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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조준, 사격'은 끝났다… 사격, 사격, 사격하라

Analysis 런던=남민우 기자
입력 2018.05.05 03:00

'싱커스50 평생 공로상' 받은 톰 피터스

피터 드러커와 함께 현대 경영 창시자로 꼽히는 톰 피터스/톰 피터스 홈페이지
톰 피터스(Peters·76)는 별다른 부연 설명이 필요없는 경영학계 대가(guru)다. 1982년 동료 로버트 워터먼과 함께 펴낸 '초우량기업의 조건(In Search of Excellence)'은 경영계 필독서로 꼽히며 300만부 이상 팔렸다. '실행을 중요시한다' '고객과 밀착하라' '자율성과 기업가정신을 독려하라' '사람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한다' 등 초우량기업을 특징짓는 8가지 조건은 지금도 유효한 명제다. LA타임스는 그를 '포스트모던 기업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피터스는 지난해 11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싱커스50' 행사에서 평생 공로상을 받았다. '경영학계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자리다. 이미 그는 '싱커스50'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된 상태. 피터스는 행사 기조 연설자로 나와 약간 쉰 듯하지만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다양한 주장을 쏟아냈다. 그는 "페이스북이나 구글이 기업 생태계를 이루는 전부가 아니다"면서 "작지만 강한 중소기업에 주목하라"고 강조했다. "실제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건 보이지 않지만 묵묵히 생산 현장을 지키는 중소기업들"이라고 덧붙였다.

Q1 전통기업들을 높게 평가한 셈인데 요즘 시대엔 좀 지루한 업종으로 취급받는다.

"오후에 아내와 함께 동네 식당에 점심을 하러 나가는데 겨자 소스만 100년 넘게 파는 오래된 상점을 지나쳤다. 정말 멋진 곳이다. 다들 대기업이나 테크기업에만 열광하는데 사실 더 많은 사람이 이런 데서 일한다. 미국은 물론, 한국·독일 모두 다르지 않다. 이런 풀뿌리 기업들이 중요하다. AI(인공지능)나 인터넷 기술들은 일자리를 잡아먹는다. 반면 이런 곳에서 일자리가 생긴다. 그래서 우린 뭔가 특색이 있고 새로운 혁신을 창출하는 작은 기업들을 끊임없이 소개해야 한다. 혼다는 훌륭한 회사다. 하지만 보잘것없는 세탁소도 '그 세계의 혼다'가 될 수 있다. 수공예점, 결혼식 케이크 가게, 개인 변호사 모두 마찬가지다. 실제 그런 회사들이 즐비하다. 독일을 보라. 이름도 못 들어본 작은 회사들이 전 세계 시장점유율 85%를 차지하곤 한다. 자동차 덮개를 만드는 W.E.T., 무대장치 회사 게리츠, 산업용 특수접착제 제조사 DELO, 금속융합 레이저 기술을 보유한 EOS 등이 다 그런 곳이다."

독일에선 이런 중소·중견기업을 '미텔슈탄트(Mittelstand)'로 부른다. 전체 기업 중 99%가 해당하며 독일 수출의 60~70%를 담당한다. 경영학자 헤르몬 지몬은 세계시장 점유율 1~3위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을 '히든 챔피언'으로 지목했는데 독일에만 1307개가 있다고 한다. 전 세계 '히든 챔피언'의 48%를 차지한다.

Q2 하지만 지금 주목을 받는 건 테크 기업들이다.

"한국에 대해 정확히 몰라 뭐라 말하긴 어렵지만 미국에선 하버드대나 스탠퍼드대, MIT 등 최고 학부에서 컴퓨터공학 학위를 받은 학생들이 구글이나 페이스북에 몰려든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어떤 회사인가. 광고회사다. 고객들 프라이버시를 이용해 돈을 버는 곳이다. 정말 똑똑한 아이들이라면 뭔가 더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더구나 이 테크 기업들은 직원을 많이 채용하지도 않는다. 돈은 엄청나게 번다. 테크 기업들이 전체 노동력 중 감당하는 비율은 4%에 불과하다. (한국) 대통령은 나머지 96%를 위해 더 많은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경영학자들도 4%(테크기업)보다 96%(전통산업)를 위해 더 많이 조언하고 연구해야 한다. 한국 청년들이 삼성이나 LG에서 더 이상 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그걸로 끝이다. 미국이나 일본에선 이미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싱커스50’ 행사에서 평생 공로상을 받고 있는 피터스. /톰 피터스 트위터
Q3 그럼 당신은 제조업 찬양론자(fan)인가.

