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일, 일본 도쿄 니혼TV 사옥에서 열린 니혼TV 신입사원 입사식에 특별한 직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단발머리에 흰색 재킷과 원피스 정장을 입은 그는 전형적인 여자 아나운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은 아니었다. 인간을 쏙 빼닮은 '안드로이드 로봇'이었다. 이름은 '아오이 에리카(AOI ERICA)'.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100% 인간 모습은 아니었지만, 음성을 인식할 줄 알고, 또박또박 말을 했다. 니혼TV 아나운서로 입사한 이날 그는 동료 신입 사원 앞에서 소감도 전했다. "언론이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니혼TV에 입사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세계를 향해 일본의 다양한 매력을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로봇 아나운서가 방송국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게 된 건 오사카대 지능로봇연구실(IRL) 이시구로 히로시(石黑浩) 교수의 노력 덕분이다. 그는 니혼TV와 합작해 자신이 개발한 인간 로봇 '아오이 에리카'를 아나운서가 될 수 있도록 개선했다.
세계적인 로봇 강국인 일본에는 로봇학자가 많다. 이 중 이시구로 교수가 주목받는 건 인간을 빼닮은 로봇 개발에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 10월 이시구로 교수는 그와 닮은꼴 로봇인 '제미노이드(라틴어로 쌍둥이를 의미하는 geminus에서 착안한 이름)'를 제작, 세계적 권위의 과학 잡지 사이언스의 표지 모델로 등장시키기도 했다. 현재 일본 내에서 10여 기업이 그와 제휴를 맺어 로봇 생산에 뛰어든 상황이다. 그를 오사카에 있는 연구실에서 만났다.
컴퓨터 공부하다 로봇에 관심 가져
이시구로 교수가 인간 로봇 개발에 처음 성공한 것은 지난 2000년이다. 당시 로봇은 다리 없이 바퀴로 움직이면서 관절이 달린 금속 팔을 흔드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는 그때 "사람이 로봇에게 애착을 가질 수 있으려면 인간과 같은 겉모습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인간형 로봇인 안드로이드 연구를 계속했다. 인간의 모습을 최대한 담기 위해 자신의 아내에게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의 다양한 모습을 촬영하게 했다.
―왜 인간과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에 관심을 두게 됐나?
"컴퓨터를 공부하다 보니, 자연적으로 인공지능을 공부하게 됐다. 인공지능을 공부하다 보니까 로봇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로봇을 연구하다 보니까, 자연적으로 인간을 닮은 로봇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시구로 교수는 2006년 자신을 그대로 본뜬 첫 모델인 '제미노이드 HI'를 세상에 선보였다. 이 로봇은 140㎝의 키에 양팔과 다리 등을 움직일 수 있었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완벽하게는 구현하지 못했지만, 그는 자신의 복제 로봇과 함께 아시아와 유럽의 TV 쇼에 출연하고 강연을 하면서 유명해졌다.
2010년에는 일본 영화 '사요나라'에서 로봇을 연기한 첫 여성 안드로이드 로봇인 '제미노이드 F'를 내놓았다. 제미노이드 F를 계기로 이시구로 교수는 사람과 대화에서 중요한 '공감'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 미국 대학과 공동으로 공감과 관련된 뉴런에 대한 논문을 내면서 그는 작지만, 공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동작들로 사람이 말을 할 때 턱을 살짝 기울여 동의를 표시하거나 웃음을 참는 표정 등을 로봇에 추가해 완성도를 높여나갔다.
그가 연구하는 안드로이드가 특별한 건 단지 인간과 쏙 빼닮은 외양 때문만은 아니다. 로봇 자신 스스로가 자율성을 갖고, 인간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몸짓이나 용모를 인간과 유사하게 만들수록 사람들이 더욱 호감을 가질 수 있고, 여기에 대화까지 하면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올 수 있다고 그는 판단했다.
일본 NTV 아나운서로 데뷔한 로봇 아오이 에리카(가운데).
