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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성공했다고 소인배처럼 날뛰어선 안돼… 중국 반도체, 서두른다고 되는 게 아니다"

People 최유식 중국 전문기자
입력 2018.07.28 03:00

[최유식의 長江激流] (5)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자의 自省

중국 전문기자
지난 2일 세계 1위 통신장비 제조업체 중국 화웨이(華爲) 직원들은 창업주 런정페이(任正非) 회장이 보낸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회장실 이메일 63호'란 머리글이 달렸다. 이 글엔 지난 5월 15일과 6월 4~13일 런 회장이 화웨이 이사진, 유럽 지역연구소 선임 연구원들과 가진 간담회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 이메일 내용은 메신저 웨이신(微信)과 소셜미디어 웨이보(微博)를 통해 순식간에 중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그는 미·중 무역 전쟁에 대해 "양국은 무역 의존도가 아주 커서 강렬하게 충돌할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 "반드시 서로 타협하게 된다"고 전망했다. 런 회장은 또 "조금 성공했다고 소인배처럼 분별없이 날뛰어서는 안 된다"면서 "미·중 간 격차는 50~60년이 지나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런 회장은 중국 군 공병장교 출신으로 40대 초반인 1987년 개혁 개방 1번지인 선전(深圳)에서 화웨이를 창업했다. 초기에 사설 교환기와 전화기 등을 수입해 팔거나 제조하던 이 업체는 2000년대 들어 통신장비 제조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2015년에는 에릭슨을 제치고 이 분야 세계 1위 자리에 올라섰다. 창업 28년 만이다. '기술 제일주의'를 바탕으로 서구 기업을 꾸준히 쫓아간 런 회장의 경영 철학이 만든 기적으로 평가받는다.

"중국에 전 세계 물 흘러들어야"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은 중국 군 공병장교 출신으로 40대 초반 중국 선전에서 화웨이를 창업, 통신장비 제조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 조선일보 DB
런 회장은 미·중 무역 전쟁에 대해 "극단적인 충돌은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양국 경제 의존도가 너무 높아서 무역 전쟁이 격화되면 서로 피해를 입는다고 본 것이다. 그러면서 양국 무역 갈등 해법으로 개방을 주문했다. 런 회장은 "중국의 최대 무기는 13억명 인민의 소비"라면서 "금융시장과 제조업 분야를 대폭 개방하고, 각종 상품 관세를 낮춰 '세계의 물'이 흘러 들어오게 하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더 많은 기회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개혁·개방 조치를 확대해 무역 전쟁을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화웨이는 매출 규모는 물론, 기술력 면에서도 세계 수준에 올라선 몇 안 되는 중국 기업이다. 작년 매출은 100조원을 넘어섰고, 연구·개발(R&D) 투자는 EU 집계 기준으로 지난해 약 13조6000억원에 달해 단일 기업으로는 세계 6위를 기록했다. 삼성전자(4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대단한 규모다. 5G(세대) 이동통신 기술 분야에서도 세계적 기술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2016년 5G 통신 표준 결정 당시 퀄컴과 경쟁, 화웨이의 폴라 방식이 국제 표준으로 선정되도록 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런 회장은 머리를 숙였다. 그는 "다른 사람(미국)의 강점을 알아야 그 사람의 창조물을 존중하는 법을 알게 된다"면서 "CDMA 기술은 1940년대 미국에서 시작됐고, 미국에서 이 기술에 대한 응용 연구가 정점에 이르렀던 1960년대는 내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였다"고 회상했다. 이어 "우리는 올해도 퀄컴 칩 5000만개를 구입하려 한다"면서 "퀄컴과 대립하는 쪽으로는 영원히 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런 회장은 또 "전 세계 수십 개 기업이 10여 년 노력 끝에 5G 기술을 추진할 수 있었으며, 화웨이는 그중 좀 더 노력한 회사 중 하나"라면서 "아직도 갈 길이 멀고 우리가 (퀄컴 등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다"고 고백했다.

