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에게 '임기 중 경기 침체를 막는다면 가장 큰 치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경기 침체를 막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
티머시 가이트너 전 미국 재무장관은 저서 '스트레스 테스트'의 끝을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헌사로 마무리한다. 그런데 정말 경제 침체는 끝난 것일까.
월스트리트발 금융 위기가 터진 후 공적(公敵)은 금융기관이었다.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금융기관을 비판했다. 의회와 정부는 워싱턴으로 금융기관 수장들을 불러 질타했다. 그리고 그들을 규제하고 감독하기 위한 거대한 법안도 마련했다. 학계에선 그동안 시장이 효율적이라며 규제 완화를 주장했던 자유시장주의자들이 코너에 몰렸다.
뉴욕증권거래소 / 블룸버그
2008년 9월 15일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시작한 글로벌 금융 위기는 조지 W 부시 정부에서 발생했다. 그 위기를 이어받은 건 버락 오바마 정부였다. 그리고 8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새로운 대통령 탄생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미국 경제는 어느 정도 회복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3년에는 자유시장주의자인 시카고대 유진 파마 교수와 라스 피터 핸슨 교수가 노벨경제학상을 받으면서 금융 위기로 잠시 퇴색했던 명성을 회복하기도 했다.
금융 위기가 발생한 지 8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금융 위기의 원인과 현재 경제 상황을 어떻게 분석하고 있을까. 별도로 진행된 인터뷰였지만, 이들의 주장은 비슷했다. 파마 교수는 "금융 위기를 일으킨 주범은 금융기관이 아니라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한 정부"라며 "현재의 저성장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핸슨 교수는 "통화 정책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 장기적인 재정 정책에 좀 더 집중하라"고 강조했다.
유진 파마(왼쪽) 교수와 라스 피터 핸슨 교수. / Getty Images 이매진스
유진 파마 "저성장 탈출하려면 지금보다 더 규제 완화해야"
유진 파마 교수
"경제학을 잘 모르는 사람도 한 번쯤 들어봤을 ‘효율적 시장 가설(efficient market hypothesis)’을 만든 사람은 유진 파마(Fama·77) 미국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다. 이 가설은 오랫동안 주식시장을 지배해왔고, 파마 교수에게 ‘현대 금융의 아버지’라는 별칭도 안겨줬다.
하지만 파마 교수의 주장대로라면 버블(거품)이 생겨나고 붕괴하는 현상은 설명하기 어렵다. 시장은 언제나 효율적이어서 모든 정보를 주식이나 채권 가격에 바로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2008년 금융 위기가 발생하자 그의 이론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2013년 그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자 ‘세계경제가 금융 위기 여파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파마 교수는 2008년 금융 위기에 대해 어떻게 분석할까. 그리고 현재 세계경제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까.
그를 만나기 위해 부스경영대학원 4층에 도착하자 복도 벽에는 파마 교수의 커다란 유화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시카고대 내 그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를 비롯해 각국 중앙은행들은 양적 완화 정책을 도입했다. 일부 국가는 마이너스 금리 정책까지 시행하고 있다. 연준은 올해 안으로 추가 금리 인상을 통해 양적 완화 정책을 끝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나는 중앙은행이 실제로 할 수 있는 능력에 비해 과도한 관심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금융 위기 이후 연준이 한 일은 단순히 단기 채권을 발행하고 장기 채권을 매입한 것이다. 이런 중립적인 활동은 사실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지난해 12월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이 금리 인상을 발표했지만, (이를 통해 움직이려고 했던) 금리는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갔다. 이렇듯 중앙은행은 금리를 통제하지 못한다. 금리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이지, 어느 한 나라의 중앙은행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미국 정부는 금융기관을 규제하고 감독하기 위해 3500쪽에 걸친 400개의 법안을 만들었다. 이것이 2010년 7월 발효된 도드-프랭크법이다. 대공황 이후 최대의 금융 개혁 법안으로 오바마 정부의 주요 업적이기도 하다.