"그렇긴 하지만 현실은 그다지 밝지 않다. 제조업이 고용 창출에 기여하는 정도가 점점 줄고 있다. 1996년 이후 (제조업 호황을 누렸던) 중국에서 제조업 근로자 수는 오히려 33% 줄었다고 한다. (애플 휴대전화 제조 하도급업체인) 폭스콘은 100만 대에 달하는 로봇을 주문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영국에선 향후 20년 이내 컴퓨터와 로봇 때문에 지금 있는 일자리 중 35%가 없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테크 쓰나미'가 밀려들고 있다. 전문가라고 안심할 수 없다. 제조업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더이상 노동집약적 산업이 아니란 얘기다. 닛산자동차가 (1990년대) 미 남부(테네시)에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을 때, 새로운 일자리가 2500개 이상 생겼다. 반면 기아자동차가 최근 공장 증설 계획을 공개했는데 이젠 일자리가 300개밖에 안 된다. 3000개가 아니다. 좋은 일자리가 제조업에서 더이상 창출되지 않는다는 부분은 고민해야 할 과제다."

Q4 경영대학원(MBA) 무용론도 자주 설파한다.

"개인적인 경험이 크다. 해군 장학금으로 코넬대에서 학사·석사, 스탠퍼드대에서 MBA를 마쳤다. 그리고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해군 중위로 12명에 달하는 부대원을 책임져야 했다. 총탄이 쏟아지는 전장에서 대원들을 배치하고 임무를 줘야 했다. 그런데 MBA에서 배운 리더십 강의와 조직관리론 프로그램이 아무 쓸모가 없더라. 그게 화가 났다. 오늘날 테크기업이 배워야 하는 것은 경영 기법이나 프로그래밍이 아니라 사람을 다루는 방식이다. 어떤 사람을 채용하고 발전시키고 키우는 조직 문화가 중요하다. MBA는 전략이나 재무 회계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보다 사람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 경영은 학문이 아니라 100% 기술이다."

Q5 그렇다면 좋은 회사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1970년대까지 이른바 'GM 시대'에는 '준비, 조준, 사격(Ready, Aim, Fire)'이 경영 공식이었고, 1980년대 이후 '마이크로소프트 시대'에선 '준비, 사격, 조준(Ready, Fire, Aim)'이었다.(아이디어를 먼저 실행한 뒤 오차를 조정해 원래 목표에 정확하게 도달한다는 뜻이다) 2000년대 이후 '구글 시대'는 한발 더 나아가 '사격, 사격, 사격(Fire, Fire, Fire)'이 대세다. 그만큼 신속한 실행이 중요하다.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 자서전 제목은 '망치고 다시 시작하라(Screw It, Let's Do It)'이다. 전부터 '뛰어난 실패엔 상을 주고 그저 그런 성공은 질책하라'고 강조했는데 그게 새로운 시대 경영 지침이다. 지혜로운 무관심보단 열정적인 실수가 더 낫다. 신속한 승리가 가장 좋겠지만 거기에 도달하려면 신속한 실패가 필요하다. 요약하자면 그건 실행력이다. 매일 뭔가 하나만이라도 하기 망설여지는 일을 과감히 해보라."

피터스는 저서 '미래를 경영하라'에서 이렇게 적었다. "가장 싫어하는 비문은 이렇다. '톰 피터스 : 뭔가 정말로 멋진 일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상사가 내버려 두지 않았다.' 정말 원하는 비문은 다음과 같다, '톰 피터스 : 그는 언제나 행동가였다."

●기업 경영을 지배하는 불변의 8가지 원칙

1. 실행이 중요하다. 해보라, 안 되면 고쳐라
2. 고객과 친밀해져라. 귀를 기울여라
3. 자율성과 기업가 정신을 장려하라
4. 직원을 아이디어 원천으로 대하라
5. 기업 철학·가치에 근거해 성과를 평가하라
6. 핵심 사업에 집중하라
7. 조직을 단순화하고 작은 본사를 지향하라
8. 온건하게 운영하되 핵심 가치에 엄격하라

자료: 톰 피터스 ‘초우량 기업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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