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회사 인텔의 이스라엘 공장은 직원 207명을 3개 그룹으로 나눠 각기 다른 내용의 이메일을 발송했다. 첫째 그룹은 "평소보다 생산 실적이 좋으면 30달러를 지급할 예정입니다"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둘째 그룹은 "평소보다 생산 실적이 좋으면 피자 한 판을 드립니다"라는 이메일을 각각 받았다. 셋째 그룹이 받은 이메일은 조금 달랐다. "평소보다 생산 실적이 좋으면 직속 상사로부터 격려 메시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라는 것이었다. 세 그룹 중 어느 그룹이 가장 좋은 성과를 냈을까.
경영진은 30달러의 현금을 받기로 한 그룹의 생산성 향상이 가장 높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피자를 받기로 한 그룹의 생산성이 가장 많이 올랐다. 평소보다 6.7% 향상됐다. 그다음은 칭찬을 받기로 한 그룹으로, 생산성은 6.6% 높아졌다. 30달러를 받기로 한 그룹의 생산성 향상은 4.9%에 그쳐, 세 그룹 중 가장 낮았다. 목표를 이뤄낸 직원들은 약속대로 보상을 받았다. 직원들의 행동을 여기까지만 지켜봤다면 경영진은 현금이나 피자 같은 보상이 나름 효과가 있다고 결론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뜻밖의 결과가 나타났다. 다음 날 경영진은 직원들의 생산성을 다시 측정해보고 깜짝 놀랐다. 30달러 또는 피자를 받은 직원들의 생산성이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30달러를 받은 그룹은 생산성이 13.2% 떨어졌고, 피자를 받은 그룹은 5.7% 낮아졌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5주 동안 직원들을 관찰한 결과 현금 30달러를 받은 그룹의 생산성은 평균 6.5%, 피자를 받은 그룹의 생산성은 2.1% 하락했다. 생산성을 높이려 보상을 한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낸 것이다.
대표적인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Ariely·49·사진) 듀크대 후쿠아 경영대학원 교수가 실제 기업 공장에서 실시한 실험이다. 결과를 본 인텔 이스라엘 공장 경영진은 당황했다. 돈을 더 줘도 직원들이 일을 게을리한다면 도대체 무슨 수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단 말인가.
댄 애리얼리 듀크대 교수가 인텔 이스라엘 반도체 공장에서 각기 다른 종류의 인센티브(성과 보상)를 제공하고 직원들의 생산성을 측정한 것은 ‘무엇이 사람들을 일하게 만드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애리얼리 교수와 공장 경영진은 칭찬 메시지를 준 세 번째 그룹의 결과에 주목했다. 칭찬을 받은 세 번째 그룹 직원들의 생산성은 30달러 또는 피자를 받은 그룹과 달리 5주 평균 생산성이 0.64% 향상됐다. 생산성이 크게 오르지는 않았지만, 경영진 입장에서 보면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더 많은 반도체를 만들어낸 셈이다. 인텔 공장 경영진은 애리얼리 교수의 실험 결과를 받아들여 단기 성과급을 주는 보상 체계를 바꿨다.
인간이 합리적이고 이기적으로 행동한다고 전제하는 전통 경제학에 따르면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면 성과가 높아져야 한다. 합리적인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이익을 극대화하는 결정을 내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을 일하게 하는 요인은 돈뿐만이 아니라는 것이 애리얼리 교수의 주장이다.
애리얼리 교수는 ‘상식 밖의 경제학(원제 Predictably Irrational)’,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원제 The Honest Truth about Dishonesty)’ 등의 저서로 유명한 행동경제학자다. 그는 대학에선 심리학을 전공했지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 프린스턴대 교수의 권유로 행동경제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의 듀크대 부근 연구소에서 그를 만났다. 애리얼리 교수는 인텔 공장의 인센티브 사례 연구를 담은 새 책(Payoff: The Hidden Logic that Shapes Our Motivation·동기를 불러일으키는 숨은 방정식)의 퇴고 작업으로 바쁜 모습이었다.