올해 미국 대선을 두 달여 앞두고 도드-프랭크법이 다시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는 당선되면 현행 도드-프랭크법을 넘어서는 금융 규제를 도입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는 당선될 경우 당장 도드-프랭크법을 폐지하겠다는 입장이다.
―대선을 앞두고 도드-프랭크법이 양당 정책 이슈로 떠올랐다.
“나는 도드-프랭크법이 금융 위기 재발을 막는 데 그다지 효과가 없다고 생각한다. 2008년 금융 위기가 발생한 것은 정부의 주택 담보대출 기준 완화 때문이었다. 미국 정부는 1990년대 초부터 주택 담보의 대출 기준 완화를 추진했다. 정부는 더 많은 사람이 집을 소유하면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재산이 늘어나 소득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도드-프랭크법을 상정한 바니 프랭크 하원 금융위원회 위원장도 강력한 지지자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그 계획은 당연하게도 실패했다.
정책을 지지한 쪽은 정치인들인데, 막상 피해를 본 것은 금융기관들이었다. 도드-프랭크법은 (인위적인) 주택 담보대출 기준 완화라는 핵심을 건드리지 않았다. 심지어 바니 프랭크는 모기지 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위험성이 큰 대출을 해주도록 했다. 그런 사람들이 도드-프랭크법을 만들었기에 (사건 당사자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금융 위기는 금융기관이 아닌 정부 때문이라는 주장들은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어느 정도 부동산 정책에 개입하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나. 시장에 맡겨 뒀다가 버블이 발생하면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볼 것 같은데.
“당신이 생각하는 버블의 정의가 무엇인가.”
―예상보다 주택 가격이 빠르게 상승하는 것을 부동산 버블이라고 하지 않나.
“왜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걸 버블이라고 표현하는가. 그걸 버블이라고 하려면 가격이 어떻게 오른다는 것을 사전에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가격을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들은 어떤 현상이 발생한 후에야 비로소 그것을 버블이라 부른다. 가격은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는 변동성이 아주 많은 요소다. 주택 가격은 어느 순간 올랐다가 내리고, 다시 오르기도 한다. 그러면 버블은 가격이 오른 것인가, 떨어진 것인가. 아니면 다시 오른 것인가. 버블이라는 단어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다.”
―한국인들은 사유 재산의 상당수가 부동산에 묶여 있다. 부동산의 가치 상승이 자신들의 부(富)와 연결되기 때문에 정부에서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건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보유하는 자산이 주택이다. 대부분의 중산층은 집을 보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은 주택 문제에서 손을 뗄 수 없다. 2008년 금융 위기 이전 정치인들은 금융기관에 이런 증권(부동산담보증권)을 발행하라고 부추겼다. 연준이 비록 상황이 위험하다는 것을 인식했더라도 쉽게 개입할 수 없었다.”
―그러면 정부, 중앙은행은 어떻게 해야 하나.
“정부, 중앙은행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 마라. 국민은 정부에 많은 것을 바라고 있지만 정부는 바람대로 일을 해주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현재 상황에서 정부가 어떻게 해야 사람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들은 정부가 잘 돌아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정부가 무언가를 더 해주길 바란다. 말이 안 된다.”
―현재 세계경제에서 가장 큰 위험 요소는 무엇인가.
“지나친 규제다. 지금은 금융업을 시작하거나 유지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물론 규제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규제가 너무 심해 사업을 시작하거나 유지하지 못하게 한다. 지금보다는 적은 수준으로 규제를 풀어야 한다.”
―미국 대선 등 각국 정치권에서는 부의 재분배가 주요 쟁점이다.
“시장이 부의 재분배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특정 그룹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보다 더 생산적으로 경영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그들은 점점 더 부유해질 것이다. 정부가 이들의 부를 재분배하려 하면 그들은 더 열심히 일하고 혁신하려고 하는 원동력을 잃어버릴 것이다. 기껏 번 돈을 다시 정부에 돌려줘야 한다면 누가 열심히 일하겠는가. 그렇게 되면 소득 불평등은 줄어들겠지만, 결국 모든 사람이 더 가난해질 것이다. 그건 별로 좋은 결과가 아니다. 유럽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만들어주겠다는 노력을 1970년대부터 해왔다. 그 결과 유럽은 이전과 비교해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 40년째 저(低)성장을 겪고 있다. 유럽에선 경제성장률이 2%만 되어도 높다고 여긴다.”
