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업계의 '해결사(Mr. Fix-it)' 카를로스 곤(Ghosn·62) 르노닛산 회장이 다시 나섰다. 지난달 23일 곤 회장은 16년간 유지한 닛산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사이카와 히로토(63) 닛산 공동 CEO에게 일임하고, 자신은 그룹 차원의 기술 진보나 소비자 수요 변화 대응을 진두지휘하겠다고 밝혔다. 작년 말 인수한 미쓰비시자동차를 되살리고 연간 총 판매대수 1000만대에 달하는 르노·닛산·미쓰비시 3사 동맹의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그의 과제는 여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율주행차나 차량 공유 서비스 등을 둘러싸고 구글 같은 IT(정보통신) 기업과 벌이는 기술혁신 경쟁에서 그룹이 살아남을 방법을 찾는 것이다. 곤 회장이 닛산 CEO직에서 물러나 그룹 총괄에 전념하겠다는 것은 닛산의 세부 사업에 신경 쓸 여력이 없을 만큼 그가 해결해야 할 도전 과제가 크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닛산이 올해 1월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공개한 V모션 2.0 콘셉트카. / 블룸버그
2만1000명 감축시켜 닛산 살려
카를로스 곤은 2000년대 초 경영난에 빠진 일본 자동차 회사 닛산을 일으켜 세웠다. 프랑스 자동차 회사 르노가 1999년 닛산을 인수한 후 2001년 닛산 사령탑에 오른 곤은 2조엔(20조원)에 달하는 닛산 부채를 2002년 말까지 7000억엔으로 줄이겠다는 내용을 담은 '닛산 부활 계획'을 제시했다. 곤은 이 계획을 지키지 못하면 임원들과 함께 사퇴하겠다며 '필달 경영(세운 목표를 반드시 달성하겠다는 것)'을 선언했다. 그는 2만1000명 인원 감축, 5개 공장 폐쇄, 20개 판매 회사 사장 교체, 4200억엔의 자산 매각 등 공격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해 닛산을 흑자로 돌아서게 했다. 곤은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영자로 꼽혔고, 2004년 일본 정부로부터 공익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훈장인 '남수포장(藍綬褒章)'을 받았다.
곤이 당장 풀어야 할 과제는 미쓰비시 재건이다. 르노닛산은 지난해 연비 조작으로 위기에 빠진 미쓰비시자동차를 인수하며 그룹 덩치를 더욱 키웠다. 덕분에 르노닛산은 미쓰비시를 포함해 작년 996만대를 팔아, 폴크스바겐(1031만대), 도요타(1017만대), GM(1000만대)과 함께 글로벌 4강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미쓰비시 경영 정상화의 갈 길은 멀다.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회장은“사람의 손이 전혀 개입하지 않아도 되는 자율주행차 기술이 완성되려면 15~20년은 더 걸린다”고 전망했다. / 블룸버그
작년 12월 열린 미쓰비시자동차 임시 주주총회에서 미쓰비시 회장으로 선임된 곤 회장은 고객의 신뢰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그러면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사퇴를 하는 등 모든 책임을 지는 '필달 경영'을 다시 강조했다.
곤 회장이 과거 닛산에 과감하게 칼을 댔던 방식으로 미쓰비시 기업 문화의 대수술에 나설지 관심사다.
