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Intel)과 함께 한때 세계 CPU(중앙처리장치) 반도체 시장을 양분하던 AMD(Advanced Micro Devices). 2012년 AMD는 잇따른 신제품 실패와 구조조정 후유증, 3조원에 육박하는 부채로 휘청이면서 파산설에 휩싸였다. 절체절명 위기 속에서 AMD 이사회가 구원투수로 영입한 인물은 리사 수(Su·49) 당시 프리스케일반도체 부사장. 대만계 이민자 여성이었다. 글로벌 사업 담당 부사장으로 부임한 그녀는 2년 만인 2014년 최고경영자(CEO)에 올랐다. 실리콘밸리 반도체 기업 역사상 최초로 여성 CEO가 탄생한 것이다. 리사 수 CEO 취임 3년 만에 AMD는 지난 2분기 매출이 17억6000만달러를 기록, 전년 대비 53% 증가했다. 순이익(1억1600만달러)은 7년 만에 가장 좋았다. 3년 전 주당 1달러대까지 추락했던 주가는 20달러 고지를 넘어 상승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미 경제 전문지 포천이 그녀를 '2017 세계 최고의 리더 50인' 중 하나로 선정한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세계 반도체업계 여걸(女傑)로 명성을 굳히고 있는 리사 수 CEO를 최근 서울 삼성동에서 단독 인터뷰했다. 국내 언론으론 처음이다. 인터뷰장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얼마 전 출시한 신제품 '라이젠 스레드리퍼 2990WX 프로세서'를 들고 성능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질문을 받기도 전이었다. 반도체 엔지니어 출신답게 혼(魂)이 담긴 신제품을 소개할 땐 마치 정성스러운 보물을 다루는 듯한 인상을 줬다. CEO가 된 뒤 사내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통해 "난 이 세상 모든 혁신의 중심에 있는 반도체와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할 정도다. 그녀는 경영자이면서도 신제품 개발에 직접 참여하는 걸로도 유명하다.
침몰 직전 AMD를 짊어진 엔지니어
리사 수 CEO 책상 앞에 있는 머그컵에는 '실패는 선택지가 아니다(Failure is not an option)'란 문구가 적혀 있다. 이는 그녀 지휘 아래 AMD가 사활을 걸고 개발해 지난해 선보인 CPU 신제품 '라이젠(RYZEN)' 개발팀 구호이기도 했다. 라이젠은 지난 6년 동안 부진을 씻어내고 AMD가 인텔 경쟁사이자 CPU 시장 선도 기업임을 증명해준 제품이었다. 그녀는 "살면서 실수할 수는 있지만, 실수를 통해 교훈을 얻으면 그것은 과정일 뿐 실패가 아니다"면서 "하지만 실수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면 그것이 실패"라고 말했다.
사실 2014년 브루스 클래플린 AMD 이사회 이사장이 리사 수를 신임 CEO로 발표하면서 "전문성과 검증된 리더십을 바탕으로 AMD를 이끌어나갈 적임자"라고 설명했을 때 실리콘밸리 반응은 "리사 후(Lisa Who)?"(리사 누구라고?)였다. 실리콘밸리에선 무명에 가까운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리사 수 전임자는 로리 리드(Read). IBM과 레노버 COO(최고운영책임자)를 거치며 IT 업계 총아로 주목받던 인물이었다. 그런 리드도 회생시키는 데 실패한 AMD를 아시아 출신 여성에게 맡긴다고 하자 시장 반응은 냉소 일색이었다. 그러나 리사 수는 "이런 중요한 변화의 시기에 AMD를 이끄는 기회를 갖게 돼 영광"이라며 "2년 내 새로운 구조의 CPU와 그래픽 하드웨어 기술로 AMD를 되살리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3년 만에 그 약속을 지켰다.