―하지만 부자들은 계속 부를 축적하고, 가난한 사람은 계속 가난해지는 상황이 옳은 것은 아니지 않나. 정부 개입이 어느 정도 필요한 것 아닌가.
“한국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미국에서는 상류층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부를 나눠 준다. 이 건물도 데이비드 부스(자산 운용사 DFA 공동 창립자)가 거액을 기부해 세워, 이름이 부스경영대학원이다. 미국에서는 부자들이 자신의 판단에 의해 거액을 기부해 부의 재분배를 실천한다.”
―한국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기부 시스템이 제대로 돼 있지 않아 기부를 해도 더 큰 액수의 세금을 내거나 기부한 돈이 잘못 흘러들어 가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기부를 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기부 문화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부자들이 자신의 돈 사용처를 고를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세금을 통해 정부에 주거나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기부하거나 아니면 빈민층을 돌보는 민간 재단에 맡기거나 그 결정을 부자들 스스로에게 맡겨야 한다. 부자가 번 돈을 어디에 쓸지 결정하는 것을 정치인이 하면 안 된다.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최고경영자(CEO)는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에 거액을 기부한 후 ‘정부보다 게이츠재단이 그 돈을 더 잘 쓸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게 기부 문화의 핵심이다. 정부는 돈을 효율적으로 쓰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자유를 주고, 돈을 적절한 곳에 쓰라고 장려하는 게 훨씬 낫다. 정부가 부자들에게 부를 재분배하라고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스스로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기업들이 사내유보금을 늘리고 투자를 하지 않는 것도 문제로 지목된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기업들은 투자하지 않고 주식을 재매입하거나 배당금을 지급하고 현금을 보유하려 하고 있다. 내 생각에 기업들이 투자를 미루는 건 미래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서다. 지금 어느 나라든 정부에 대한 불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높다. 미국 대통령 후보에 출마한 사람들을 보라. 정말 끔찍하다. 그들이 주장하는 경제정책이 말이 되나. 한 후보는 무역을 제한하겠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1930년대 대공황이 무역을 제한했던 스무트 할리 관세법 때문에 발생했음을 알고 있다. 지난 30년을 돌아봐도 무역을 했기 때문에 모두가 살기 좋아졌다. 그런데 어떻게 지금 무역을 제한하겠다는 건가.”
―한국은 아직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지수(MSCI) 등에서 신흥국으로 분류된다. 선진국 지수로 편입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한국은 신흥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미 선진화된 경제를 이루었다. 삼성·LG 등 기업들의 경쟁력이나 개인의 생활수준을 본다면 한국은 선진국으로 분류돼야 한다. 나도 얼마 전 세계 최고라는 LG 텔레비전을 샀다. 하지만 한국을 신흥 시장에서 빼버리면 더 이상 신흥 시장으로 분류할 수 있는 국가가 남아 있지 않다. 금융권에서 신흥 시장 상품이라고 하면서 뭔가 팔고 싶으면 몇몇 큰 주체를 남겨둬야 한다.”
―그러고 보니 현재 신흥 시장이라고 할 만한 곳이 한국과 중국 등 몇 개 없다.
“중국은 신흥 시장이 맞다. 중국 정부는 경제의 상당 부분을 비효율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그건 자본을 낭비하는 것이다. 중국 경제가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경제를 외부에 좀 더 개방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지금 중국 경제 시스템이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중국인들은 기업가 정신이 강하다.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태국 등 동남아시아 어딜 가도 그곳에서 잘 나가는 기업가들은 현지인이 아닌 중국인이다. 밀턴 프리드먼은 ‘사람들에게 자본주의를 누리도록 하면 그 사람들이 더 많은 자유를 갈망하게 될 것이다. 바로 중국이 이러한 문제를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중국의 일당 독재 체제하에서는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중국 경제가 점차 발전해 많은 중산층과 상류층이 생겨나면 그들은 더는 독재를 가만히 두고 보진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은 매우 위태로운 상태다. 그런데 과연 공산당이 자발적으로 지배권을 포기할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低)성장의 길에 접어든 한국 경제에 조언한다면.