곤 회장은 닛산 재건 때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수동적인 문화도 없애고 개개인이 기업 전체 이익을 위해 똘똘 뭉치게 했다. 곤 회장은 자신의 경영 원칙에 대해서 "임직원들이 의욕 있게, 열정적으로 일할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경영의 본질"이라며 "성공적인 경영인은 비전을 제시하고 그 비전을 이룰 수 있게 조직과 공유하고 대화하는 인물"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미쓰비시자동차 기업 문화의 병폐는 과거 닛산 이상으로 심각했다. 미쓰비시는 거의 20년간 연비 조작을 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젊은 연구원들이 이에 문제를 제기해도 고위층에서 조직적 은폐가 자행됐다. 그러나 곤 회장은 미쓰비시가 동남아에서 인지도가 높고, 하이브리드차 분야 기술이 좋아 닛산과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곤 회장이 미쓰비시를 부활시켜 시장 저변 확대에 성공하고 닛산-미쓰비시가 함께 전기차 시장 선두를 굳힐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공유 서비스 확대돼도 車 판매 줄지 않아
르노닛산은 2010년부터 수십억달러를 투입해 세계 최초 양산형 전기차 '리프'를 내놓는 등 미래 자동차 시장에 대비해 왔지만 자동차 업계 혁신의 아이콘은 이제 르노닛산이 아니라 IT 업계 몫이 돼버렸다. 구글(자율주행차)·우버(차랑 공유 서비스) 같은 비(非)자동차 업계의 위협이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앞으로 10년, 20년 안에 우리 삶에 자리 잡을 이런 기술은 자동차 기업들의 위상과 서열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다. 자동차를 기반으로 한 수익 대부분이 IT 업체로 쏠리고 자동차 업체 수익은 쪼그라들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곤 회장은 기존 자동차 업계를 위협하는 자율주행차 등 미래 기술에 대해선 "자동차 기업들의 진출이 두렵지 않다"고 못박았다. 그는 지난 1월 위클리비즈와 인터뷰에서 "자동차 산업이 변혁을 겪겠지만, 모바일 혁명처럼 변화의 규모가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 "IT 기업이 자동차 시장에 뛰어들어 자동차 제조사의 밥그릇을 뺏을 것이라는 걱정이 나온다. 하지만 자동차는 연비, 승차감, 디자인, 배기가스, 충돌 등 여러 면에서 기본적 요건을 갖춰야 한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이런 기본적인 요건 면에선 (IT 기업들에 비해) 훨씬 경쟁력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곤 회장은 자동차가 스마트폰처럼 바뀔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선 깨끗이 인정했다. "하드웨어는, 즉 자동차 자체는 5~6년은 그대로 타도 무방하지만, 차량에 탑재된 소프트웨어는 훨씬 자주, 그것도 원격으로 업데이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경쟁 관계에 있는 모든 자동차 업체가 구글 등이 만든 동일한 차량 운영 체제(OS)를 탑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일까. 곤 회장은 IT 업계와의 혁신기술 경쟁에서 자동차 회사들의 '승부처'에 대해 얘기했다. 그는 자신의 큰 관심사가 "닛산이 자동차 운영 시스템 내용을 결정할 권리를 가지면서 최첨단 기술을 확보할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했다. 그 주도권을 팔아 버리면 애플리케이션은 모두 IT 업체에서 개발하게 될 것이고, 닛산은 자동차 하드웨어를 만드는 회사로 축소된다는 얘기였다. 곤 회장은 "자동차에 어떤 운영 체제가 탑재된다고 해도 제품 개발의 주도권을 놓아서는 안 되며, 주도권을 유지할 방법을 반드시 찾겠다"고 했다.
그는 자동차 업계가 IT 업계의 신기술 위협에 쉽사리 물러서지 않을 근거로 '건축가론(論)'을 제시했다. 자동차 업체는 건축가와 같은 존재라는 얘기였다. 그는 "자동차 회사 부품·기술을 모아 제품을 조합해 온 노하우는 IT 업계가 쉽게 따라오기 어렵다"고 했다.
곤 회장은 차량 공유 서비스가 확대되더라도 자동차의 판매 대수가 급감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자기 차 소유 비중은 자연히 감소하겠지만, 공유 서비스가 늘어나면 그만큼 더 차량 이용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전체 판매 대수가 크게 줄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자동차 구매는 냉장고와 개를 구매하는 것의 중간쯤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냉장고 살 때는 전기료·용량 등 이성적 판단 기준을 더 따지지만, 강아지는 예뻐 반했기 때문에 사는 것이지 '이 강아지는 작으니 별로 밥을 안 먹겠네'라고 생각해 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곤 회장은 "자율주행이 됐든 차랑 공유가 됐든 멋진 차를 폼나게 몰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구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