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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스톰'… 장난감 제국은 이렇게 무너졌다

Analysis 이철민 선임기자
입력 2018.08.18 03:00 수정 2018.08.20 14:00

[이철민의 Global Prism] 토이저러스 몰락의 교훈 "우리 친구들 나 , 파산했어 이제 안녕~" 전세계 1600여 매장 직원 3만3000명 해고 월마트·아마존 등 온오프라인서 완패 파산보호 직전까지 빚더미 속 매장 늘려 구조조정 계획 누출 매출 격감 '치명타'

이철민 선임기자
지난 6월 말, 미국 장난감 시장 매출의 17%를 차지하던 토이저러스(Toys 'R' Us) 매장들이 미 전역에서 문을 닫았다. 토이저러스는 작년 9월 채무 상환 의무가 일시 정지되는 파산보호신청(챕터 11)을 했지만, 끝내 회생에 실패해 지난 3월 15일 파산 신청을 했다. 2차 대전에서 돌아온 찰스 래저러스(1923~2018)가 1957년 워싱턴 DC의 장난감 가게에서 출발해 전 세계 1600여 곳에 매장을 둔 최대 장난감 제국 기업의 사망 신고였다. 파산 시기는 공교롭게도 창업자 래저러스의 죽음(3월 22일)과도 맞물렸다. 현재 매장 부동산은 물론 '토이저러스'라는 상표까지 매각 절차에 들어갔으며, 직원 3만3000명도 모두 해고됐다. 해외 매장들도 비슷한 과정을 밟고 있다.

토이저러스는 한 상품 분야에서 압도적 유통망과 가격 할인 정책으로 다른 상점들을 고사(枯死)시키는 이른바 '카테고리 킬러(category killer)' 기업이었다. 전후 베이비붐 시대(1946~1964년)와 도시 근교로 확장되는 주택 붐과 맞물려, 토이저러스의 널찍한 매장은 온갖 장난감을 엄청난 물량으로 제공해 군소 장난감 체인들을 쓰러뜨렸다. 토이저러스의 기린 만화 캐릭터인 제프리(Geoffrey)는 기업의 마스코트가 됐고, 1980년대에 나온 "나는 더 자라기 싫어요. 나는 토이저러스 키드예요. 토이저러스엔 장난감이 100만개 있어요"라는 가사의 광고 노래는 한 세대의 미국인 뇌리에 박혔다. 토이저러스 키드에게 주말 아침 의식(儀式)은 부모를 졸라 매장에 가는 것이었다.

'장난감 제국'의 몰락을 놓고, 막대한 빚, 온라인 소매업 공룡인 아마존의 등장, 전통적 장난감 시장의 전반적 침체 등을 원인으로 든다.

틀린 진단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전체 그림의 일부에 불과하다. 토이저러스에 '몰락의 씨앗'은 가장 번성하던 시절에 이미 뿌려졌다. 위기에 몰려 파산보호신청을 하는 시점의 전 세계 매장이 1697개로 사상 최대였다. 매출 실적에 따라 매장을 '가지치기'하는 관리보다는, 확대 위주로 사업했다는 방증이었다.

①월마트 등 판매 경쟁자를 얕보다

토이저러스의 오프라인 시절 최대 실수는 매장을 더욱 깨끗하고 멋있는 환경에서 부모와 아이들이 구매 전에 장난감을 만지고 느끼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복합 공간으로 꾸미지 않은 것이었다. 토이저러스의 매장 대부분은 그저 대형 수퍼마켓처럼 통로를 따라 선반 위 장난감을 카트에 넣는 쇼핑 방식을 고수했다.

그러나 장난감이 그저 '일상용품'으로 변하자, 토이저러스는 월마트(Walmart)나 타깃(Target), K마트와 같은 초대형 할인 유통 체인을 이길 수 없었다. 1994년까지 토이저러스가 차지하던 장난감 매출 1위 자리는 불과 4년 뒤 월마트에 넘어갔다. 월마트 같은 체인에 장난감은 다른 물건을 사는 부모들을 끌기 위한 '미끼 상품'이었다. 따라서 장난감 부문은 적자를 감수하고라도, 토이저러스보다 가격을 더 낮출 수 있었다.

토이저러스도 2000년 뉴욕 맨해튼의 타임스스퀘어에 지름 18m인 회전식 관람차(Ferris wheel)와 맨해튼의 웬만한 아파트보다도 큰 바비 인형의 집, 실물 크기 공룡 T-렉스가 실내에 들어선 대형 플래그십(flagship) 스토어를 마련했다. 또 창고형 매장의 인테리어도 바꾸고 종업원 재교육하는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객들의 기대 수준엔 못 미쳤고, 맨해튼 매장은 2015년 문을 닫았다.