“만약 한국 경제가 성장 한계에 부딪혔다고 생각한다면 규제 완화를 통해 사업을 더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방안이나 인력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 한국은 교육 시스템도 잘 돼 있지 않은가. 시카고대로 유학 온 한국 학생들도 정말 우수하다. 사람들에게 경제적 자유를 보장해주고, 사업을 자유롭게 시작하도록 해주면 경제성장은 가능하다.”
―1960년대부터 미국 금융사의 발전과 쇠퇴, 붕괴와 부활 그 가운데 있었다.
“내가 처음 연구를 시작했을 때는 금융 자체가 새로운 것이었다. 내가 연구한 것들을 학생들이 배우고, 그 학생들이 현장에서 이론을 활용하면서 금융업이 크게 발전했다. 금융업은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1960년대 금융업은 아주 작은 산업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주 큰 산업이 됐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원인은 금융업이 발전함으로써 자원이 좀 더 효율적으로 배분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찍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게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아무도 그런 연구를 하지 않았기에 더 쉬웠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효율적 시장 가설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근거가 없다. 경제학에서 이보다 좋은 모델을 생각해내긴 어려울 것이다. 시장은 1960년 내가 처음 연구를 시작했을 때도, 그리고 반세기가 넘은 지금도 언제나 효율적이다.”
라스 피터 핸슨 "통화 정책 약발 다 했다… 재정 정책 집중을"
라스 피터 핸슨 교수
2008년 9월 16일 오후 4시,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의장과 헨리 폴슨 재무장관은 백악관 루스벨트룸 황갈색 가죽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 앞 나무 테이블 건너편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이 있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따라 웃음기 하나 없는 표정으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우리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소?”
버냉키 전 의장이 저서 ‘행동하는 용기’에서 밝힌 리먼브러더스 파산 신청 직후 백악관 상황이다. 경제학에서 앞으로의 일을 예측한다는 것은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전 세계 어느 나라도 2008년 금융 위기를 예상하지 못했다.
라스 피터 핸슨(Hansen·64) 시카고대 경제학과 교수는 ‘계량경제학의 대부(代父)’로 불린다. 2007년에는 미 계량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2013년에는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현재 미 시카고대 베커프리드먼연구소의 소장으로 재직 중인 핸슨 교수를 만나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경제 변수는 어떻게 변했는지, 앞으로 세계경제는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를 물었다.
―재닛 옐런 미국 연준 의장이 올해 안에 추가 금리 인상을 시사하는 발언을 하면서 세계경제가 또다시 들썩이고 있다.
“많은 금융시장 주체들은 미국 연준의 금리 정책에 엄청난 관심을 보인다. 연준 회의의 발언 내용에 대해서도 많은 추측을 한다. 연준이 실제로 추구해야 할 목표는 인플레이션을 관리하고 노동시장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통화 정책에만 관심을 가졌다. 나는 현 시점에서 통화 정책이 경제를 증진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거의 다 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정말 노동시장을 포함해 거시경제 전체에 영향을 주고 싶다면 이제는 다른 수단을 찾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과 유럽은 장기적인 재정 정책에 중점을 두고 그 정책들이 어떻게 다뤄져야 하는지, 그리고 금융시장을 신중하게 관리·감독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재정 정책이 통화 정책보다 경제 전반에 영향을 더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껏 공부했던 경제학적 상식에 오류가 있거나 지난해 12월 연준이 기준 금리를 올린 결정이 틀린 것이다.”
