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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 유착' 도시바가 될 것인가… '本業 충실' 히타치가 될 것인가

Analysis 최원석 기자
입력 2017.02.18 03:00

日 라이벌 전자 기업의 운명 가른 세 가지 차이점

'일본 전자입국(電子立國·전자산업으로 나라를 일으킨다)'의 선도기업 도시바(東芝)가 잇따른 부실로 추락을 거듭하면서, 도시바처럼 대형 위기를 겪었다가 V자형 회복에 성공한 라이벌 기업 히타치(日立)와 대비되고 있다.

도시바는 지난 14일 잠정 결산 발표에서 2006년 인수한 미국 원전기업 웨스팅하우스의 사업 손실이 7125억엔(약 7조1000억원)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회사는 모든 자산을 팔아도 부채를 갚지 못하는 자본 잠식 상태에 빠졌다. 도시바는 2015년 4월에도 2248억엔(약 2조2500억원) 규모의 회계 부정이 적발돼 최고 경영진 3명이 한꺼번에 물러나기도 했다. 회계 부정 이후 위기 극복에 실패하면서 도시바가 사실상 해체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면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쟁력 하락으로 2009년에 일본 제조업 사상 최대인 7873억엔(약 7조9000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던 히타치는 2011년 흑자 반전에 성공한 이후, 연간 2000억엔(약 2조원) 내외의 흑자를 줄곧 유지해 오고 있다. 영업이익 기준으로는 2016년 6005억엔(약 6조원)에 달할 만큼 완벽한 부활이다.

도시바와 히타치는 가전과 산업용 전기전력에서 반도체·사회인프라 등으로 업종을 확대해나가는 등 성격이 많이 닮았다. 무엇이 두 기업의 운명을 갈랐을까. 세 가지 포인트로 두 기업의 차이를 분석했다.

차이점 1

정경 유착 vs. 본업 충실

도시바는 일본에서도 정부와 연결 고리가 강한 기업으로 유명했다. 도시바 출신 경영자들은 퇴임 후에도 재계 활동이 활발하고, 특히 정부 일과 관련되는 경우가 많았다. 1996~2005년 도시바 사장·회장을 지낸 니시무로 다이조(西室泰三)는 퇴임 후 도쿄증권거래소 회장, 우정성 민영화 위원장 등을 지내기도 했다.

도시바 부실과 회계 부정의 근본 원인은 이 회사가 2006년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한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이 전문가들 분석이다. 그런데 도시바가 웨스팅하우스를 무리하게 인수한 데는 속사정이 있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원자력 르네상스 정책', 즉 원전 수출 산업을 키운다는 전략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일본에는 이른바 '철의 삼각형'으로 불리는 전력회사·정부·기업의 공생 관계가 있는데, 주요 기업인 도시바·미쓰비시·히타치 가운데, 도시바가 가장 정부 말을 잘 들었다는 얘기다.

해외 기업들 사이에서도 원전사업의 장래성이 의심됐지만, 당시 도시바 사장은 웨스팅하우스 인수를 통해 2015년까지 원전 사업 매출을 3배 이상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정부의 전략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원전 이미지가 급락하고 각종 규제가 늘어나면서, 수주는 줄고 공사비·공사기간은 늘었다. 그러자 부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2015년까지 도시바는 원전 39기를 수주하려 했으나 실제로는 8기에 그쳤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당시 도시바 경영진 주류가 원전 사업을 키우는 쪽에 마음이 쏠려 있었다"면서 "반도체 사업부 등 수익성과 미래 가치가 높았던 부문은 사내 정치력에서 밀리면서 오히려 묻혀버리고 말았다"고 말했다.

