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모바일→차세대 컴퓨팅… 프로세서 시장 격변기 승자는
AI·자율주행차 시대 눈에 보이는 물체 읽는 능력 중요해져
'인간지능을 초월하는 인공지능 전쟁.'
글로벌 IT 기업들이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수퍼컴퓨터 등으로 영토를 확장하자 사람의 두뇌에 해당하는 '프로세서' 시장을 둘러싼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프로세서 시장은 CPU(중앙처리장치) 중심의 인텔과 GPU(그래픽칩) 중심의 엔비디아가 양강구도를 이루고 있다. 이 시장은 PC(개인용 컴퓨터)에서 모바일로, 모바일에서 차세대 컴퓨팅으로 전환하는 격변기를 맞아 누가 향후 패권을 잡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람의 두뇌보다 더 빨리 계산하고, 눈과 귀가 되어 실시간 정보를 분석하는 프로세서 시장에서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까.
CPU vs GPU…차세대 컴퓨팅 시장서 격돌
사람들은 PC 시대에 '컴퓨터 두뇌'라고 하면 두말 할 것 없이 CPU를 떠올린다. CPU의 성능은 곧 PC의 성능을 의미했고, CPU 제조사인 인텔은 PC 시대 최대 수혜자였다. 그러나 아이폰으로 촉발된 모바일 혁명 시대에는 스마트폰의 두뇌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의 주인공이 바뀌었다. 인텔이 모바일이라는 흐름을 놓친 사이 퀄컴·애플·삼성전자 같은 회사가 재빨리 시장을 차지한 것이다. 인텔은 모바일 대신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고성능 서버(대형 컴퓨터)용 CPU로 눈을 돌렸다.
GPU는 원래 컴퓨터 안에서 주연산을 하는 CPU를 보조해 이미지·영상 등의 그래픽을 처리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2006년 제프리 힌튼 토론토대 교수가 GPU를 이용한 인공 신경망 기반 딥러닝 알고리즘을 발표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GPU가 대용량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고, 사람의 뇌처럼 정보를 받아들여 분석하는 컴퓨팅 방식에 더 적합하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엔비디아는 컴퓨터 게임에서 생생한 영상(그래픽)을 구현하는 GPU를 만드는 반도체 회사다. 직접 공장을 운영하지는 않고 모두 위탁생산을 맡긴다. 1993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창업, 오늘날 세계 GPU 시장의 70%(외장 GPU·2016년 기준)를 차지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10여년 전부터 GPU를 게임 외 분야에 쓸 수 있도록 범용 GPU를 개발하고, 프로그래밍 체계인 '쿠다'를 만드는 등 기술력을 축적했다.
각자 시장에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했던 인텔과 엔비디아가 맞붙게 된 것은 차세대 컴퓨팅 시대의 부상 때문이다.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수퍼컴퓨터 등에 들어갈 두뇌 자리를 놓고 양대 진영의 양보할 수 없는 경주가 시작된 것이다.
업계에선 엔비디아의 GPU 성능이 인텔 CPU를 위협할 수준이라고 본다. 사진이나 이미지를 파악하거나 눈에 보이는 물체를 읽고 분석하는 능력은 GPU가 CPU보다 탁월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PC 시대에 CPU 하나로 세계 반도체 시장을 제패했던 인텔은 GPU 회사인 엔비디아를 강력한 경쟁자로 볼 수밖에 없다. 엔비디아의 GPU 기술은 로봇, 의학, 금융, 엔터테인먼트 등 산업 전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엔비디아, 테슬라 전기차에 GPU 집어넣어
CPU와 GPU의 대결이 가장 뜨거운 분야는 바로 자율주행차다. 자율주행차는 주행 중 도로 상황에서 실시간으로 엄청난 양의 정보를 빠르고 실수 없이 처리해야 한다. 따라서 막강한 연산 능력이 필수다.
엔비디아는 이미 테슬라·아우디·BMW·메르세데스벤츠, 보쉬 등의 회사들과 손을 잡고 GPU 기반 자율주행차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테슬라와 지난 2010년부터 협력했는데 테슬라 모델S, 모델X, 모델3뿐 아니라 향후 생산되는 모든 차종에 엔비디아 GPU가 들어간다. 엔비디아의 GPU 기반 수퍼컴퓨터가 각종 센서를 통해 얻은 도로 위 데이터를 통합·분석하고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김승규 엔비디아코리아 상무는 "인공지능 분야에선 CPU보다 GPU를 활용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며 "중장기적으로 GPU의 역할이 점점 더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인텔도 이에 질세라 올해 3월 153억달러(약 17조원)를 들여 이스라엘 스타트업 모빌아이를 인수했다. 모빌아이는 자동차, 트럭, 자율주행차 등에 들어가는 카메라와 반도체를 만드는 회사다.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모빌아이 인수에 대해 "자율주행차의 '눈(모빌아이)'과 실제 주행을 하는 '두뇌(인텔)'가 만난 셈"이라고 설명했다. 모빌아이는 운전자에게 차선 이탈 경고를 하고 보행자와 차량의 충돌 가능성을 경고하는 기술을 보유한 업체다.
모바일용 반도체 강자인 퀄컴도 자율주행차 기술 경쟁에 뛰어들었다. 퀄컴은 지난해 글로벌 자동차용 반도체 기업인 네덜란드 NXP를 470억달러(약 53조원)에 인수했다. NXP는 카메라와 레이더를 결합한 방식의 자율 주행 기술, 통신 네트워크를 방어하는 보안 솔루션 등을 갖고 있다.
구글·마이크로소프트·애플, AI칩 자체 개발
이전에 반도체를 제조하고 설계하지 않았던 회사들도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칩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인텔이 만든 CPU나 엔비디아가 만든 GPU로는 부족함을 느낀 기업들이 직접 '두뇌' 제조에 나선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구글이다. 구글은 지난해 인공지능과 머신러닝에 특화된 반도체 'TPU(텐서프로세서유닛)'를 개발했다. TPU는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데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학습하는 딥러닝에 특화됐다. 구글은 현재 GPU와 TPU를 모두 사용하고 있지만 점점 GPU 의존도를 줄일 가능성이 크다. 구글에 따르면 TPU가 엔비디아 GPU와 인텔 CPU에 비해 평균 15~30배나 성능이 높다.
마이크로소프트(MS)도 자사 서버 내에서 인공지능과 관련된 연산을 하는 칩을 자체 개발했다. 이 칩은 특정 작업의 처리 능력을 끌어올려주는 역할을 하는데, MS가 클라우드·수퍼컴퓨터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만들었다. 애플도 이달 초, 모바일용 GPU를 자체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애플은 가상현실과 머신러닝을 핵심 기술로 키우기 위해 GPU를 독자 기술로 개발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