작년 12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기준 금리를 인상했음에도 국채 금리가 하락하자 마크 길버트 블룸버그 칼럼니스트는 이같이 주장했다. 연준의 선제적 조치(forward guidance·통화정책 방향을 미리 외부에 알리는 것)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따라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선제적 조치’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주요국 중앙은행이 시작한 정책이다. 앞으로의 정책 방향을 미리 공지해 시장의 우려를 완화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선제적 안내가 통하려면 연준이 이끄는 대로 시장이 움직여줘야 가능하다.
―작년 말 연준의 선제적 조치가 작동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기준 금리를 올린다고 국채 금리가 같이 변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금리 커브의 기울기는 시간에 따라 달라지고, 연준은 그것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한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도입된 중앙은행들의 선제적 조치는 연준이 미래의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겠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무언가를 하겠다는 약속이다. 하지만 최근 연준이 보내는 메시지를 보면 ‘명확함’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자신들이 어느 정도 재량껏 유연하게 행동하겠다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이것이 역효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연준의 대처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금융 위기 여파를 줄이기 위해 금융시장의 유동성을 확대하려고 한 것은 잘했다고 평가한다. 이 방법은 생산적이었고, 실제로 도움이 됐다. 정부는 당시 모든 금융기관을 지원해줄 수 없었다. 그런데 만약 그 기관들을 모두 지원해줬다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그 기관들은 앞으로 자신들의 경영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덜게 된다. 그러한 두려움이 사라진다면, 그들이 경영을 잘 하도록 유도하는 인센티브가 줄어들게 된다. 시장의 규율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야만 잘 작동한다.
정부가 금융기관을 관리 감독하는 것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 하지만 경영자들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잃게 될 정도의 정부 개입은 무의미하다. 내가 기대하는 규제 정도는 금융기관이 투명한 자기자본 요건 정도를 유지하도록 하는 간단명료한 형태의 관리 감독이다. 만약 이 이상의 복잡성을 요구한다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금융 분야의 규제를 강하게 하는 것이 왜 잘못인가.
“정부가 금융 분야를 심하게 규제한다면 그곳에서 진행되던 활동들은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비은행 금융기관)으로 밀려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시장이 잘 작동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가 관리 감독을 강화했을 때 역효과가 발생하는 것을 너무 많이 봤다. 각 경제주체가 확신을 가지고 계약을 위반하지 않고 의무를 다하며 행동한다면 규제 없이도 시장은 잘 작동할 것이다.”
―바람직한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최근 베커프리드먼연구소에서는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상호작용, 그리고 재정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물가에 대해 논하기 어렵다는 연구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각국의 경제는 상호작용이 크게 증가했다. 각국 증권시장은 수년 전과 비교해 서로에게 반응하는 새로운 자산 가격 변수들이 많이 늘어났다. 그렇기 때문에 각국 정부는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 과거보다도 훨씬 많은 분야에서 서로의 연관성을 고려해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그리고 재정정책을 만들 때는 통화정책보다도 좀 더 멀리 바라보고 장기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금융 위기 이후 경제 시스템은 어떻게 변화했나.
“금융 위기 이후 발생한 새로운 현상들은 새로운 데이터를 제공하고 새로운 모델을 필요로 한다. 금융 위기 이후 많은 사람이 자주 사용하는 개념 중 하나가 ‘시스템적 리스크(systemic risk)’다. 정부가 금융시장에 개입하도록 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금융 네트워크가 상호 연결돼 있어 어느 한 부분이 실패할 경우 전체 네트워크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비슷한 관점에서 거대한 금융기관이 전체 금융 시스템에 관여할 수 있어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도 믿는다. 하지만 난 몇 년 전 우리가 시스템적 리스크라는 개념을 남용하고 있다는 주제로 논문을 쓴 적이 있다. 우리가 직면한 리스크 중 과연 어떤 것들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고, 그것이 어느 정도 중요한지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 이 리스크들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정확히 알아야만 정부는 적합한 틀을 사용해 금융기관을 감독할 수 있다. 현재 베커프리드먼연구소에서는 ‘거시금융모델링그룹(Macro Financial Modeling Group)’을 결성해 이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이 연구가 궤도에 오른다면 우리는 앞으로 금융 위기가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를 더 잘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이 바로 경제학의 재미다.”