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비즈

"경제 민주화는 성장도 분배도 모두 망친다"

Analysis 남민우 기자
입력 2016.12.03 03:05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 기관 투자자만 이득… 정치권, 경제 민주화 논할 자격 없어

신장섭(54·사진)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
네오프렌·나일론·아라미드섬유 등 혁신 소재들을 개발한 화학회사 듀폰은 올해 초 5000명을 해고했다. 첨단 기술의 산실로 여겨지던 사내 혁신연구소 직원 수백여명도 해고 통지서를 받았다. 듀폰은 내년에 경쟁 업체인 다우케미컬과 합병한 뒤 3개 회사로 쪼개질 예정이다. 214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화학 전공자들 사이에 '신의 직장'으로 불려 온 듀폰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듀폰은 몇 해 전부터 헤지펀드 투자자 넬슨 펠츠와 그가 운용하는 트라이언 펀드로부터 압력을 받아왔다. 듀폰의 지분 2.9%를 보유한 펠츠는 듀폰의 기업구조가 비대하고 이익률이 낮다며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엘런 쿨먼 전 듀폰 최고경영자(CEO)는 펠츠 같은 헤지펀드 투자자들이 연구개발의 맥을 끊는 것에 강력히 반대하다가 결국 교체됐다. 듀폰은 펠츠의 신임을 받은 인물을 차기 CEO로 선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CEO 교체에 펠츠가 이끄는 헤지펀드 군단의 압력이 작용했다고 보도했다. 쿨먼 전 CEO가 회사를 떠난 지 두 달 만에 듀폰은 경쟁 업체인 다우케미컬과 합병 계획을 밝혔다. 듀폰은 합병을 앞두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인력 감축, 사업 축소에 나서고 있다. 미국 기업들은 듀폰의 전 경영진과 헤지펀드 투자자들 사이의 경영권 다툼을 불안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미국 월간 더애틀랜틱은 "펠츠처럼 '주주 가치 극대화'라는 목표 아래 막대한 이윤을 챙기는 금융 투자자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업 지배구조 전문가인 신장섭(54·사진)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가 국내에서 논의되고 있는 '경제 민주화'에 대해 우려하는 것도 이와 맥이 닿아있다. 최근 국내 정치권이 주장하는 경제 민주화 정책은 대기업을 규제하고 소액주주와 금융 투자자들의 권리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신 교수는 "금융 투자자들이 소액주주의 권리를 앞세워 기업에 현금배당 확대와 단기 실적 향상을 요구한다"면서 "그러면 기업들은 장기 투자 전략을 세우지 못하고 고용을 축소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 교수는 주주 민주주의와 행동주의 헤지펀드를 연구해 집필한 최근 저서 '경제 민주화… 일그러진 시대의 화두'에서도 "한국이 모델로 삼은 경제 민주주의(경제 민주화)는 미국에서 분배와 고용 측면에서 실패한 모델"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서울에 온 신 교수를 만나 경제 민주화를 우려하는 이유를 물었다.

―국내에서 거론되는 '경제 민주화'에 대해 비판적인 이유는.

"한국에선 경제 민주화라고 하는데, 해외에선 경제 민주주의 또는 주주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주주 민주주의는 주주들의 힘을 강화하자는 것이 핵심인데, 실제로는 대형 기관 투자자들이 이를 내세워 이익을 취하고 있다. 한국에선 경제 민주화가 양극화를 해소하고 분배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것처럼 알려졌다. 하지만 주주와 기관투자자의 힘을 강화하려는 정책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에선 대기업의 경영권 세습과 제왕적 경영 방식을 비판하면서 기업에도 민주적인 요소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김현국 기자
"정치권은 야당이든 여당이든 경제 민주화를 논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정부 집권 이후 대기업이 낸 준조세(準租稅)만 2조2000억원이 넘는다.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 모금액은 전체에 비하면 작은 규모라 할 수 있다. 대기업에 비판적인 야당이나 재야인사들은 이런 숫자는 보지 않고 재벌이 '경제 독재'를 한다고 말한다. 실상과 전혀 맞지 않는 얘기다. 요즘 국정조사를 한다면서 가장 먼저 증인으로 채택한 사람들이 대기업 회장들이다. 내가 보기엔 기업들은 피해자인데, 왜 피해자들을 먼저 증인으로 불러서 벌을 주나. 경제 민주화론자들은 문제만 생기면 모든 악의 근원이 기업에 있고 기업을 혼내면 만사가 해결된다고 주장한다."

―경제 민주화 정책이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는데, 이유는.

