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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P 12위인 한국 국가경쟁력이 줄곧 20위 중후반을 맴도는 이유를 아는가"

Analysis 로잔(스위스)=유한빛 기자
입력 2018.10.05 03:00 수정 2018.10.05 12:38

[Cover Story] 한국 국가경쟁력 높이려면… 강소국의 전략 크리스토스 카볼리스 IMD 국가경쟁력센터 수석이코노미스트 기업·정부 효율 낮고 중간급 관리자 한국경제 자신감 약해 청년 취업난 높이려면 스위스처럼 대학 대신 공학분야 고등교육기관 양성을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국가나 국적은 무의미해질 것'이란 미래학자들의 주장이 실현되기엔 갈 길이 먼 분위기다. 세계 1위 경제대국인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걸고 자국의 이익을 노골적으로 중시하고 있다. 이상적인 다자주의 정치·경제 시스템처럼 보이던 유럽연합(EU)도 경제적인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곳곳에서 균열이 생겼다. 경제 번영을 위한 정부의 역할이 재조명된 지금, 한국의 미래 경쟁력을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까. WEEKLY BIZ가 크리스토스 카볼리스(Cabolis) 스위스 IMD경영대학원 국가경쟁력센터 수석이코노미스트 겸 부소장을 만나 조언을 구했다.

IMD경영대학원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이 해마다 세계 최고로 꼽는 최고경영자 경영학석사(MBA) 과정과 국가 경쟁력 보고서로 유명하다. 교내 연구소인 국가경쟁력센터(WCC)에서 해마다 주요국들의 경제 여건을 다각도로 분석해 순위를 발표한다.

카볼리스 부소장은 "국가 경쟁력을 정의하는 기준은 세부적으로 조금씩 다를 수 있는데 우리는 '한 국가가 보유한 자원과 자산, 경쟁력 있는 요소들을 활용해 민간 기업들이 장기적인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경제·경영) 환경을 조성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고 말했다. 올해는 미국이 3년 만에 국가 경쟁력 1위 자리를 되찾았다. 반면 한국은 수년째 20위 중후반에 머물렀다. 세계 12위까지 증가한 국내총생산(GDP·2017년 세계은행 통계 기준) 규모에 비해 한참 낮은 순위다. 그는 이에 대해 "한국의 현재 경제 모델과 산업구조로는 20위 중후반이 최선이기 때문"이라며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싶다면 경제 모델과 산업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카볼리스 부소장은 국가 경쟁력 순위가 국민의 행복감이나 삶의 만족도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지만, 한 나라가 현재 어디에 있고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야 할지 보여주는 지도 역할은 할 수 있다고 평했다.

"국가 차원에서 어떤 나라, 어떤 경제가 돼야 할지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수립하는 게 국가 경쟁력을 좌우합니다. 목표와 전략이 수립돼야 자원을 배분하고 법률을 제정하고, 필요한 곳에 투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종합 순위와 평가 항목별 순위를 통해 한 나라의 강점과 약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고, 시장 규모나 산업구조 같은 경제 여건이 비슷한 나라 중에서 벤치마킹 대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회통합·금융안정이 기본토대

―어떤 모델이 가장 이상적인가.

"수십년 동안 국가 경쟁력에 대해 평가하면서 발견한 사실은 '모든 나라에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모델(one-size-fits-all model)이란 없다'는 점이다. 우선 올해 국가 경쟁력 상위권을 살펴보면, 지리적으로나 경제 규모로나 다양한 나라들이 뒤섞였다. 정치 체제나 경제 모델도 동일하지 않다. 경제·산업구조도 어떤 나라는 내수시장 중심인 반면, 다른 나라는 수출 중심이다. 금융서비스가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도 있고, 제조업이 경제 중심인 국가도 있다.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정책의 핵심은 결국 '한 나라가 보유한 자원과 사회·문화적인 요소를 어떻게 조합해 얼마나 효율적으로 국가 차원의 경쟁력으로 전환하는가'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자원을 활용하고 부족한 요소를 어떻게 만회할지, 나라마다 전략과 방법이 다를 수밖에 없다. 경제 목표는 단순하고 명확할수록 좋다. '일자리 만들기'를 목표로 경제정책을 추진하는 게 좋은 예다. 이를 추진하기 위한 좋은 리더와 정부가 필요하다. 투명하고 믿을 수 있는 정부가 좋은 정부다."

―효과적인 정책들 사이에 공통점은 없나.

"어떤 정책이 효과적인가는 나라마다 다르다. 예컨대 국가 경쟁력 세계 7위를 차지한 아랍에미리트를 보면, 기업 효율성과 정부 효율성 면에서 특히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1위인 미국은 높은 경제 성과와 잘 갖춰진 기반시설이 경쟁력을 뒷받침한 요소들이다. 국가마다 고유한 강점과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장점을 극대화하고 약점을 개선하는 식으로 전략을 짜야 한다. 어떤 나라도 모든 분야에서 1위가 되긴 어렵다.

물론 모든 국가에 적용되는 최소 요건은 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로 상위권으로 평가된 나라들은 상대적으로 경제적 불평등 수준이 낮고(통합적인 사회제도) 금융시스템이 안정적이라는 공통점이 나타난다. 제도적으로 일정 수준을 갖췄다는 전제하에, 나라마다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요인은 다르다는 뜻이다."