―인텔 공장에서 성과급 실험을 한 계기는.
“인텔을 비롯한 대부분 기업이 직원에게 급여를 주는 방식은 전통 제조업 사회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학이 아닌 소수의 오래된 믿음에 기반을 두고 있다. ‘성과급이 생산성을 올려줄 것’이라는 막연한 통념을 깨보자는 것이 이번 실험의 계기다. 실험 결과일 뿐 일반화하기엔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당장 모든 것을 바꾸자는 것이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데이터와 실증 연구를 바탕으로 새로운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금전 보상만 하면 성과 오히려 떨어져”
―금전적 보상이 오히려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금전적 보상은 동기 부여 요인이면서 동시에 스트레스 요인이다. 당신이 ‘10분 안에 나를 웃기면 10만달러를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고 하자. 10분 동안 당신은 무엇을 하겠는가. 스트레스만 쌓이지 않을까. 직원들이 성과급을 받기 위해 애를 태우는 것보다 업무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예를 들어 연봉을 기본급 80%, 성과급 20%로 받는다면 직원들에게 이 20%는 스트레스 요인이다. 이 20% 걱정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 동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더 잘할 수 있는 것과 더 잘하고 싶은 욕구다. 그러나 성과급을 준다고 직원이 일을 더 잘하게 되거나 더 잘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 여러 실험을 통해 내린 결론이다.”
―기업이 성과급을 주는 것에 반대하는 것인가.
“기업 입장에서 성과급은 장점이 많다. 우선 회계 처리가 편리하다. 또 ‘좋은 성과를 내야 성과급이 지급된다’는 조건은 공평해 보이기 때문에 주주들의 비난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성과급은 ‘당신은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하고 있다. 이런 전제는 직원들을 낮춰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과급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역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 성과급이 적으면 노력에 걸맞은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느껴 성과가 떨어질 수도 있다. 직원들 입장에서 성과급은 제로섬 게임이어서 다른 동기 요인을 가로막기도 한다. 경영자 입장에서 직원들을 일하게 하려면 다른 요인들도 생각해야 한다.”
―그래도 성과급 규모가 크면 성과가 오르지 않을까.
“인도에서 일부 주민을 대상으로 각기 다른 금액의 성과급을 제시하고 창의력과 암기력 향상을 측정했다. 목표치를 달성하면 최대 5개월치 급여를 지급하기로 한 그룹도 있었다. 실험 결과 성과급을 많이 받기로 한 그룹의 성과가 오히려 낮았다. 심리학에 여크스-도슨(Yerkes-Dodson law) 법칙이 있다. 자극 강도를 높인다고 의욕과 성과가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론이다. 자극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성과는 오히려 떨어진다. 당신이 성과급으로 5년치 연봉을 준다는 제안을 받았다고 가정해보자. 3년치 연봉을 준다는 제안을 받았을 때와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당신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더 할 것인가. 3년치 연봉을 성과급으로 받으면 5년치 연봉을 받을 때보다 일을 덜 하게 될까. 장기적으로 보면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2008년 금융 위기를 돌아보면 글로벌 대형 투자은행들이 위험한 파생상품을 팔아온 직원들에게 높은 성과급을 주다가 금융 위기를 부추긴 측면도 있다.”
―자칫 연봉을 깎자는 얘기로 들릴 수 있다.
“아니다. 성과에 따라 획일적으로 금전적 보상을 주는 기업의 성과 보상 체계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미로를 헤매는 쥐에게 치즈를 던져주는 것과 같다. 대부분 기업의 성과 보상체계는 직원들의 근로 의욕을 오히려 떨어뜨리고 있다. 더 스마트한 방식으로 인센티브를 지급하자는 것이다. 기본급 자체를 올리고 다른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방법이다. 이익 공유제도 찬성이다. 이동통신회사 T모바일은 이익 중 일부를 직원들에게 자사주로 나눠주고 있는데, 바람직하다고 본다. 자사주는 단순한 보상이 아니라 직원들에게 주인의식을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금전적 보상 대신 어떤 요인이 동기를 부여한다고 보나.
