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비즈

'SW 존재감 제로 한국'의 진짜 문제점

Opinion 이한주 베스핀글로벌 대표
입력 2017.07.15 08:00

[On the IT]

이한주 베스핀글로벌 대표
IT 강국 대한민국, 지난 20년간 우리는 이 수식어를 진실로 받아들여 왔다. IT 인프라에 있어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다. 세계 어디에도 우리나라처럼 빠른 속도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 그러나 글로벌 IT 기업으로 눈을 돌려보면 말이 달라진다.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한국, 그리고 한국 기업의 존재감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세계시장에서 활약하는 IT 소프트웨어 기업, 글로벌 소프트웨어 서비스는 찾아볼 수 없다. 냉정하고 솔직하게 평가하자면, 재벌 계열사인 SI(시스템통합) 대기업들은 키 재기 경쟁에 몰두하고 있는 도토리 수준이고, 이들에게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는 중소기업들은 좀비에 가깝다. 세계 최고의 IT 인프라를 갖춘 나라가 이런 지경에 이른 이유는 무엇일까.

공정한 경쟁 질서가 무너진 데 원인이 있다. 재벌 계열사인 SI 기업들은 그동안 중소기업에서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OEM(주문제작) 방식으로 낮은 가격에 흡수한 뒤, 모(母)기업에 높은 가격을 받고 납품해 막대한 수익을 올려왔다.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비즈니스를 하며 국제적인 경쟁력을 쌓을 기회를 스스로 놓아 버렸다.

세계시장의 질서는 다르다.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대기업들이 계열사를 통해서 소프트웨어를 납품받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경쟁력 있는 소프트웨어와 기술은 기업의 경쟁력과 직결되기 때문에 세계 각국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시시각각 만들어내는 기술을 빠르게 흡수하며 성장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클라우드업체 클라우딘을, 시스코가 앱 성능 분석업체 앱다이나믹스를 인수한 데 이어 아마존이 기업용 메신저업체 슬랙 인수를 추진하는 등 글로벌 대기업의 소프트웨어 기업 인수 소식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이 까닭이다.

중소기업 판로 막는 대기업 IT 업체들

하지만 우리나라의 재벌 SI 기업들은 중소기업으로부터 납품받은 소프트웨어를 중소기업이 다른 기업에 판매할 수 없게 하는 관행을 강요해 유망 중소 소프트웨어 업체의 판로를 막아왔다. 그 여파로 중소기업의 소프트웨어 납품 가격은 해가 갈수록 떨어지고, 일부 기업은 대기업에 기술 특허까지 빼앗기는 등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서울 구로 가산디지털 단지의 수많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기업들은 SI 대기업이 제시하는 달콤한 수익에 기대어 연명하는 좀비로 전락한 지 오래다.

시장조사 업체 가트너는 현재 2000조원 정도인 세계 기업용 IT 시장 규모가 앞으로 3년 안에 그 두 배인 4000조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거대한 시장에 도전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기업은 우리나라에도 잠재해 있다. 하지만 이들이 세계시장에서 날개를 펼치기 위해서는 대기업 SI 업체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우리나라의 기업용 IT 산업 메커니즘에 대수술이 절실하다.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정비된 공정거래위원회를 중심으로 공정한 시장 질서 세우기가 화두로 떠올랐다. 이 화두가 4차 산업혁명의 주역인 기업용 IT 생태계에 먼저 적용되길 기대해 본다. 그래야만 새 정부의 3대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인 4차 산업혁명의 물꼬가 트이고, 진정한 의미의 IT 강국 대한민국으로 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화제의 Opinion 뉴스

'암흑의 숲'으로 들어가고 있는 미국과 중국
유럽 기업 빈부격차 줄이려면 '범유럽 주식형 펀드' 만들어야 한다
미국인들이 코로나 위험 무릅쓰고 직장에 복귀할까
WEEKLY BIZ가 새롭게 탄생합니다
테슬라 팬들은 좀 침착해야 한다

오늘의 WEEKLY BIZ

알립니다
아들을 죽여 人肉 맛보게한 신하를 중용한 임금, 훗날…
'암흑의 숲'으로 들어가고 있는 미국과 중국
유럽 기업 빈부격차 줄이려면 '범유럽 주식형 펀드' 만들어야 한다
WEEKLY BIZ가 새롭게 탄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