이런 발언은 화웨이의 5G 기술력에 대해 중국 매체가 과대 포장하면서 결국 미국 견제를 불렀다는 인식이 배경에 깔려 있다. 화웨이와 중싱(中興·ZTE) 등 중국 통신장비 제조업체들은 최근 미국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고 있다. 중싱은 지난 4월 미국 기업과 7년 동안 반도체칩, 소프트웨어 등을 거래하지 못하도록 하는 미국 상무부 제재를 받아 회사가 망할 지경까지 이르렀다가 최근 제재가 풀렸다.

"50~60년 지나도 美 추월 못 해"

런 회장의 이런 인식은 중국 주류 사회의 중화주의적 관점과 다르다. 런 회장은 2016년 미국을 돌러보고 온 뒤 "많은 중국인이 미국이 쇠퇴하고 있다고 노래를 부르지만, 오래도록 쇠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이메일에서도 미국과 중국은 아직도 격차가 크다고 진단했다. "미국과 격차에 대해 말한다면 20~30년, 심지어 50~60년이 지나도 격차가 해소될 수 없을 것"이라면서 "세계를 주도하는 미국의 힘은 강력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머리가 깨어 있어야 한다"면서 "조금 성공했다고 소인배처럼 분별없이 날뛰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중국은 그 격차를 좁혀 나가야 생존할 수 있는 정도"라는 것이다.

중국 내부의 첨단 기술 조급증에 대해서도 경계했다. 중국 내에서는 ZTE가 미국 제재로 망할 위기까지 간 사건을 계기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도체 산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중국 정부도 국유 기업인 칭화유니그룹 주도로 반도체 국산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4월 말 칭화유니그룹 산하 낸드플래시 공장 건설 현장을 방문해 "반도체는 심장"이라며 중대 기술 돌파를 직접 주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런 회장은 "반도체는 서두른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고 못 박았다. 그는 "반도체 산업은 기술과 장비, 소재 문제 등을 해결해야 한다"면서 "주식시장에서 돈을 끌어모으려고 기술을 지나치게 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기업이 앞서가고 있다는 인공지능과 클라우드 분야 기술에 대해서도 "아직도 많이 낙후돼 있는 수준으로, 그런 식의 거품으로는 쫓아갈 수 없다"고 했다. 중국 기업들이 자신이 가진 기술을 과대 포장하고 있지만, 아직 세계 수준에 크게 뒤진다는 것이다.

"'기술 상인'보다 과학자가 필요"

런 회장은 수준 높은 전략적 관점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쫓아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런 회장은 화웨이 30년을 '성벽 돌진'에 비유했다. 높은 성벽을 향해 끊임없이 돌진하고 부딪혀 이제 겨우 한 부분을 돌파한 수준이라는 것. 그는 "성벽에 돌진하는 인원이 수십 명에서 지금 18만명으로 늘었고, 포탄(연구·개발 투자)도 한 해 150억달러 가까이로 증가했다"면서 "겨우 한 부분 성벽을 돌파해 세계 수준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더불어 기초 기술 연구를 강화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화웨이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내부 직원에게 "우린 과학자가 필요한 게 아니라 기술 상인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지금은 "우리에겐 과학자 직원, 사상가 직원이 필요하다"는 구호로 바뀌었다. 런 회장은 "화웨이는 과거 30년 동안 전 세계 통신 산업 발전이라는 기회 속에 낮은 원가와 강력한 집행력으로 성과를 거뒀지만, 미래 30년은 다르다"며 "승자 독식이라는 업계 흐름에 맞춰 과학기술과 비즈니스 변화 흐름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화웨이 연구투자비의 20~30%를 기초연구 분야에 투입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좌담회에 참석한 연구 인력에게 "구체적인 일은 엔지니어에게 맡기고 화웨이의 미래 발전 방향을 찾을 수 있도록 사상을 정립하고 가설을 세워달라"면서 "외부 사람들과 더 자주 만나 커피라도 마시면서 교류하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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