수 CEO는 반도체 엔지니어로 안락한 삶을 누리다가 위태로운 새 자리를 수락한 이유에 대해 "도전하기 싶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미 잘나가는 기업에서 새로운 일을 도모할 여지는 적다"면서 "가장 어려운 문제를 풀었을 때 사람들은 당신을 인정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아시아계 여성 첫 실리콘밸리 리더
현재 실리콘밸리에서 대만계 CEO로 잘 알려진 인물은 둘이다. 엔비디아 창업자이자 CEO인 젠슨 황, 그리고 리사 수. 두 사람이 먼 친척뻘이라는 대만 언론 보도도 나왔지만 그녀는 "사실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리사 수는 소수 인종이란 약점에 여성 CEO는 손에 꼽을 정도인 실리콘밸리 '유리천장' 문화를 돌파했다. 아시아계 여성이라는 배경이 실력 발휘에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다"고 답했다. "운이 좋게도 늘 좋은 기회, 좋은 사람을 만나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면서 "소수계라는 생각에 갇히면 본인만 위축될 뿐"이라고 덧붙였다. "CEO면 CEO고, 엔지니어면 엔지니어지, 그게 남자이건 여자이건 뭐가 중요한가"라는 얘기였다. 반도체업계에 '황색 돌풍'을 일으킨 리사 수의 성공 비결과 세계 반도체업계의 동향 및 전망을 심층 취재했다.
“언더도그(underdog·약자)의 반란이 시작됐다.”
지난 6월 대만 타이베이에서 아시아 최대 규모 컴퓨터 제품 행사 컴퓨텍스가 열리자 외신들은 이렇게 반응했다. 이 자리에서 CPU(중앙처리장치) 시장 만년 2인자 AMD(Advanced Micro Devices)가 지존(至尊) 인텔(Intel)을 상대로 핵 펀치를 날렸기 때문이다. 인텔이 먼저 28코어(core) 제품으로 도발하자, 24시간 만에 AMD는 32코어를 탑재한 새로운 제품을 꺼냈다. CPU 반도체칩은 코어라는 처리 장치를 통해 한 번에 한 가지 연산을 수행하는데, 코어가 많아지면 계산기를 들고 있는 직원 수가 늘어난 것 같은 효과를 갖는다. 이전까지 시판된 PC용 CPU에 코어가 최대 18개까지 들어간 점을 감안하면, 획기적인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 2월 AMD가 인텔 제품과 성능은 비슷하면서도 가격이 절반에 불과한 CPU ‘라이젠’을 출시하면서 세상을 놀라게 한 뒤 다시 연타를 날린 셈이다. 18%에 불과했던 AMD의 PC 시장 점유율은 라이젠이 판매되기 시작한 2017년 2분기 이후 30% 이상으로 치솟았다. 리사 수 CEO는 새로 내놓은 ‘라이젠 스레드리퍼 2990WX 프로세서’를 소개하면서 “32코어 구현에 성공한 현존하는 최고 성능의 CPU”라고 강조했다.
경영 목표는 ‘탁월한 제품을 만들자’
―신제품에 대한 애착이 남달라 보인다.
“직접 모든 개발 과정에 참여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세운 목표는 간단하다. ‘탁월한 제품을 만들자’. 소비자가 원하지만, 아직 시장에 존재하지 않는 그런 제품을 만들고 싶다. 이를 위해 늘 소비자 반응에 귀 기울이고 있다.”
-AMD가 오랫동안 적자에 시달렸는데 신제품 개발에 주력하긴 무리 아니었나.
“회사 사정이 어렵다고 제품 개발까지 타협할 수는 없다. 대신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거두기 위해 연구·개발(R&D) 부서를 효율적으로 재편했다. PC, 모바일, 서버, 수퍼컴퓨터, 인공지능 등 모든 컴퓨팅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공통 CPU 아키텍처를 만드는 데 모든 R&D 비용을 투입하고, 다른 R&D 계획은 정리했다. AMD 모든 연구·개발 부서가 ‘젠(Zen)’이라고 명명된 이 아키텍처를 개발하는 데 총력전을 펼쳤다.”
―그렇게 탄생한 신제품 ‘라이젠’은 화제를 불렀다. 개발 과정 중 어려움은 없었나.
“제품 양산을 앞두고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발매를 늦춰야 하는 문제였으나, 소비자와 약속한 출시일을 어길 수 없었다. 결국 AMD 최고 엔지니어 4명과 ‘아폴로 13 모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아폴로 13모드’는 산소탱크 폭발에도 우주인이 전원 무사 귀환한 달 탐사 프로젝트를 가리킨다.) 나 역시 AMD 오스틴 연구실에 상주해 밤낮없이 연구에 참여했고, 천신만고 끝에 출시일 전에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같은 사양 제품일 때 가격이 인텔의 절반 이하인 비결이 있나.
