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노벨 경제학상은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에게 돌아갔다. 2002년 행동경제학 창시자 중 하나인 대니얼 카너먼 프린스턴대 교수가 수상한 지 15년 만이다.(사실 '행동'보다는 '행태'가 더 적합한 단어이긴 하다.)
카너먼은 심리학 실험을 통해 인간 의사 결정 방식이 기존 경제 이론이 가정한 합리적 개인의 그것과 다르다는 걸 보여줬다. 세일러는 더 나아가 인간 의사 결정 '편향(bias)'이 사회 경제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과 바람직하지 않은 편향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수정하는 방안에 대해 연구했다.
카너먼이 인간 심리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면, 세일러는 인간 심리와 사회 제도를 함께 고려했다. 기존 경제학이 가정한 합리적 개인(rational agent)은 행위의 최종 결과에만 주의를 기울이지만, 카너먼은 최종 결과가 같더라도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에서 개인의 주관적 만족감은 사람마다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손실회피 심리를 최대한 활용하라
예를 들어 당신이 게임쇼에 나가서 1000만원을 벌었다고 하자. 이에 더해서 500만원을 더 받고 게임이 끝난다. 그다음 환경에선 당신이 게임쇼에서 2000만원을 벌었는데 500만원을 잃고 게임이 끝난다. 둘 다 1500만원을 받기 때문에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적 개인이라면 동일한 만족을 느껴야 하지만 실제론 500만원을 잃고 끝난 이들이 괴로움을 느낀다. 인간 마음속에는 준거점(reference)이 존재하고 그보다 결과가 좋으면 이득, 나쁘면 손실로 파악한다. 그리고 인간은 이득에 비해 손실에 더 민감히 반응한다. 이를 행동경제학에선 손실회피(Loss aversion)라고 부른다.
세일러는 손실회피 개념을 이용해 금융시장에서 관찰되는 비합리적 행위를 설명했다. 예를 들어 주식이나 아파트 가격이 떨어질 때 팔지 못하는 것은 손실이 실현되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또 세일러는 행동경제학 통찰력을 이용해 사람들 행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그러한 개입을 '팔꿈치로 쿡 찌른다'는 의미인 넛지(nudge)라 불렀다. 정부는 에너지 과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면 연간 35만원을 절약할 것"이라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손실회피 이론에 의하면 같은 정보라도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지 않으면 연간 35만원을 잃을 것"이라고 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다. 다른 예로 어느 나라 정부가 연금 가입을 독려하려고 한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가입'을 기본 선택(default)으로 설정하고 '탈퇴'를 허용하는 편이 '미가입'을 기본 선택으로 설정하고 '가입'을 허용하는 것보다 좋을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뚜렷하게 아는 사람은 어차피 본인이 원하는 바대로 선택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기본 선택지를 포기하는 것을 꺼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버드대 롤런드 프라이어 교수와 동료 연구자들은 미국 시카고 근처 초등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무작위 통제 실험을 했다. 일부 교사들은 가르친 학생들의 성적이 오를 경우, 금전적 보상을 받았고, 다른 교사들은 미리 돈을 받고 학생들 성적이 오르지 않을 경우 그 돈을 반납했다. 학생들 수학 성적을 분석해보니 받은 돈을 반납해야 했던 교사의 학생들 수학 성적이 더 크게 올랐다. 이는 교사들에게 더 효과적인 인센티브를 주기 위해 손실회피와 넛지 아이디어를 이용한 사례였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심리학자가 본 경제학·경영학
심리학이 대세가 됐다. 베스트셀러 상단에 심리학 저서가 있고, 심리학 강연은 인기 메뉴가 됐으며, 입시에서도 인기를 누린다. 인간이 더 중요한 시대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인류는 생존에 필수적인 의식주의 결핍과 투쟁하며 살아왔다.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은 우리 관심을 경제, 금융, 생산, 기술로 이끌고, 농축산학, 경제학, 경영학, 각종 공학, 컴퓨터공학 학문을 부흥시켰다. 인류에게 꿈꾸던 풍요를 가져다주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어찌 보면 인간은 상대적으로 상실됐다. 궁극적 목적은 인류를 위한 것이었지만, 인간은 생산의 수단으로 여겨지고 무시됐다. 과거 결핍의 시대에 인간들은 더 가지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일하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지 않으면 낙오자 취급했다. 그러니 생산 현장에서 '인간의 동기'에 대한 고민은 필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당연한 동기가 상실되는 것에 당황하고 있다. 동기뿐만이 아닌 인간의 선호가 더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과거에는 일만 주면 감사해하던 직원들이 이제는 불만을 얘기하고 거부하고, 심지어 직장을 그만둔다.
이런 동기와 선호의 문제는 소비 측면에서 더 중요해지고 있다. 기본 욕구가 결핍되었을 때, 인간이 추구하는 바는 비슷해진다. 열흘을 굶은 사람에게 밥인지 빵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까지 많은 학문 분야에서, 심지어 심리학에서도 상대적으로 인간이 상실될 수 있었던 이유도 아마 인간의 보편성만 보려고 했기 때문이다. 사회과학에서 개인차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무작위 오차(random error) 정도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최근 연구 작업에서는 인간의 행동 결정에 미치는 그 개인차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어찌 보면 모든 회사가 만들고 싶어했던 '더 좋은' 제품은 사람들이 같은 걸 원할 때나 가능했다. 모든 사람이 각자 다른 제품을 원한다면, 더 이상 '더 좋은' 제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경영학과 경제학이 점점 심리학과 가까워지는 이유는 더이상 인간이 획일적으로 무엇인가를 동일하게 원한다는 가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 단위 분석이 중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