②인터넷 판매를 아마존에만 의존

둘째 패착(敗着)은 조잡한 인터넷 전략이었다. 1999년 5월 아직 이익도 못 내는 이토이스(eToys)라는 장난감 온라인 판매 업체가 기업공개(IPO)로 하루아침에 토이저러스보다도 시가총액이 35%나 큰 77억달러짜리 회사가 됐다. 후에 인터넷 거품이 꺼지면서, 이토이스는 '벽돌 기업' 토이저러스에 인수됐다.

그러나 토이저러스는 인수의 과실(果實)은 거두지 못했다. 2000년에 부랴부랴 마련한 인터넷 대책은 아마존에 얹혀서 전자상거래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즉, 아마존이 토이저러스 장난감만 파는 조건으로, 토이저러스는 아마존에 5000만달러를 지급했다.

하지만 아마존은 나중에 계약을 깨고, 다른 장난감 유통 체인들의 장난감도 팔아 자사 웹사이트 안에 본격적인 장난감 장터를 마련했다. 토이저러스는 수년 소송 끝에 5100만달러를 보상 받았지만, 전자상거래 전쟁에선 패하고 난 뒤였다.

③막대한 빚에 미래 투자 발목 묶여

찰스 래저러스 토이저러스 창업자
초대형 유통 체인과 아마존의 습격에 고전을 면치 못하던 토이저러스는 2005년 베인 캐피털과 KKR, 부동산 트러스트인 보네이도 리얼티 트러스트 등 3사의 손에 넘어갔다. 이 회사들이 66억달러나 주고 토이저러스를 인수할 만한 충분한 이유는 있었다. 마지막 베이비붐 세대가 낳은 아이들이 이제 막 다시 부모가 돼 아이들에게 돈을 쓸 준비를 하고 있었다.

토이저러스는 또 미국 46주에 284매장과 유통 배급 센터, 기타 부동산 등 1450만 제곱피트(약 40만7400평)에 달하는 부동산을 자체 보유하고 있었다. 이 3사는 토이저러스를 멋지게 구조조정하고 2010년쯤 다시 기업공개(IPO)를 통해 이익을 실현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 부활의 길목을 막대한 빚이 가로막았다. 3사가 인수하기 전인 2005년 1월 토이저러스의 채권은 이미 정크본드 등급이었다. 또 3사는 자체 자금 12억달러 외에 50억달러가 넘는 돈을 토이저러스의 부동산 자산을 담보로 빌려서 인수(LBO)했지만, 매년 지급해야 할 이자만 4억달러에 달했다.

결국 갈수록 위협적인 초대형 할인 유통 체인과 아마존의 공격에도, 토이저러스는 매장이나 전자상거래에 투자할 여력이 없었다. 작년 9월 파산보호신청을 하면서 토이저러스의 CEO 데이비드 브랜던은 6500만달러를 들여 드론의 테스트 비행 공간과 장난감 총 사격 연습장과 같은 플레이룸을 만들고, 2018~2021년에 모두 7200만달러의 임금 인상을 통해 우수 인력을 확보하겠다고 했지만 계획뿐이었다. 작년 9월 토이저러스의 빚은 49억달러에 달했다. 브랜든은 지난 3월 "2017년 갚아야 하는 빚이 12억달러였고, 올해에는 6억6800만달러"라며 "이 막대한 빚 탓에, 미래와 사업에 투자할 능력은 손상되고 경쟁사에 뒤질 수밖에 없었다"고 시인했다. IPO 계획은 계속 연기되고, 빚을 갚으려고 또 빚을 지는 상황이 되풀이됐다. 계속된 매출 저하로 2016년에는 매출 115억달러에 손실이 3600만달러에 달했다.

④구조조정 계획 새 나가 매출 격감

심지어 회생의 타이밍에서도 운(運)이 없었다. 토이저러스는 원래 연간 매출의 40%를 차지하는 연말 빅 매출 시즌을 보내고, 파산보호신청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9월 초 CNBC방송이 이런 계획을 먼저 보도했고, 장난감 제조사들은 먼저 현금으로 받기 전에는 물량 공급을 거부했다. 법인세·이자·무형자산상각비를 차감하기 전 이익(EBITA)은 보통 6억달러이던 것이 작년엔 그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아이들의 놀이감도 관절이 움직이는 만화·영화 주인공 인형인 액션 피겨(action figures)나 보드 게임에서, 컴퓨터와 비디오 게임, 태블릿 PC와 같은 디지털로 옮아가면서 전통 장난감 시장이 정체 상태인 것도 매출 악화에 영향을 미쳤다.

토이저러스에 이 모든 것은 쇠락을 재촉하는 '퍼펙트 스톰'이었다. 앞으로 청산 협상에 따라, 토이저러스가 월마트에서 장난감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매장 내 매장'이 되거나, 아마존의 장난감 전문 서브 카테고리 이름이 될 가능성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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