“경쟁사 제품 가격의 절반이라는 말에 동의하진 않는다. AMD 제품이 저가로 승부하는 건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제품을 개발할 때 가성비를 고려한다. 어느 정도 가격에서 얼마만큼 퍼포먼스(기능)를 제공해야 한다는 기준이 있다. 100달러 가격을 소비자가 지불한다면, CPU 처리 속도는 이에 걸맞게 빨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굳이 경쟁사 가격에 연연하진 않는다. 제품 기능 향상이 최우선 사항이다.”
최고 엔지니어에서 최고 경영자로
AMD에 합류하기 전에 리사 수 CEO는 최고의 반도체 엔지니어였다. 1995년 IBM 반도체 연구·개발 부서에 이사로 합류하자마자 기존 반도체 금속 배선 표준이었던 알루미늄 배선을 구리 배선으로 교체하는 방식을 고안해냈다. 배선 재료 재질을 교체함으로써 반도체 데이터 처리 속도는 20% 가까이 향상되었다. 이 구리 배선 재료는 지금까지도 업계 표준으로 활용되고 있다. 과학 저널인 MIT 테크놀로지리뷰는 2001년 그녀를 ‘35세 이하 최우수 혁신가’로 뽑기도 했다. 언론과 AMD 내부에서 그녀를 CEO가 아닌 박사(Ph.D)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도 이런 업적을 존경하는 의미다.
엔지니어로 탄탄대로를 걷던 그녀가 경영에 눈을 돌리게 된 건 멘토 니콜라스 도노프리오를 만나면서부터다. 도노프리오는 IBM 호환 PC와 기업용 대용량 컴퓨터의 기초 설계를 맡은 전설적인 엔지니어. 도노프리오는 그녀를 IBM 최고 경영자 기술 자문으로 추천하는 등 엔지니어 경력만 쌓고 있던 그녀에게 경영자로서 경력을 쌓을 수 있게 도움을 줬다. 이후 도노프리오는 AMD 이사회 이사로 자리를 옮겼고, 훗날 리사 수를 영입하는 데 앞장섰다.
리사 수가 입사할 당시 AMD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30%에 육박하던 CPU 시장 점유율은 10% 밑으로 떨어졌고, 주가는 10분의 1 수준으로 폭락했다. AMD 핵심 엔지니어들은 삼성전자, 엔비디아 등으로 줄줄이 이직했다. 당시 인텔의 브라이언 크러재니치 CEO는 AMD를 두고 “이제 다시는 재기하지 못할 회사이니, 더 이상 신경 쓰지 말고 새로운 경쟁자인 퀄컴에 집중하라”는 내부 지침까지 직원들에게 보냈다.
―그 정도 이력이면 AMD 말고도 얼마든지 더 좋은 데 갈 수 있었을 텐데.
“도전하고 싶었다. 이미 잘나가고 있는 기업으로 가면 새로운 걸 시도하거나 바꿀 여지가 잘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 회사는 ‘쉬운 선택지’이긴 하지만 매력이 없다. 그런 데선 내 가치를 입증할 수 없다. 뭔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 이겨내야 사람들이 날 주목하고 알아주지 않겠는가. 체질적으로 그런 상황을 좋아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적절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AMD에 와 일군 성과에 보람을 느낀다.”
―경력에 오점이 될 수도 있었는데, 두렵진 않았나.
“막연하고 아는 게 없을 때나 두려운 법이다. AMD가 가진 기술과 역량을 객관적으로 충분히 분석하고 결심했기 때문에 재기할 수 있다고 믿었다. 물론 CEO에 오른 뒤 영업손실(2014년 4분기 3억3000만달러)이 불어나고, 주가가 1.8달러대까지 곤두박질치는 등 아찔한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다시 일어서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리는 것일 뿐이라고 확신하고 견뎠다.”
엔지니어링이든 경영이든 소통이 중요
―원래 낙천적인 성격인가.
“낙천적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판단하는 성향이라고 생각한다.”
―도노프리오가 AMD 이직을 권유하며 특별히 전한 말은 없었나.
“이 회사의 기술력을 믿으며, 앞으로 큰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IBM 시절 나의 멘토로, 좋은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사실 그가 AMD로 영입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라 최고기술책임자(CTO) 마크 페이퍼마스터도 있다. 경영 면에서는 나를, 기술 면에서는 마크를 선택한 것이다. 도노프리오는 늘 ‘마크와 리사가 AMD를 고칠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당시 AMD에 어떤 강점이 있었나.