한국이 제자리걸음 하는 이유

―한국의 국가 경쟁력 순위는 20위대 중후반에서 제자리걸음 중이다. 이유가 무엇인가.

"2010년대 들어 한국의 순위는 20위대에 머물렀다. 전반적으로 지난해 통계를 보면 한국은 기업 효율성, 정부 효율성 면에서 점수가 낮다. 설문조사 결과에선 중간급 이상 관리자와 경영진들 사이에서 한국 경제에 대한 기대감이 약해졌다. 노사 관계 문제도 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부족 문제는 한 단면일 뿐이다.

기업 효율성을 평가하는 지표 중 경영 관행 항목에서 한국은 55위에 불과하다. 한국의 경영 환경이 충분히 기업 친화적이지 않다고 평가했다는 건데, 주주 관계나 주주들의 권리, 사회 내 기업가 정신, 창업 편의성 등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뜻이다. 창업이나 기업 활동을 정책적으로 얼마나 지원하는지 평가한 경제 법제화(47위) 부문도 순위가 낮은데, 이는 정부 효율성 점수에 영향을 미친다.

물론 국가 경쟁력 순위는 삶의 만족도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예컨대 한 나라의 국가 경쟁력이 25위여도 국민들이 현재 상황에 만족한다면 순위가 조금 더 오르든 내리든 상관없다. 하지만 국민들이 만족하지 못한다면 개선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국의 경쟁력 순위가 그대로인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의 경제 모델과 산업구조로는 20위대가 최선이기 때문이다."

인재 경쟁력·기술 혁신 점점 중요해져

―최근 들어 국가 경쟁력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있다면.

"지난 1997년 이후 동일한 방법론과 분석 방식을 사용했는데. 최근 들어 2가지 요인이 특히 두드러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노동력, 즉 '인재 수준'과 '혁신'이다. 그래서 최근 인재 경쟁력과 기술 부문 평가 기준을 추가로 도입했다. 인재 경쟁력은 한 국가가 노동인구의 재능과 능력을 얼마나 제도적으로 잘 개발하는지, 해당 국가의 인력이 세계시장에 얼마나 먹히는가를 평가한 결과이다.

기술 부문은 한 나라가 디지털 기술과 신기술을 얼마나 잘 받아들이고 개발하는지 평가한 것이다. 이는 다양성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사회 구성원과 경제 산업구조의 다양성 수준이 높을수록 생산력이 높아지는 양의 상관관계가 나타난다."

―한국에선 청년들의 취업난도 큰 문제다.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이유를 점검하고, 현재 교육제도를 재평가해야 한다. 대학 진학이 학업적인 성취와 자기 계발을 위한 목적이라면 대학 학위 자체만으로 성취감을 느낄 거다. 하지만 일자리를 얻기 위한 목적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많은 대학생이 본인의 전공이 취업에 별 도움이 안 될 거라고 여긴다면, 대학 교육 제도와 한국 산업계가 원하는 인재상 사이에 간극이 크다는 얘기다. 스위스의 경우, 대학 진학률이 높지 않지만 공학 분야 고등교육기관의 수준이 아주 높다. 그래서 스위스에서 공대를 졸업하면 고연봉 직업이 보장된다. 한국도 이런 요소들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 IMD 국가경쟁력 평가(IMD world competitiveness trend)

스위스 로잔의 세계적인 경영대학원 ‘IMD’가 1989년부터 매년 한 차례씩 63개국을 대상으로 경쟁력을 조사해 내놓은 연감을 말한다. IMD는 국가 경쟁력을 ‘자국 영토 내에서 활동하는 기업이 국내외에서 번영할 수 있도록 제반 환경을 창출·유지해주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순위는 경제 운용 성과·정부 행정 효율·기업 경영 효율·인프라 구축 등 4개 부문 342개 항목에 대한 통계와 설문 조사를 거쳐 매긴다.

: 국가신용등급(sovereign credit ratings)

한 나라가 채무를 이행할 능력과 의사가 얼마나 있는지를 등급으로 표시한 것. 현실적으로는 국채의 신용등급을 의미하며, 국제금융시장에서 차입 금리나 투자 여건을 판단하는 국가의 대외신인도 기준이 된다. 미국의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와 무디스, 영국의 피치가 세계 3대 신용 평가 기관이다.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은 1997년 외환 위기 때 하락했다가 위기를 극복하며 점차 상승해 현재 ‘AA(안정적)’ 등급으로 회복됐다.

: 하르츠 개혁(Hartz Reforms)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전 총리 때인 2002년 2월 하르츠위원회(위원장 피터 하르츠 폴크스바겐 이사)가 제시한 4단계 노동시장 개혁 방안. 당시 심각한 실업률을 줄이기 위해 취업 알선 시스템의 효율성 제고, 소규모 소득의 일자리 창출, 임시직 고용 증진을 위한 규제 완화, 실업자의 노동시장 재유입 유도 정책을 추진해 독일이 부강해지는 데 성공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여 높은 실업률을 극복한 사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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