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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관리·디테일 혁신… 현대 경영이론 뺨친 120년

Analysis 김민수 조선비즈 과학바이오팀장
입력 2017.12.02 03:03

'활명수' 3세기… 일렬로 세우면 지구 8바퀴 반 도는 양 판매 11차례 변신한 부채표 모양 브랜드 한국인 99%가 익숙 편의점용 제품과 여성·아동 제품 개발로 유통망·고객층 확대 화장품으로 해외진출 "궁중비방서 출발" 스토리텔링 먹혀

동화약품의 '활명수'는 우리나라 최장수 브랜드이다. 지난해까지 국내외에서 팔린 분량(85억병)을 일렬로 세우면 지구 8바퀴 반을 도는 규모다.

현재 약국에서 일반의약품으로 4종, 편의점에서 의약외품으로 2종이 팔리는 활명수의 인기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뜨겁다. 약국 전용 대표 제품인 '까스활명수큐'와 편의점용 대표 제품인 '까스활'의 2016년 한 해 판매량은 각각 6900만병, 2800만병이었다. 두 제품의 판매량(9700만병)으로만 봐도 지난해 1분당 185개, 하루 평균 26만5800병씩 팔린 것이다. '생명(命)을 살리는(活) 물(水)'이라는 뜻의 활명수 브랜드와 '부채표' 로고에 대한 한국인의 제품 인지도는 99.3%에 달한다 (2015년 한국갤럽 조사).

1897년 9월, 궁중 선전관(宣傳官·경호실 간부)이던 민병호 선생이 만든 활명수는 120년간 한국인의 필수 상비약(常備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독일 제약사 바이엘의 아스피린과 동갑내기인 활명수의 3세기에 걸친 인기 비결은 뭘까.

1. 부채표 모양 11번 바꾸며 브랜드 관리

궁중 비방과 양약(洋藥)에 모두 밝았던 민병호 선생은 진피, 창출, 현호색, 후박 같은 전통 한약재에 아선약과 정향 등 수입 약재를 섞고 박하를 배합해 활명수를 제조했다. "위 경직을 자주 호소했던 고종 황제를 위한 약으로 출발했지만 스트레스가 많은 한국인과 고형제보다 액제를 선호하는 한국인 체질과도 궁합이 맞았다."(성상현·서울대 약대 교수)

고 윤창식 사장(위) 윤도준 회장
동화약방은 1910년 8월 통감부 특허국에 '부채표' 상표를 등록해 우리나라 1호 상표 기록을 세웠다. 흑백이던 부채표는 1977년 이후 동화약품의 상징 색깔인 '빨강(red)'으로 바뀌었다. 1977년에는 부채표에 테두리를 둘렀고 2002년에는 "부채표가 없는 것은 활명수가 아닙니다"라는 광고를 냈다. 2008년에는 부채를 강조하기 위해 부채표 안에 쓰여져 있던 '동화(同和)'까지 삭제하고 'since 1897'이라는 문구를 넣었다. 부채표 모양은 지금까지 모두 11차례 변신했다. '부채표 후시딘' '부채표 판콜' 등 부채표를 활용한 다른 제품도 등장했다. "동화약품의 세심한 브랜드 관리는 글로벌 기업들이 100년 넘게 해왔던 브랜드 관리 전략 못지않다"(예종석·한양대 경영대 교수)

최근 동화약품은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브랜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생명을 살리는 물 캠페인' 사회공헌 활동이 한 예이다. 올 2월 동화약품은 '활명수 119주년 기념판'의 판매수익금 전액을 세계 물 부족 국가 어린이 후원금으로 맡겼다.

2. 제품 세분화 통해 신규 시장 꾸준히 개척
'구식(舊式) 브랜드'인 활명수를 둘러싼 소비자 환경은 우호적이지 않다. 20~30대 젊은 층의 활명수에 대한 인지도가 갈수록 낮아지는 데다, 식습관 변화로 급체, 위부팽만감, 과식, 구토 증상이 감소해 소화제 수요가 줄고 있는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2008년 동화약품 대표이사를 맡은 윤도준 회장은 제품과 유통채널 두 방면에서 변신을 꾀했다. 활명수와 까스활명수큐가 고작이던 제품 포트폴리오에 편의점 의약외품 '까스활'을 추가한 것이다.