"미국처럼 주주와 금융투자자의 힘을 대폭 강화하자는 경제 민주화론자들의 방향이 틀렸다는 것이다. 이 방향대로 가면 기업이 적절한 방어 수단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미국처럼 기관 투자자의 영향력이 커진다. 문제는 기관 투자자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 기업의 성장과 분배 지표가 나빠진다는 점이다. 금융 투자자 입장에선 기업의 장기 성장과 고용 확대보다는 단기에 이익을 환수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와 함께 대기업의 긍정적 역할을 강조하는 학자다. 신 교수는 "금융 투자자의 힘을 강화해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자는 말은 틀렸다"면서 "그보다는 기업들이 성장할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의 기업 지배구조는 개선할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

"아니다. 국내 경제 민주화론자들이 현재 잘못된 미국을 기준으로 삼고 한국의 기업집단을 개혁하려는 것이 문제라는 얘기다. '미국이 이런 식으로 했으니 그게 당연히 좋다'고 생각하는 전제가 잘못됐다고 본다. 미국 모델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한국에선 방향을 제대로 잡고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 필요가 있다. 서구에서 전문 경영인이 운영하는 기업과 가족 기업을 비교해 보면 가족 기업의 긍정적인 측면이 더 많다.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조조정을 받기 전까지 기업의 창업주가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당시의 성장과 분배 지표가 (지금보다) 더 좋았다. 주주 행동주의 선구자였던 로버트 몽크스는 만년에 기업의 대주주가 경영에 직접 나서는 시스템이 바람직하다고 입장을 바꿨다."

―소수의 지분을 가진 창업주 일가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에 문제는 없나.

"소수 지분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한국 기업만의 사례는 아니다.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나 구글 등 글로벌 주요 기업들은 복수 의결권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독일 기업들은 지배구조가 튼튼한 편인데, 정부가 상호출자까지 허용하는 등 유연한 법 제도가 유연하다. 반면 한국은 IMF 구조조정 이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게 대기업을 규제하는 나라가 됐다. 긴 안목에서 보면 대기업의 순환출자가 많아진 것도 정부 규제 때문이다. 1970년대 정부가 기업 공개를 유도하며 소유 분산을 요구하자 대기업들은 상호출자나 순환출자 등을 활용해 영향력을 유지하려 했다. 지금 상황에서 (경제 민주화론에 따라) 대기업들의 의결권까지 제한하면 엘리엇매니지먼트 같은 기업 사냥꾼들이 국내 기업을 공격하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신 교수의 주장에 반대하는 학자들은 그가 한국의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한국이 개발도상국이었을 때는 대기업 중심의 고도성장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다른 경제 성장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기업과 협력업체의 격차가 갈수록 커지는 문제는 어떻게 보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갈등을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원인을 대기업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가 벌어져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는 주요 배경 중 하나는 IMF 경제 위기 이후 정부가 기업 금융을 대폭 억제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중소기업을 키우는 것은 대기업이 아니라 정부의 역할이다. 정부는 '과도한 차입경영'과 '과잉 투자'의 폐해를 줄인다며 강력한 규제와 감시망을 도입했지만, 산업 쪽으로 자금이 흘러가는 시스템을 재설계하지는 않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갈등을 없애려면 먼저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줘야 한다. 그러려면 IMF 이전처럼 정부가 금융 지원을 뒷받침해야 한다. 중견·중소기업이 성장하려면 은행에서 기업 금융을 제대로 밀어줘야 한다."

―대기업의 경제 집중도가 커져 양극화 현상이 심해진다는 지적이 있다.

"분배 지표가 나빠진 것은 IMF 체제에서 노동시장 유연화 등 각종 개혁정책을 도입한 때부터다. 재벌 체제는 1997년 이전에도 있었고, 당시 한국은 개발도상국 중 분배지표가 좋은 편이었다. 재벌 체제 자체를 분배 악화 원인으로 보는 것은 맞지 않다. IMF 당시 도입된 강력한 규제로 대기업의 행동 양식이 바뀐 게 더 큰 원인이라고 본다."

―대기업 대주주의 편법 승계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의 상속세율은 50%다. 경영권을 승계할 땐 65%의 상속세율이 적용된다. 세계적으로 가장 높다. 현행법대로 하면 가족 경영 기업은 사라질 것이다. 편법 승계를 막기 위해 유일하게 남아있는 대안은 재단을 통해 가업 승계를 허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재단을 통해 경영 승계를 하되, 투자·고용·분배의 사회적 의무를 다할 수 있는 시스템을 별도로 만들어야 한다. 카네기 재단, 록펠러 재단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재벌의 역량을 생산적인 활동으로 유도해 고용을 창출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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