/NTV
인물 사진 분석해 CG로 표정 제작
'아오이 에리카'는 2015년 처음 공개됐다. 당시 매력적인 외모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로봇을 제작하기 위해 이시구로 교수는 실제 여성 30여 명의 사진들을 바탕으로 여러 미용 성형 지식을 조합해 컴퓨터그래픽(CG) 합성으로 에리카를 제작했다. 그 결과 아오이 에리카는 현재 총 19가지 종류의 표정을 만들 수 있다. 13개 마이크가 내장돼 있어서 누군가 말을 걸어오면 즉각 감지해 상대방과 대화를 나눈다.
―현재 안드로이드 로봇은 동작이 어디까지 가능한가?
"대화하는 중에 자연적인 제스처나 동작이 가능한 정도다. 박장대소처럼 액션이 큰 동작은 할 수 없다. 우리는 운동선수와 같은 로봇을 연구하는 게 아니고, 사람과 대화하는 로봇에 관심이 있다. 너무 인간과 비슷해서 놀란 사람들이 많다."
―어떤 사람들과 함께 일하나?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합쳐 60여 명 정도 된다. 연구자가 15명 정도고, 공과대 대학원생과 학부생, 연구보조 인력으로 구성된다. 테마는 인간-로봇 상호작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공학, AI, 사회 심리학, 인지 과학이 고루 합쳐진 영역이다. 인간과 로봇의 관계에 대해 분석해 미래 사회에 대비한다.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본뜬 안드로이드 로봇과 원격 조작이 가능한 로봇, 대화형 로봇 제작뿐만 아니라 (병원 현장에 로봇을 실제로 투입하는 것처럼) 로봇이 인간 생활에 참여하는 사회 실험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인간 뇌 삽입한 로봇은 불가능
안드로이드 로봇과 함께 그는 의사소통을 보조하는 로봇 연구에도 나서고 있다. 그가 2015년 1월에 내놓은 탁상 사이즈(키 약 30㎝)의 커뮤(CommU)와 소타(Sota)는 대표적인 대화형 로봇이다. 커뮤는 자폐증 아이들이 다니는 발달장애 전문 병원에서 활약 중이다. 과묵하다거나 언어 능력에 문제가 없어도 전혀 얘기를 하지 않는 증상의 아이들에게 키보드를 주고 커뮤를 통한 대화를 유도하면 아이들은 웃으면서 키보드를 두드린다. 그는 "인간의 표정 변화에 불안을 느끼는 아이들이라도 로봇을 상대하게 되면 불안감과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인간과 공존하는 대화형 로봇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내다본 셈이다.
―로봇을 인간과 완전히 똑같게 보이게 하려면?
"우리가 만든 로봇에 조금 떨어져서 보면, 정말 인간인지 로봇인지 모를 수 있다. 그런데 조명이 어떻게 비치느냐에 따라서는 구분이 가능하다. 앞으로 개발해야 하는 부분이, 정말 더 똑같이 보여야 하는 거다."
―로봇이 불가능한 영역도 있다고 생각하나?
"인간 뇌를 그대로 넣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100년 정도 후면 모르겠지만, 영원히 불가능할 거 같다. 지금 기술로는 불가능하다. 생체와 기계를 연결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소니와 함께 반려봇 개발 중
인공지능 반려봇 '아이보(aibo)'로 이 분야에 뛰어든 소니(Sony)가 이시구로 교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올 7월부터 이시구로 교수를 자사 로봇 사업 분야의 '초대 시니어 과학자'로 초빙했다. 특히, 조리와 배달 분야 AI 로봇 개발에서 외부 기관들과 활발한 협업을 추진하고 있는 소니는 미 카네기멜런대와도 공동 연구를 하고 있다.
■이시구로 히로시(石黑浩·56)1963 일본 시가현 출생 1986 야마나시대 계산기과학과 졸업 1991 오사카대 기초공학연구과 박사과정 수료 1994 교토대 공학연구과 조교수 1998~99 UC샌디에이고 객원 연구원 2002~11 ATR(국제전기통신기초기술연구소) 지능로보틱스 연구실장 2003 오사카대 공학연구과 교수 2009 오사카대 기초공학연구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