까스활은 신제품 개발과 유통망 확보에 3~4년이 걸렸지만 2011년부터 매년 평균 20%씩 성장하는 효자 품목이 됐다. 현재 이 제품은 3만7000여 국내 편의점 매장마다 하루 평균 1.6~1.7개씩 팔린다. 코카콜라(일평균 2.1개씩 판매)와 더불어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품목 중 하나다.
'미인활명수'(2015년), '꼬마활명수'(2016년) 같은 신제품도 등장했다. 10·20대 여성을 겨냥한 미인활명수는 매실을 훈증한 '오매' 성분을 넣어 맛을 개선했다. 탄산량도 까스활명수의 70% 정도로 줄였다. 15세 미만 아동을 겨냥한 꼬마활명수는 짜 먹는 제형(劑形)으로 탄산 성분을 제거했다. "활명수가 장수 브랜드가 된 데는 제품 세분화를 통해 신규 시장을 꾸준히 개척하며 새 생명력을 불어넣은 게 큰 요인이다." (김형수·케이프투자증권 애널리스트)

3. 경쟁자 공격에 장점 수용 뒤 역공

활명수는 1965년 삼성제약이 활명수와 유사한 액제 소화제에 탄산가스를 주입한 '까스명수'를 출시하면서 위기에 직면했다. 콜라, 사이다 등 탄산음료 인기에 편승한 삼성제약의 전략으로, 활명수가 까스명수에 점유율을 추월당할 정도였다. 대응 전략을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기존 제품을 고수해야 한다는 쪽과 삼성제약처럼 탄산을 추가해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맞섰다. 윤광열(1937년 동화약방을 인수한 고 윤창식 사장의 아들·작고) 당시 상무는 고심 끝에 변화를 수용키로 하고 이듬해 12월 까스활명수를 출시했다. 이 제품은 3년 만인 1969년 시장점유율에서 까스명수를 제치고 국내 액제 소화제 시장을 평정했다.

활명수는 용기 크기에도 변화를 줬다. 초기 활명수는 450mL 대용량 병으로 나왔으나 1980년대 후반부터 소비자 편의를 감안해 야구르트 병 만한 크기인 75mL짜리로 바꿨다. 2011년부터는 건강상 위해(危害) 우려가 있는 보존제가 들어가는 450mL 활명수 생산을 중단하고, 모든 생산라인을 75mL 무(無)보존제 제품으로 교체했다. 2010년엔 활명수 병 입구 지름을 기존 25㎜에서 28㎜로 늘렸다.

박희범 동화약품 OTC마케팅팀장은 "2014년부터 활명수의 감미제로 쓰는 당(糖)을 품질 좋은 '프락토올리고당'으로, 활명수 포장 박스의 잉크는 친환경 콩기름 잉크로 바꾸는 등 끊임없는 디테일 혁신이 우리의 강점"이라고 했다.
4. 약품에서 화장품 개발해 전 세계 판매

활명수는 미국에서 연간 100만병 정도 팔린다. 주 고객은 재미교포다. 내년부터는 몽골, 캄보디아에도 진출한다. 동화약품은 활명수를 화장품으로도 탈바꿈시키고 있다. 해외 진출을 강화하기 위함이다.

2년여의 자체 연구 개발 끝에 활명수의 11가지 성분 중 진피, 정향 등 5가지 생약 성분을 선별한 화장품 '활명 스킨 엘릭서'가 핵심 상품이다. 올 2월부터 미국에서 토너, 미스트, 세럼, 오일을 한 병에 담아 병당 58달러(약 6만3000원)에 팔고 있다.

활명 스킨은 보습·미백 효과가 입소문을 타면서 올 6월부터는 미국 노드스트롬 백화점의 온라인몰, 8월부터는 노드스트롬 시애틀 본사 매장을 비롯한 30개 매장에 입점했다. 미국 패션 매거진 '얼루어'는 올 10월 '이달의 제품'으로 활명 스킨을 선정했다.

윤현경 동화약품 사업개발실 상무는 "황제의 궁중 비방에서 출발했다는 활명수의 스토리텔링이 미국에서도 통했다"며 "세럼, 클렌징, 크림 등도 활명 브랜드로 출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동화약품은 활명 스킨을 최근 캐나다와 멕시코에 출시한 데 이어, 내년에는 브라질 등 남미 국가와 러시아에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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