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비즈

한국 경제 돌파구, 투명하고 열린 금융에서 찾자

Opinion 조명현 고려대 경영대 교수
입력 2017.01.07 03:00

기관투자자의 적극적 참여 필수 기관투자자 변화시키는 원동력은 투자자 관심과 시장 압력

조명현 고려대 교수·한국기업지배구조원 원장
지난해 한국 경제를 뒤덮은 그림자는 새해 들어서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 경제의 몸 상태가 가장 먼저 드러나는 자본시장도 마찬가지이다. 종합주가지수는 6년째 정체되어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한국 시장에 대한 소위 '코리아 디스카운트(불이익)'는 과거보다 더욱 커졌다. 대만과 비교해서도 약 30~40%의 디스카운트가 존재한다고 한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한국 시장에 대한 불신을 예사로이 보아서는 안 된다는 신호이다.

제조업 주춤할 때 금융업이 나서야

글로벌 불황으로 제조업이 주춤하고 있는 와중에 금융업이라도 돌파구를 마련한다면 한국 경제에 큰 힘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 자본시장의 현실은 그리 밝지 않다. 이러한 문제의식의 바닥에는 한국 기업의 경영 투명성과 지배 구조에 대한 국내외 투자자들의 의구심이 자리 잡고 있다. 사외이사제와 감사위원회를 도입하는 등 내부 통제제도의 강화를 통해 한국 기업의 지배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시장의 불신을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IMF(국제통화기금) 등 여러 기관에서 발표한 각국의 기업 지배 구조 순위에서 한국이 아시아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한국 경제의 투명성을 높이고 기업의 지배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과 같은 기관 투자자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모습. / 조선일보 DB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기업의 지배 구조 낙후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기관투자자 자신들의 '수탁자 책임(fiduciary duty)'과 관련된 이슈이다. 최근 불거진 국민연금의 삼성물산-제일모직 의결권 행사 관련 논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과연 투자 대상 회사의 경영을 잘 점검하고, 필요할 때 적절한 목소리를 내어왔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만약 다른 사람의 돈을 모아 운용하는 기관투자자가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다하지 않으면 기업 가치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그 결과 기관투자자의 고객이나 수익자의 이익이 훼손된다는 점은 불을 보듯 자명하다.

자본시장이 발달한 금융 선진국에서는 '열린 경영'이 대세이다. 이는 '자기 목소리 내는 주주'와 '외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경영진' 간의 긴밀한 '대화와 소통'에서 출발한다. 특히 해외 금융 선진국의 기관투자자는 투자 대상 회사에 우려할 만한 이슈가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책을 도모함으로써 성숙한 투자와 자본시장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오랜 기간 노력을 기울였다. 회사 경영진에 우려 사항을 전달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때로는 주주 제안이나 주주 소송에도 참여하는 적극적인 모습도 보였다. 또한 투자 대상 회사의 경영진도 회사에 중요한 이슈가 생기면 기관투자자들과 소통하고 의논하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쌍방향의 대화와 소통을 추구해왔다. 즉 기업들이 기관투자자를 기업 경영과 가치 제고의 파트너로서 인정해 왔던 것이다.

이와 같은 흐름은 영국·일본 등 금융 선진국들이 앞다투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쉽게 말해서 자산 운용사 및 국민연금과 같은 기관투자자가 고객과 수탁자의 돈을 자기 돈처럼 여기고 관리·운용해야 한다는 규범이다. 스튜어드십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주인 재산을 충직하게 관리하는 '청지기'의 정신을 바탕으로 고객과 수탁자 자금을 운용할 때 어떻게 최선을 다해야 하는지를 일러주는 원칙이다.

다행스럽게도 이제 한국에서도 국내 자본시장의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한국판 스튜어드십 코드가 지난 연말에 도입, 시행됐다.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이다. 기관투자자가 타인의 자산을 관리·운용하는 수탁자로서 다해야 할 책임에 관해 세부 원칙과 안내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코드의 시행은 한국 기업의 지배 구조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고, 만연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완화시켜 한국 자본시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투명한 기관투자자에게 돈 몰아줘야

다만 코드가 기대한 만큼 성과를 내려면 몇 가지 추가적 요건이 충족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국민연금의 적극적 참여가 필수적이다. 한국의 대표적 기관투자자이며 국민의 노후 자금을 관리 운용하는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준수하지 않는다면 누가 이를 준수하겠는가. 국민연금은 대규모 장기 투자자로서 코드에 우선적으로 가입하여 투자 대상 회사를 세심히 점검하고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경영진과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운용을 맡길 수탁사를 선정하고 관리할 때도 수탁사가 적극적 주주로서 역할을 잘할지, 혹은 잘 수행했는지를 면밀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최근 불거진 의결권 행사 논란과 같은 불미스러운 일에 다시 휩싸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스튜어드십 코드 준수를 천명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 국내 기관투자자가 주주 활동 경험이 많지 않은 만큼 기관투자자가 코드의 내용을 잘 이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관련 해설서 발간이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투자 대상 회사 경영진에 대한 적극적이며 건설적 대화를 시도한 경험이 있는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상세한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또한 기관투자자가 코드 가입과 이행을 주저하지 않도록 주주 활동에 따르는 법적 불확실성을 완화할 필요도 있다. 이는 금융 당국의 책임이다.

끝으로 기관투자자에 돈을 맡긴 고객이나 수탁자의 태도 변화가 매우 중요하다. 스튜어드십 코드에 가입하여 수탁자 책임을 천명한 기관투자자에게로 자금을 몰아주어야 한다. 기관투자자를 변화시키는 궁극적인 원동력은 투자자의 관심과 시장의 압력인 것이다.

'기업 지배 구조 모범 규준'과 '스튜어드십 코드'는 자본시장이라는 거대한 수레를 지탱하는 핵심적인 두 축이다. 기업 지배 구조 모범 규준이 회사의 투명하고 책임 있는 경영을 지향하는 내부 통제와 관련된 것이라면, 스튜어드십 코드는 수탁자로서 기관투자자의 성실한 책임 이행을 촉구하는 외부 통제 시스템이다. 이번에 시행된 스튜어드십 코드가 새해 한국 금융업의 발전, 더 나아가 한국 경제 도약을 위한 새로운 활력소로서 강력한 효력을 발휘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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