먼과 더불어 2008년 금융 위기 이전부터 미 금융회사를 이끌어온 월가의 마지막 CEO 2인 중 한 명이다. 그가 장기 집권하면서, 애초 후계자로 기대됐던 게리 콘 사장은 끝내 기회를 얻지 못하고 2016년 12월 사임하고 트럼프 백악관에 경제보좌관으로 합류해야 했다.

"난, 트럼프보다 더 거칠어" 월가 황제의 다음 행보는?

제임스 다이먼은 지난 수년간 '대통령 야망'을 불쑥 드러냈다가는 부인(否認)하는 일을 되풀이했다. 그는 평소 "나는 JP모건 회장 겸 CEO이기 이전에 온전한 애국자, 자랑스러운 미국인"이고 "내게 최우선순위는 가족이고 그다음이 나라, JP모건은 마지막"이라고 말한다. 민주당원인 그는 2016년 미 대선을 앞두곤 "민주당이 강력한 중도주의자, 친(親)기업·친시장주의자 후보를 못 낸다면 승산이 없다" "미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등의 발언도 했다.

그래서 지난 1월 말 그가 "약 5년간 더 회장 겸 CEO직에 머물기로 이사회와 합의했다"고 밝혔을 때 월가에선 당분간 '다이먼이 떠난 JP모건체이스'에 대한 걱정은 접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5년 뒤 은퇴라면 2020년 미 대선 출마 가능성은 사라진다.

그러나 이후에도 알쏭달쏭한 그의 발언은 계속됐다. 지난 5월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 경제인 모임에서 다이먼은 "대통령이 되고 싶다"며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정치 경험이 없는 부자 사업가가 대통령이 될 일은 없다고 말했는데, 내가 틀렸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한 달 뒤 CNBC 인터뷰에선 "대통령은 임명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원하고 나가서 쟁취해야 하는데, 나는 대통령 선거에 나갈 의사가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

지난달 14일 뉴욕 본사에서 회사의 지역사회 개발 이니셔티브를 소개할 때에는 "트럼프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보다 더 거칠고 더 똑똑하니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이먼은 또 미국 민주당은 "사회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가 부족하다며 "내가 하루라도 왕이 된다면 부자에게 과세하고 학교와 같은 사회 기반 시설을 바로 손볼 것"이라고 말했다. 또 소득 수준이 면세점(免稅点)에 못 미치는 저소득자에겐 면세점과 소득과의 차액 중 일부를 정부가 반대로 지급하는 '부(負)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다이먼은 "아내도 퍼스트레이디가 되는 것을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정책 제안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그는 회사를 통해 뒤늦게 "그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대통령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고, 이번 일이 내가 좋은 정치인이 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증명한다"는 발언 철회 성명을 냈다. 하지만 미 금융계 안팎에서 치솟는 자신의 인기를 고려할 때 다이먼은 앞으로도 정치적 발언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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