“고성능 CPU와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모두 만들 수 있는 유일한 회사는 AMD뿐이다. 아울러 AMD에는 실력 있는 엔지니어가 다수 포진해 있었다. 때마침 소니, 마이크로소프트(MS), 닌텐도 같은 비디오 게임기 회사는 CPU 외에 고해상도 그래픽 구현을 위한 GPU가 필요했다. PC용으로 개발한 반도체라고 해도 꼭 PC 시장에만 고집하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IBM 근무 시절 소니와 비디오 게임기용 칩을 개발했던 경험을 활용해 새로운 시장에 진출한 것이다.”
―그때부터 AMD의 턴어라운드(기업 개선)가 시작된 건가.
“그렇다. 당시만 해도 AMD 매출의 90% 이상이 PC 시장에서 나왔다. 그러나 지금은 매출 절반이 게임기 등 비(非)PC 시장에서 나올 정도로 시장 다각화에 성공했다.”
―공학자에서 경영인으로 전환하는 과정이 힘들지 않았나.
“엔지니어링은 제품을 만드는 일이다. 이를 위해 팀원과 정확히 소통하고, 협업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비즈니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직원들과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명확한 비전을 공유하고, 이를 위한 효율적 소통에 힘쓰고 있다.”
위기 때는 CEO 비전이 성패 갈라
리사 수 CEO는 사업을 위해서는 철저히 실리를 추구한다. 회사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적과의 동침’도 마다치 않는다. AMD는 지난해 자사 GPU를 인텔이 만드는 노트북용 칩에 공급한다는 내용의 파트너십을 맺었다. 두 회사가 기술 파트너십을 맺고 함께 칩을 만드는 건 1980년대 이후 처음으로, ‘공동의 적’으로 부상한 엔비디아의 그래픽칩 기술에 대항하기 위한 전략적 제휴다. 포브스는 “인텔과 AMD가 협력해, 하이엔드 칩셋 시장에서 엔비디아와 경쟁할 만한 훌륭한 제품을 만들었다”며 “모바일 그래픽 시장에서 최상의 제품군을 가진 엔비디아와의 경쟁이 볼만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기업의 위기 상황에서 CEO가 가장 염두에 둬야 할 점은 뭔가.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의연한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한다. 위기가 클수록 모든 임직원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힘을 한데 모으게 된다. 이때 리더가 제대로 된 방향을 제시한다면 기업은 힘차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일에 파묻혀 사는 듯한데 취미는 따로 없나.
“골프를 즐긴다. 평균 타수는 90대 수준이다. 그리고 남편과 와인을 수집한다. 특히 프랑스 보르도 와인을 좋아한다.”
―실리콘밸리 반도체 기업 최초의 여성 CEO이자 대만계 이민자다. 글로벌 기업을 경영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
“스스로 ‘최초 여성 CEO’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새로운 CEO’일 뿐이다. 소수계라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 편이다. 편견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인식도 거의 없다. 그저 혁신과 기업 경영을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인공지능 시장 장악이 새 목표
수 CEO는 자신만의 리더십으로 수렁에 빠져 다 죽어가던 AMD를 일단 뭍으로 끌어 올렸지만 위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IT 산업의 주도권이 PC에서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한 모바일 기기로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리사 수는 이제 AMD의 미래를 책임질 새로운 먹거리로 눈을 돌리고 있다. 바로 인공지능이다. AMD는 인공지능 하드웨어 시장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 CPU와 GPU 두 분야에서 공격적인 전략을 펼치고 있다. 경쟁사를 제치기 위한 비결은 가격 경쟁력에 있다. 경쟁사보다 저렴하게 인공지능 하드웨어를 공급해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AMD의 매출 절반이 여전히 PC에서 나오는 점을 어떻게 보나.
“PC 시장은 앞으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거나,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앞으로 사업 다각화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AI)의 핵심 기술인 머신러닝, 빅데이터 등의 새로운 사업 개발에 대한 투자를 늘려 나갈 계획이다. 현재 가장 관심 있게 관찰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반도체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나.
“앞으로 10년간 유례없는 호황기가 지속될 것으로 본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IoT) 등 혁신의 중심에 반도체가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AMD도 이에 걸맞은 R&D 투자로 끊임없이 혁신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