“사람들은 흔히 동료애나 책임감, 헌신 등 사회적 가치를 저평가한다. 기업들도 이런 요인을 일터에서 잘 활용하지 못한다. 벨기에 대형 제약회사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일부 영업 사원에게 15유로(약 1만8600원)씩을 주고 일을 더 열심히 하는지 지켜봤다. 물론 조금 더 열심히 일하기는 했다. 그러나 늘어난 성과급을 지급함에 따라 늘어난 영업 실적은 1인당 5유로에 불과했다. 다른 영업 사원들에겐 똑같이 15유로씩을 주되, 동료에게 줄 선물을 사는데 쓰도록 했다. 이 직원들이 더 열심히 일한 것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1인당 17유로였다. 금전적 보상에 동료애라는 가치를 더한 좋은 사례다. 성과급이 모두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획일적으로 돈만 주는 방식이 문제라는 것이다.”
“일할 의욕 높이려면 보상에 사회적 가치 담아야”
―왜 사회적 가치가 동기 부여가 된다고 보는 것인가.
“3주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많은 직원이 자정까지 회사에 남아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중 상당수는 동료 직원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야근을 자청한 것이었다. 특별히 수당을 많이 준 것도 아니었다. 서로 돕는 기업 문화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상당히 많은 직원이 동료와 팀을 위한 책임감을 주요 동기부여 요인이라고 말한다.”
―대기업에서는 어떤 사회적 가치를 활용할 수 있을까.
“회사마다 다를 것이다. 직원들은 결과물에서 자신이 노력한 흔적을 발견할 때 큰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직접 조립한 이케아 가구가 완제품을 사는 것보다 더 큰 만족감을 주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도 곳곳에서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동기 부여 요소로 활용하고 있다. 문제는 대부분 기업의 인사 시스템은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사 시스템을 바꾸려면 많은 법적 규제와 저항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 연구소를 운영 중인데, 이곳 직원들에게는 어떻게 보상을 하나.
“연구소에 직원이 30명이다. 지난해 연말 보너스를 줄 땐 자신이 견문을 넓히기 위해 가보고 싶은 곳 어디든지 적어서 제출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3000달러 안에서 이를 지원해 줬다. 이런 조건 없이 3000달러를 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직원들에게 ‘당신의 지적 성장을 원한다’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싶었다. 당장 귀찮게 느낄 직원도 있겠지만, 진정성이 담긴 메시지는 직원들도 이해할 것으로 본다. 사회적 가치를 담아 보상을 해야 직원들이 10년 후에도 이곳이 좋은 직장이었다고 느낄 것이다.”
―한국에선 보람 같은 사회적 가치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경영진에게 진정성을 느낄 수 없을 때 느끼는 당연한 감정이다. ‘칭찬하면 생산성이 올라간다 했으니 칭찬해줄게’라고 하면 효과가 있을 리 없다. 직원 동기 유발은 기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직원들에게 현금과 2주간 가족 휴가 비용 중 하나를 고르라고 선택권을 주면 현금을 달라고 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금으로 싼 호텔에서 자고 나머지는 자신이 쓰고 싶다는 사람도 많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내가 현금 대신 가족 휴가 비용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단순히 휴가 비용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의 관계에 신경을 쓴다’는 신호를 줘야 하기 때문이다. 직원들의 근로 의욕을 불러일으키고 싶다면 말이다.”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급여를 받는 ‘무임 승차자’를 막기 위해 성과급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무임 승차자는 기업 문화와 관련된 문제여서, 이를 성과급제로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그렇다고 정말 개선 여지가 없는 직원을 해고하는 것까지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