반면 히타치는 도시바와 비슷한 업종을 갖고 있으면서도, 상대적으로 정부와의 유착 관계가 약한 기업으로 평가된다. 특히 히타치가 2009년 일본 제조업 사상 최대 적자를 낸 뒤 존폐 기로에 놓였을 때 과감한 구조조정에 나설 수 있었던 점이 이 회사가 정치적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회사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차이점 2

과거 집착 vs. 개혁

도시바는 사장 퇴임 후 회장·상담역·고문 등으로 회사에 남는 원로 그룹의 힘이 막강했다. 따라서 원로 그룹 뜻에 반하거나 원로들의 과거 결정을 뒤집는 개혁적인 후계 경영자가 나오기는 어려웠다. 2015년 4월 회계 부정 이후 최고 경영진이 총사퇴했지만, 차기 경영진도 기존의 원로 그룹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특히 지난 14일 7조원의 원전 사업 부실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한 시가 시게노리(志賀重範) 도시바 원전사업 부문 회장은 수십년간 원전 사업 분야에서 커온 인물로, 원로 그룹의 후광을 받는 존재였다. 쓰나카와 사토시(綱川智) 도시바 사장은 원전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실상 원전 사업에서 배제돼 왔고, 7조원대 부실도 최근에야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 경영진은 원전 사업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을 크게 받았다. 원전 사업은 과거 경영진이 내린 가장 중요한 결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부실을 은폐하기 위해 회계 부정을 저지르고 또 다른 대규모 사업을 벌여 부실을 벌충하려는 위험한 시도가 계속됐다.

이우광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연구위원은 "도시바는 미국 경영 시스템을 일찍 받아들여 지배구조 개선에서 일본 최우수 기업으로 꼽혔지만, 부정과 부실을 막지 못했다"면서 "경영진의 의지·철학, 기업 문화 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시스템도 제대로 기능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

반면 히타치는 2009년 최악의 실적을 낸 이후 놀라운 인사를 단행했다. 기존 경영진은 완전히 배제하고, 2003년 본사 부사장을 끝으로 자회사를 전전하던 당시 69세의 노장 가와무라 다카시(川村隆史)를 사장으로 발탁했다. 실력 중심의 업무와 인사로 유명했던 인물이지만, 윗선과의 마찰 때문에 부사장을 끝으로 사실상 핵심에서 쫓겨난 인물이었다. 가와무라에게 개혁·구조조정의 전권을 맡기기로 결심한 인물은 당시 회장이었던 쇼야마 에쓰히코(庄山悅彦)였다. 쇼야마는 가와무라와 함께 개혁을 추진할 부사장 5명 전원도 미국 자회사에서 1명, 국내 자회사에서 2명 등 변방의 인물로 구성했다. '흘러간 사람'일 수도 있는 가와무라는 사장을 맡는 즉시 변화를 일으킨다. 철저한 실력주의자였던 그는 출신을 전혀 따지지 않았다. 가장 능력 있고 적합한 인물을 뽑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거의 모든 권한을 위임했다. 본사를 떠나 있으면서 바깥에서 제3자 시각에서 느꼈던 회사의 각종 문제점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갔다.

차이점 3

단기 대응 vs. 미래지향 구조조정

도시바는 2006년 미국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한 이후 손실이 커지는 것을 파악하면서도 원전 사업을 계속 확대해 나갔다. 정상적인 경영자라면 손실의 근본 원인인 원전 사업부터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그러나 도시바는 그 대신 그룹 내 캐시카우였던 의료기기 사업을 캐논에, 이미지 센서 사업을 소니에 팔아 원전 사업 부문의 손실을 보전하는 단기적 처방을 내렸다. 올 들어 7조원의 원전 부문 추가 손실이 밝혀지면서, 도시바는 회사에 마지막 남은 알짜 사업인 플래시메모리까지 팔아치우려 하고 있다. 플래시메모리 사업까지 매각되면 사실상 도시바라는 기업의 존립 자체가 불투명해질 가능성이 크다.

반면 2009년 히타치 사장에 취임해 개혁을 이끈 가와무라는 취임 100일 내 구조조정을 끝내겠다고 공표했다. 그리고 TV패널·휴대전화 등 수익성·장래성이 없는 부문을 한꺼번에 빠르게 정리했다. 미래의 히타치에 걸림돌이 될 요소를 제거해 나가는 한편, 히타치에 돈을 벌어주고 장래성이 밝은 사회 인프라 사업 등에는 인력과 자금을 쏟아부어 현재의 강점을 더욱 높이는 데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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